〈 78화 〉77화. 집으로! (2)
“뭐? 자폭? 야! 너 나와봐! 나와!”
고래고래 소리치던 타몬트가 수호자를 풀고는, 대검을 땅에 다 ‘쾅’ 박아 넣었다.
“야, 우리 다 죽는 거야?”
황금 기간트가 발검을 옮기더니, 벽 한쪽에 주먹을 내지른다. 별다른 타격이 없다. 흰 연우로 돌아와 구리의 품에 머리를 비빈다.
“에휴, 저기도 방법이 없나 보네.”
붉은빛이 계속 점멸하며, 여기저기 폭발음이 들린다. 그들이 있는 이방도 흔들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루시안은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만져보고 두드려본다. 태평한 모습이었다.
“방법이 있는 거야?”
“아뇨?”
“뭔데, 그렇게 태평하냐?”
“서두른다고 될 것도 아니잖아요.”
루시안이 씨익 웃는다. 타몬트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타몬트 형 걱정하지 말아요. 루시안이 웃는 거 보니까, 무슨 대책이 있는 거예요.”
“뭐? 저 자식이 진짜! 형을 놀려?”
“자,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튀면 큰일 납니다.”
루시안이 꺼낸 건 하이퍼엑시드-슬라임포밍이었다. 그렇다, 아칸다 대륙에서 가져온 그것이었다.
루시안도 뒤로 물러서서, 벽을 향해 힘껏 던지며, 일반탄을 장전해 쏘아 맞혔다. 혹시나, 터지지 않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초강산의 액체가 벽에 닿더니, 벽을 순식간에 녹여버리기 시작한다.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리한테 물대포를 한번 쏴달라고 했다. 혹시 남아있을 액체를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정리가 어느 정도 되자, 발터가 고리 달린 말뚝을 꺼냈다. 그걸 바닥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그렇게 3개를 박아넣었다. 그리고 밧줄을 고리에 단단히 연결해 묶었다.
발터가 몸을 밧줄로 묶고는, 녹아버린 벽 밖을 쳐다보았다.
“아래론 구름밖에 안 보여. 큰일인데?”
붉은빛의 점멸 간격이 더욱 짧아지고 있다. 폭음도 더 거세졌다. 그때, 방이 완전히 기울어 뚫린 벽이 위로 향해버렸다. 점점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이들이었다.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른다.
발터가 연결해둔 밧줄을 잡는다. 발터가 루나를 챙겼고, 루시안은 구리와 여우를 챙겼다. 타몬트는 알아서 자신을 챙겼다.
“이대로 떨어져 내리면 그대로 몸이아작 나버릴건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
구리가 나섰다.
“형, 제 등에 타요!”
구리가 거대한 개구리로 몸을 변형시켰다. 루시안이 구리의 입에 밧줄을 물려주었다. 구리가 밧줄을 입에 물고는 몸을 고정시켰다. 루시안은 그대로 날아올라 여우를 껴안은 채로 구리의 등위로 올라갔다.
이전처럼 등받이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루시안이 여분의 밧줄을 꺼내 던졌다. 그걸 발터가 받아서 루나에게 건넸다.
“루나야, 손 놓을 테니까 루시안이 준 밧줄 잡고 이동해!”
“네.”
발터가 밧줄을 놓자, 공중으로 날아오른 루나를 루시안이 당겼다. 루나 다음은 발터였다.
타몬트만 남았을 때, 일행이 빠져나온 정체불명의 그것의 외부에도 폭발이 터지기 시작했다.
“타몬트 형, 밧줄 놔요!”
루시안이 소리치자. 타몬트가 밧줄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구리도 밧줄을 놓고 혓바닥으로 내밀어 타몬트를 감아올렸다. 그리고 타몬트는 침에 축축이 젖은 상태로 등위에 앉았다.
루나가 틀린 마법으로 닦아주었다.
“으윽, 난 더럽혀졌어!”
구리가 그대로 정체불명의 것의 외부를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제야, 그 정체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석상이었다. 골렘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행이 박차고 오른 곳은 녀석의 가슴이었다.
머리와 팔다리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저 아래 설산의 협곡 아래로 천천히 쓰러져갔다.
구리는 공기 방울을 크게 불어, 그걸 이용해 계단으로 삼아 천천히 아래로 점프해 내려갔다. 기존에 루시안 일행이 올랐던 설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무너져버린 산과 거대 석상의 잔해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 주변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주변을 눈으로 집어 삼켜버린 상태였다. 흰 바람 부족이 걱정되었다.
