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64화. 진정한 드라고니안으로
거센 바닷바람이 불어닥친다. 몸이 휘청할 정도로 거셌다. 앞에는 횃불이 타오르는 넓은 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바람을 피해, 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의 안은 바람도 들지 않고, 굉장히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후, 동굴 안이 아늑하니 좋네. 눕고 싶다.”
“그러게요. 아늑하네요. 몸이 풀리는 기분?”
“빠르게, 살펴보고 돌아가죠. 밖에서 기다리는 분도 있으니.”
“정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툴툴거리는 타몬트를 뒤에 둔 채 루시안과 구리가 앞장서 걸었다. 동굴은 그렇게 복잡하진 않았다. 조금, 걸어 들어가 보니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거대한 제단과 화로가 있었고, 제단 뒤에는 붉은색 돌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과 연결된 여러 개의 거대한 공간이 있었는데, 단단한 문으로 막혀 있었다. 단단한 금속 재질의 문으로 무언가를 단단히 봉하는 느낌이 들었다.
문마다, 새겨진 부조가 각기 달랐다. 드래곤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상당히 생생한 느낌이 들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런 멋이 있었다.
그중 가장 거대한 통로가 눈에 띄었다. 다른 통로보다 더 화려하게 조각된 통로였다.
“와, 여긴 정말 화려하다.”
“그러게요. 다른 곳보다 느껴지는 마나도 많고, 조각도 생동감이 강해요.”
“우와!”
일행들도 다들 감탄을 자아내며, 바라보았다. 루시안은 무언가에 홀린 듯 통로의 끝, 거대한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본인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문에서 밝은 빛이 번지면서 주변을 감싸 안는다.
주변이 온통 하얀 공간, 어리둥절한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야, 여긴 어디지?”
“여긴 어디죠?”
“야, 루시안 뭘 건드린 거야!”
“형! 여기 다 하얘”
그때, 하얀 벽면을 뚫고, 인자한 모습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왔길래, 못 참고 초대를 하였네! 자리에들 앉게나”
아무것도 없던 공간, 일행들의 앞에 원형의 탁자가 솟아나고, 일행들의 뒤로 의자가 솟아났다. 강제로 앉히는 기분이 들었다.
“눈으로 욕하지 말게나. 끌끌. 늙은이를 그렇게 때리고 싶은겐가?”
“타몬트 형 아는 분이세요? 조상님이라거나? 조상님이거나? 본인이거나?”
“발터야, 너 나중에 나가고 보자!”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누구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할아버진 누구예요?”
호탕하게 웃어 보인 노인이, 차를 내어주며 한참을 웃는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이렇게 유쾌하다니! 난 멸족한 드래곤의 망령이자 미련이자 후회이지. 게드리안 벨라스코일세. 골드 드래곤이자, 드래곤들의 로드였지. 일족을 멸족의 길로 안내한 멍청하고 아둔한 고집쟁이 죄인이라네.”
“........”
“하하, 눈빛으로 욕하던 이들의 눈에 이젠 안쓰럽다는 표정이 떠오르는군?”
“저흴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까?”
“흠, 그냥 심심해서 불렀네만?”
“...........”
“그냥 부르면 안 되는 것인가? 이 적적하고 쓸쓸한 이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자, 손님을 초대했건만 손님들이 이렇게 박해서야 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듯이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쯤 되니 로드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나, 로드 맞다네. 의심하지 말게나!”
“큼….”
“저희가 바쁜데, 용건만 말해주시는 게 어떠십니까?”
“하하, 내가 안 보내주면 나갈 수 없다네 하하하 나 로드라고 하지 않았나! 망령의 집착은 질척거리는 법이라네.”
“......”
“드래고니안을 위해 이곳까지 발걸음하였군? 흠, 드래곤의 피? 어디 보자, 아기아스? 허! 자네들 벨가를 만난 건가?”
혼자서 한참을 떠들며, 일행을 분석하고 있다. 실험대에 묶인 채 심장박동이랄지, 혈액채취랄지 그런 걸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장난이 짓궂으십니다.”
“어이쿠, 노인 패겠군. 패겠어! 그냥 적적해서 불렀건만. 이렇게들 정이 없어서야.”
“할아버지, 우리 바빠요!”
“어이구, 알았다. 환수의 아이야. 늙은이가 오랜만에 손님을 받으니 흥분했구나! 그래, 사실은, 너흴 부른 것은 부탁이 있어서다.”
급히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는다.
“이곳은 말이다. 드래곤들의 무덤이다. 오면서 봤겠지만, 각 통로의 끝엔 드래곤들이 잠들어 있지. 다른 환수들은 구슬을 남기지만, 드래곤들은 육체를 온전히 남긴다네. 드래곤들의 육체는 환상의 재료로 각광을받는다네. 그래서, 단단히 봉인을 해버린 것이지.”
