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6화. 유혹의 노랫소리(2)
포션이 떨어지자마자, 엄청난 비명이 들린다. 세이렌이 그 고음에 정신이 달아나 멍해진다. 루시안이 신형 권총을 꺼내, 한 방을 쏘아낸다. 소리부터가 우렁찼다. 세이렌의 머리가 그냥 터져나간다.
현재의 총은 루시안의 팔뚝만 한 크기에, 총신이 매우 크고 두꺼웠다. 총 그 자체가 둔기로 쓰일 그런 상태였다. 대신 연사력은 떨어졌고, 화력은 강해졌다.
세이렌 프로듀스는 실패로 끝났다. 귀마개의 효능이 좋아서 그런지,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세이렌들이 단체로 나타나 떼창을 부르기까지 했다. 루나의 마법과 루시안의 포션으로 금세 정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이렌의 무대를 지나, 섬의 안쪽 정박지를 발견했다. 해안동굴의 안쪽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한 입구인 양 어딘가로 향하는 계단까지 있었다. 주변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자, 답답한 귀마개를 뺐다.
“와우, 이 귀마개 성능 좋다야!”
“이것도 네가 만든 거잖아?”
“이번에 세레나님이랑 이야기하면서, 신기한 식물들에 대해 많이 들었거든.”
“오, 그 포션도?”
“어, 그건 비명초, 구리 덕분에 정수를 추출해 만들었지. 아마, 귀마개 안 하고 들으면 고막이 청각이 마비될 거야”
“루시안이랑 다니면서 느끼는 건데, 내가 몬스터가 아닌 게 진짜 다행이야!”
“난 형이 몬스터였으면 좋겠는데….”
“발터? 그간, 우리가 아주 서먹했지? 이리 올래?”
둘은 여전히 늘 그랬듯이, 똑같았다.
“루나야, 저 둘은 내버려 두고, 식사 준비나 하자.”
루나가 말없이 끄덕였다. 구리도 돕겠다고 나섰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루시안은 구리와 함께, 안쪽의 계단을 확인해보고자 나섰다. 계단은 중간에 끊어져 있었다. 아래로는 끝 모를 심연이었다.
“형! 여기!”
구리가 벽면을 가리키며, 루시안을 불렀다.
“아무것도 없는데?”
구리가 손을 살짝 밀자, 벽이 스르르 돌아간다. 루시안은 뒤로 물러서서, 일행을 불렀다. 여기에 휘말려서, 일행과 떨어지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잠시 후, 일행들과 벽 너머, 비밀통로로 향했다.
루나가 라이트 마법을 발동해, 길을 밝혔다. 길은 다행히도 하나였다. 다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고 긴 길이었다. 곧, 정체 모를 광원이 존재하는 큼지막한 공동이 나타났다. 거대한 석문이 있었고, 그 좌우로 석상이 2개씩 있었다.
석문에는 손잡이나 무언가를 끼우는 홈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석상이 바라보는 방향도, 제각각이었는데, 두 개는 노래 부르는 세이렌, 두 개는 귀를 막는 원숭이였다. 석상을 살짝 움직여보니,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잘 밀렸다.
“조각상을 움직이면, 문이 열리는 걸까요? 흠, 세이렌의 머리가 둘, 귀를 막은 원숭이가 둘인데, 섞여 있네?”
루나가 석상을 주의깊게 살폈다. 그녀는 어떤 비밀이 있을지 고심하는 중이었다. 발터와 타몬트도 거기에 붙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루시안과 구리는 공동 주변에 다른 단서나 흔적이 있나 둘러보았다.
“하하하, 이렇게 쉬운 퍼즐이라니! 루나야, 세이렌이 소리를 치면, 원숭이가 귀를 막겠지? 그러니까 왼쪽을 바라보는 세이렌을 이렇게 옮기고, 오른쪽을 바라보며 귀를 막는 원숭이를 이렇게 하면? 짜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발터가 나섰다. 원숭이를 반대로 돌렸다. 뒤로 돌아서 귀를 막는 자세를 취했다.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위로 들렸다.
“하하하! 역시, 형보단 내가 낫다니까?”
그때까지도, 루시안은 천장의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옥좌에 앉은 메두사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세이렌들. 바다 몬스터를 이끌고 인간의 땅으로 향하는 세이렌들. 날개 달린 거대한 사자의 비호 아래 세이렌과 바다 몬스터를 물리치는 인간들. 그리고, 메두사의 잘린 목을 밟고 선 사자의 모습.
“무슨 의미가 있는 것같은데!”
“형! 저기 문 열렸어!”
“야, 봤냐! 타몬트 형이 못 푼 거 이 몸이 풀었다는 거 아니냐! 하하하”
“다음엔 내가 풀어주마!”
