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4화. 앙금, 미련, 섣부름 (3) (55/95)



〈 55화 〉54화. 앙금, 미련, 섣부름 (3)

“세이렌의 섬, 스발란 섬, 여긴 머나먼 바다 한 가운데, 네빌론 대륙, 아칸다 대륙….”

갈곳이 수두룩하다. 시간도 많이 걸릴게 뻔하다.

“쿠드비온님, 차원문이 앞으로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위그드라실님이 문제를 지적하셨다면 길어야 2년 일걸세.”
“2년이라….”

타몬트와 루시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쿠드비온이 껄껄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일행은 그 말에 말을 잃었다.

“자네들에게 말한 건, 핵심 부품 5개일세. 그 자잘한 부품들이 총 151,221개일세. 그건 드워프들이 재료를 구해 만들걸세.”

그게 뭐가 문제냐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쿠드비온의 태평한 얼굴.

“저희가 도울 거라는  확신하신 상태였군요?”
“물론! 자네들이 온 순간 알았지. 드워프 일족에겐 이런 예언이 내려온다네. ‘금을 먹는 자와 연금의 길을 걷는 자가 찾아오리라. 짙은 심연을 몰아내고, 여명을 밝힐지니. 망치를 높이 치켜들고,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하라’ 어떤가 느껴지는 게 있는가?”

쿠드비온이 수염을 쓸며, 되물어온다.

“금을 먹는 자, 저건 구리겠지, 거기에 저건 딱 너잖아? 으, 소름이다.”
“또, 나예요?”
“그러게, 자꾸, 너를 말하네.”
“일단, 베리겐에게 가보게! 가서 연금 정련술을 배워보게. 하이드로골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껄껄!”

이상하게 쿠드비온이 얄밉게 느껴진다. 그가 내어준 마차를 타고, 은빛 모루 일족으로 향했다. 쿠드비온도 동행했다.

루시안은 가는 길에 현재 상황을 라펠라에게 알렸다.

-그렇구나, 차원문을 당장 옮기는 건 아니었네.
-갈 곳이 다섯 군데나 되어서 골치가 아프네요.
-난, 아버지를 만나볼까 해. 사람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흠, 제국과 드워프 간에 전쟁으로 이어질까 그게 걱정인데요.
-그렇다고 죽어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거잖아?
-알겠어요.  이곳에서 일이 마무리되면 제나르로 향할게요. 거기서 만나시죠.
-알았어.

“누님도 참”
“제국이 어찌 반응할지 궁금하네요. 일단, 쿠드비온님께도 말씀드려야 할  같아요.”

마차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때에, 쿠드비온에게 이 일을 전했다. 쿠드비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제국이 알면 난리를 치겠지. 하지만,말일세, 드워프가 그동안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었던  아니라는 거지. 제국이 섣불리, 무기를 빼 들었다간 크게 다칠걸세! 껄껄”

자신이 넘친다. 루시안과 타몬트도 그냥 신경끄기로 했다.

“베리겐! 자리에있는가?”
“쿠드비온 족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시간이 그렇게 넉넉한 건 아니니 서둘렀지.”

베리겐이 루시안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마치, 처음  사람처럼.

“의아하게 볼  없어! 연금술사로서 어떤 놈인가 보는 거니까!”

베리겐이 어깨를 툭툭 치며, 호탕하게 웃는다.

“자, 내가 가르칠  연금 정련술이야. 금속을 연금시약으로 녹여서 성질을 바꾸거나, 고순도로 정련했거나, 특이한 금속을 만드는 거지!”

그가 상자를 하나 꺼내온다. 상자를 열어보니, 은색의 주괴가 하나 들어있었다.

“이건, 히드라르기륨에다가 미스릴을 섞어 놓은 건데, 히드라르기륨의 액체화 특성을 없애고 단단하게 고체화시킨 거지. 이걸로 공격당하면 히드라르기륨이 체온에 녹아 들어가 날이 사라진다네. 암살용으로 이만한 게 어디 있겠나! 단검 크기만 한 날이 다 들어가면 급소가 아니더라도 앓다가 죽는 거지”

연금술의 2대 시약 중 하나인 비트리올과 히드라르기륨에 기반한 다양한 연금 정련술을 배우는데, 한 주일가량이 소요되었다.

“이거, 재능이 아주 뛰어나군! 하이드로골듐까지 완성되었어. 내가 만든 것보다 잘, 만들었단 말이야!”

베리겐은 루시안이 만들어둔, 하이드로골듐으로 골렘의 관절과 내부의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에너지 공급로를 만들었다.

“크크, 역시, 내 손으론 만들기 어려운 순도의 하이드로골듐이야! 내 골렘은 더욱 완벽해질거야!”
“그렇게, 미련을 가지던 골렘이 완성이 되었군 그래. 축하하네!”

