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75화. 둘이 되어버린 구리
“눈은 두 개고, 머리는 하나고, 코도 하나고, 팔은 두 개고…….”
“타몬트 형, 정신 차려요. 뭔, 소릴 하는 거예요!”
“차이점 찾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때는 타몬트의 구출 시점으로 돌아간다. 타몬트를 구출하고 나서, 빠져나와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루시안 형!”
입구에서 구리가 나타났다.
“응?”
루시안은 옆을 쳐다보았다. 분명, 여기에 구리가 있다.
“형, 저기에 나랑 똑같은 게 있어요.”
“일단, 모두 정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아요.”
루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리가 둘일 리는 없다. 분명, 둘 중의 하나는 가짜다. 그리고, 그 가짠, 스노우에코 대장 놈일 것이다. 일단, 문 앞에 있는 구리를 2호 구리, 옆에 있는 구리를 1호 구리라고 했다.
그리고, 1호 구리의 손목에 붕대로 쓸려고 얻어둔 천을 묶어주었다.
“임시로 구분 짓는 거야, 알았지?”
“응!”
“형! 나 추워요!”
2호 구리가 춥다고 떼쓴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주었다.
루시안은 수첩에 문제 몇 개를 적어서 둘에게 나눠주었다. 말로 했을 땐 따라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문제, 마녀의 숲엔 누가 사는가? 둘 다, 벨가 님이라고 썼고.”
“타몬트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가? 야, 루시안 너!”
“둘 다 답은 술이라고 적었네요.”
“이걸로구분되는 거야? 어떻게 구분짓는 게 좋을까?”
“상식적으로 나중에 나타난 구리가 수상하지 않아?”
루시안이 2호 구리한테 물었다.왜 여기에 있냐고,
“깨어나 보니까, 여기였어요!”
그 말에 다시 토론이 이어졌다.
일단, 동굴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감옥의 나무를뜯어다가 마법으로 불을 지폈다. 두 구리를 거기다가 앉혀놨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1호 구리가 가짜잖아? 그러면, 2호 구리를 여기다가 두고, 다시 돌아갔다는 거잖아! 실종 지점에서 멀다면서? 이상하지 않아?”
“부하를 시켜서 이곳에 데려다 놨을지도 모르잖아요. 다들 정신을 잃었는데, 같은 증상이잖아요.”
설상가상으로 수첩에 문제는 둘 다 정답, 똑같았다. 답답하다.
추출을 시켜봐도, 변신을 시켜봐도 똑같았다. 일행들이 한숨을 내쉬자. 드레가 솔깃한 이야기를 건넸다.
“너희들이 찾는 그 유적 말이다, 소문이 한가지 있다. 그곳에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는 소문,”
“야, 루시안 저거다, 저게 있으면 되는거네!”
“형 말이 맞아. 유적 찾으러가자!”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둘은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표정 하나 행동하나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시간도 늦었는데, 우리 부족으로 가겠나?”
“둘 중의 하나가 몬스터일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눈을 가리고 가면 되지 않겠나?”
“아!”
타몬트가 묘책이라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연신 드레를 칭찬했다.
두 구리에게, 검은 짙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조금만 참자!”
둘의 눈을 가리고, 드레의 안내를 받아, 부족으로 향했다.
눈보라가 치는 길 속에, 정해진 길이 있다는 듯 빠르게 헤쳐나간다.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바위지댈 지나, 더 안쪽으로 가니, 바람하나 불지 않는 지대가 나왔다. 거기에서, 다시 안쪽으로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눈앞에,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분명, 밖은 겨울이었는데, 여긴 봄이라니. 눈을 가린 구리의 안대를 벗겨주었다. 이쯤이면 될듯해서다.
“우와!”
둘이 똑같이 말한다.
드레는 일행을 촌장에게 안내했다.
“촌장님, 드레입니다. 손님을 데리고 와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수염이 성성하고,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곳에 오는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로군. 나는 촌장 다온이라고 하네. 자네들이 그 눈메아리들을 처리한 사람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흐음, 약초 냄새가 짙은 사람이군.”
이곳 사람들은 이상하게 후각이 좋았다. 진짜, 향수를 만들어야 하나?
