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73화. 절망의 산봉우리로(2)
“타몬트 오빠랑 싸우는 저 사람이 알겠죠.”
“우린 그냥 들어가자. 신나 보이는데 내버려 두지 뭐.”
“형! 들어가요. 재미없어요.”
관객들은 다 퇴장했다. 잡졸들은 여전히 기절해서 못 깨어나고 있었다. 그냥 잠이 자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야! 비름채 아냐고 모르냐고!”
“모른다고!”
“오늘 거길 지나친 게 너희들뿐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아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안다고 하냐!”
“아냐, 넌 분명 알고 있어! 내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단 말이야!”
“아니, 거 고집 세네. 모른다니까?”
“아냐, 넌! 분명히 알고 있어!”
둘은 답 없는 말싸움을 계속했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면 화병이 돋을 광경이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둘의 싸움은 주량 대결로 이어졌고, 다음날 숙소에 좀비 두 마리가 출몰했다.
“이게 뭔 전개냐고요.”
“나도 모르겠다.”
한숨이 나온다. 둘이 술이 떡이 돼서 들어와 숙소 거실에 널브러져 있다. 손을 꼭 잡고, 말이다.
“우리 두목님을 내놔라!”
아침부터 찾아온 저 불청객까지. 문을 열어 상황을 보여주고 제발 좀 끌고 가라고 했다. 널브러진 타몬트도 마차에 적재했다. 마차는 바로 출발했다. 둘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우우에엑!”
창문에 반쯤 걸려, 코다리 신세가 되어있는 타몬트. 얼마 전에 본 걸 다시 보는 기분이 든다.
마차는 늘해랑을 지나, 에움길로 향했다. 노숙이 옷을 따듯하게 갈아입으라고 했다. 지역 하나 차이로, 칼바람이 불어닥친다. 마차에 부는 바람이 굉장히 사나웠다. 마부석에는 바람을 막는 바람막이가 둘러졌다.
구리는 얌전히 마차 안으로 돌아왔다. 볼이 빨갛다.
“밖에 엄청 추워요.”
타몬트가 창문을 열고 있는 탓에, 마차 안에 바람이 그대로 들이닥친다. 타몬트를 마부석으로 옮겼다. 마부석은 딱, 그 자리만 보온이 잘되도록 구성이 되어있었다. 모포에 털가죽 옷 바람막이까지 말이다. 옆에 앉은 타몬트는 아무것도 없다.
“술 깨면 들어오세요.”
“추더어어. 우왜애액!”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높고 산세가 험해 보인다.
“저길 가야 하는 거지?”
“어, 목적지가 저기네. 하필.”
늘해랑 지역은 일종의 바람골이었다. 두 산맥 사이에 있는 아무것도 가로막는 게 없는 뻥 뚫린 지대. 바람이 드나드는 직통로.
“노숙님, 화광 선생님이 이곳 어딘가에 계신다고 했는데,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화광 선생님이요? 그 성질 고약하신 분을 왜?”
“배움을 청하고자 찾습니다.”
“하필, 그분한테….”
“길을 안다면,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내기도 있겠다 까짓것 갑시다. 이번엔 성공하려나?”
노숙이 마쳐 안, 마부석으로 향하는 작은 창을 열었다. 그리고, 무어라 말을 전했다. 마차가 살짝 진행 방향을 틀었다. 샛길로 틀어서 굽이친 길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틈새가 교묘히 바람을 막는다.
“지금 가는 길은 주로에서 벗어난 샛길입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만이 아는 통로입니다. 저와 마부가 어찌 아느냐 물어보신다면 알려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그것은 바로, 이곳 태생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은 정보까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정산할 때 웃돈을 얹어주라는 무언의 신호 같았다.
겉으론 보이지도 않을 틈새를 요리조리 한참을 파고들어, 어느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가면 갈수록 넓어졌다. 동굴 안에는 사람들이 사는 대규모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동굴 중앙에는 호수가 있었고, 주위를 빙 둘러 돌로 지어진 집들이 있었다.
“노숙 왔는가? 손님이여?”
“예, 화광 선생님을 찾길래, 이리로 길을 틀었습니다.”
“그렇군, 담묵! 자네도 몸 좀 녹이게.”
마부의 이름이 담묵인 걸 그때 알았다. 염소는 사람들이 주는 풀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화광 선생님을 뵈러 왔다고?”
“의술과 약초술에 통달하셨다 하여, 가르침을 받아볼까 해 찾아왔습니다.”