하이드로골듐은 에너지 전달체로, 호문클로스 및 골렘, 사령술에서 혈액을 대체 가능하다고 알려줬다. 루시안도 후일, 호문클로스를 만들기 위해 일부를 챙겼다.
“루시안, 이제가는것인가?”

쿠드비온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쉬워했다.

“있는 동안, 새로운 무기도 만들었으니, 여기에서 할 일은 모두 마쳤습니다.”
“그렇군, 언제든지 놀러 오게나!”

쿠드비온이 망치 모양의 브로치를 건넸다.

“그걸 이용하면, 굳이,저 협곡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네.”

그가 알려주길, 협곡의 입구에 보면 망치가 새겨진 바위나 나무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 이걸 대면 비밀통로가 열린다고 한다.

“일전의 자네 여성 동료에게도 하나 건네주었지. 그들도 잘 넘어갔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루시안과 타몬트, 그리고 구리는 제나르 방향으로 향했다. 제나르로 돌아가, 위그드라실의 의뢰 해결과 세이렌의 섬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라펠라가 통신을 해오기 전까진 말이다.

-루시안? 일이 꼬여버렸어. 우리도 몸을 피해서 다시 드워프의 마을로 향하는 중이야. 급하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 뒤로, 루시안이 다시 통신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질 않았다.

“형, 이걸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협곡으로 가는 입구에 가봐야지. 하여간, 너랑 다녀서 심심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누나 오는 거야?”
“어, 다시 온다고 하네”

그 뒤로 3일 후, 꾀죄죄한 몰골의 라펠라와 일행이 도착했다.

“누나!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라펠라가, 드워프 맥주를 들이켜며 한숨을 내쉰다.

“내가 너무 나선 것 같아. 이번엔 내 명백한 실수야.”

라펠라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발터와 루나의 표정도 썩 밝지가 않다.

“일단, 씻고 옷도 갈아입고 오세요. 식사도 하시고요. 잠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죠.”

3일 전, 아무래도 제국이 심상치 않아, 드워족에게도 경고를 해놨었다. 그에 따라 협곡이 더욱 미로같이 변하고, 각종 방어 기물이 늘어난 상태다. 라펠라가 통로를 몰랐다면, 오다가 미아가 되었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루나가 해주었다. 라펠라는 여전히, 자책감으로 살짝 멍한 상태다.

“그게, 다시, 유라즈 가문으로 돌아가고 나서부터예요.”
“누나가 가출했다가 들어와서, 다툼이라도 생긴 거야?”
“그게, 파논의 조사를, 라펠라 언니의 아버지이신 프란츠 유라즈님이 맡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조사 대상에 저희까지 포함되어버린 거죠.”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당시, 목격자가 있었던데다가. 유라즈 가문에서도 한바탕했잖아요. 하인도 있었으니, 저희란  알게 된 거죠.”

무언가 복잡한 사건이 시작된 것같다.

“예전에, 루시안이 말이야. 귀족이랑 연결되면 복잡해지고, 머리가 아파져 온다고 했던가? 그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발터가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뭔데? 그래?”

타몬트가 궁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루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구리는 오랜만에 만난 피닉스랑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분은 정치가 더 중요하신지, 우리를 끌고 가서 죄를 밝혀야겠다고 하셨죠. 우리가 아기아스 교단에 관해 설명해드렸지만, 그런  우리들의 주장일 뿐이니 증거가 없다며 몰아세우더라고요.”
“하마터면, 수도의 황실 감옥에서  나올뻔했다니까? 우리를 그냥, 죄인 취급했어!”
“거기에다가, 언니가 드워프의 차원문 계획으로 수도에 많은 사람이 죽을 건데, 이런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더니.”

루시안은 그 뒤 일이 훤하게 예상되었다.

“드워프와 한통속으로 몰아갔겠네! 파논도 드워프와 짜고 친 습격의 일환이었다고 했을 테고.”
“루시안, 너, 그 자리에 있었냐?”
“쩝. 누나가 매우 성급하셨네.”

타몬트도 말을 덧붙였다. 쉼 없이 맥주를 들이켠다.

“군사를 동원해 우리를 붙잡아 끌고 가려던  뿌리치고 도망쳤지. 갔다간, 못 돌아올 게 뻔했거든.”
“언니는 본인 때문에, 일이 이렇게 돼버린 게, 마음에 걸려 저러고, 계신 거고요”
“대충, 제국의 공적, 가문에서도 쫓기는 신세. 그리고 드워프와 한통속이 되어 제국을 공격한 자라는 거네? 누나가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했던 건 물거품이 되어버린 거고.”

