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74화. 절망의 산봉우리로(3)
일행들에게 루시안이 나눠준 게 하나 있었다. 유리병에 고약형태로 굳혀둔화염 포션이었다.
“이걸 살짝 흔들어서 안에고약에 충격을 주면, 고약에서 열이 발생할 거예요.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될 거예요.”
실제로 안에든 고약이 붉게 달아올랐는데,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 따뜻해! 너 진짜, 별걸 다 만드는구나?”
“술은 안 만들어드릴 거예요.”
“오, 그 말은 만들 줄은 안다는 거잖아?”
공방 지하실에 크나르 열매와 오크 풀을 섞어서 담근 술이 있긴 했다. 하지만, 루시안은 모른 척했다.
“그런 거 모릅니다.”
“수상한데?”
일행은 줄을 잡고, 천천히 나아갔다. 눈보라가 워낙에 심해서 조금만 간격을 벌렸다간 앞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다행히도 밧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중간에 있는 휴식처, 동굴에모두 모였다. 이런 휴식처가 총 일곱 군데라고 했다. 휴식처 안에는 솥이나, 주전자 등 요리기구, 침대와 모포 등이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었다.
벽을 뚫어 만든 계산함이 있었는데, 이곳 전체를 관리하는 이들이 수거해서 관리에 쓴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흰 바람 부족이라 했었지?”
“어. 이곳이 원래는 부족 인들의 사냥 간 쉼터로사용되는 곳이었는데, 산봉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개방을 해버렸대.”
타몬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걸어온다.
“어이 루시안, 이곳에 뭐가 있긴 한 거냐?”
“유적을 찾는 이들이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여기 사람들은 귀신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접근을 안 하지만요.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이 외지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보듬어 안았더라고요.”
루시안이 환전해둔 돈 적당량과 포션과 환약 등을 그들의 계산함에 넣었다.
욕심을 내고 이 함을 건드렸다간 손이 잘린다거나, 평생 재수가 없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곳에 유적이 있다면, 누군가는 이미 찾지 않았겠냐?”
“이곳에 찾아오긴 했지만, 돌아간 이는 없었어요.”
“뭐라고?”
“이곳에 발을 들이밀고도 살아 남은 건, 이곳 토박이인 흰 바람 부족뿐이라는 거예요.”
“왜 못 돌아간 건데?”
“그건 아무도 모르죠. 돌아오질 못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여길 온다고.?”
“사람들이 실패했다면, 거의 온전한 유적이 있을 테고, 그들이 먹을 것도 많다는 거니까요.”
타몬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오빠, 또 겁먹었죠?”
“아.니.거.든?”
“루시안, 머냐, 속옷 몇 개만들어야 할 것 같지 않냐? 형 쓰게. 아기들 용으로 쓰는 그거 뭐냐 거.”
“다들, 나만 미워해!”
루시안이 술을 한 병 꺼내, 타몬트에게 던졌다. 곡물로 빚어서 증류한 투명한 증류주였다. 허브를 넣어서, 향긋함이 감돌았다.
“역시, 루시안뿐이야!”
“일단, 길이 이래서, 미아도 많고, 중간에 몬스터 습격도 많아요.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게 스노우에코에요.”
타몬트가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이랑 목소리를 따라 한다는 그거?”
“그럼 우리 중에 이미 잡혀간 사람이 있고, 흉내 내고 있는걸 수도 있겠네?”
“이 중에는 없어요!”
구리가 확언하듯이 대답했다.
“구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저는 기운에 민감해요. 모두 똑같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오, 구리야! 형이랑 딱 붙어서 가자!”
“술 냄새!”
“쩝!”
루시안은 일행들과 암호를 정하기로 했다.
“제가 누군가의 이름을 대면, 그 사람을 만난 곳을 대면 돼요.”
“기억력이 나쁘면, 그냥 죽는 거 아니냐!”
“그건 형 탓이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발터에게 타몬트가 섭섭하다는 듯이 훌쩍인다.
“야! 너무해!”
“타몬트 형, 저랑 타몬트 형이 만난 곳은요?”
“어, 마을?”
“이러면 걸리는 거죠. 그들이 기억까지 따라 한다고는 하지만, 사고력은 낮다고 들었어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을 거예요.”
“알았다.”
여분으로 챙겨온 밧줄로 서로를 묶고, 길에 난 안내 밧줄로 이동했다. 쉼터를 발견하면 하루를 푹 쉬었다. 쉼터에 도착하면, 질문을 주고받으며, 몬스터가 섞이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이동하다가 다섯 번째 쉼터에 도착했을 때였다. 구리의 눈초리가 이상했다. 루시안 앞을 가로막아 경계를 했다.
