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49화. 드워프의 도시 만달리안으로(4)
타몬트가 나침반이 떨리는 걸 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일행들의 발걸음이 다 멈췄다. 말에서 내려, 나침반을 보러 모여든다. 라펠라도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보더니, 이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루시안도 나침반을 꺼내 확인해본다. 나침이 부르르 떨리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방향이 동쪽이 아니라, 동서쪽이네요?”
굳은 표정의 라펠라가 담담히 내뱉었다.
“유라즈 영지야, 그 방향이면.”
“누나, 괜찮아요? 어디 아프신 거예요?”
“그냥, 그리 좋은 기억이 없는 곳이라서 말이야.”
라펠라의 표정이 좋지 않아지자, 루시안이 일행을 나눠서 갈지 물어보았다.
“누나, 그러면, 유라즈로 갈 인원과 마르키로 갈 인원을 나눌까요? 누나를 포함해서 몇몇은 마르키로 가고요. 다른, 인원들이 회수해올게요.”
“아냐, 굳이, 이런 일로 나눠서 갈 필욘 없어, 내 개인사로 귀찮게 굴 순 없지.”
“누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구리가 아무리 봐도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라펠라를 붙잡고 머리에 열을 잰다고 점프를 해댄다. 라펠라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는 허리를 굽혀 이마를 내준다. 이마에 손을 대본 구리가 갸웃거렸다.
“열없는데!”
“누난 괜찮아! 구리야”
라펠라가 구리를 꼭 안아줬다.
“일단 테칸으로 들어가자!”
라펠라가 선두에 선다..
“그런데, 수도를 아무나 들여 보내줘요?”
발터가 말에, 라펠라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앞장서 걷는다. 제나르의 서쪽 성문 앞, 경비병들이 창을 엇갈려 세우면서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다.
“정지, 어디서 온 것이냐, 무슨 목적으로 왔지?”
라펠라가 조용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여준다. 그러자, 경비병들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지며, 경례한다..
“충!”
다급하게, 길을 열고 고개를 숙인다.
“가자!”
경비병들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행들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꾹 참고 조용히 따라갔다.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조용한 식사였다. 라펠라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식사가 대충이었다.
그날 밤, 라펠라가 할 말이 있다며, 일행들을 모두 루시안의 방으로 모여 달라 했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네, 미안”
“괜찮아요. 누나”
“힘들면 말 안 해도 되는데, 누님 너무 속 끓이는 거 아닌가?”
“맞아요, 언니. 힘든데 굳이 말할 필요는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부른 거야. 생각보다 별일 아닌 거긴 한데. 그냥 기분이 썩 좋진 않아서 말이야.”
일행은 잠자코 들었다. 구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참고 있었다. 라펠라가 구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피닉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청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라펠라, 라펠라 유라즈야. 오늘 나침반이 반응한 방향에 있는 게 내 가문의 영지인 거지.”
그제야,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 발터였다.
“그럼 제국에서도 힘 좀 쓰는 거예요? 아까, 경비병의 태도가 확! 바뀌던데.”
“유라즈 백작가는 제국에서도 대대로, 왕실 근위 기사단 단장을 배출해왔던 집안이야. 검술에 뛰어난 가문이지. 내 검술도 가문의 검술에 기초해.”
“괜히, 짧은 기간 안에 익스퍼트 은패 용병이 된 게 아니었네, 누님”
라펠라가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가문은 검술에 뛰어났지만, 정치에도 뛰어났어. 뭐랄까, 검만 보고 현실과 동떨어지는 여타 검술 가문들과 길이 달랐달까? 정치적 입지와 출세를 위한 검을 드는 집안인 거지. 난 그게 싫었어. 내 인생도 그저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결혼마저도 정치의 계산과 입지를 위해 활용될 계획이었으니, 답답했거든. 그래서, 집을 나와버렸어! 편지 한 장 남기고.”
라펠라의 말이 끝나자, 타몬트가 반갑다는 듯 손을 내민다.
“누님도 가출이었네? 누님도 나도 가출, 우린 가출 동지! 너희들은 반 가출! 큭큭큭.”
다들 고개를 내젓는다.
“누나, 그럼 집 떠난 게 얼마나 되어가는 거예요?”
“집 떠난 게, 이제, 한 8년쯤?”
“오! 내가 가출 선배네! 난 말이야! 15살 때 집을 나왔다. 아닙니까?”
“오빠! 그게 자랑이에요?”
타몬트는 루나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나, 집에 돌아가면 귀찮아지지 않을까요? 괜찮으시겠어요?
“집에 돌아가면, 다들 날 귀찮게 하겠지. 솔직히, 괜찮지는 않을 것같네.”
“아까 보인 게 가문의 인장이었죠?”
“어, 나도 모르게 미련을 가졌나 봐. 우습지? 내가 그걸 버리지 않은 것인지 못 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게 싫었던 집에 남은 마지막 미련이겠지.”
라펠라가 인장을 꺼내, 씁쓸한 표정으로 만져본다. 루시안은 아까부터 들었던 걱정을 꺼내 놓았다.
“누나,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아기아스 교도 나침반을 들고 있어요. 그들이 저희를 따라오던지, 아니면 나침반을 따라가던지 유라즈에서 만날 가능성이 커요. 누나의 가문이 휘말릴 수도 있어요.”
“언니….”
루나의 눈이 라펠라에게 향한다. 라펠라가 어느새 잠든 구리를 침대에 누이고는 침대에 걸터앉는다.
“뭐, 망할 가문 이참에 혼쭐이 나보라지, 내가 가서 멋지게 구해주면 나를 좋게 볼지도 모르겠네?”