“뭐, 자네 선택이니 뭐라 하지는 않겠네만. 알아둘 건 자네가 114번째란 걸세. 우리는 그들을 데려온 길잡이와 마부들과 내기를 하네.쫓겨나면 우리의 승리고, 들여보내면 마부의 승리지! 판돈이 꽤 크다네.”
그는 이 마을의 촌장이라고 했다. 그는 그 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마차를 보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사람이 죽었어요!”
“여기 얼어붙은 시체가 있어요!”
그제야, 일행들은 타몬트를 떠올렸다. 마차로 가보니, 꽁꽁 얼어붙은 동상하나가 있었다. 루시안이 술병을 하나 꺼내, 루나에게 내밀었다. 루나가 한숨을 내쉬며, 술병을 마법으로 데웠다. 루시안이 그걸 건네받아, 타몬트의 입에 흘려 넣었다.
“으아아악! 타몬트 부활!”
타몬트가 일어나건 말건 신경끄고, 다시 촌장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안내는 내가 해줌세. 지금 갈 텐가?”
“가시죠.”
“뒤에 그 일행은?”
“그냥, 가시죠.”
“큼, 알았네. 따라오게나.”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형. 타몬트였다.
마을 뒤쪽의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갔다. 오르막을 따라 쭉 가니, 동굴 안에 기화요초가 자라는 너른 약초밭이 나타났다. 그 약초밭 중앙에 돌로 지어진 집이 있었다.
“화광 선생님, 114번째 손님입니다.”
“뒤에 서 있는 시귀도 너희 동료냐?”
방안에서 노인의 목소리로 물어온다. 분명 문은 닫혀 있었다. 일행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촌장이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아악!”
눈이 반쯤 풀리고, 머리가 부스스한 몰골의 타몬트였다.
“빨리 오셨네요?”
“예, 일행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날 보고자 한 건, 네놈 한 놈뿐이지 않느냐. 나머진, 저 밖에 사랑채가 있으니, 거기서 기다려라.”
분명,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밖을 훤히 보듯 말한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온돌이 깔린 듯 뜨듯했다. 방은 상당히 넓었다. 한쪽 벽엔 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운데는 낡은 책상이 하나 있었다,
“뭘 그리 살피느냐?! 진료실은 옆방이다. 훔쳐 갈 건 없으니 그만 보거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눈빛이 매우 매서웠다. 목소리도 또렷했고, 카랑카랑했다. 화광은 루시안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흐음, 약초 좀 다룬다는 녀석이군? 그래 날, 왜 보자고 했지?”
“저는 아스타리안 대륙에서 온 연금술사, 루시안이라 합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서책들을 보았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탕약, 고약, 환약의 제조에 대해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보다, 우선, 네놈이 만든 것부터 구경해보자꾸나.”
루시안이 품에서 상급 치유 포션을 꺼내, 내밀었다. 화광은 망설임 없이 작은 칼을 들어 팔을 스윽 긋고는 포션을 살짝 부었다. 거품이 일면서, 이내 상처가 사라져 말끔해진다.
“호오, 제법이로군?”
화광이 포션을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재료가약초만 들어간 게 아니라, 동물의 것부터 해서 광물까지 거기에 기이한 기운으로 섞여 있군”
“연금술의 방법으로, 마나에 기초한 재료 배합처리를 합니다.”
“이정도면, 굳이, 내가 가진 걸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매우 훌륭한데 말일세.”
“제조법을 활용해 볼 생각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펼쳐내는데 그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책에서가 아닌, 생생한 지식으로 말입니다.”
“호오, 확실히자세가 다르군! 네가 필요로 하는 제조법을 알려 줄 터이니, 너는 내가 요구하는 제조법을 알려주면 어떻겠냐? 서로 교환을 하는 것이지.”
“좋습니다. 저야,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화광은 집의 뒤쪽 빈방을 보여주었다. 약제를 자르는 작두, 덖기 위한 솥, 약탕기, 삼베 등이 보였다.
“이곳이 넓으니, 이곳에 네 도구를 배치하고 배우면 될 것 같구나.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갈 길이 바빠 보이는데.”
“길어야 일주일입니다.”
“참나,그 안에 내가 아는 걸 다 배워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자만이냐 오만이냐.”
“기초라도 배워가고, 못 배운 것은 일이 끝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역시, 자세가 남다른 아이야. 그럼, 내 속성으로 가르칠 테니 잘 따라오거라, 두 번 오는 건 내가 싫으니까.”
