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3화. 앙금, 미련, 섣부름 (2)
드워프들이 맥주를 연신 들이켠다, 시중을 들던 자들이 빈 맥주잔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차원문으로 이렇게 이야기가 커질 줄 알았으면, 이걸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좀 급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루시안이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나침반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옆에 있던드워프가 그걸 들어 나스팔라벨에 전해주었다. 그가 나침반을 들어 유심히 살핀다.
“환수종의 구슬을 감지하는 나침반입니다. 원래는 그것을 드리고, 구슬의 수색을 도와달라 요청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길잡이 돌은 어디서 구한 것인가?”
“벨가님이 내어주셨습니다.”
“하, 정말 귀한 걸 받았군!”
나스팔라벨이 나침반을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되돌려준다.
“미안하지만, 우리, 드워프들은 나가지 않을 걸세.”
거절이었다. 일행들도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귀쟁이 녀석들이 고양이 놈들 데리고 잘 돌아다니고 있을 거 아닌가? 굳이, 우리까지 끼어들 필욘 없지. 우린, 차원문 옮기고, 나오는 적들의 처리에 집중할걸세.”
“그래서, 자네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차원문을 거들 텐가 말 텐가?”
드워프들의 눈이 일제히 일행들에게 꽂혔다.
”일단, 그건 일행들과 상의를 해보아야겠습니다.
루시안은 잠시 시간을 벌어야겠다 싶었다. 드워프들의 시선이 곱지가 않다.
“나스팔라벨 족장, 인간들이 굳이 돕지 않아도, 드워프의 힘으로 차원문을 이전할 준비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나?”
붉은 수염의 가니스터 레단이 그에 동조하듯 외쳤다.
“이 붉은 망치 일족이 나서겠소! 그까짓 재료 몇 개 구하는데 뭐가 힘들겠습니까? 크하하하”
드워프들은 아기아스교단에 대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그저 차원문을 옮겨 제국에게 한방 먹이는데만 열을 올릴뿐이었다.
루시안 일행은, 대족장이 마련해준 숙소로 이동했다.
“또, 맥주야? 그래도, 고기랑 과일은 있네!”
발터가 사과를 하나 깨물며 투덜거린다.
“루시안, 어쩔거냐? 저들은 아기아스 교단은 신경도 안 쓰던데?”
“협력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게다가, 차원문을 옮기긴 해야 해요. 그게, 제국인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라펠라가 여전히 불퉁한 얼굴로 의견을 구한다.
“모두, 어떻게 생각해? 인간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수도에 그런 걸 옮겨도 된다는 정당성이 세워지는 거야?”
“드워프로서는 제국이 죽도록 미운거 아니겠어?. 그걸 우리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님”
발터도 타몬트의 말에 동의했다.
“솔직히, 제국 아니고서야 어디 보낼 때도 없지 않아요?”
“왜 없는데? 용의 둥지도 있고, 바다 위 섬들도 있잖아!”
“그런데 보내면, 어찌 싸웁니까, 누님. 이건, 보내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몇이나 죽어 나갈지 모르는데, 그걸 찬성하자는 거야?”
“누나, 일단 진정하시죠. 차분하게 생각해보죠.”
“그래요, 언니. 이건 매우 복잡한 문제예요. 얽힌 게 너무 많아요.”
라펠라가 한참을 생각하다, 결정을 내린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차원문을 열 시기에 맞춰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겠어. 혼자라도 말이야. 그래, 여는 건 말리지 않겠어! 제국의 수도가 폐허가 되면 황제도 정신을 차리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죽는 걸 가만히 볼 순 없어!”
라펠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거참, 누님도 너무 감성적이라니까. 쩝!”
“제가 일단, 언니를 따라갈게요.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 받을 사람도 필요할 테니까요.”
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피닉스가 루나의 머리 위에 앉는다.
“삐루르르”
“너도 같이 갈려고?”
“삐루루루”
“피닉스의 의견이 그렇다는데, 뭐, 누나를 잘 부탁해!”
“예! 다녀올게요!”
루나가 라펠라를 따라나섰다.
“더, 떠나실 분이 계신가요?”
“여자만보내긴 그러니까, 내가 따라갈게!”
