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5화. 진정한 드라고니안으로(2)
“아, 하나를 빼먹을 뻔했습니다. 드래곤의 피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확인할 수단이 있으신 듯한데, 저에게, 그걸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시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손바닥 크기만한 거울을 꺼냈다. 손잡이에 작은 침이 달려있고 거울 부분에 눈금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이 손잡이의 침에 손을 찔리면 피가 거울을 타고, 거울에 흡수된다네. 그러면, 여기에 드래곤의 형상이 나타나지. 그 형상이 얼마나 큰가를 따져, 피가 얼마 섞였는가를 가늠한다네.”
루시안이 그 거울을 받아들었다. 제법 묵직했다.
“그럼, 나는 일족 회의를 열어야 하니 이만 가보겠네. 난 말일세, 이 회의의 결정이 우리 일족의 운명을 가르리라 생각한다네.”
그가 루시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방에서 나갔다. 루시안도 자리에서 일어나, 임시 공방으로 향했다.
“이걸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장비를 새로 만들어야겠군.”
아시카가 붙여준 용인족을 통해, 순도가 높은 석영을 구했다. 그리고, 목재를 구해, 현미경의 기본 몸체를 깎았다. 석영을 이용해 중심축과 상이 맺히는 거리를 다르게 해서 렌즈를 깎았다. 초점거리는 짧고, 현미경에서 대상을 확대시키기 위한 대물렌즈와 이걸 직접 관찰하기 위한 접안렌즈를 만들었다.
“현대의 성능 좋은 현미경은 아니지만, 혈구 세포가 보일 정도면 되니까.”
남은 석영들로 슬라이드와 샬레를 만들고, 슬라임 체액을 하이드로베이스와 섞어 경화시킨 슬라임 고무를 이용해 스포이트를 만들었다. 그 외 몇 개의 시험관까지 만들어놨다.
시험 삼아 정제된 드래곤의 피와 자신의피를 샬레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현미경으로 보면서 배율을 조정했다. 다행히도, 이곳엔 공동을파면서 발견한 순도 높은 석영들이 많았다. 직접 보면서 확대되는 정도를 따라, 렌즈를 깎아나갔다.
“확실히, 적혈구는 잘 보이네. 두 개를 섞으면 어찌 되나 볼까?”
섞일 듯 섞이지 않다가, 드래곤의 적혈구가 인간의 적혈구를 잡아먹는 게 확인되었다.
“정상적인 순도 높은 피라면, 인간이 드래곤의 피에 못 버티고 광증이 일어나거나 목숨이 나가는 게 이것 때문이라는 거네.”
이후의 일은 지원자가 있어야 하고, 부족한 재료가 도착해야 한다. 난장판이 된 공방을 정리하고 있자, 마침 일행들이 도착했다.
“야, 이상한 것 좀 그만 잡아 오라고 하면 안 되냐!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
타몬트가 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늪 거머리에, 흡혈세모뿔동굴박쥐, 혈벼룩에, 뱀파이어의 이빨 풀, 광전사의 열매, 라이칸의 피…. 다행히도 다 준비가 되었네요.”
“야, 버프 포션이라며? 재료가 왜 이렇게 흉악한 건데? 나 저 늪 거머리 잡다가 피를 빨렷다 고! 저놈들 트롤도 빨아 죽이는 놈들이잖아!”
그러고 보니 통통한 거머리 한 마리가 보인다. 마나 블레이드로 피를 푹 짜내고, 마나를 일으켜 태워버렸다.
“오염됐군요.”
“야!”
“버프 포션인데 변형시켰어요.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4가지 포션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루나야 설명 좀.”
“루시안 오빠가 하는 말은 저도 못 알아먹어요.”
루시안이 만든 현미경을 보여준다.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건, 또, 뭔 신기한 기계냐?”
“현미경이라는 건데, 작은 걸 크게 볼 수 있어요.”
“사이트 업이랑, 클리어랑 마법을 섞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클리어랑은 세공에 쓰이는 마법 아닌가? 그걸 알아?”
“책을 잡다하게 많이 읽었거든요!”
루나의 도움으로 렌즈의 선명도가 증가했다. 확실히 초점도 잘 잡힌다.사이트 업 마법으로 접안렌즈의 초점과 시야가 잘 잡혔다.
“그나저나, 지원자가 나와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맞다! 너 또 무언가를 했지? 아까 들어오는데 눈빛들이 너무 살벌하더라?”
“용혈 각성제라 불릴 포션의 지원자가 필요하니까요. 협조해달라 족장님하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러니까, 몸뚱이를 내놔라. 그랬다는 거네?”
“오빠, 그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단 생각 안 들어요?”
“무슨 생각? 루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투덕거리기 시작한 루나와 타몬트. 루시안은 그러든말든, 가져온 재료들의 전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박쥐는 이빨을 뽑고, 마법으로 건조해서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거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통째로 말려 건조하는 방법을 취했다.
