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67화. 심연의 아가리(2)
“오랜만에 왔더니, 그간 보수가 허술했나 보군!”
태평하게 말을 늘어놓는 아시카였다. 그가 손짓을 한 번 하자 록웜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벽도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냥, 가서 썰어버리면 안 됩니까?”
타몬트가 대검을 꺼내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자세를 취했다.
“이곳에 사는 록웜은 말일세. 아까, 자네들이 본 호수 있잖은가? 거기에서 헤엄치고 노는 애들이네. 보통의 공격이 통할거라고 보는가? 저놈들의 체액을 맞았다간, 그대로 녹아버릴걸세. 조용히 피하는 게 낫다네.”
타몬트가 얌전히, 대검을 집어넣었다.
“저렇게 날뛰는데 괜찮겠습니까?”
“별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끌끌”
하지만, 별일은 있었다. 잠시 후,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몬스터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살포시, 밖에 다녀온 발터가 덜덜 떤다.
“록웜을 육포 씹어먹듯이 먹고 있어!”
“뭐라고?”
“아시카님?”
“그런 몬스터는 본 적이 없네만…….”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아시카를 보며, 다들 불안해 휩싸였다.
“어떻게 생긴 몬스터였는데?”
“검은 색깔의 드레이크였어!”
“우리가 잡을 확률은?”
“씹어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더라.”
“여길 어떻게 지나가지?”
“흠, 오늘 이곳에서 자긴 그른 것 같으니, 나를 따라오게, 오늘 봉인지까 달려가야할듯하니.”
아시카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행들도 일어나 무기를 점검했다.
밖으로 나가니, 정말 거대한 드레이크가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발로 땅을 ‘쾅’하고 내리치면 웜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데, 그걸 입으로 물어 뽑아먹고 있었다. 저 식사가 언제나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 크기가, 아까 입구에 있던 그 드레이크 크기인 것 같지 않냐?”
“그렇게 보이네요. 크기 자체가….”
“형, 저거 너무 세 보이는데요.”
구리도 크기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저걸 잡을 방법은 없고, 살짝 치우는 건 가능할걸세.”
아시카의 몸에 황금빛의 기운이 흘렀다. 골드드래곤의 비늘과 날개, 그리고 이마에 뿔이 튀어나왔다. 몸집도 두 배로 커졌다. 그대로 날아올라서는 공중에서 마법을 시전했다.
드레이크의 아래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드레이크가 쑥 빠진다.
“크르륵?”
식사를 방해받은, 드레이크가 심기가 불편한 듯 콧방귀를 뀐다.그대로, 점프해서 밖으로 가뿐하게 나와버린다. 하지만, 거긴 더 깊은 구덩이었다. 거대한 돌 주먹이 바닥을 내리 찍는다. 땅에서 록웜들이 튀어나온다.
아시카가 공중에서 발을 굴린다. 거대한 충격파가 록웜을 휩쓸고 지나간다. 기절한 록웜을 바람으로 쓸어모아 그 구덩이에 집어던졌다.
아시카가 일행을 모아, 재빠르게 평야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중간의 커다란 바위들로 몸을 가리면서 이동했다. 해는 완전히 저물고, 달이 높이 떠올라있었다.
상당한 거리를 달렸음에도, 어렴풋이 드레이크의 형체가 보인다.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어, 그 안으로 몸을 피했다.
“여기서 쉬고,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지.”
일행들은 대답할 힘도 없었다. 너무 피곤했다. 대충, 모포만 바닥에 깔고는 잠을 청했다. 타몬트는 악몽을 꾸는지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짧은 단잠이 끝나고,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입구로 향했다. 경사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내가 말이야, 어제, 그 드레이크한테 씹혀 먹는 꿈을 꿨다니까?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 있는데, 드레이크가 꼬리로 지붕을 날린 다음에 입구를 턱 막고 뽑아먹었어!”
타몬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부르르 떨었다.
“더 소름인 게 뭔지 알아?”
“뭔데요?”
“나만 있었다는 거야. 나만! 아무도 없더라고! 이게 말이돼?”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구리도 마찬가지였다.
“와….”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니, 거대한 드레이크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직접 보니까 정말 거대했다. 가장 작은 이빨 하나가 루시안이나 타몬트만 했다.
“진짜, 이거에 씹히면 그냥 가는 거네요.”
아시카가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자, 이제 봉인을 풀어주겠네!”