“구리야 왜 그래?”
“루시안 형,셋 다 스노우 에코예요.”
구리가 말을 내뱉자, 다들 딱 잡아뗀다.
“루나야, 우리가 만난 곳이 어디지?”
“...........”
“발터, 우리가 지내던 마을은?”
“..........”
“타몬트 형, 크나르 열매로 만든 술이 있어요.”
“..........”
다들 우물쭈물하거나, 당황해한다….
루시안이 점착 포션을 꺼냈다. 그러자, 그들이 몸을 비틀면서, 입을 기괴하게 찢는다. 점착 포션을 던지면서, 슬쩍 마취 탄을 쏴 넣었다. 점착 포션을 피하느라 자세가 무너진 사이로 마취탄이 각자에게 박혀 들었다.
이내 셋이 스르르 허물어졌다. 모습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스노우에 코의 모습은 하얀 인형에 입만 달린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리곤 그들을 꽁꽁 묶었다.
“구리야, 다들 어딨는지 알겠어?”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찾을 수가 없어요.”
구리가 시무룩해 하며, 대답한다.
“이거 난감하네.”
화광에게 배워둔 독초로 만든 탄이 유용하게 쓰였다. 이 동굴에서 대판 싸웠다간 흰 바람 부족에게 민폐일 테니.
“어떻게 찾아야 할까 구리야?”
“우웅….”
그때, 쉼터로 흰 털가죽을 덮어쓴 사람이 들어섰다. 그리곤, 옆에 묶여있는 스노우에코를 힐끗 쳐다본다.
“재주가 좋군, 눈메아리를 붙잡아 놓다니.”
“누구십니까?”
“흰 바람 부족의 정찰꾼 드레라고 한다. 약초 냄새가 많이 나는 인간.”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구리입니다.”
“옆은, 신령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이놈들은 내가 데려가도 되겠나? 보아하니, 친구들을 잃은 모양인데, 도움을 주도록 하지.”
안 그래도 혼자선 막막하던 참이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나무 피리를 꺼내서, 동굴 밖으로 불었다. 낮고 가느다란 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간다. 잠시 후, 드레와 같은 차림의 사람들 다섯이 나타났다.
“드레, 무슨 일이야?”
그가, 벽한곳에 묶여있는 스노우에코를 가리켰다.
“눈메아리? 저자가?”
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우리한테 넘기는 대신, 저자의 친구를 돕기로 했지.”
“또? 도대체 실종자가몇이나 나오는 것인지. 이러니 여길 아무도 안 오려 하지. 에잇!”
그들은, 이곳의 지도를 펼쳤다. 일행이 지나간 길을 루시안이 짚어주자. 그들이 몇 곳을 표시했다.
“이곳들이, 눈메아리들의 동굴이지. 운이 좋다면 살아는있을 거야. 그놈들은 천천히 뜯어먹는 걸 즐기거든.”
아무래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실종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루시안은 구리의 손을 꼭 잡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의 시력 자체가 이곳에 적응해버린 거로 보였다.
그들을 따라가길 한 참여, 드레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얼음 절벽 중간에 조그마한 동굴이 보였다.
흰 바람 부족 원들은 서로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동굴로 향했다. 드레는 루시안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드레가 품에서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꺼내, 동굴 앞 바위에 걸었다.
그리고 잘 걸렸는지 확인하고, 단숨에 올라가 버렸다. 루시안도 구리도 뒤를 따랐다. 올라가 보니, 먼저 길을 나섰던 부족원들이 동굴의 양옆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동굴의 위쪽에서 부족원이 나타나 그들끼리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드레가 단검 두 개를 쥐고, 안으로 향했다. 안쪽에는 짐승의 뼈, 사람의 해골 등이수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벽을 몸에 숨기자, 루시안도 급히 몸을 숨겼다.
“끄으으으”
동굴 안쪽에, 스노우에코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레가 단검을 던져, 녀석의 머리에 박아넣었다. 머리에 단검이 박혔어도 멀쩡했다. 그대로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킨 권총으로 머리를 후려쳐버렸다. 그리고 입안에 비산폭발포션을 던져놓고, 점착 포션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머리가 터져나가며, 그대로 털썩 쓰러진다.
드레가 안쪽을 가르쳤다. 천장에 묶여서 바둥거리는 루나가 보였다. 다행히도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묶은 밧줄을 끊어내고, 바닥에 눕혔다.