일행들의 표정이 영 심드렁하다.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
“에휴, 이런 버르장머리없는 아이들을 봤나, 어! 노인이 넋두리하면 어! 반응도 하고! 어! 맞장구도 쳐주고 어! 그래야지 에잇!”
“용건만 간단히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노인이 손짓하자, 알 4개가 떠올랐다. 형형 색깔의 알들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거 맞다네! 드래곤의 알이지! 그간, 맡길 자들이 없어 봉인을 해두었다네.”
“죄송하지만, 지금, 아기아스가 봉인을 깨트리냐 마느냐 하는 상황입니다. 육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일이 다 끝난 후, 다시 들려주면 좋겠다는 걸세. 자네들 바쁜 건 나도 알아! 정 없는 것들 쯧쯧”
노인이 각자의 앞에 구슬을 띄웠다. 하얀색 빛무리가 뭉친 구슬이었는데, 막대한 힘이 느껴졌다.
“선물이라네, 선물 경계하지 말고 잘 받아드리게! 나의 드래곤 하트를 조각낸 일부분이라네. 다들 버틸만한 정도로 잘게 조각낸 것이지. 도움이많이 될 것일세”
구슬이 각자의 이마에스며든다. 막대한 기운에 몸을 두들겨 맞는 고통이 느껴진다. 온몸의 뼈가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크헉!”
모두 고통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눈으로 노인을 보며 욕을 했다.
“끌끌끌!”
꼴 좋다는 듯이 웃고 있으니, 더욱 얄미웠다. 어느새 고통이 완전히 가시고, 몸을 살펴보니, 마나량이 크게 늘어난 게 느껴졌다.
“마나나 오러가 운용하기가 매우 매끄러워지고, 마나 보유량 자체가 엄청 늘어났을 거라네. 단, 추후 돌아와 드래곤 일족을 보살핀다는 조건이지. 방치를 한다면 방금 느낀 고통의 10에 달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것이야.”
서서히, 하얀 벽들이 사라져간다.
“아, 자네들이 찾는 건 제단 뒤 붉은 바위라네! 용인족을 잘 도와주길 바라지. 끌끌”
노인의 모습도 서서히 흩어져가고, 하얀 방도 사라졌다. 그들은 어느새, 그 커다란 통로에 서 있었다.
“다들 괜찮아요?”
“괜찮긴 한데…. 그 마지막 말이 문제였지.”
“확실히 마나량이 커졌어요. 써클도 늘었고요. 마나의 운용도 더 쉬워졌어요”
“꿈은 아니라는 거잖아?”
“형아! 나도 힘이 세진 것 같아!”
“뭐, 나중에 이곳에 다시 찾아오면 되는 거죠. 어려운 일도아니고요.”
다시, 뒤로 돌아가 그 노인이 말한, 제단 뒤 붉은 바위를 살폈다.
♣ 드래곤의 혈석
-드래곤들이 토혈한 것들이 뭉쳐 굳어진 돌
“이거자체가 드래곤의 피였네?”
“뭐? 이게?”
“그럼, 이걸 잘라야 한다는 거지?”
다들 신기하다는 듯 혈석에 달라붙어 살펴본다. 혈석 자체가 크기는 작지는 않았다. 대략, 160 정도인 구리의 키와 비슷한 높이에, 구리가 두 번 안으면 안길 그 정도의 크기였다.
“이걸로 버프 포션을 만들어서, 다 주어야 한다면 보통의 이걸 얼마나 잘라야 하는 거지?”
“일단은, 살짝만 떼서 만들어본 다음에 효력이 있다면, 말하고 대량으로 만들어야죠. 이걸 다 부쉈는데 효과가 없다면 아마 뒷감당하기가 그렇겠죠?”
“뭐, 그건 그렇네.”
“오빠! 아무래도 잘라내어야 할 것 같은데요. 마법을 쓰긴 힘들 것 같아요.”
“음, 나는 못 할 것 같다.”
“타몬트형이 잘라 내보세요. 너무 크게 자르시면 안 됩니다.”
“야, 망하면 내 책임으로 하려고 하는 거지?”
“눈치가 빠른 사람 안 좋아해요.”
울상이 된 타몬트가 대검을 잡고 뒤로 크게 물러섰다. 일행들도 물러섰다.
“하압!”
대검이 살짝 번뜩이며,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혈석이 떨어져 내린다. 구리가 땅에 떨어지는 혈석을 잡아냈다.
구리가 혈석에 대고, 힘을 불어넣어 정수를 추출했다.
♣ 정제된 드래곤의 피
-드래곤의 혈석에서 세월에 쌓인 불순물을 제거한 피
-순수한 드래곤의 피로 정제했다.
“자, 돌아가죠.”
