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1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대륙
커다란 신전 옆, 멋들어진 대리석 건물 안, 검은 드레스의 그녀가, 차를 내어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다 얼어있니? 이번 대의 금을 먹는 자는 귀엽네? 저번 대는 괄괄한 아줌마였는데 말이야!”
깔깔 웃는 그녀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구리뿐이었다.
“어머, 내 정신을 봐! 난 앵겔러라고 한단다. 심연의 탐식이란 이명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도둑마냥 뒤지던 건 잘 찾았니?”
눈을 가늘게 뜨고, 일행을 쓱 훑어본다.
“뭐…. 찾았습니다.”
루시안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나머진 그대로 얼어있었다.
“뭐, 그게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잠깐, 내가 왜 너희들을 불렀더라?”
그녀가 턱을 괴고 한참을 고민한다.
“아! 이거 가져가라! 저놈들이 가지고 있던 건데 나한텐 필요가 없을 것 같네.”
그녀가 내민 건 교단이 쓰던 수중호흡 아티펙트였다. 총 4개였다. 루시안 일행들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루시안이 마법으로 확인해보니, 수중호흡아티펙트라고 나왔다. 루나에게 부탁해서 정화마법에 클린까지 걸어 달라 했다. 남이 물고 다녔던 걸 그대로 물긴 그랬다.
“수중호흡 아틱펙트에요. 여기, 나무 부분을 물고, 헤엄치는 용도죠. 마법처리를 해놔서 깨끗해요. 네 개뿐이니까, 가지고 싶은 분이 가져가세요.”
타몬트와 루나 발터가 챙겼다. 하나는 라펠라에게 주기로 했다.
“그럼, 애들아, 온 김에 벨가님하고 네오돈 오빠랑 있었던 일 좀 말해봐!”
그녀에게 벨가를 만난일, 네오돈을 만난 일, 아기아스교를 만난 일을 간추려 말해주었다.
“아기아스, 그 또라이 새끼가 분명, 음흉한 그새끼가 뭔 수작을 부려 놓았을 거야. 그놈은 원체 음흉하고 변태적인 끼가 있었거든? 벨가님은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네. 벨가님은 정말, 친절하신 분이었지.”
그녀는 오랜만에 듣는 그들의 소식에 매우 좋아했다. 네오돈이 주의하라 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런, 내 정신을 봐!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이게 너희들한테 딱 필요할 것 같네. 맞지?.”
그녀가, 품에서 보라색 구슬 하나를 내민다. 나침반이 미친 듯이 돌아간다. 그녀 자체가 차단하는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만나서 즐거웠어! 가는 길은 내가 도와줄게!”
“설마, 그거?”
그랬다 그거였다. 네오돈 때 겪었던, 미친 듯이 빨리 올라가는 공기 방울. 일행을 감쌌다. 다들 포기하고 정신을 잠시 이탈시키기로 했다.
“잘 가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기 방울이 폭주한다. 위로 미친듯이 치솟아 바다 위로 떠 오른다. 그러더니, 모래섬까지 휙 움직이더니 ‘펑’ 하고 터진다.
“우웨에엑!”
“우욱!”
구리만 신이나 밝았지, 다른 일행은 얼굴색이 아주 창백했다.
“저걸 또 탈 줄 몰랐다. 진…. 우우욱!”
한참 후, 다들 진정이 되었는지, 정신을 되찾았다.
“그런데, 저 교단의 배는 어떻게 하지?”
“털어야죠. 쓸만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다음엔?”
“끌고 가서 팔아야죠!”
“발터, 생활력이 강한 아이구나!”
“반면, 오빠는 술로 탕진하죠.”
“.....”
그들의 배 안엔 식량과 재화들이 제법 많았다. 모두, 옮겨 실었다. 타몬트가 좋아한 건, 맥주로 가득한 오크통이었다. 덕분에, 그날 작은 파티를 하고, 푹 쉬었다. 교단이 타고 온 배는 에피엔 호의 후미에 연결했다.
“다음, 목적지가 어디야?”
“네빌론 대륙이요.”
“거기에도, 라이야 상단 지부가 있으려나?”
“아라 항에 지부가 있다고 했어요.”
“이름이 독특하네?”
“네빌론 대륙도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지, 원래는 한울 대륙이래요. 한울이란 제국의 땅이죠.”
“누가 힘이라도 쓴 거야? 이름이 왜 두 개야?”
“제피르칸의 탐험가, 네빌론 빌테스터가 발견한 땅이라고 해서 네빌론 대륙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한울이라는 이름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제국이 네빌론이라 쓰길 주장했대요. 그래서, 아스타리안 대륙에선 다들 네빌론이라 부른대요.”
“이상하게, 저번에 드워프한테 내부 사정을 들은 후로는, 제국에 정이 안 간다.”
