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2화. 절망의 산봉우리로 (73/95)



〈 73화 〉72화. 절망의 산봉우리로

한울 대륙은 해안가가 산맥 같았다. 깎아지른듯한 높은 절벽과 협곡에 길도 좁고 가파르고, 경사가 급했다. 평야는 대륙의 안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해안가 쪽은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했다.

정비되지 않은 거친 길을 산악용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울 대륙에 지형에 맞게 만들어진 특수 마차였다. 흔들림보단 안정성과 달리는 데 목적을 마차라, 길의 경사를 몸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마차지만 말이 끄는  아니다. 거대한 산악 염소가 끄는 마차다.

넓은 마차 안, 창문도 큼지막했다. 주의사항으로 창문에 고개를 내밀다가 떨어질  있다고 했다. 실제로도 사고가 있었다고.

그런데, 타몬트가 그러고 있었다. 구역질을 참지 못해, 밖으로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술 마신 다음 날 뒤집힌 속으로 이걸 탔으니.

“어제, 형이 잠든 사이에 결정된 일입니다.”
“형한테 물어보니까. 찬성이라고 했는데요? 술김이긴 했지만.”
“너희들…. 너무…. 해…. 우우에우엑”

구리는 말없이 타몬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철없는 사촌 형을  조카의 심정이랄까.

마차엔 마부와 함께, 안내역의 길잡이도 타 있었다. 자신을 노숙이라고 소개한 이는 지금 가는 곳이 하나린이라고 했다.

“산이 높아 경치가 아주 좋은 곳입니다. 고갯길을 넘어가다가 하늘로 승천하는 이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하”
“......”

길에서 자는 게 익숙할 것 같은 아저씨는 썰렁한 농담이 특기였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이 깊어, 높다란 산봉우리 끝에 지어진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산장에는 야외에 전경을 구경할  있는 울타리 하나 없는 널찍한 바위가 있었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끝장이겠다. 울타리 하나도 없어!”

발터의 말대로 아랜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타몬트 형은?”
“죽  그릇 비우고, 잠들었어.”
“다행이네, 죽이라도 넘겨서. 아무래도, 당분간, 술은 안 드실 거 같지?.”
“아니, 죽 먹으면서도 여기에 술을 곁들이면 좋겠다고 하던데?”
“......”
“이곳엔 위협은 없는 것 같네. 아기아스 놈들도 여기까진 못 오는  같고.”
“그러게. 그냥 이렇게 달려서 절망의 산봉우리까지 가면 좋겠네. 그렇게 불편한 것도 모르겠고 말이야.”
“타몬트 형이 기겁할 소릴 태연히도 하는구나! 큭큭”

노숙의 말대로, 경치는 정말 좋았다. 산에 걸린 구름이 달빛에 비추는 게 운치가 있어 보였다.

하나린의 고갯길은 계속 이어졌다. 점점 가면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다 고산병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노숙이 잠시 마차를 멈추고, 주변에서 풀과 열매를채집해왔다. 그걸 쌀가루와 섞어 죽을 만들어나눠주었다. 묽은 노란빛의 죽이었다. 식사가 아니라는  양은 매우 적었다.

“높은  오면 머리가 아프고, 식욕이 없어지고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숨쉬기도 어려워합니다. 그때, 이 산매나물과 구름열매를 섞어서 먹으면 씻은 듯이 나아집니다.”

루시안은 그 산매나물과 구름열매에 대해서, 생김새와 서식처  정보를 물어 배워두었다. 아스타리안 대륙에서는 딱히 쓸 일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넉넉하게 채집해서 보관함에 넣었다.

 죽 덕분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일행 중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이는 없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외길을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다가. 다음날 가파른 내리막을 달려나갔다. 그때의 속도는 정말 미친 듯이 빨랐다. 염소의 속도 조절 능력이 빛을 발하는 구간이었다.

물론 멀미는 덤이었다. 오르막을 내려가면 식사는 자연스레 건너뛰게 된다. 노숙과 마부 그리고 염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이 길로 오자고 한 놈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웨에엑!”

타몬트가 이젠 거지는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루나가 슬립으로 재워버렸다.

“잘했어!”

길을 나아갈수록 빠르게 적응해, 마부 옆에 붙어있는 사람이 있었다. 구리였다. 구리는 지금 마부석에서 놀이 기구를 타는 심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저러다가 염소 타는  아니겠지?”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일이 터졌다. 하나린에서 예우 레로 넘어가는 커다란 동굴 앞, 일단의 무리가 길을 막고 서있었다.