일단,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다. 거머리를 주재료로 혈액응고방지제를 만들었다. 채혈 시나 실험 간에 피가 굳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건 인젠셕 탄으로 만들어도쓸모가 많겠네.”
재료들을 쭉 나열하고는 포션 제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행들도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안 피곤해요? 다들 가서 자는 게 낫지 않을까요?”
“별로? 아까 피를 쭉쭉 빨렸더니 쌩쌩하네?”
타몬트가 앙금이 남았는지 툴툴거린다.
“뭐, 그러시던지요”
첫 번째로, 만들건 1단계 포션이었다. 용의 피를 다량 집어넣고, 각성 성분으로 피를 날뛰게 해야 했다. 여기에 쓰이는 게 혈광초다. 뱀파이어의 이빨을 닮아 뱀파이어의 이빨 풀로도 불리는데, 이걸 복용하면 피만 보면 흥분하고 침을 흘리고 미쳐버린다. 사람을 뱀파이어로 몰아 죽일 때도 이걸 쓰곤 했었다.
“마나 정제수를 끓이고, 연금강화제와 섞은 혈광초 가루를 넣어서 1차 시약을 만들고. 드래곤의 피와 광전사의 열매를 섞으면!”
붉디붉은 용액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석영으로 만든 주사기에 담았다. 뚜껑을 잘 덮은 후, 살짝 서늘하게 만든 보관함에 보관했다.
“어쩌다 보니 1단계와 2단계를 합쳐버렸네? 부작용이 심하면 단계를 나눠야겠다. 다음으로 동굴 박쥐의 이빨과 혈 벼룩을 이용해 안정화 포션을 만들어야겠지”
동굴 박쥐와 혈벼룩은 각각 외부의 피를 자신의 피로 흡수하여 피를 갈아 끼우는 능력이 있다. 혈액에 담긴 힘과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신의 피를 외부로 빼버린다. 운이 좋으면 개체가 강화되고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이들은 흡혈의 욕구가 상당히 강하다, 게다가 흡혈 대상을 아주 신중히 고른다.
드래곤의 피를 주재료로 안정화 포션을 만들었고, 전체적인 신체 상태조절과 조혈모세포에 좋은 재료를 이용해, 혈액공급 포션을 만들었다. 혈액공급포션을 이용해 드래곤의 피를 양산해 보았는데, 이건 실패했다.
“지원자는 소식이 없으려나?”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맨 처음 만났던 겐과 넨이 서 있었다.
“뭐야? 너희들은?”
“지원자다! 흥!”
“아. 하긴, 가장 피가 약한 너희들이 가장 나을 수도 있겠네!”
루시안이 들어오라고 고갯짓했다. 둘은 순순히 들어왔다.
“네놈 덕분에, 일족의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어. 두 패로 나뉘어서 싸울 기세야. 넌 우리 일족에 원한이 있는 거냐?”
“원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싫으면 맞지 말라고 해, 우리의 목적은 금지의 출입이야. 봉인할 때보다 힘이 약해져서 봉인도 못 푸는 게 내 탓인가?”
“이게 진짜!”
“그리고, 싫다는 애들 굳이 멱살 잡고 끌고 갈 생각 없다고도 했어. 봉인 풀 사람 몇만 넘겨달라고 했었지. 그걸 싫다고 한 게 아시카 님이고.”
“......”
“이 용혈 각성제가 완성된다고 해서, 다 줄 것도 아니야. 말썽 피우는 자들을 내가 굳이 챙겨야 할까?”
“......”
“봉인? 그거, 솔직히 내가 가서 몇 날 며칠 붙잡고 있으면, 풀 수도 있을 거야. 그동안, 해온 결과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시간도 아깝고 해서, 쉽게 돌아갈 길을 찾은 것뿐이지. 용인족의 쇠퇴를 막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목적이 아니란 거야. 네놈들의 착각은 좀 깨질 필요가 있어!”
두 용인족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다. 그런 둘을 데리고 공방 안으로 데려갔다.
“타몬트 형은 거머리 좀 더 잡아다 주실래요?”
“야! 거길 또 가라고?”
“그냥 산책 삼아 다녀오세요.”
루시안이 탄산음료를 하나 꺼내 건넸다. 그리고,주름 개선 크림도 슬쩍 끼워줬다.
“이건!”
타몬트가 크림을 보더니, 환해진다. 일전에 제나르에 다녀온 이후로 관리에 눈을 뜬 타몬트였다. 이젠 그렇게 심한 노안 소리를 듣진 않는다. 머리도 잘 깎고, 수염도 늘 단정하게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은 결과다.
“일단 둘을 여기에 묶어주세요.”
루시안이 빈 주사기와 가늘게 찢은 천을 가져왔다. 천으로 팔뚝을 꽉 묶은 후, 주사로 채혈을 했다.