드레가 촌장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인다. 촌장의 눈이 구리를 향한 걸 보니, 둘 중 하나가 가짜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흠,일단 내일 날이 밝으면, 출발하시게. 오늘은 늦었으니 자고.”
“아! 드레, 혹시, 유적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까?”
“다들 소문만 들었지, 찾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저, 산봉우리 너머 어딘가라고 할 뿐. 우리 부족도 산 중턱까지 가는 게 다다.”
“그렇군요.”
이곳에서 정보를 얻는 건 힘들어 보였다. 일단은 저 산을 올라야 한다는 건 확실해졌다.
“드레,이곳은 뭐야? 어떻게 이렇게 밖과 안이 다를 수 있지?”
타몬트가 주변을 둘러보다 의문을 가졌다.
“나도 모른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이런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가 풍족해 보여도, 또 그렇지도 않다. 땅이 많은 게 아니라서, 부족한 식량은 마을 밖의 사냥을 통해 해결하고 있지.”
동굴을 개방해, 계산함을 둔 것도 자구책의 하나였다고 한다. 인심 좋은 모험가들을 만나면, 꽤 보탬이 되는 모양이다. 루시안은 드레에게 따로, 숙박비를 지급해뒀다. 사양하는 드레와 한참 실랑이했었다.
“저 둘은 진짜 구분을 못 하겠네. 너무 똑같아. 하는 행동, 버릇, 말투에 기억까지.”
“빨리, 유적을 찾아야죠. 구리에게 무슨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다음날, 마을이 부산스러웠다. 갑자기, 마을 아이 하나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원인 모를 고열과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
다들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곳은 이게 문제였다. 의원이 없다는 것. 가장 가까운 의원이라면, 에움길의 화광이었다. 족히, 하루를 꼬박 쉼 없이 달려야 했다.
드레가 옆에서, 의원이 없다, 아픈 게 문제다, 등등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새벽녘에 아이가 아파서 한번 시끄러워 들렀던 모양이었다.
화광에게 받아둔 비상약들이 있다지만, 약이 듣질 않으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떠날 채비를 했다.
구리의 일이 걱정되어 일찍, 나서는 참이었다. 그때, 촌장이란 자가 급히 달려온다.
“자네, 약초를 좀 다루지 않는가?”
“다루기는 합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를 봐주게, 아이가 많이 아프다네!”
“저는 의원이 아닙니다.”
“약초 냄새가 배어있지 않은가!”
“다른 대륙에서 포션이란 걸 다루긴 했습니다만, 이곳과는 차이가 큽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 봐주기라도 해주게. 화광 선생을 모시러 갔으니, 그동안만 부탁하겠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일행들도 동행했다. 뭐라도 도울 게 있다면, 돕겠다고 말이다.
촌장이 잰걸음으로 앞장섰다. 이제 보니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아이 살리겠다고 분주히 뛰어다닌 훈장이었다.
집으로 가니, 눈물범벅에 산발이 된 아이의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는 방안에 누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제 한 대여섯 살 되었을까? 작디작은 아이였다. 아이의 아버지가 담담히 촌장을 맞이했다.
“화광 선생님은 아직이십니까?”
“마을에서 가장 발이 빠른 자를 보냈네. 기다려보게. 그리고, 다른 대륙에서 약초를 다룬 이가 있어서, 아이를 한번 보이려고 데려왔다네.”
“감사합니다. 촌장님.”
촌장이 방안으로 안내한다. 확실히, 이마에 열이 너무 많다. 체온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빙결 포션을 고약의 형태로 굳힌 게 있었다. 그걸 소량 떠서 이마에 살짝 펴 발랐다. 프리고나이트가 들어가 있어서 열을 흡수하고, 식혀줄 것이다.
“일단은, 가진 거로 해보겠습니다.”
아공간에서 약재로 쓸꿀을 꺼내고, 상급 포션과 섞었다. 단맛과 기력회복을 위함이었다. 수저로 한 숟갈씩 떠 먹여주었다. 단맛이 느껴지는지, 입맛을 다시며 잘 받아먹는다.
잠시 후, 고를 걷어내고, 열을 재보니 확실히 나아졌다. 다른 이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화광에 배운 초보 수준의 의술로 확인만 해보았을 땐 괜찮아 보였다.
“화광 스승님이 오실 때까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그런데? 스승님이라 했나?”