“알겠습니다. 화광 선생님”
“스승님이라고 하거라. 비록, 스승과 제자의 예를 갖추지 않았지만,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더냐.”
“예, 스승님”
화광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품 안에서 책자를 꺼냈다.
“이걸 아시겠습니까?”
“이게 왜 네 손에 있느냐?”
루시안은 간략히 일을 정리해 말했다.
“흐음, 인연인가? 그거참 공교롭구나. 이건 내 친구의 유품이다.”
“유품 말입니까?”
“나는 약선이라 불리지. 약초술과 약을 잘 만든다고 붙은 이름이야. 내겐 의선이란 자가 있네. 그는 침술과 치료에 탁월한 재주를 가졌지.”
“그럼 이게?”
“맞다, 그 친구가 남긴 비서지. 죽은 자도 살리는 비법에, 불로장생의 비법이 적혀 있다고 세간이 소문이 자자했지. 오래 살고 싶고, 병에 걸리기 싫은 건 다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이걸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있겠군요? 귀하신 분들이 엄청난 돈을 주고 구하려고 할 테니까요. 한몫 잡고 싶은 사람들은 다 달려들 테고요.”
“그렇지, 아주 핵심을 딱 짚는군!”
화광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 책은 다른 이에게는 보여주지 말거라. 칠 주야 간 내가 그 내용을 불러주면, 네가 옮겨 적어라. 일주일이면 글자 공부도 어느 정도 될 터이니, 나중에 원본을 직접 보면서 공부하면 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루시안은 자신의 연금 비서를 한울 대륙의 글자로 적은 사본을 만들어 화광에게 주고자 했다. 이건 노숙이 도왔다. 그는 아스타리안 대륙어도 잘했다. 그를 통해, 비서의 사본을 만들어 화광에게 전달했다.
화광도 자신의 제조법과 그간의 정수를 요약 정리해 넘겼다.
루시안이 일주일간 머물기로 한 이상, 일행들도 여기에 있어야 했다. 마을의 보수작업, 사냥, 농사 등을 도왔다. 타몬트는 특유의 넉살을 부리며, 마을의 술을 거덜 내고 다녔다.
발터와 루나는 타몬트가 비워버린 술을 다시 담아주었다. 구리는 루시안 옆에서 보조하고, 약초밭 잡초를 뽑았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포션을 고약의 형태로 만들었을 때. 성능이 좋은 포션은 효율이 비슷했으나, 성능이 떨어진 포션으로 만들었을 땐 그 효과가 상당히 좋아짐을 알았다. 고약 외에 분말, 환약, 탕약의 형태로 만들었다.
간단한 침술과 혈자리, 점혈도 배웠다. 배움도 깨달음도 많았던 교류였다. 마을을 떠나는 날 노숙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큰돈을 땄기 때문일 거다.
일행에게 여러 형태로 만든 포션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만들 필요가 있어?”
“상처에 따라서는 천천히 회복을 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요. 뼈가 부러진 상태로 상처를 치료해버리면 뒤틀린 뼈는 그대로 남거든요. 이때, 고를붙여 천천히 치유하면서 뼈를 바로잡아주면, 후유증이 남지 않죠.”
“최상급 쓰면 되잖아!”
“비싸잖아요.”
“그건 그렇지.”
“뿌리기 곤란할 땐 가루도 편할 테고, 포션은 많이 마시면 배부른 것도 있잖아. 환약으로 대체하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죠.”
“흠, 수상해, 너 단순히 이걸 치료의 목적으로 쓸려고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루시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인다.
노숙과의 계약은 다흰까지였다. 거기서부턴 길이 외길이었기에 헤맬 일도 크지 않았다. 게다가 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은 다흰의 깊은 곳을 가길 꺼렸다.
다시 칼바람이 들이치는 에움길의 길을따라, 다흰으로 달렸다. 점차, 설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바람은 점차, 눈보라로 바뀌었다. 시야가 뿌옇다. 마차가 서서히 멈추어 선다.
“다흰에 도착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안까지 가실 겁니까?”
“가야죠. 볼일이 있으니까요.”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들에게 두둑이 삯을 치러주었다. 모두, 두툼한 방한의로 갈아입은 상태. 시야는 하얗게 변해버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길의 양쪽으로 밧줄이 매어져 있다. 그 밧줄을 따라 걸어가면 중간 휴식처와 절망의 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모두, 앞사람의 등을 보고, 천천히 따라오세요.”
루시안이 앞장서고 그 뒤를 구리가, 맨 뒤는 타몬트가 서기로 했다.
“자,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