“좀, 그렇긴 해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배를 몰았다. 한참을 배를 타고 나아갔다. 얼마 후, 그들의 앞에 거대한 해안 절벽이 펼쳐졌다. 산맥이 끊어진 듯 가파르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 해안가 절벽의 끝, 항구가 보인다.
항구로 들어서니, 아스타리안과는 확실히, 모든 양식이 달랐다. 루시안으로서는 딱, 게임 속 동양대륙, 고구려 시대나 조선 시대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이상하게도 반갑기도 했다. 다른, 일행들은 굉장히 낯설어했다.
미리 준비해둔 통역 아티펙트를 점검했다. 일전에 라이야 상단주가 챙겨주었던 물품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매번 드나들던 배가 아닌데?”
귀까지 덮는 투구는 가운데가 삐죽 솟아 붉은 수실이 달려있었다.
“아스타리안 대륙에서 왔습니다. 이곳저곳 여행 중이온데, 한울 제국도 한번 둘러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뒤에 배는 무엇이냐!”
“오다가 나포한 해적선입니다. 배는 사가시다면 팔고자 합니다.”
그렇게 배는 항구에 몰려든 사람 중 꽤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사 갔다. 라이야 상단 지부에서 사람이 나와서, 더 큰 마찰은 없었다. 라이야 상단은 이전부터 신항로 개척에 관심이 많았다. 이곳을 가장 먼저 뚫은 곳도 라이야 상단이다.
여담으로, 루시안이 만든 종이와 비누를 가지고, 이 한울에도 왔었다고 한다. 비단이나 죽간 등을 쓰다가, 종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 덕에 그들의 지위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했다.
“안녕하십니까. 라이야 상단 아라 항 지부 지부장 박규라고 합니다.”
“현지인을 고용했나 보군요? 그런데, 말이 아주 자연스럽군요. 통역 아티펙트도 없는듯한데.”
“역시, 듣던 대로 예리하신 분입니다.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발음을 세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지부장이 친절히 일행을 맞이했다. 라이야 상단에서 숙소며, 이곳의 옷가지며, 편의를 다 봐주었다.
“박규 지부장, 이곳의 지도하고, 절망의 산봉우리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는, 군사전략 물품이라 자세한 건 힘들 겁니다. 상행단 용으로 제작된 게 있으니 그걸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절망의 산봉우리는 금지라서 가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기에 그렇습니까?”
“녹지 않는 눈이 쌓인, 설산의 땅입니다. 그곳에 들어간 자는 다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밤바다 귀신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접근 자체를 하질 않습니다.”
“그곳에 가는 방법, 관련된 소문, 어떤 정보든 상관없이 구해주시겠습니까?”
루시안이 금화 몇 개를 꺼냈다. 이곳에서 쓰는 화폐가 따로 있어, 환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내일 오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금화를 내밀었다.
그로서는 상단을 통해 바꾸면 되니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금화의 가치가 컸다. 입이 귀에 걸린다.
“쉬고 계시면, 식사와 정보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더, 말씀하실 것이 있으십니다.”
“이곳의 약초, 치료술에 관련한 책들, 금속들에 대한 정보를 구해다 주시겠습니까? 비용은 지급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날의 저녁 식사는, 루시안으로서는 익숙한 듯 그리운 음식들이었다.
‘여기에서 한식을 다 맛보네. 신기한 일이야.’
“형이거 엄청 쫀득거려요!”
구리는 떡에 빠져있었다. 일행들은 고기 요리에 만족스러워했다. 간장 양념들이 그들의 입에 꽤나 맞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공방 접으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도 나쁘진 않겠네.’
이곳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여정이 길어질지, 알 수가 없었기에 푹 쉬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생각난 김에 라펠라에게 통신을 넣어봤다. 거리가 멀었기에, 라이야 상단의 수정구를 빌려서, 중계마법으로 통신을 했다.
-라펠라 누나?
-루시안? 오랜만이네?
-그곳은 별일 없어요?
-어, 다행히도 별일은 없어. 아기아스 교단을 찾았고, 제국에서 몇 건의 사건에 그들이 연관되어있다는 게 알려졌거든.
-잘됐네요.
-지금 어디야?
-네빌론 대륙이요. 오늘 도착했어요.
-네빌론 대륙? 멀리도 갔네. 아! 나중에 만나면 나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그리고, 보내준 음료 잘 마셨어! 물품들도 고맙고.
-몸 건강하게 계세요.
-알았어!
“다행이네, 잘 계신다니.”
이 대륙은 정말, 하늘이 맑았다. 별이 훤히 보였다. 이곳에서는 북쪽의 저 크게 빛나는 별이 보이면, 소원을 빈다고 한다.
‘모두 행복하길.’
루시안도 소원을 빌었다. 어느새, 구리가 다가와 별구경에 동참했다.