그들의 피를 혈액 응고제와 섞은 후, 스포이트로 샬레에 떨어뜨렸다. 활기찬 적혈구와 힘없이 축 늘어진 적혈구가 선명히 대비된다.
“각성제다. 어디 한번 날뛰어봐라!”
각성제를 한 두 방울 떨어뜨려 본다. 새로 유입된 혈기 왕성한 용혈이 기존의 피를 적혈구를 미친 듯이 공격하며 그 피를 통해 증식해나간다. 순식간에 인혈의 자리가 좁아진다.
대신, 너무 미친듯이 움직인다. 안정젤 떨어뜨렸다. 새로 공급된 용혈을 받아들이면서 남아 있던 인혈들이 터져나간다. 그리고, 휴식과 회복을 돕기 위한 회복제를 떨어뜨렸다.
“세포 상에서는 효과가 즉각 이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두 용인족의 키와 몸무게에 기반한 혈액을 계산해 적정 투약량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1차 각성제를 투여했다.
“으으악, 그아아악!”
“아아악!”
예상했던 반응이 나타난다. 담담히 루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루나, 재갈!”
루나가 용인족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혈관이 투둑 튀어나오고, 눈이 시뻘게진다. 반응이 격렬해지는 지점에, 안정제와 혈액 응고방지제를 섞어 투입했다. 손끝과 발끝 등 주요 혈관의 자리에 채혈침을 꽂아 죽은 피를 빼내기 시작했다. 몸이 피투성이가 된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다. 열도 많이 오른다. 회복제를 투입했다.
점차 상태가 안정화가 되자, 피를 다시 한번 채혈해 거울에 떨어뜨려 보았다. 비교를 위해 초기 채혈한 혈액을 먼저 떨어뜨려 확인 후, 그 다음에 떨어뜨렸다.
“확실히, 용혈이 강화되긴 했는데, 원체 보유 용혈이 적어서 효과가 40% 정도네. 농도를 올려야겠어.”
복용량과 농도 계산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지켜보던 일행들은 알 수 없는 글자와 숫자의 향연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건 루시안에게 불평했다고 날 고문하는 게 틀림없어!”
“형, 그냥 우린 가서 잘까요?”
“그러자. 잠이나 자자”
루나는 마법사답게 호기심에 눈이 초롱초롱하다. 호기심으로 죽일 수 있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고양이와 마법사. 조심하길 바랄 뿐이다.
지친 용인족을 일단 풀어주고 재웠다. 이들의 체력회복이 우선이었다. 그들은 첫 번째 약물 투입으로부터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아마 일어나면 자신들의 변화에 놀라워할 거다.
루나마저 돌려보낸 루시안은 최종적으로 용혈의 보유량과 약제의 농도, 투여량에 대해 수식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 계산식을 만들어 정리했다. 남은 건 검증이다.
다음날, 일찍 잠에서 깬 구리와 이른 아침을 먹었다. 구리는 공방에 들렀다가, 현미경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구리를 위해 만화경을만들어주었다.
“오오오!”
구리는 한참을 그걸 가지고 노느라, 누가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너 구리에 뭘 준거야! 구리가 내 말을 듣질 않잖아!”
타몬트가 루시안의 멱살을 잡으며 하소연을 했다. 루시안이 여벌로 만들어둔 만화경을 건넸다. 타몬트도 같은 상태가 되었다. 어른인지 애인지 정말 구별이 힘들다.
“너희 둘 몸은 어떠냐?”
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그들도 느꼈다. 몸에 충만한 힘, 자신의 의지에 이전보다 쉽게 반응하는 피가 느껴진다.
“아직 시험단계인데 그 정도면, 꽤 성공적이지 않냐?”
“뭐, 그러네…….”
“더 할 거야 말 거야? 안 할 거면 말고, 사실 이정도로도 성과는 있는 거니까. 아시카님에게 말을 하러 갈 건데, 그때까지 확실히 알려줘. 아니면 다른 지원자를 찾을 테니까!”
공방에 들어가, 남은 재료량과 약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딱 300명 투약분만 만들 재료를 일행에게 부탁했다.
“형, 어제 거머린 그냥 농담으로 한 소리였는데, 진짜가 되었어요! 거머린 좀 많이 구해다 주세요.”
“너 나한테 빚진 거 많은 거 알지?”
“릴리스는요? 크림은요?”
“어…….”
“에휴,발터 오빠 가자, 타몬트 오빤 내가 끌고 갈게!”
루나가 가볍게 마나로 타몬트를 띄워서 데리고 나간다.
“나도 발이 있다고오오!”
잠시 후, 공방에 넨과 겐이 들어왔다.
“결정했다. 하는 거로 결정했다!”
“나도!”
루시안이 씩 웃으며, 주사기를 들었다. 이미 용량계산을 끝내놓은 약제였다.
“끄아아아아아악!”
“어으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