그렇게, 발터도 라펠라와 합류하기로 했다.
“타몬트 형은 저와 함께하시겠군요. 구리도 있고.”
“난 형이랑 계속 같이할 거예요.”
“에휴, 어쩔거냐 이제?”
“쿠드비온 족장을 찾아가 볼까 해요. 차원문 수리를 거들어야 할 상황으로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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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드비온 족장의 숙소, 그는 아직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일행이 있는 이곳은, 드워프 도시 만달리안의 심장부, 워해머 일족의 영역이었다. 용광로 일족이 아직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쿠드비온 족장님 계십니까?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린다….
“흐음, 무슨 일이지?”
“거들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큼,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쿠드비온의방은 깔끔했다.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뿐.
“내일, 내 일족의 땅으로 떠날걸세. 날 도울 거라면 따라오게나. 보여줄 것도 거기에 있고. 자네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알려줄 수 있을 테니”
일행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쿠드비온이 껄껄 웃었다.
“아기아스의 추종자 보다, 먼저, 환수의 구슬을 찾는 것을 우리가 거부하지 않았는가? 그럼, 정보라도 주는 게 맞겠지,필시, 귀쟁이 놈들한테 들은 것도 있을 테고.”
“그건 그렇습니다. 엘프 여왕 타니엘님이 말하길, 환수들과 유난히 교류가 잦았다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 먹고 이곳으로 오게!”
다음날, 아침, 일행은 쿠드비온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앞에는 타오르는 듯한 불꽃모양의 마차가 서 있었다.
“일찍도 왔군! 타게나!”
쿠드비온이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탄다. 일행들은 뒤에 탔다. 덩치가 워낙에 커서 마부석 옆에 앉을 자리가 보이지도 않았다. 원체, 쿠드비온 맞춤형이기도 했다.
집은 매우 소박했다. 그가, 손수 차를 내려주었다.
“드워프들의 대접이 맥주뿐이라 실망이 컸지 않나?”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하하하”
타몬트 안성맞춤이긴 했었다.
“일행이 줄어든 걸 보니, 우리가 미움을 받았나 보군?”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드워프 일족에서 유일하게 환수를 본 마지막 세대이지. 고대의 전쟁 당시, 타우론 워해머님이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 이곳에 자리를 잡아 요새를 쌓아 올린 후로 드워프는 공식적으로 나가질 않았네. 뭐, 어딜 가나 호기심 많은 이들이 존재하길 마련이니 그간 나갔다 호되게 당하고 돌아온 이들이 많았지.”
차는 평범하나 깊은 맛이 있었다.
“드워프들은 말일세, 차원문을 너무 성급히 봉인한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있다네. 인간들이 탐욕을 부렸다고는 하나 1차 봉인도 차원문도 깨져버렸으니, 봉인에 한몫 거들었던 콧대 높던 드워프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지.”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환수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한, 금을 먹는 자가 나서서 자신을 연금재료로 삼아 카라함을 봉인했다네. 그렇게, 연결이 끊어진 차원문을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봉인해버린 것이 드워프였고 말일세. 그 봉인의 기횔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희생이 있었지. 그래서, 봉인을 그렇게 서둘렀는지도 모르겠네.”
쿠드비온의 시선이 구리에게 닿는다.
“자칫했다간, 그날의 일이 반복될 수 있어.”
“그 말씀은?”
“금을 먹는 자가 또다시,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이 말일세.”
구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구리를 잃는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구리의 희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타몬트도 표정이 굳어버렸다. 금을 먹는 자는 여러 번 나온 말이라 그게 구리임을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우리 드워프족은, 환수의 구슬을 찾기보단, 차원문 자체에 집중하기로 한걸세. 그게 우리가 잘하는 일이니까. 자, 다들 따라오게!”
쿠드비온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들을 지하실로 안내했다. 커다란 워해머를 든 드워프의 석상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있었다. 쿠드비온이 그 워해머의 망치를 살짝 누르니, 석상이 뒤로 밀리면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쿠드비온이 앞장을 선다.