“구리야, 넌 하고 싶은 게 있어?”
“응! 형이랑 공방에서 사는 거!”
구리도 소원을 빌었다. 루시안은 염원했다. 이 소소한 행복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음날, 일행들은 아라 항 구경에 나섰다. 타몬트와 발터, 루나와 구리 이렇게 둘씩 짝지어 움직였다. 타몬트와 발터는 술집에 간다고 했다.
“야! 어떤 지역을 가면, 술맛을 봐야 하는 거야!”
“저는 왜?”
“혼자 가면 심심해!”
구리와 루나는 시장 구경에 나섰다. 박규가 안내역을 일행에게 붙여주었다.
루시안은, 박규가 가져다준, 책들과 정보를 살피기로 했다. 라이야 상단에서 제지 공방과 인쇄소를 이곳에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경쟁도 덜하고, 위험도다. 낮아 투자하기 좋다고 했다.
덕분에 이곳을 중심으로 질 좋은 종이가 펴지고, 인쇄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책들이 시중에 저가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전에 쓰던 비단이나 무거운 죽간보다 싸고, 가벼운종이에 열광하는 건 당연했을 터였다.
약초 책을 보니,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공부하기가 너무 좋았다.
‘역시, 이곳엔 침술이 있구나, 부황에, 탕약과 고약이 있고. 동물의 기름과섞은 기름 형태의 상처 치료 약도 있고.’
루시안은 보던 책을 그대로 두고, 박규를찾아갔다.
“박규 지부장?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이 한울 대륙에서 최고의 의원 또는 탕약이나 고약을 잘 만드는 이가 있습니까?”
“음…. 아! 화광 선생님이 계십니다. 제가 드린 정보에 있던, 절망의 산봉우리 있잖습니까?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에움길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 굽이치는 길 안자락에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은퇴한 화광 선생님이 은거하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제가 가져다드린, 약초책이나 의서들 태반이 그분이 저술하신 겁니다. 예전엔 이 한울 제국의 황성 어의로 지내셨다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에게 금화를 내밀었다.
‘절망의 산봉우리로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루시안은 서재에 틀어박혔다. 가져온 약초학책과 아스타리안 대륙의 약초학책, 그리고 자신이 정리 중인 연금 비서를 놓고 전부 다 비교하고 분석했다. 부족한 성능과 부작용을 재정리했다.
하나의 재료를 각 대륙에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 한 재료에 대해 이명을 기록하고, 약효를 정리했다. 그리고 서식지와 생김새를 그림을 곁들여 적었다. 우선은, 포션제작의 레시피로 적어두었지만, 추후, 다른 방법의 조제 방법도 적을 계획이었다.
‘이곳에선 고약이나 환 또는 탕약이니까.’
현재의 자료를 가지고, 최대한 정리를 하며, 기본지식을 쌓아 나갔다.
“일단, 이정도로만 정리해두고, 나중에 그 화광이란 분을 찾아 나서보자.”
현재, 일행이 있는 곳은 아라 항이었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해안가절벽의 도시를 따라서 동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다. 이 경우엔 길이 조금 험했다.
두 번째론, 수도인 비나리를 거쳐 가는 구간이었다. 길이 완만하지만,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도에 두 가지의 경로를표시하고, 장단점을 정리했다.
이건, 추후 일행들과 결정할 일이었다.
루시안은 박규를 통해, 이곳에서만 난다는 약재와 씨앗, 금속을 사들였다. 향이나 모양 등이 매우 독특했다. 잘 갈무리해서 민감한 재료들은 재료보관함에 넣었다.
그날 저녁, 일행들이 돌아왔다. 타몬트는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후였다. 저래선 이야기가 불가능했다.
“술이랑 음식을 같이 파는 가게였는데, 주인장이 술 한 병을 끝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마시면 음식을 공짜로 주겠다는 거야.”
“어휴….”
“반병 마시더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발터와 함께 타몬트를 침실로 옮겨 던져두었다.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하자. 참, 구리랑 루나는 재밌었어?”
“노리개라고 부르는 거랑 독특한 장신구들, 음식들 볼 게 많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뭔가를 한 아름 들고 오긴 했었다.
“엄청, 재밌었어요.”
구리가 밝게 웃으니, 보기가 참 좋았다. 루시안은 지도를 펴고, 간단히 설명했다.
“피곤할 테니까, 빠르게 설명할게. 길은 두 가지야. 빠르고 험한 길, 느리고 편한 길.”
“빠르게 가지 뭐. 솔직히 너랑 다니는 길에 편한 길이라는 게 말이 되냐? 뭔 사건이 터질 줄 모르는데?”
“저도 빠른 길이요.”
“저는 루시안 형이 가는 길로 갈게요”
다음날,
“우웨에엑! 도대체, 왜 편한 길을 놔두고 이쪽으로 가냐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