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3화. 용인족의 땅 아칸다로!(2) (64/95)



〈 64화 〉63화. 용인족의 땅 아칸다로!(2)

“이곳보단 우리 일족의 영역이 낫겠지. 자네들도 같이 가지. 자, 모두 돌아간다.”

족장이 무언가를 느낀  구리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의 태도 변화도 그 때문으로 보였다.

“갈 거야?”
“가시죠.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루나와 발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영지를 정리하고, 드래고니안들을 따라나섰다. 그들의 눈초리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특히, 타몬트의 일격에 가슴이 베어져, 붕대를 묶고 있는 붉은 머리와 바닷물에 염장된 파란 머리가 그랬다.

그들을 타몬트가 한번 째려봐주니, 곧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구리는 루시안의 손을  잡은  신난 듯 걸었다. 루시안과 용인족 족장은 무리의  앞에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구리를 흘깃쳐다본다.

“환수가 아직 남아 있었던 건가?”
“갑자기 태도가 바뀌시길래,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군요.”
“이런 일이 많았나보군?”
“엘프때도, 드워프때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잘 있던가?”
“잘 지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족을 격렬히 싫어하진 않았습니다. 수인족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우리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잊힌 자들이니 배타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도 좀….”
“우리는 숫자도 적은 데다가, 엘프는 위그드라실이라는 버팀목이 있고, 수인족은 엘프라는 버팀목이 있지. 드워프들은 워낙에 둔한 이들이니 뭐. 우리는 천천히 말라갔다네. 의지가 가는 실이 되도록 가늘어져 끊어지기 직전이지.”

사연을 많이 담은듯한 그의 쓸쓸한 눈빛, 그리고는 일족의 영역에 당도할 때까지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드래고니안 일족의 거주지는 거대한 산맥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 거대한 동굴이었다. 커다란 중앙의 공동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작은 공동이 있었다. 교묘하게 파놓은 채광용 창으로 햇빛만 들어오고, 비나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보단 아늑한데?”
“그러게요.”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마안! 이들은 내가 초대한 손님들이다. 나의 레어로 향할 테니, 들어들 가거라!”

그의 웅혼한 목소리가 공동을 가득 메운다. 마나가 실려있는 힘 있는 목소리였다. 말에 반항할  없는 그런 강제성이 느껴졌다.

“언령이군요.”
“호, 그걸 알아채다니, 생각보다 비밀이 많은 친구였군?”
그가 루시안을 흥미롭다는  쳐다본다. 그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앞장서 걸어간다.

그를 따라, 일행은 다시 통로로이동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밋밋한 나무문이 달린 어느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거실이 나타난다. 벽면엔 책들이 가득하다.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기다리게.”

그가, 지팡이를 내리치자, 바닥에서 앞치마를 두른 용아병이 나타났다. 그리곤, 허공에서 찻주전자와 찻잎을 꺼내 차를 우려내준다.

“세상에, 이런 차 대접은 처음이네.”
“용아병이에요.”
“우와….”

루시안과 구리 그리고  노인은 더 위쪽의 방으로 향했다. 유리가 아닌 무언가로 막힌 투명하고 넓은 창이 있는 방안이었다. 밖으로 별이 뜨고, 달빛이 비치는 평화로운 밤바다가 보인다.

“앉지!”

그의 손짓에 따라, 의자들이 앉으라는 듯 다가온다. 찻주전자가 날아오고, 찻잎이 들어가서 자동으로 끓는다. 그리고 허공에서 과일 열매 같은 것도 나왔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드래고니안 일족의 아시카라고 한다네. 골드 드래곤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네.”

아시카가 자신의 소개를 하며, 루시안을 쳐다본다.

“저는 루시안입니다. 아스타리안 대륙의 연금술사입니다. 이쪽은 환수인 구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 대륙엔 아직 환수들이 남아 있는가?”
“벨가님이 남아계시고, 최근에 환수하나를 더 깨웠습니다.”
“벨가님이 아직 계셨단 말인가?”

루시안이 팔찌를 들어 보였다.

“호오, 확실히 그분의 기운이군. 이젠 늙어 무뎌지고 둔해진 나에겐 기억마저도 흐려졌나 보군, 어렴풋이 그분의 모습이 떠오르니 말이야!”
“언제 한번, 대륙에 오시지요.벨가님을 아신다면 반가이 맞아주실겁니다.”
“그분은 늘 친절하셨지.”
“흠, 그, 아까 낮에도 느낀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일족이 많이 쇠퇴해 보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역시, 속일 수가 없는 것인가 보군. 자넨 정말 신기한 사람이군!”