루나도 루시안이 보던 천장화를 유심히 살핀다.
“이게, 그냥 그려져 있을 리는 없을 텐데 말이죠.”
“일단, 수첩에 적어뒀으니까, 앞으로, 계속 가보자!”
다시, 길고 좁은 통로를 지나 이번엔 3개의 갈래길이 나왔다. 길의 위에는 3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메두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세이렌, 인간에게 공격당하는 세이렌, 유적을 세우는 세이렌. 이렇게 3개네요?”
“순서대로라면, 첫 번째 통로가 맞아. 그림에 그려진 대로 가면.”
천장화에 따라, 첫 번째 길로 향했다. 길의 끝에 넓은 터가 펼쳐지고, 뒤로는 해저로 통하는 길이 있는지, 물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물에서 골렘과 세이렌이 튀어나왔다.
“야, 이길 맞아?”
“초행인데 어쩌겠어요? 싸워야죠!”
“에잇!”
루시안이 총을 뽑아들고, 천장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세이렌을 총신으로 후려쳤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세이렌의 몸이 꺽여진다. 그대로 머리에 대고 총알을 갈겨버리니, 총알을 따라 몸이 공중을 휙 돌아 벽에 쳐박히며 죽어버렸다.
동굴이라 소리가 울렸다. 굉음이 터지니, 세이렌이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귀마개요!”
일행이 귀마개를 착용하자마자, 비명초 포션을 던져 버렸다. 소리가 반사되며 메아리친다. 세이렌 들이 바닥에 뒹굴며 괴로워한다. 타몬트가 대검으로 쓸어 담듯이 그어버렸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세이렌이 절단되었다. 남은 건 발터와 루나가 마무리 지었다.
골렘은 구리가 힘겨루기하는 중이었다. 체구는 작아도, 본디 환수인 데다 구슬 흡수도 착실하게 해놔서 힘으론 밀리지 않았다.
부분 거대화한 팔로 골렘의 팔을 꺾어 들어 올린 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점프해서 내리찍어버렸다. 골렘이 있던 땅이 쩍 갈라지며 균열이 생기고 골렘이 그대로 침묵해버린다.
죽은 세이렌의 몸에서 작은 푸른빛의구슬 몇 개와 골렘의 심장 어림에서 투명한 수정구를 발견했다.
“이게 어딘가 쓰일 수도 있다는 거겠지?”
혹시나, 더 있을까 싶어 더 헤집어보았지만 더는 없었다. 구리가 남은 시체로부터 정수를 뽑아내었다.
“길이 끊긴 거로 봐선, 잠수해야 하는 거야?”
“그런가 봐요. 일단 제가 먼저 확인해볼게요.”
수중호흡포션을 복용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한참, 앞으로 나아가니,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벽에 레버 같은 게 있어, 그걸 내렸다.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물이 빠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반대편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완전히 물이 빠진 곳으로 돌로 된 길들이 나타났다.
“덕분에, 편하게 왔다. 그런데 이런, 장치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어, 잘 만들었겠죠?”
“너, 나 싫어하지?”
“구리야 가자, 바보오빠들이랑 있으면 안돼!”
“응!”
길은 계속 이어졌다. 낭떠러지로 가는 함정도, 몬스터 무리도, 바위가 굴러다니는 길도 지났다.
그리고, 도착한 방, 거대한 석문과 그 석문에손을 댄 좌우 거대한 석상이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잔이 있고, 그 잔으로부터 홈이 나 있었다. 잔을 받치는 받침대 주위로 기괴한 홈들이 이리저리 이어지며, 앞을 가로막는 문의 양옆 석상으로 연결되어있었다.
“흠, 이 잔에 무언가를 부어야 한다는 건가?”
“무엇을 넣어야 하죠?”
루시안은 골렘과 세이렌 등 유적에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얻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꺼내 보았다.
♣ 골렘의 수정핵
- 무언가의 동력원이 될 정도로 에너지가 충만하다.
♣ 세이렌의 눈물
- 물과 닿으면, 쉽게 녹아들어, 부식성 액체가 된다.
♣ 끈적이 풀
세이렌 목청의 유지 비결, 끈적거린다.
물에 녹으면, 우윳빛의 묵직한 액체가 된다.
“이렇게 3개란 말이지.”
“이 잔에다가 그걸 섞어서 부어보면 어때?”
“시도해볼게요.”
“형! 추출할까요?”
“음, 이건 그냥 해도 될 것 같아!”