타몬트가 쓰게 웃는다.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저희가 움직여야  곳이 많아요. 여기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도 없어요.”
“그 말은, 그냥 이렇게 떠나자고?”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여기에서, 발목 잡힌 채로 제국과 싸움을 벌여야 할까요?”
“너희들은, 그대로 출발해. 난, 여기에 남겠어.”

이야기를 나누는일행에게 라펠라가 나타나 말했다.

“내가 섣부르게 행동한 결과니까, 내가 수습할 거야. 이건, 나 혼자서 해결해볼게. 난, 내일 제국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싸움을 막고, 어떻게든 피해를 줄여보겠어. 나중에, 너희를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누나!”
“누님, 그건 좀!”
“언니….”

일행들의 만류에도, 라펠라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렇게 라펠라는 다음날, 아침 다시 홀로 제국으로 향했다. 루시안은 가지고 있던 포션들을 챙겨주었다. 몸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웃으며 떠났다.

제나르로 떠나기로 이틀 전 저녁, 루시안은 나스팔라벨과 쿠드비온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리와 피닉스가 따라붙어, 자리에 함께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마음이 편치가 않겠군?”
“그렇습니다. 일행이 걱정도 되고, 드워프 분들도 걱정되고 그렇습니다.”
“어차피, 제국과는 좋지 않은 사이었으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
“사실, 자네를 부른 건 불의 환수님 때문이라네.”

나스팔라벨대족장의 눈이 피닉스에게 닿는다. 피닉스가 날아올라 그의 머리 위에 앉는다.

“안 그래도, 벨가님이 드워프분들에게 피닉스를 보내주면 좋아할 것이라 하긴 하셨습니다만.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입니까?”
“사실, 이걸 말하는 게 염치가 없어서 고민이많았다네.”
“나스팔라벨을 대신해, 내가 말하지, 드워프들의 불꽃이 약해지고 있다네. 예로부터 환수의 힘을 받아, 유지해오던 불꽃은 환수들의 발길이 끊어진 이후, 점차 쇠약해져 왔네. 이젠 정말 오래 버티기 힘들다네.”

나스팔라벨이 한숨을 푹 내쉬고, 쿠드비온은 말없이 다른 곳을 응시한다. 피닉스만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형! 피닉스의 도움이 필요한 거죠?”

구리가 루시안에게 보며 물어온다.

“어, 피닉스가 도와줘야 할 것 같네.”

구리가 피닉스를 바라본다. 피닉스 또한 구리를 바라본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바라보았다.

“삐루루르”
“피닉스가, 가자고 하는데요?”

구리의 말에 두 드워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정말인가?”
“이럴 게 아니지, 따라들 오게나!”

어디를 가는지   없지만, 일단 따라갔다. 워해머 일족의  뒤로 마그마가 흐르는 화산지대가 펼쳐진다. 그곳에 우뚝 솟은 건물, 그 안 거대한 용광로가 보인다.

“이곳일세!”

용광로의 주변으로 4개의 거대한 제단이 보인다. 용광로에서 흘러내리는 벌건 쇳물의 길이 보인다. 피닉스가 일행들을 보호하는 덕인지, 열기가 심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제단의 불꽃이 가냘프게 흔들리고 있었다. 금세라도 꺼질 듯 위태한 불꽃들.

“삐루르르”

피닉스가 루시안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구리의 앞에서 멈추어 선다. 둘이 무언가의 교감을 나누는듯했다.

피닉스가 날아가, 제단의 불을 하나하나 키워냈다.

“루시안 형, 피닉스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대. 불꽃이 너무 쇠약해져서 계속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였나? 얼마나, 걸릴  같은데?”
“500년쯤?”
“혹시, 환수의 구슬을 흡수하면, 줄어드는 거야?”

구리가 피닉스와 눈을 마주치면서, 계속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그건 그런데, 너무 고생하는 게 아닌지 걱정을 해.”
“삐루루루”
“구리도 줘야하고, 피닉스도 줘야하고, 차원문 이동장치에도 써야하고. 형이 바짝 벌어야겠구나!”

루시안이 구리를 목말을 태운다. 그리고, 피닉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지내고 있어! 또, 올테니까. 두 분 모두, 피닉스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당연한 걸세. 맡겨만 주시게!”
“그럼 그럼”
“맥주는 안됩니다!”
“하하하하”

드워프들은, 일행에게 각자의 무기와 방어구를 손봐주었다. 타몬트는 편하고 가벼운 중갑옷을 발터는 단단한 가죽에 급소를 금속으로 덧댄 갑옷을, 루나는 금속 실로 짠 로브를 선물 받았다. 무기는 간단히 날을 갈고, 수리하는 정도로 끝냈다. 구리는 손을 보호할아대를 하나 받았다.

“뒷일은 맡기고, 잘 가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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