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6화. 심연의 아가리
아시카가가 내어준 차는 늘 향기로웠다. 루시안은 차를 음미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듣자 하니, 넨과 겐이 60%까지 회복을 했다고 하더군? 일족 최약체 에셔 일족 최강체기 되어버렸어.”
“그게 용혈석을 통한최대 각성 수치더군요. 아마 족장님은 온전한 용혈의 힘을 각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봉인을 풀어줄 분도 족장님이겠지만요.”
“하여간, 자넬 속일 수는 없군. 끌끌!”
“준비는 해왔습니다만, 시작하시겠습니까?”
아시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통증이 좀 있습니다.”
각성제가주입된다. 아시카가 입을 앙다물며, 이빨을 간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팔걸이가 부스러지기 시작한다. 곧이어, 안정제를 주입하고 채혈침을 꽂았다. 그리고, 회복제를 투여했다.
그의 변화는 상당히 놀라웠다. 회춘을 해버렸다. 피부가 탱탱해지고, 외관상의 외모가 30~40대로 변해버렸다. 긴 금발을 드리운 미중년이었다. 그가, 마법으로 몸에 묻은 피를 제거했다.
“흐음, 확실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드는군.”
목소리도 젊어졌다. 그가 변화가 체감되는지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모른다.
“이제 남은 분량은 299명분입니다. 그간, 아시카님의 자리를 위협하던 정적을 처리하기엔 충분하시라 생각합니다. 이젠 힘도 완전히 회복하셨으니, 족장님보다 로드라고 불러드리는 게 나을 것 같군요,”
“하하, 생각보다 매우 세심한 자였군!”
“그리고, 몇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후에 아기아스가 깨어나고 대륙이 어지러워지면, 한번 힘을 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는 선혈의 제단에 얽힌 비밀입니다.”
아시카는 드래곤의 알에 대해 듣자, 매우 놀라워했다. 그리고는 선혈의 제단을 더욱 잘 지켜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잘 지켜내겠네. 그때가 되면 용인족은 한번 더 도약할 테니까!”
“드래곤을 하나의 도구가 되지 않게 잘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시카가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럼 뒷일은 아시카님께 맡기겠습니다. 금지로 이동은 언제 가능하겠습니까?”
“하루만 기다려주겠나?”
“알겠습니다. 일행들에게도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내일 금지로 가면, 그게 마지막이 될 겁니다.”
“아쉽게 되었군. 아! 잠시, 자네들이 쓰는 통신 반지를 내밀어보겠는가?”
루시안이 반지를 내밀자, 그가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나도 자네와 연락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보는 거로 하세. 마음 같아선 같이 저녁이라도 하고 싶으나, 일족에 쌓인 일이 산더미라네.”
루시안은 그들의 숙소로 돌아와, 아시카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알렸다.
“이곳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거네?”
“금지의 내부는 어떨지 그게 걱정이다. 루시안이잖아!”
“그러게요. 거긴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형! 위험하면 구리가 나설 거야!”
“구리만 내 편이구나!”
그들이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용인족은 큰 소란이 일었다. 회춘한 로드 아시카와 그 뒤에 서 있는 겐과 넨은 일족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아시카의 충복으로 불렸던 이름 모를 그의 그림자까지. 그들의 기세가 대중을 압도했다.
“하, 그 허무맹랑한 그 계획이 성공해버린다는 것인가?”
“아시카님, 같은 분 맞아?”
“겐과 넨은 어떻고!”
아시카가 지팡이를 강하게 내리친다. 주변의 그의 기세가 휘몰아친다.
“그만!”
더욱더 강해진 언령의 힘이 좌중을 압도한다.
“그대들이 비웃던 나의 계획이 보란 듯이 성공을 했다네. 나를 중심으로, 우리 용인족은 더 이상 쇠퇴하지 않고,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네. 그간 나를 견제하느라 고생들이 많았네. 이제는 내가 보내주는 곳에 편히들 여생을 보내길 바라지. 그곳에서, 자네들이 꿈꾸던 헛된 희망을 천천히 곱씹어보길 바라네.”
아시카가 섬찟하게 웃어 보였다.
아시카를내치고, 그 자리에 오르려던 반대파들의 표정이 썩어간다. 그날 그들은 섬의 북쪽의 버려진 자들의 땅에 유폐되었다. 그들은 천천히 말라 죽어갈 것이다.