“약간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스승님이라고 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분에 비해선 미미한 수준입니다.”
“아, 그랬군. 아무튼, 고맙네. 아이가 한결 편해하고 있어.”
“저희는 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일이급한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아, 잠깐만 기다리게.”
촌장이 들고 온 것은 설피였다. 눈신이라고도 부르는 것. 루시안은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산에 오른다고 하였지? 이걸 가져가게나, 신에다가 이렇게 하면 설산을 오르는 게 훨씬 수월할걸세,”
“감사합니다.”
뭔가를 더 챙겨주려는 걸 한사코 사양한 후, 드레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빠져나갔다. 산의 초입까지 지름길로 안내해주었다.
“만나서 반가웠다. 그리고, 아이를 도와줘서 고맙다. 다시 이곳을 빠져나갈 때, 이 종을 울리면 나가는걸. 안내해주겠다.”
드레가 루시안에게 세밀한 세공이 들어가 있는 종을 건넨다. 루시안이 그걸 소중히 받아, 품에 챙겼다.
“감사합니다.”
“유적을 찾길 바라지. 행운이 깃들길.”
드레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자, 우리도 가시죠!”
일행은설피를 신고, 눈길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돌이 깔린 길이 나 있었다. 대충, 중턱까진 길이 나 있는 것 같았다. 눈보라가 치면, 걸음을 멈추고, 한곳에 뭉쳐 피했다. 한번 데이고 나니까. 조심하게 된다.
조심조심하며, 길을 밟아 나갔다. 산 중턱부턴 우려대로 길이 끊겨있었다. 발터가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산꼭대기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다. 사냥꾼의 본업이 발동되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길 한 참여,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중간에 버려진 오두막에서 잠시 몸을 쉰 걸 빼고는 쉼 없이 걸어온 고된 일정이었다.
정상에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발터의 매의 눈에 특이한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여기보다 더 높은 산봉우리 끝, 구름에 걸린 건물이 보인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도 없을 틈새였다.
“그러니까, 이산이 아니란 거지?”
“예, 이산이 아닌가 봐요. 저 산이네요.”
발터가 나침반을 꺼냈다. 구슬 탐지용 나침반이 아니라, 보통의 나침반이다.
“어, 여기에서 북쪽이에요.”
일행은 북쪽을 향해 내려갔다. 운 좋게 발견한 동굴에서, 휴식을 취했다. 두 구리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일행들은 둘을 주의 깊게 살피고있었다. 무언가 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도저히 모르겠다!”
일행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간단히 식사를 때웠다. 산은 밤이 빨리 깊어 오니, 일찍 자고 일찍 돌아다니는 게 나았다.
다음날 새벽녘,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처음 올라갔던 산보다, 더 높고 가파르고 험했다.
“하, 죽겠다. 산이 너무 험한 거 아니냐!”
루나와 타몬트는 죽을듯한 표정이었지만, 발터는 멀쩡했다. 앞서서, 길을 짚어나가고 있었다. 두 구리도 잘 따라오는데, 루나와 타몬트가 서서히 뒤처진다..
휴식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마침 날도 거의 저물어간다. 주변에 동굴이 없어. 거대한 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마법으로 흙벽을 세웠다.
“힘드시겠지만,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힘내주세요.”
발터가 사슴한마리를 잡아왔다. 눈처럼 하얀 사슴이었다. 사슴을 손질해 고기를 굽고, 스튜를 끓였다. 오랜만에 가지는 만찬이었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네요.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유적지에 도착하면 푹 쉬자. 산세가 힘들어서 온몸이 쑤신다.”
루시안이 작은 술병을 건넸다. 이걸로 참아달라는 거다. 타몬트가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음날 오후쯤, 목적했던 장소에 도달했다. 산꼭대기 정산에 너른 대지가 펼쳐져 있었고, 저 산 아래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구름 위 도시였다.
다 부서지고, 박살 난 건물들만 남은 도시였다. 문제는 선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울 대륙의 몬스터 잔나비였다. 삿갓을 쓰고, 큼지막한 돌멩이를 손에든 거대 원숭이 무리다.
“우끼끼기기기”
이곳에 들어온 우리를 격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돌이 아주 큼지막한 게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하…. 쉽게 가는 법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