지상으로 무사히 내려왔다.구리도 지쳤는지 지상에 도달하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이내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구리가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고생했다. 구리야.”
어찌 되었건, 산에서 내려왔다. 휴식이 필요했다. 드레가 준 종을 울렸다. 잠시 후, 드레와 부족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었군?”
“산이 아주 난리가 나서,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얼굴 봐 지금 대답할 정신이 없어 보이잖아! 마을로 가자고.”
마을로 돌아와 드레가 내준 집에서 하루를 꼬박 내리 자버렸다. 누구 하나 중간에 깨질 않았다. 마을의 꼬마들이 힐끔힐끔 창으로 안을 살피다가 갔다.
“저 사람들이 설산을 무너뜨린 거야?”
“너도 봤잖아, 산에서 커다란 거인이 나타나는 거!”
다음날, 일행들이 자다가 결국 배고픔에 눈을 떴다. 드레가 토끼고기가 들어간 멀건 죽을 내왔다. 한 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빈속을 달래는데 제격이었다.
“끌끌, 제자 놈들하고 다들 멀쩡히 살아 있었구나!”
화광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들 다친 데도 크게 없고. 저기 저 험상궂게 생긴 놈 기운을 너무 갑자기 끌어다써서 몸이 상했어! 빨리 뒈지고 싶으면 그 짓거리 몇 번만 더해봐. 바로 골로 갈 테니까.”
“예, 주의하겠습니다.”
타몬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꼭, 젊은 놈들이 몸 아낄 줄을 몰라, 젊다고 나대다가 늙은것들보다 먼저 가더라니까? 튼튼할 때 잘 챙겨 이놈들아!”
그러면서도 탕약까지 준비해둔 화광이었다.
“괜히, 여기에 머물렀다가 손해만 보았어! 쯧쯧! 난 돌아갈 터이니 이놈들이나 잘보살펴라!”
“예, 어르신”
화광은 그렇게 떠나갔다. 듣자 하니, 떠나려던 날 산에서 괴변이 일어나, 혹시 몰라 기다렸다고 한다. 루시안일행이 다칠까 봐서 기다린 거였다. 그리고 드레가 그들을 데리고 오자, 진찰하고 약을 달인 것이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스승님이라니까.”
노숙과 담묵이 에움길의 그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전해줬다. 돌아가는길이 힘들진 않을 것 같았다.
다들 기운을 차리고, 활동에 무리가 없자, 바로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들 가게나!”
일전에, 루시안이 초진했던 아이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멀쩡히 잘 나았나 보다.
드레가 따라나섰다. 에움길의 마을까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그가 안내하는 길은 굉장히 빠르고, 안전했다.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도착해버렸다.
“흰 바람 부족원은 각자 자신만의 샛길을 가지고 있다. 대회도 연다. 누가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는지로.”
할 말이 없는 부족이었다. 참고로 5년간 우승은 드레가 했다고.
마을로 가니 노숙과 담묵이 반겨준다. 뭐 하고 있나 했더니 촌장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아, 그 소문 들었습니까? 의선의 비서가 이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문 말입니다.”
근황을 묻다가, 노숙이 뜬금없이 의선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최근 들어 길목마다, 그 책을 찾는 자들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저희끼리 가면 귀찮아지니까. 어차피 돌아오실 거 같이 갈려고 눌러앉았습니다.”
루시안은 그들에게 느꼈던 감동의 감정을 끄집어내, 발로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아, 그러시군요.”
루시안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이미 삐져버린 상태다. 화광에게 들른다고 자리를 피했다.
“스승님, 자리에 계십니까?”
“뭘, 자꾸 찾아오느냐? 바쁜 길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가거라!”
“제가 대륙에서 만든 건데 양이 많진 않지만 두 병은 드릴 수 있어서 놔두고 가겠습니다.”
어설픈 한울 대륙어로 뚜껑 따는 법을 적어서, 탄산음료 두 병을 문 앞에 두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귀찮게 뭘 자꾸 찾아오느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는 잊고, 네놈이나 잘 살거라!”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대답은 없었다. 발걸음을 옮겨, 일행에게 돌아왔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이곳에서 볼일은 다 보았다.
담묵이 익숙하게 염소를 몰았다. 노숙이 몇몇 군데 길을 짚었다. 담묵과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정했다.
“그 귀찮은 놈들이 적은 곳으로 몰겠습니다. 조금 험할 수 있습니다.”
노숙의 말은 거짓이었다. 아주 험했다. 전생에서 타본, 디스코팡팡이나 로데오가 생각이 났다.
일행이 그렇게 떠난 후, 화광이 슬며시 문을 열었다.