다음날, 루시안 일행은 아시카의 안내를 받아 심연의 아가리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했다. 길은 매우 좁았고, 외길이었다. 외길 옆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만 존재했다. 발을 잘 못 디디면 그대로 저 끝 모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이 좁은 길에, 와이번들이 날아들었다. 간혹 이곳을 지나다니는 몬스터들을 잡아먹고 사는 모양이었다. 주변에 둥지를 틀고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와이번이 이번 먹잇감으로 루시안의 일행을 택했다. 재빠르게 달려들어 발톱을 들이밀자, 그대로 타몬트의 대검이 와이번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와이번의 피가 흩뿌려진다. 떨어지는 와이번의 몸뚱어리를 다른 와이번 들이 낚아채 물고간다. 발터가 화살을 재서 일정 거리에 들어와 위협하는 적들만 쏘아서 맞히었다. 백발백중 머리를 꿰뚫어버린다. 와이번 들은 동족으로 포식했다.
좁은 길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빠져나갔다. 쉴 곳이 없기도 했고, 자다가 몸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간 그대로 떨어져 죽을 장소였기 때문이다.
외길 낭떠러지를 지나니, 이젠 가시숲이다. 짧은 창 같은 크기의 가시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까딱하다간 저기에 찔려 죽을 것 같았다. 군데군데 몬스터의 뼈들이 가시에 걸려있다.
숲 근처 평평한 지대가 있기에, 그곳에 야영지를 꾸렸다. 밤낮없이 지나왔기에 다들 지친 상황이었다.
“아시카님, 일족을 완전히 손에 넣으셨다곤 하나, 이리 오래 비우셔도 되겠습니까?”
“하하, 내가 은퇴하고 쉬려고 키우던 자가 있다네. 그자가 잘해줄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네!”
“다행이군요.”
“이 앞은, 식인식물들의 숲이라네. 피에 아주 민감한 애들이지. 만약, 가시에 살짝 스치기라도 했다간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추격을 받게 될걸세.”
“피에 민감 하다라…. 그렇다면…. 흠….”
루시안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발터를 불렀다.
“발터, 와이번 한 마리 정도 생포 가능할까?”
발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갈고리가 접힌 형태의 화살을 꺼냈다.
“이게, 전번에 라이야 상단에 갔을 때 신제품이라고 받은 건데, 이게 뚫고 들어가면 촉이 활짝 펴져서 작살같이 되더라고. 여기에 밧줄만 잘 묶어두면 되는 거지.”
밧줄은 약할 것 같아서, 적당한 굵기의 쇠사슬을 아공간에서 꺼내 건넸다. 대형괴물을 만나면 써먹을까 해서 챙겨둔 사슬이었다.
타몬트가 보조를 해주겠다고, 발터를 따라나섰다. 잠시 후, 큼지막한 와이번 한 마리가 질질 끌려왔다. 와이번의 피 냄새를 맡고, 다른 와이번들이 달려들었다. 루나가 윈드에로우를 날려, 피막을 손상시켜, 먹잇감으로 제공했다.
말라비틀어진 큼지막한 통나무의 속을 오러 블레이드로 가볍게 파내어 거친 나무 항아리를 만들었다. 와이번의 다리를 대고 칼로 다리를 썰어버렸다. 피가 콸콸 쏟아져 내린다. 굳지 말라고, 혈액응고방지제까지 뿌렸다.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타몬트가 어디선가 나무토막을 하나 주어오더니, 와이번의 입에 물려버렸다.
“루시안이 워낙에 잔인한 놈이라, 그래, 산채로 피 뽑는 게 취미라더라. 나가족 그동안 루시안이 없어서 피를 안 뽑히고 있었는데, 네코이한테 맡겨두고 왔다더라. 너는 공방에 안 끌려간 게 다행이야!”
와이번에게 별소리를 다 하는 타몬트였다.
“그런다고 와이번이 알아들어요?”
“애 봐봐 눈을 똥그랗게 뜨잖아! 알아먹은 거라니까? 루시안을 못 보잖아!”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군?”
루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이번의 피를 받아 낸 나무 항아리를 들었다. 내친김에 국자까지 만들었다. 피 냄새를 맡고, 가시 줄기가 그들의 야영지까지 뻗어왔다. 루나가 가볍게 불덩이를 날리니, 순식간에 도망가버린다.
와이번을 잘 묶어두고, 나무 덩굴로 다리까지 잘 묶어놨다. 그리고, 나선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야영지 주변으로 호를 파서, 불길을 옮겨놨다. 그 덕에 와이번도 식물들도 접근하지 않았다.
새벽녘의 이슬을 맞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피를 뿌려가며, 식물들의 시선을 돌렸다. 와이번은 중간에 피를 한 번 더 뽑고 나선, 그냥 그대로 두고 출발했다. 와이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무서운 놈!”
어째 다들 살짝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든다.묵묵히, 선두에서 피를 뿌리며, 식물들의 시선을 돌렸다. 간혹, 먹이대신, 먹이통을 노리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루나와 발터가 잘 처리했다. 타몬트는 후방을 맡았다.