이내, 넓은 공동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알 수 없는 광원으로 밝혀진 실내. 그 가운데에 독특한 모양을 한 물체가 놓여 있었다. 커다란 수정구가 하나 있고, 4방위를 따라 꽃잎 모양의 판이 있었고, 룬 문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받치는 하단엔 다이얼과 패널 판 같은 게 보였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네요. 정말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이게 작동이 된다고요? 흠”
구리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패널에 손을 올린다. 그러자, 노이즈가 잔뜩 낀 홀로그램이 창이 뜬다. 아스타리안 대륙의 모습이다. 붉은 점이 표시되어있는 곳을 보니, 마녀의 숲이었다.
“역시, 환수님의 힘으로 작동이 되는 거였군!”
“고장 난 거 아니었습니까?”
“고장 난 거 맞다네. 환수의 힘으로 작동이 된 걸세.”
구리는 멍하니, 지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고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이 기기로 차원문을 강제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네, 예전의 사용법에 따르면 이 붉은 점을 선택해서, 원하는 좌표를 넣고, 동력을 불어넣으면 차원문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지. 차원문마다 세 번의 기회가 있다 하였네.”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공동의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장, 중요한 건 동력이라네. 아무래도 환수의 구슬만 한 게 없을걸세. 아니면, 고위급 몬스터의 내단 100개분 정도랄까. 그리고, 고대의 수정패널, 수정체, 눈, 진공관이 필요하다네. 거기에 하이드로골듐까지 필요하지."
“저기, 할배, 그거 진짜 구할 수나 있는 겁니까?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환수의 구슬은 알겠는데, 뒤에건 저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쿠드비온이 빙긋이 웃어 보인다.
“자네, 연금술사 맞지? 연금술사라면 히드라르기륨을 알 걸세”
“그렇습니다. 잘 압니다.”
“히드라르기륨과 금의 연금 합금체가 바로, 하이드로골듐일세. 순도가 아주 높아야 하지”
“루시안, 지금 너보고 금속을 연금술 하라는 거야? 내 귀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말이야.”
“네,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이건, 나보단 베리겐에게 가보는 게 나을걸세. 미리 연락은 해두지.”
구리가, 멍하니 구경하던 걸 멈추고, 다시 루시안에게 달려와 안긴다. 그런 구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쿠드비온.
“참, 보기가 좋아. 이번엔 예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재료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지. 자네들도 유적이란 걸 알걸세! 최근, 대륙에 속속 나타난다는 거 말이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유적이란, 고대의 번성했던 문명의 잔재라네. 여기, 차원문 이동장치도 고대의 장치를 활용해 복구해낸 물건이지. 즉, 이걸 수리하려면 유적으로 가야 한다는 걸세.”
“아무 유적이나 다 돌아다니란 겁니까? 할배! 그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쿠드비온이 껄껄 웃으며, 지도와 수첩을 꺼내서 건넨다.
“총 5곳일세. 유적의 부품이 있을 만한 장소. 해저에 한곳, 공중에 한곳, 대륙에 세 곳. 대륙을 제외하곤 찾질 못하였을걸세.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세이렌의 섬이겠군.”
“어! 여긴, 배들의 무덤이잖아!”
쿠드비온이 지도에서 짚은 장소를 보던 타몬트가 아는 장소라는 듯 말했다.
“배들의 무덤이요?”
“여기는제나르 선원들이 금지라 불리는 곳이야. 여기 간 사람은 돌아오질 못했거든!”
쿠드비온이 빙긋이 웃으며, 읆조리듯 노래를 부른다.
“유혹의노랫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 곳, 고대의 섬. 그곳에 가면 영혼을 빼앗긴 자들이 기다린다네. 귀를 막고 돛을 높이 올려라, 그들과 잠들고 싶지 않다면~”
쿠드비온의 노래가 끝나자. 타몬트와 루시안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손뼉을쳤다.
“타몬트 형,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그러네? 그, 우리가 조사했던 내용 같지 않냐?”
“뜻하지 않게 단서를 얻어버렸네요.”
“그럼, 그 원인이 세이렌이었던 거야?”
구리는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와! 할아버지 노래 잘 불러요!”
“고맙습니다. 환수님!”
루시안이 수첩을 보니, 부품의 외형이 그려져 있었다. 부품이 어떤건지 몰라서 헤멜일은 없을것같았다.
“그나저나, 타몬트 형, 여길 언제 다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