아시카가 차를  모금 마셨다. 구리는 열매가입에 맞는지, 연신 그것만 집어먹고 있었다. 아시카가 빙긋 웃으며, 열매를 더 꺼내주었다.

“다, 고대의 전쟁 때문이지. 그때 참전했던 드래곤들이 큰 상처를 입으며, 일족 전부가 전멸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예? 무슨 생각으로  일족이 나선 거랍니까? 하다못해 해츨링이라도 남겨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조상들이 남긴 이야기나,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그들은 매우 오만했다고 한다네. 승리를 당연하다고 여겼고, 해츨링도 당연히 교육상 참전을 해야 했었다는 그런 풍습이 있었다 하는군.”
“정말, 대책이란 걸 모르는 건가요? 참, 어이없이 멸족해버렸군요.”

아시카의 표정이 씁쓸해진다. 만약, 그때 드래곤들이 멸족하지 않았다면, 하는 그런 미련이 잔뜩 묻어 나온다.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인 우리 드래고니안만이 간신히 피를 이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순수혈통은 옅어지고, 피의 힘은 약해져 갔다네. 나의 대에 이르러서는 50%이었으나, 오늘 낮에 본 넨과 겐, 그들은 인간의 피가 90%가 넘는다네.”
“그 정도면, 인간이나 다를  없군요.”

아시카는 찻잔을 들며, 말없이 밖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목적이 무어라 했는가? 낮에 넨이 뭐라고 알렸으나, 워낙에 횡설수설하다 보니. 알아듣질 못했다네.”
“아, 아기아스 교단이 나타났습니다. 고대의 아기아스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죠. 그들 때문에 봉인이 깨지려고 하고 있기에, 그걸 대비하기 위해 이곳저곳 여행하는 중입니다.”
“고대의 그 아기아스 말인가? 대륙에 그런일이 있었군!”
“알고 계시는군요? 차원문을 옮기는 장치가 있습니다. 드워프들이 수리해야하는데, 그 부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 게 이곳에 있단 말인가?”
“낮에 듣자 하니, 심연의 아가리라는 곳이 있다 들었습니다. 고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이더군요.”
“…그곳은, 우리 일족의 금지일세, 그곳에 들어간 용인족들은 돌아오질 못했지, 그래서 일족 회의를 통해 금지로 지정한걸세.”
“저희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봐야 하는 곳일 뿐입니다.”

아시카가테이블을 연신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곳은 출입을 막기 위해 봉인을 해두었다네. 문젠, 그때보다 우리의 힘이 약해져 봉인을 풀 수가 없다는 점이지. 봉인을 풀지 않고 진입을 했다간그 속에서 영원히 헤매게 될걸세!”
“방법이 전혀 없는 겁니까?”
“우리의 힘을 되찾는다면 모를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둘이 고민하고 있자, 구리가 손을 든다.

“루시안 형! 비약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비약?”
“음, 그러니까. 포션 중에 강화 포션이 있잖아!”
“알긴 알지, 그런데, 거기에 쓰이려면, 용의 피가필요할 텐데?”
“흠….”

구리가 생각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이내,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

“모르겠어!”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아시카가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니, 용의 피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확실하진 않으나, 가능성이 커지긴 합니다.”
“흠….”

한참을 창을 바라보던 그가 루시안을 바라본다.

“우리 일족에게 신성시되는 곳이 하나 있다네. 선혈의 제단이라고 하는 곳이지. 이곳 공동에서 나가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용의 송곳니라는 곳이 있다네. 그곳에 선혈의 제단으로 가는 길이 있지.”
“그곳에 용의 피가 있는 것입니까?”
“피가 있다기보다는, 그곳은 용들의 무덤 같은 곳이라네. 토해낸 피들이 굳어, 거대한 바위를 이루고 있는 곳이지.”



담담히 내뱉는 그의 표정이 많은 걸 내려놓은 듯했다.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듯 비장해 보였다.