루시안은 수정핵을 부순 후 잘게 갈았다. 여기에 마나석 하나를 추가했다. 세이렌의 눈물을 마나 정제수에 넣고 녹인 후 수정핵 가루와 섞었다. 수정핵이 녹으면서 완전히 중화되어 보랏빛의 액체가 되었다. 여기에 다시 끈적이 풀을 넣었다. 둘이 잘 섞이도록 마법 램프로 가열해, 식혔다.
연보라빛의 액체가 만들어졌다. 잔의 크기를 고려해서, 마나 정제수를 섞었다. 그리고, 그걸 가운데 잔에 부어 넣었다.
잔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더니, 액체에 스며든다. 연보랏빛의 액체가 홈을 타고, 방안을 타고 돌아가 석상으로 향한다. 석상에서 기계 작동음이 들린다. 서서히 거대한 팔이 문의 양쪽을 꽉 잡고 석상 쪽으로 당긴다. 문이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좋았어!”
“가시죠!”
복도를 지나, 밝은 광원이 새어드는 거대한 공터에 다다랐다. 거대한 옥좌가 있었다. 천장화에서 보던 그 옥좌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머리가 온전히 붙어있는 메두사가 눈을 감고 앉아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마에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야, 루시안, 나침반이 떨린다. 이곳에 들어오니까 떨리네?”
“그러게요? 무언가 차단하는 게 있나 봅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빠들? 저걸 어떻게 해요? 메두사면 그 석화 쓴다는 고대의 몬스터잖아요?”
“잡아야지, 딱 봐도, 저 머리에 박힌 게 우리가 찾는 거로 보이는데”
너무 시끄러웠던 탓인지, 메두사가 눈을 뜨고 일행을 쳐다본다. 머리 위에 달린 뱀들이 혓바닥을 내밀고 일행을 일제히 노려본다.
“주변에 거울로 쓰일만한 걸 찾아봐!”
루시안이 총을 꺼내 들었다. 뱀들의 머리 위로 점착폭발포션을 던졌다. 뱀의 머리에 닿은 점착액이 이내 공기와 반응하며, 폭발해버린다.
“키에에엑!”
뱀들이 죽은 자리엔 또 다른 뱀들이 자라나 자리를 메꾼다. 메두사의 눈이 빨갛게 빛나며, 일행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루나!”
루나가 바닥에 손을 짚어 거대한 흙의 장벽을 세운다. 일행이 그 뒤로 몸을 감춘다. 타몬트가 대검의 옆면으로 슬쩍 메두사를 확인해본다..
“야, 쟤 뱀 푼다.!”
메두사가 손을 들어 중얼거리자, 소환진이 떠오르고 수십 수백의 뱀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뱀들이 스네이크워리어가 되어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공동이 뱀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형! 천장!”
구리가 천장에 거울이 달린 것을 발견했다. 이곳 공동자체가 거울로 둘러싸인 곳이었으나, 가장 높은 곳을 제외하곤 제거가 된 모양이었다. 온전한 모양이 아닌모서리가 다 깨져 있는 형태였다.
구리가 점프해서 천장에 달라붙는다. 그리고는 거울일 때서 루시안에게 던졌다. 루시안이 그걸 받아들곤, 루나에게 맡겼다.
“발터랑 나랑 형이 틈을 만들 테니까, 루나가 거울을이용해서 석화를 돌려. 구리가 보호해줘! 알았지?”
“알았어요.”
“응”
타몬트는 이미 대검으로 쓸어버리는 중이었다. 뱀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통에 죽여도 티가 나질 않는다.
“발터 소환진을 노려봐!”
루시안도 무기를 들고 달려나갔다. 묵직한 총신에 두들겨 맞은 뱀들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프리고나이트 탄을 장전해 뱀들의 무리 중앙에 박아넣었다. 탄이 터지며, 주위로 냉기가 휘몰아친다.
뱀들의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지기 시작한다. 메두사가 다시 눈을 벌겋게 뜨며, 일행을 응시한다. 타몬트가 주위의 뱀 한 마리를 메두사한테 던져 버렸다. 공중에서 시선에 닿은 뱀이 돌이 되어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루나!”
루나가 거울을 들고, 메두사의 시선을 뱀들에게 반사해버렸다. 일시에 대다수 뱀이 돌이 되어 굳어버린다. 발터가 화살을 재, 메두사의 왼쪽 눈을 향해 쏴 넣었다. 화살이 돌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붉은빛이 사라지면, 쏴 넣어!”
“알았어”
루나가 세운 흙 장벽 뒤로 몸을 숨긴 후, 프리고 나이트 탄을 두 발 더 욱여넣었다. 뱀들이 있는 지대가 한기에 휩싸였다. 메두사의 붉은 눈이 꺼지는 때에 정확히 발터의 화살이 한쪽 눈을 꿰뚫고 지나간다.
“키야야야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