가시 숲이 끝나자, 다시 외길의 낭떠러지다. 가파른 경사길의 구불구불한 길 그 끝에 거대한 드레이크의 머리뼈가 놓여진 동굴이 하나 보였다.
“저동굴은 누가 만든 겁니까?”
“알 수 없다네. 애초에 저렇게 되어있었으니.”
“우와, 멋지다!”
구리취향과 같은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것 같다. 동굴의 입구를 장식해놓다니.
“저 안에 들어가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었죠?”
“그렇지, 혈기왕성한 용인족들이 자신들의 용기를 보여주겠다고, 도전했었다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저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말일세.”
“뭐, 가면 알겠지! 안 그래?”
타몬트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같이 다니면서 느낀 건데, 가보면 딱히 별건 없더라!”
“발터 오빠, 항상 무언가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큼….”
아시카가 호탕하게 웃으며, 앞장을 선다.
“자, 이곳부턴 내가 앞장을 서지. 그대로 중간엔 쉴 공간도 있다네. 하도 많은 용인족들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만들어졌다네.”
처음 지나쳤던, 낭떠러지와 비슷했다. 초입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점막을 자극하는 꼬릿한 향기가 났다. 외길 아래로, 기포가 솟아오르는 투명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발에 챈 돌덩이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스르르 녹아서 사라진다.
그걸 본 일행들의 표정이 굳었다. 발터가 부지런히 도망치는 도마뱀 하나를 잡아 그 호수로 던져보니 물에 빠지는 소리도 없이, 스르르녹아 사라진다.
“하…….”
말문을 잃어버린 타몬트였다. 호기롭게 걷던 발걸음이 너무나도 얌전해진다.
“끌끌끌, 저기에 빠져 들어가 죽어간 용인족도 몇몇 된다네. 발 조심하게나.”
루시안은 저 액체가 궁금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플라스크에 쇠사슬을 매달아 던져보았다. 둘 다 녹아서 사라져버린다.
“쩝.”
“하하, 저걸 가져가고 싶은 겐가?”
“저렇게 부식성이 강한 거라면, 쓰임새가 많을 것 같네요.”
아시카가 빙긋 웃더니, 마법으로 액체를 떠올렸다. 슬라임 모양으로 조형을 해줬다. 덕분에, 겉을 만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5개 정도 얻었다.
루시안이 좋은 걸 얻었다는 듯이 싱글벙글했다.
“타몬트 형, 루시안이 좋은 장난감을 얻었네요. 조심하셔야겠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녹아버리는 수가….”
“히끅!”
♣ 하이퍼엑시드-슬라임포밍
-무엇이든 녹여버리는 물질. 다루기가 극히 힘들다.
-슬라임 포망으로 보호 처리되어 있다.
“흠, 이걸 연구하긴 힘들 것 같네요. 그냥 이대로 던져서 무기로 삼는 게 나아 보여요.”
“네가 쓰는 것들보다 더 강한 거야?”
“그 범주를 넘어서는 강도예요. 이것들은.”
아시카가 몇 개를 더 만들어주었다. 슬라임 포망은 루나나 루시안도 하기 힘들었다.
“이건, 나만의 독자적인 마법일세. 껄껄. 알려줄 수가 없어 미안하군!”
길 중간에 돌로 지어진 집 한 채가 있었다. 마법진으로 처리가 되어 쾌적했다. 안에는 먼지 쌓인 조리도구와 보존 처리된 식량들이 있었다. 규모도 3층 규모에 침실도 여러 개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면 될걸세. 내일 저녁쯤 되면 도착할 거리라네.”
아시카의 말에 따라 푹 쉬기로 했다. 먼지를 제거하니, 쾌적한 공간이 되었다. 간만에 루나가 솜씨를 발휘해 멋들어진 한 상을 차려냈다.
“아시카님, 저 심연의 아가리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까?”
“그렇다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네. 어느 날 보니, 있었다는 게 다였지.”
“왜? 걱정되냐?”
“뭐, 그렇지. 뭔갈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건 차이가 크잖아?”
“그래도, 얼굴엔 걱정하나 없어 보이는데?”
“그런가?”
그때, 밖에서 괴성이 들렸다. 무언가가 길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이 울린다.
“나가지 말게! 조용히 버텨야 하네”
“무슨 일입니까?”
“록웜의 세력다툼일세. 어쩌다 한번 벌어지는 일인데, 하필!”
일행의 눈이 루시안에게 향한다. 그때, 숙소의 벽 한쪽이 살짝 무너져내리면서 록웜과 일행들의 눈이 마주쳤다.
“키에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