“괜찮아?”
“루시안 오빠!”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 구리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분명, 밧줄로 잘 묶고 다니지 않았어?”
“모르겠어요.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여기였어요.”
“다른, 사람은 못 본 거야?”
“누가 또 사라졌어요?”
“하…….”
드레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짚었다.
“이것들이 아주, 어휴, 사냥해서 나누어 가져가다니.”
그때, 다른 부족원들이 들어온다.
“다 찾은 거야?”
“아니, 먹이를 나눠 가졌어!”
“이런 경우면, 그거잖아! 번식기. 여기저기 먹이를 나눠서, 암컷 키운다고 하는.”
“이거, 까닥하다간, 우두머릴 만나겠는데?”
다들 표정이 심각하다.
“뭐, 난 약속은 약속이니까, 끝까지 도울 거야. 여기 시체랑 아까 동굴에 잡아둔 거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 내가 끝까지 돕고 돌아갈 테니까.”
“그럼 셋은 돌아가고 내가 남는다. 너 죽었다는 보고는 해야 할 거 아니냐!”
“그러든가 말든가.”
나머지 셋이 고개를 끄덕이곤, 널브러진 스노우에코 시첼 짊어지고 동굴을 나갔다.
그들이 짚은 동굴은 총 4개였다. 점점, 실종장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동굴을 제외하곤 연달아허탕이었다.
동굴마다, 스노우에코들이 가득했다. 특이한 건, 일부 놈들이 묶인 채로 입에 깔때기 같은 게 끼워져있었다는 점이다.
“묶인 건 전부 암컷이야. 저렇게 묶어두고, 먹이를 공급받으면서 번식의 도구로 쓰이지.”
루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가 보기엔 역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동굴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 동굴, 가장 커다란 동굴에 들어섰다. 동굴 천장에 매달린 해골들이 많았다. 한쪽엔 그들이 지녔던 옷가지나, 소지품, 장비들이 한쪽에 모여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간 실종된 자들이 다 여기에 있나 보네.”
“스노우에코는 여러 무리가 있지. 우리가 오늘 턴 놈들은 그런 여러 무리 중 하나일 뿐이야.”
확실히 다른 동굴보다, 몬스터들이 많았다. 카인이 마취탄으로 재워서 쓰러뜨리면, 구리가 목을 비틀거나, 드레가 칼로 목을 썰어냈다. 루나도 슬립으로 몬스터를 재우거나, 윈드커터로 조용하게 처리해 나갔다.
“형, 저쪽이야!”
구리가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다. 구리가 가리킨 방향은왼쪽이었다. 구리가 앞서 달려나간다.
“구리야, 천천히, 발 조심하고!”
구리는 요리조리, 몬스터가 없는 곳만 골라서 움직였다. 진작에 안내를 맡길 걸 하는생각이 들었다.
빠져나갈 곳이 없으면, 구리가 멈춰서서 신호를 줬다. 루나와 루시안이 나서서 처리를 해주었다. 시체는 뒤에서 부족원이 안 보이게 처리를 해주고 있었다.
구리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벽 한쪽에 발터가 보였다. 묶여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읍읍으으읍”
루나가 윈드커터로 밧줄을 풀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걸 루시안이 받아 재갈을 풀어주었다.
“야, 괜찮냐?”
“어휴, 죽는 줄 알았네.”
“너도 기억이 안 나?”
“어, 어떻게 알았냐? 깨어나 보니 여기던데?”
“루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드레의 표정이 심각하다. 발터와 대화한 걸 듣더니 저렇다.
“드레?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래도, 우두머리가 직접 나타난 모양이다. 이 무리의 대장 녀석. 우두머리의 특징은 강력한 환각. 그리고 기운을 숨기거나 따라 할 수 있다는 거다.
“구리가, 기운을 읽을 줄 알잖아요. 다, 구별할 수 있을 건데.”
“대장 놈은 그것마저도, 속일 수 있다는 게 문제지. 옆에 아이가 신령한 기운을 가지곤 있으나 아직 약해!”
“히잉”
“설마, 뜬금없이 범인은 루시안이었습니다! 뭐, 이런 건가?”
“내가 아직도, 루시안으로 보이냐?”
“......”
“농담이야농담!”
“분위기 싸해진 거 안보이냐?”
“미안.”
감옥을 더 수색하니, 타몬트가 보였다. 타몬트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못 한다.
“와! 여기 더럽게 무서운 곳이네.”
“우두머리가 보기 전에 여길 빠져나가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야! 왜, 구리가 두 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