“어이! 통행세만 내면 보내줄게. 금액은 알지? 두 당인 거. 아, 그리고 가격이 올랐어, 기존의 두 배야!”
“아니, 갑자기 그러는 법이 어딨습니까?”

노숙이 나가서 항의를 해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산적의 비아냥이었다.

“이봐, 불만이면 돌아가던가! 큭큭”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할지 의견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할까?”
“죽여 말아?”
“끄아아악!”

타몬트가 갑자기 일어나 마차를 박차고 나가서 구토했다. 갑작스러운 사태. 내용물 점검이끝난 타몬트와 산적의 눈이 마주쳤다.

“뭐야, 저 털보에 대머리 그리고 돼지들은?”

두목으로 보이는 대머리가 들고 있는 낭아추를 땅에 ‘쾅’하고 찍는다.

“뭐, 대머리?”
“그러니까, 네놈들은 뭐냐고? 형이 지금 기분이  좋거든? 그냥, 가라 좋은 말  때.”
“푸하하핫. 어디서 굴러먹던 병 걸린 멧돼지 새끼 하나가 말이야! 우린 비름 채다. 이곳 일대를 꽉 접고 있는 몸이라 이거지! 네놈들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그는 그대로 낭아추와 함께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거 더럽게 시끄럽네!”

그간의 전투로 오러 마스터에 달한 타몬트의 공격은 매섭기만 했다. 순식간에 그들의 두목이 죽어 자빠지자. 다들 무기를 던지고 항복을 했다.

“저자들을 살려두면 또, 몰려올 겁니다. 아예 없애는 게 낫습니다.”
“에잇 귀찮게!”

타몬트가 오러를 실어 대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오러의 검기가 날아가 적들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해버리셨군요, 타몬트 형.”
“어, 귀찮게 하잖아!”
“노숙님 저들이 계속 몰려오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저놈이 산채의 총 두목은 아닐 테니까요.”
“귀찮게 하느니, 산채를 쓸어버려야겠군요.”

루시안이 뒤이어 나오는 발터를 쳐다보았다. 발터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소지품을 뒤지고,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돌아왔다.

“찾았어!”
“노숙님은 여기에 계세요. 갔다 오겠습니다.”
“아, 예.”

적들의 산채는 일행이 지나가건 길에서 빠지는 샛길의 끝에 있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산 중턱에 커다란 산채를 지어놓았다.

“야, 여기에 저런 걸 지어놓다니, 재주도 좋다.”
“그러게요. 저런 재주면 그냥 목수로 살아도 될  같은데요.”
“루나야, 그냥 저거 태워버릴까?”
“그게 가장 편하긴 하겠죠?”

산채의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는 산채를 짓는다고 나무를 죄다 베어냈다. 아무리 봐도 ‘날  태워 주세요’라고 하는듯했다.

발터에게 화염 포션을 건넸다. 발터가 화살에 포션을 달아 쏘아냈다. 루나도 화염 마법을 산채에 던져넣었다. 이내 산채에 불길이 일었다.

“잘 타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산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뭐, 저렇게 태워놨으니, 당분간 활동은 힘들겠지.”
“난, 가서 잔당이나 처리하고 올란다. 몸이나  풀어야겠다.”
“발터 오빠 저랑 가서 잡혀  사람이 있나 확인해보죠.”
“난 여기서 구리랑 불구경할래.”

루시안은 빠졌다.

“그래, 여기에서 도망치는  있으면, 밀어버려라. 갔다 온다!”
“잘 타네 아주.”

구리랑 한참을 불구경했다. 도망치는 놈들도 없었다. 얼마 후 일행들이 돌아왔다. 인질은 없었다고 했다.

발터가 이것저것 값나갈 만한 걸 털어왔다.

“이건 청강석이고, 이건 흑광석이네. 이곳에서 쓰이는 귀한 무기 재료지. 이건 인삼이네. 이건 돈주머니네 묵직하군.”
“아, 이것도 있는데, 무슨 글씨인지 모르겠더라. 귀해 보이는 목함에 들어가 있었는데, 귀한 천으로 감싸있었어!”

루시안이 그걸 보고 든 생각은, 비급서였다.

‘이거 일이 좀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생의 지식에 기초해 아는 한자들을 조합해  결과, 의술서로 판단 내렸다.

‘딱히,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일단 가지고 있어 보자.“

타몬트가 몸을 풀고 나서 기분이 나아졌는지 농담을 건넸다.

“이렇게 보니 우리가 산적 같다. 여기 루시안 두목에, 옆에 구리가 흑막? 큭큭”
“루시안 형, 타몬트 형 밀어버려도 돼요?”