“잠깐만, 돌아가려면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잖아?”
다행히도 일행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진 않았다. 구리가 일행을 태우고 그대로 점프해 올라갔기 때문이다.
다시, 아시카의 레어로 돌아와, 그에게 연금술 공방으로 쓸만한 장소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말없이 앞장서 안내를 해주었다. 먼지 하나 없이 잘 관리된 레어 하나로 안내해준다.
“이곳을 쓰게나. 앞으로 여기에서 머물러도 괜찮을걸세”
방 하나를 깨끗이 정리하고, 연금술 공방을 꾸렸다. 환기가 중요했기에창을 나 있는 곳으로 방을 잡았다.
“버프 포션의 레시피는 정형화된 레시피가 있으니까, 그대로 따라가면 되겠지.”
하렌츠의 연금비서와 그간의 연금술, 전생의 지식을 합쳐서 정리한 루시안 만의 연금 비서를 꺼냈다. 거기에서 버프 포션에 대해 찾아보고, 재료를 준비해나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료가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재료가 부족한 게 몇 개 보인다.
“발터, 혹시 이런 것들을 알아?”
발터가 루시안이 건네준 쪽지를 확인해보더니 몇 개는 고개를 내젓는다. 다행히도 루나가 알고 있었다.
“마탑에서 자주 다루던 재료들이에요.”
“그럼, 둘이서 재료를 찾아다 줄래? 타몬트 형도 같이 데리고 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질 않는 타몬트도 같이 보냈다. 구리는 공방의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침대에다가 눕혀두고 나왔다.
“버프 포션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단 말이야.”
버프 포션은 일반포션처럼 즉효성이 아니라, 효능이 일정 시간 동안 계속 지속하여야 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체력을 강화하거나, 마나 회복량이 증가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부작용에 용량까지 모두 고려를 해야 해서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걸 고려 안 하면, 포션을 쓰고 죽음에 이르거나 신체를 무너지게 하지.”
주요 재료들의 전처리를 빠르게 해두었다. 나머진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일행들이 가져올 재료들을 이용해 추가로 정제를 해야 하니 일단은 여기서 멈춰야 했다.
“아시카님을 만나러 가야겠군!”
그와 만나, 중요하게 나눌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흐음, 무슨 일인가? 설마, 실패한 것인가?”
“아직, 재료가 부족해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일행들이 채집에 나가 있습니다. 그것보단 이번 포션에 개발에 있어, 지원자들이 필요합니다. 포션의 용량, 농도를 시험해야 합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일족의 아이들에게 불분명한 약을 사용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과정 없이, 무턱대고 만들었다간 피해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혈석이 무한히 많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흐음…….”
고민이 깊어보이는 아시카였다. 루시안은 개발 단계를 설명했다.
“1단계로 미약하게 잠자고 있는 용의 피를 일부러 폭주시킬 겁니다. 일전에 본 두 용인족들은, 억지로 자극을 주어 쥐어 짜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가 적다고는 하나, 드래곤의 피, 자체가 인간의 피에 완전히 패배해 잠들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이 섬에 틀어박혀, 무슨 위협이 있겠는가? 평화가 지속되고, 피는 약화되고 전투에 뛰어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드래곤의 피가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라네.”
“흠, 그렇다면 원하는 자들만 각성을 시키실 겁니까? 그리고,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두 실생 각이시면, 봉인을 풀, 자들만 뽑아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그들만 데리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루시안이야 봉인을 풀어, 그 금지란 곳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굳이, 원하지도 않는 일족의 부흥이니 하는 귀찮은 일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아무래도 혼자서는 결정하기 힘들 것 같네. 자원자가 있을지 일족 회의를 통해 알아봐야 하네.”
“그럼, 설명을 마저 드리겠습니다. 2단계로는 폭주한 피를 움직여 인간의 피를 잡아먹고 우위에 설 겁니다. 인간의 피와 드래곤의 피가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거지요. 아마, 큰 고통이 따를거고, 큰 비명을 지르게 되겠지요.”
“흠, 일족이 난리가 나겠군!”
“3단계는 안정화입니다. 드래곤의 피를 키우며, 인간의 피를 밀어냅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피를 밀어내지 못하면, 인간의 형체를 잃고 리자드맨과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저를 죽이려 들겠군요. 4단계는 최종 안정화입니다. 두 피의 세력다툼을 종결시키고, 관계를 확실히 새겨넣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드래곤의 피가 최종적으로 져버린다면, 그는 완전한 인간의 피를 가지게 될 겁니다.”
“…알겠네, 솔직하게 부작용까지 다 말해주니 더욱 믿음이 가는군.”
아시카가 무척이나 고민이 되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이거 정말 고민이 많이 되는군. 아이들이 난리를 칠 게 뻔하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