아시카가 손을 들어, 동굴의 입구에 손을 대었다. 동굴의 입구는 검은 막으로 둘러쳐진 상태였다. 황금빛 마나가 그의 손을 타고 흘러 들어가 입구의 막에 부딪힌다. 기괴한 문양을 그리며, 황금빛 마나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자, 검은막이 제거되고, 동굴 안쪽이 보인다. 동굴은 거대한 문으로 막혀 있었다. 드래곤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이 부조로 표현되어있었다.
“이 문은 봉인이 아니니, 살짝 밀면 열릴걸세. 그럼, 우리의 만남은 여기까지군!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시는 길에 드레이크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구리가 인사를 하자, 아시카가 환하게 웃는다.
“내 걱정은 말고, 자네들 걱정이나 하게. 루시안, 자주 연락도 하고 그러게나!”
아시카를 일별하고, 문 안쪽으로 향했다. 문은 그의 말대로 살짝 미니, 스르르 열렸다. 일행들이 발을 내딛자, 횃불이 순차적으로 불이 붙으며 켜졌다. 동굴 안이 훤히 보였다.
벽은 돌로 되어있었는데, 창을 든 용아병들의 모습이 쭉 이어져 있었다. 길의 끝 첫 번째 문이 있었다. 육중한 철문이었고, 드래곤 세 마리와 세 개의 구슬이 입에 물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구슬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었다.
타몬트가 가까이에서 본다고 손을 댄 순간. 바닥에서 모래시계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모래시계가 뒤집힌다. 모래가 빠르게 흘러내린다.
“뭐야! 이거!”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요?”
“오빠, 저 구슬을 맞게 움직여야 하는 거 같아요.”
루나가 문으로 다가가 구슬과 드래곤들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화염이 일고, 바람이 휘감아 돌고, 물보라가 일으키는 3가지의 형태에, 붉은색, 파란색, 흰색의 구슬이 이에요.”
“그럼, 딱 봐도 요 화염은 붉은 구슬, 물보라는 파란 구슬이니까, 바람은 흰색이겠네!”
‘딸깍’ 소리가 나며, 모래시계가 더빠르게 떨어져 내린다.
“형!”
“항복! 항복!”
루나가 나섰다.
“화염을 잠재우는 파란 구슬을, 물을 이겨 먹으려 하는 붉은 구슬을, 고요한 흰색 구슬이라면….”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들이 각자의 구슬을 물고 구석으로 움직여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문이 반으로 갈리며 열린다.
“오! 루나!”
“루나 누나! 최고! 타몬트 형은 바보!”
“야!”
“일전에 그 세이렌의 동굴이었나요? 거기랑 비슷하지 않아요?”
“그러네. 여기에도 그럼 벽화나 그런 걸 잘 살펴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여길 들어온 드래고니안들이 못 돌아간 이유가 있을 텐데. 뭘까요?”
“뻔하잖아? 모래시계가 다하면 함정이 발동되었겠지. 그리고 끝!”
“그러니까, 타몬트 형이 몇 번 더 실패했다면 끝장났을 거란 거죠?”
“......”
타몬트가 발터를 쳐다본다. 발터가 뒤로 물러선다.
“워워!”
루나와 루시안은 구리와 함께, 주변의 벽화를 쭉 살펴보았다.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그저 용아병들의 모습만 반복되어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안쪽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문이 하나 더 나왔다. 별도의 잠금장치나 하정은 없었다. 문을 여니 안쪽에 옅은 에메랄드빛의 액체에 담긴 몬스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오크, 놀, 트롤….”
앞서서 걷던 타몬트가 안에든 걸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간에, 수인, 엘프, 용인족, 드워프까지?”
안쪽은 말 그대로 생체표본 전시장 같았다.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도대체, 이곳은 뭐지?”
“구역질 나는 곳이네요.”
루나가 얼굴을 한껏 찡그린다. 모두 같은 마음이라 통로를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안쪽을 보니 하나의 복도가 있고, 그 왼쪽으로 5개의 방이 나란히 있었다. 복도 끝에도 방이 하나 있었다.
첫 번째 방은 식량창고 같았다. 다 썩어버린 채소나 건조식품 같은 게 있었다. 두 번째 방은 식당이었다.마찬가지로 관리가 안 되어 먼지가 수북하고 녹이 슬어진 고물투성이였다. 세 번째 방은 침실이었다. 침대가 4개가 있었다. 역시나 먼지가 뿌옇다, 침대와 옷걸이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여긴 뭐하던 곳일까?”
다음 방을 여니, 테이블 2개와 의자 2개, 그리고 서반이 있었다. 선반엔 앞서보았던 표본들과 같은 액체 담긴, 신체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피부가 다른 두 가지를 실로 기워놓은 것들이 많이 보였다. 뇌나 심장 같은 것들도 보였다.