“녀석, 벌써 글이 이렇게 늘었다니. 머리 하나는 정말, 부러운 녀석이군. 어디 보자. 거참 신기하게 생긴 병이로고.”
루시안이 알려준 방법대로 뚜껑을 딴다. 친절하게 도구까지 두고 갔다. ‘뽕’하는 소리와 함께뚜껑이 열린다. 색은 두 가지였다. 검은색과 투명한 것.
“오오,이리 달고 입안을 톡톡 쏘는 이 청량한 맛. 이거 소화에도 좋을 것 같군. 흠, 이걸 더 구할 순 있으려나. 소화제를 이걸로 만들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인데.”
마을로 나갔다가, 마침 촌장과 대화를 나누던 드레를 발견했다.
“화광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드레, 혹, 자네 상단하고도 많이 아나?”
“이곳에 한울 대륙의 상단입니까?아니면, 아스타리안 대륙의 상단입니까?”
“아스타리안일세.”
“그쪽이라면, 라이야 상단만 들어와 있습니다. 일주일 후, 부족의 물품을 사러 아라 항에 갈 일이 있습니다.”
“그럼, 말일세. 이걸 그 상인에게 전해주게.”
화광이 편지를 건넸다.
“알겠습니다.”
“고맙네.”
노숙이 짚었던 길의 길목마다 그득그득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무래도, 길목을 지키고 탐색하는 자들이 많아 보입니다. 산적이나 다름없어서, 말을 묻고, 가진 게 많다 싶으면, 물건을 빼앗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래 가전길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살짝 돌아서 가시겠습니까?”
“돌아가면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수도 비나리를 통해서 바오를 거쳐 아라 항으로 갈 계획입니다. 아무래도 저것들은 수도까지는 설치기 힘듭니다.”
“그런데, 저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돈만 주면 다하는 흑전견이라고 부르는 자들입니다.”
루시안이 일행을 바라보았다.
“귀찮은 것보단 살짝 돌아가는 게 나아 보이는데 다들 생각이 어때요?”
“타몬트 형은 수돗가면 또 술 마실 거 아냐!”
“어디를 가도 마시잖아.”
“그건 그러네.”
“저기요, 여러분 저 여기 있습니다. 저 안 보이십니까?”
“수도로 가서 하루 푹 쉬고, 맛있는 거 먹고 출발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모처럼 온 한울 대륙이니까요. 수도는 들러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루나가 말하자, 발터가 반색하며, 찬성했다. 구리도 찬성했다. 타몬트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수도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노숙이 마부석의 작은 창을 열어, 길을 알려준다. 담묵이고개를 끄덕이고 염소를 수도로 몬다.
그 시각, 산적 연합 수금원 호창은 손톱을 짓씹고 있었다. 일전에 타몬트와 싸웠다가 주량 대결까지 펼치고, 무승부를 겨뤘던 그자였다.
“흑전견에게서 보고는?”
“없습니다.”
“아니, 왜 못 찾는 건데!”
“가장, 수상한 자들은 일전에 그 자들입니다.”
“그놈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잖아! 흑전견에서도 걔들 못 봤다며!”
“어차피, 이 대륙에서 나가려면, 아라 항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도. 개들을 풀어놓았으니. 분명, 소식이 올 겁니다.”
“에잇, 그것만 가져다가 팔면, 이 더럽고 구질구질한 삶도 끝인데.”
그 비급서를 한울 대륙의 화폐로 100만 냥에 산다고 했었다. 그 돈이면, 아무 일 안 하고 멋들어진 집에서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었다. 호창이 비급서에 대해 안다는 소문이 퍼지고, 얼마 안 있어서 들어온 제안이었다.
비급서 판매가 늦어지자,계속 재촉을 해오고, 협박을 해오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밤에 술 없인 잠들 수가 없었다. 밤마다 누가 들어와 칼로 쑤실 것 같은 기분에 불안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당장 찾아야 해! 당장!”
마차는 한참을 달려, 큰 대로로 접어들었다. 멋들어진 기와집과 화려한 외관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마차를 보관 가능한 고급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염소에게 신선한 풀이 제공되었다. 담묵과 노숙이 머물 방까지 계산했다.
“내일 낮에 떠나는 거로 하겠습니다. 두 분은 같은 방을 쓰시면 됩니다.”
루시안이 열쇠를 건네자. 노숙의 표정이 환해진다. 담묵은 예나 지금이나 표정 변화가 없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할 뿐이다.
맛있는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에서 푹 쉬었다. 잠이 너무나도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