“그걸, 제가 다루어도 되겠습니까? 분명, 손상이 텐데 말입니다. 일족들이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쇠퇴하다가 죽으면, 그냥 덩그러니 남게 될 장소 아니겠나? 무언가 희망이 있다면, 걸어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드네. 이렇게 만난 것도 하나의 인연이나 운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내일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이사카는 일행과 같이 묶을 방을 안내해주었다. 그의 레어가 은근히 넓었다. 남는 빈방이 3개가 있다고 했다. 루나는 방 하나를 온전히 쓰고, 구리와 루시안이 한방을, 타몬트와 발터가 한방을 쓰기로 했다.

타몬트가 발터를 데리고, 굳이 루시안이 있는 방으로 찾아왔다.

“루나는 피곤한지 잠들었더라.”
“루시안 그거 꺼내 봐라!”

타몬트가 말을 꺼내며, 말린 육포를 꺼냈다. 루시안이 아공간에서 콜라 4병을 꺼냈다. 그리고, 마나를 이용해, 차갑게 식혔다.

“그래, 바로이거지! 저번에 이걸 먹고 한눈에 반했다니까?”

타몬트가 콜라를 받아들고 시원하게 들이켠다. 구리도 발터도 시원하게 들이켰다.

“아까, 살짝 들었는데 내일 지하 감옥 같은 데를 간다고 했지?”
“네, 용들의 무덤? 용들의 피가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내일 거기에 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화내겠네.”
“오늘은 푹 자야  거야. 내일 고생을 견디려면 말이지.”
“꺼억!”

구리가 어느새, 콜라 한 병을 비우더니 트림을 내뱉는다.
“더 줄까?”

구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아시카의 명을 받은, 용인족 한 명이 안내를 맡았다. 그들이 중앙의 거대 공동으로 나왔을 때, 예상대로 그들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다.

“감히, 선혈의 제단을 들어간다니!”
“족장님이 이번 건 너무 심하신  아닙니까?”
“맞습니다.”

타몬트가 욱해서 나가려는 걸 루시안이 제지했다.

“일족의 수장이 정하신일에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들 같이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며, 무엇인가를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자들이 그분의 고뇌와 결단을 이해할 리가 없겠지요. 본인들을 잘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모두 얼굴이 빨개져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들도 일족에 닥친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용인족이 아니라 일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주먹만 꽉 쥐고 부들거릴 뿐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용의 송곳니로 향했다. 공동에서 나와 한참을 이동했었다. 수풀과 나무를 헤치고, 절벽을 헤치고 나아갔다. 길이 상당히 험했다.

안내하는 드래고니안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했지만 말이다. 뒤를 따라가는 일행은 지쳐서 헉헉거렸다.

그들이 지쳐갈 무렵, 뾰족한 기암절벽이 나타났다. 그 안으로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드래고니안이 자리에 멈춰서 휴식을 취하자 했다. 그제야, 다들 제자리에 앉아 그대로 누워버린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이 길을 따라가시다 보면 절벽이 나올 겁니다. 거기에서 뛰어내리시면 동굴의 입구가 있습니다. 나오실 땐 입구에 달린 줄사다릴 타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저는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타몬트와 발터는 뻗어서 미동이 없다.

“야, 발터, 사냥꾼이 벌써 지치냐?”
“너랑 몇 번 다녔더니 게을러졌나 보다. 큭큭”
“루나는 괜찮아?”
“후, 예, 그냥…. 하아…. 
“형,  괜찮아!”

언제나 팔팔한 구리였다. 용인족에게 콜라 하나를 꺼내 식혀서 건넸다.

“드셔보세요. 고생하셨으니, 특별히 드리는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구리가 병을 잡고, 뚜껑을 따서 다시 건네준다. 그가 한입을 먹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오오!”
“이곳에서 저희가 얼마나 걸릴지, 언제 올지 모르지 않습니까? 기다릴 곳이 있습니까?”
“예, 이곳 근처에 대기하는 용도로 만들어둔 공동이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잠시 쉬니까, 다들 체력이 회복되었는지, 혈색이 돌아왔다.

“자, 가시죠!”

용인족 사내의 배웅을 받으며, 좁을 길을 따라 나아갔다. 이내, 길이 끊긴다. 앞에는 깎아지른듯한 절벽, 그리고 그 아래론 하얀 포말이 이는 바다였다. 자세히 보니, 아래쪽으로 널찍한 바위가 하나 보인다.

“여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거야?”
“일종의 용기를 시험하는 장소로도 쓰이나 보네요.”
구리는 신난다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발터도 이어 뛰어내렸다. 루나와 타몬트만이 멈칫거렸다.

“잘 따라오세요. 먼저 갑니다.”
“…루나야, 업혀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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