“이거, 그거 같지 않냐? 저번에 파논? 거기에서 본 시체들. 기워놓은 시체들 말이야!”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럼, 여기도 아기아스교단과 관련이 있는 곳일까요?”
“시체를 기워놓는다고 다 아기아스는 아닐 거 아냐.”
“형! 여기 일지가 있어요!”
구리가 먼지를 털어낸일지를 루시안에게 건넸다. 여길 어떻게 발견했는지, 어떤 실험을 했는지 적혀 있었는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겨있었다.
“아기아스하고는 상관없는 것 같네요. 그냥, 미치광이 네크로맨서에요. 주로, 몬스터의 크기를 키우는 실험을 했다고 하네요. 여긴 우연히 발견한 곳이고.”
“몬스터의 크기를 키우는실험?”
“설마? 아니겠지?”
“다른, 방도 살펴보죠.”
다섯 번째 방은 실험대와 알 수 없는 액체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실험한 모양이었다. 루시안은 각 액체를 플라스크에 덜었다. 그리고, 간단한 정보를 적어두었다.
남은 건, 복도의 가장 끝 방이었다. 거대한 문이 보인다.
“난, 저 마지막 문을 여는 게 꺼려진다.”
타몬트가 꺼렸지만, 구리가 해맑게 문을 열어젖혔다. 정말 거대한 실험실이 나타났다. 뒤쪽 벽면에 녹색의 액체 보라색 액체 든 통과 그것과 연결된 관들, 여러 부품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되는 최종 종착점은 끝이 거칠게 뜯겨 나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쪽 벽면이 완전히 뻥 뚫려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크기가 비슷하긴 하지만. 설마 아닐 거야 그렇지?”
일행의 뚫린 벽면을 보자, 앞서 일행이 지나쳐온 그 평야가 보였다. 이곳이 교묘히 가려져 있어서 아래에서는 보이질 않았던 것이었다.
일단, 방안을 마저 수색했다. 녹색과 보라색 액체도 덜어서, 정보를 적어놨다. 고대의 진공관이 그 액체들의 통 아래에, 액체들의 유입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치에 꽂혀 있었다.
“투박한 유리 몸체에, 내부에는 미스릴 코어와 마나석 가루로 채워둔 구조”
드워프가 준 수첩에서 설명한 것과 똑같은 모양의 부품이었다. 진공관에 대한 수첩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했다.
“일단, 목적한 부품은 찾았어!”
“남은 게 뭐지 그럼?”
“환수의 구슬은 구했고, 고대의 진공관도 구했으니까. 수정, 패널,눈 3가지네.”
“그건, 또 언제 다 찾냐!”
“문젠, 그게 아니에요. 타몬트 형.”
잠시, 뚫린 벽을 보던, 발터가 흠칫거렸다. 땅이 울리고 있었다.
“설마, 여기가 그놈의 잠자리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지? 말해봐! 아니라고 말해봐!”
일행들이 무언가를 보고 뒷걸음을 쳤다. 타몬트가 그 뚫린 벽을 등지고 있었는데. 거기로 그 놈의 대가리가 들어와 있었다.타몬트가 뒤에서 뿜어지는 콧김을 느꼈다.
“으아악!”
다들 거칠게 문을 열고는 뛰쳐나갔다. 녀석이 그 거대한 실험실로 점프해 들어왔다. 뒤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누구도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실험실은 컸고, 문은 작았다. 벽은 인간 기준으로는 매우단단했다. 하지만, 그 녀석의 기준은 아니었다. 벽이 뚫리며, 그 검은 드레이크의 노란 눈이 일행의 꽁무니를 쫓는다.
재빠르게 복도를 지나, 표본들이 전시된 통로로 향했다. 루시안이 틈틈이 뒤로 점착포션에 점착폭발포션, 화염비산폭발포션등을 던져대었다. 연달아 폭음이 터지고, 끈적이들이 늘어졌지만, 녀석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치광이 네크로맨서의 수집품들이 녀석의 몸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다.
“야, 저걸 어떻게 해!”
“제가 알면 이렇게 뛰고 있겠어요?”
“루시안! 제발,생각해내라! 제발!”
“맞아, 너밖엔 없다!”
“오빠, 저기 비좁은 통로가 있어요.”
어느새, 동굴을 빠져나온 후였다. 루나가 가리킨 곳은 입구 옆의 좁은 바위틈이었다.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 만한 통로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순 없었다. 일단 몸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크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