구리가 짓궂게 낭떠러지 밑을 살짝 바라본다.

“야! 구리한테 누가 이런 걸 가르쳐준 거야!”

모두의 눈이 타몬트를 향한다.

“아, 왜!”

일단의 작은 사건이 끝나고, 가져온 돈 일부는 노숙과 마부에게 나눠주었다. 마부에겐 염소 특식 값으로 조금 더 챙겨주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듯이.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염소도 왠지 신나 보였다.

까맣게 타버린 비름채, 정기 수금일에 맞춰 그곳에 방문한 이가 있었다. 산채 연합 비룡의 일원인 그는 까맣게 타버리고 시체만 널브러진 현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같이 온 부하들에게 전서구를 날리라고 했다.

“어떤 놈들이야 도대체!”
“대장,  물건도 없습니다. 아예  털어간 모양입니다.”
“아씨, 의선이란 자의 비급서! 그걸, 어떻게 빼돌린 건데 그게 사라져!”
“적들의 흔적이 하나도 나아있질 않습니다. 전문가의 솜씨로 보입니다.”
“주변을 다 뒤져. 상행길이든 여행길이든 다 조사하란 말이야!”
“예!”

한편, 루시안 일행은  동굴을 지나, 늘해랑에 도착했다. 하나린에 비해 아주 점잖은 길들이 이어졌다. 산봉우리에 평지들이 제법 있어서, 작은 마을들이 보였다.

“이곳은 하나린과 바람길이라 부리는 에움길의 사이에 있는 늘해랑입니다. 아마, 저희가 지낼 가장 따듯하고 편안한 마지막 휴식처가 될 겁니다. 에움길부턴 매우 추워집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따듯한 옷을 준비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단단히 준비하고 왔습니다.”
“따스한 볕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갈 지역들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니까요.”

늘해랑의 어느 부락에 도착해 숙소를 잡았다. 이곳은 그의 말대로 따뜻했다. 앞의 길들이 험하다고 하니, 이곳 숙소에서 하루를 쉬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휴양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정말, 평화로운 곳이네.”

숙소 앞에 강아지  마리가 늘어지듯 하품을 하고 있다.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어이! 다들 주목! 여기 오늘 들어온 새끼들 있지, 당장, 나와라! 우린 비룡이다.”

평화를 깨트리는 불량한 목소리.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어이, 내  안 들려! 이것들이 진짜!”

우락부락한 덩치들이 무기를 꼬나 들고, 뒤에 쭉 늘어선다. 대충 30여 명은 되어 보인다.

“저거, 우리 찾는 거냐?”
“쟤들 이쪽으로 오는데?”
“아무래도, 싸워야 할 것 같은데요.”

루나가 완드를 들어 올렸다. 구리도 경계했다.

다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치던 무리들이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네놈들, 오늘 이곳에 들어왔지?”
“그런데 왜?”
“허, 이놈 봐라? 너 비름채 알아 몰라?”
“모른다고 하면 믿어줄 거야?”
“이 새끼,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알아?”

무기를 들어 위협하지만, 타몬트는 꿈쩍도  한다. 타몬트가 오러를일으켜 주변을 기세로 주변을 압박했다.

“뭐? 어쩌라고?”
“컥!”
“으으윽”
“이 새끼 고수인  같은데!”

다들 벌벌 떨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어이, 거기, 내 부하들한테 손 떼지?”

대도를 든, 껄렁해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타몬트를 제지한다.

“어디서 자꾸 튀어나와서, 반말에 시비야! 이것들이!”

타몬트가 오러를 더욱 올리자, 잡졸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린다.

“이 자식이 진짜!”

사내가 대도를 휘둘러, 타몬트의 기세를 걷어낸다.

“야, 너! 비름채 알아 몰라? 대답해  새끼야”

대도를 타몬트에게 겨눈다. 타몬트도 대검을 들어 겨눈다.

“몰라, 이 새끼야!”

얼굴이 불거져, 덤벼들어 온다.

“루시안,  두 사람 왜 저래?”
“몰라.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왜 싸우고 있는 거야! 에휴!”
“둘이 닮았어요. 타몬트 형이 두 명!”
“구리 말대로 둘이 느낌이 비슷해요.”
“그래서 싸우는 건가?”

둘은 그냥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이젠 목적도 이유도 모르는  같았다.

“오, 제법인데, 이것도 받아봐라!”
“오오, 그래, 어디 한번 해봐!”

둘은 그냥 싸움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재들은  온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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