라펠라가 애써 웃어 보인다. 루나가 라펠라를 꼭, 안았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루시안이 애써 걷어내려고 밝게 말했다.
“그럼, 내일은 테칸에서 정보를 모읍니다. 환수의 구슬에 관한 정보들이요. 정보를 모으면서, 하루를 쉽니다.”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 같이 유라즈로 출발합니다. 유라즈가 단순히 경유지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요.”
“아기아스 교단들이 나타나면, 때려 부수면 되는 거야!”
“맞아요! 혼쭐을 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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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도와 4사도! 그 꼴이 뭡니까? 당한 겁니까?”
올백 머리의 느끼한 실눈의 2사도가 엉망이 된 둘의 모습을 보자마자 타박을 한다. 꼴 좋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엘프와 수인족이 나타나서 방해하잖아! 짜증 나게 히힝, 내 뱀!”
“끌끌, 망할 노린내 나는 짐승이랑 귀쟁이들이 덤비는 바람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네.”
“이번엔내가 나서지! 그놈들을 이번엔 기필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민머리의 5사도 베카린이 호기롭게 외치며 나타났다.
“5사도! 아직 몸이 완전한 건 아닐 텐데?”
2사도 로웰 맥스가 5사도의 몸을 쳐다보며 우려를 표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1사도가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어이, 로웰! 실패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남은 건 실전을 통한 적응이야! 다시 태어난 것 같다니까?”
둘이 다투고 있자, 4사도 제리코 푸센이 나선다.
“끌끌, 내가 확인을 해보겠네. 어디, 미노타우로스의 근육은 자리를 잡았고, 썬더프록의 뒷다리 근육도 자리를 잡았군! 잠깐 참게!”
4사도 제리코가 품에서 예리한 메스를 꺼내, 5사도의 피부를 살짝 베어본다. 단단해서 박히지도 않는다.
“타이탄의 가죽도 잘 붙었나 보군! 트롤의 피의 효능은 뭐 싸워야 알 거 같고!”
“거봐! 멀쩡하다니까!”
“어머!! 저렇게 나가고 싶어 하는데 보내 봐!”
3사도 벨라 마토라가 5사도의 출전에 찬성표를 던졌다. 2사도 로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하며, 조건을 내걸었다.
“교단의 검을 대동해라, 그게 조건이다.”
“쳇! 그러지 뭐”
5사도는 툴툴거리면서도 표정이 매우 밝았다. 그의 발걸음이 매우 경쾌했다. 2사도가 남은 둘에게 물어본다.
“직접 싸워본 결과 그들은 어떻습니까?”
“글쎄?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맥이 끊겨버려서 말이야.”
“나인 헤드와 누더기까지 처리한 거로 봐서 실력이 없진 않겠지. 확실히 위협이 될만하다고 생각하네. 끌끌”
“쉽게 볼 자들은 아니란 거군요. 아! 이번에도 실패하면 1사도의 화가 상당하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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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안, 환수와 관련된 정보가 거의 안 보이는데?”
“그나마 건진 게 두 군데야!”
발터와 타몬트, 그리고 루시안과 구리가 여관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었다.
“누나와 루나를 기다려보죠”
저녁 무렵, 라펠라와 루나가 피닉스와 함께 돌아왔다.
“자료 조사가 늦어져서 말이야. 정보 단체에서도 정보가 부족한지 시간이 걸리더라고.”
“맞아요. 건진 게 한 곳뿐이에요.”
일행은 정보를 서로 맞춰본다.
“겹치는 게 있네요. 결국, 두 군데란 이야기네요.”
“첫 번째는 유혹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고대의 섬 그곳에 휴식을 취하는 이가 있다”
“뭔, 소리야 이게!”
다들 고개를 내젓는다. 이건 조사가 더 필요해 보였다.
“다음껀 그나마 알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용이 잠들던 곳 그곳에 거대한 힘이 있으리라’라는 구절이에요”
“잠깐! 거기 용의 둥지 아니냐? 저번에 나가들이 있던 곳!”
루시안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 네오돈이 한 말 중에 그게,있었어요. 나가족이 구슬을 이용해 수정구를 만들었다는 말이요. 그때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걸 놈들이 챙겼을 수도 있다는 거네?”
“이건, 보탄 왕자나 필립 백작에게 물어보면 알지 않을까?”
라펠라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의견을 제시했다.
“분명, 이 수도에도 라이야 상단이 있을 거야! 그들을 통해 서신을 보내보는 게 어때? 답신은 제나르의 몬테 항구 지부로 보내라고 하고.”
“저도 언니랑 같은 생각이에요. 내일 아침, 상단에 들렀다가 유라즈로 가면 될 것 같아요.”
“나도, 누님의 말에 찬성!”
“그럼, 그렇게 결정한 거로 하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이야 상단 테칸 지부에 서신을 부탁하고는 일행은 유라즈 영지로 향했다.
“이곳을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누님, 나도 그랬는데 가보니까 별일 없던데요?”
“샤이나님한테 벌벌 떠시던 분은 어디 가셨나요?”
“발터야, 형이 너 아끼는 거 알지? 이리로 와볼래?”
“으악! 살려줘요.”
“두 분은 참, 늘 한결같네요.”
구리가 둘이 장난치는 걸 보고는, 재밌어 보였는지 그사이에 꼈다. 그렇게 ‘구리와 타몬트의 발터를 잡아라’가 시작되었다.
“야! 구리야 너까지 왜 그러냐!”
유라즈 영지에들어서니, 너른 평야가 먼저 보였다. 여기저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라펠라가 나침반을 보고는 방향을 가늠해본다.
“확실히, 가문의 저택 방향이야!”
일행은 라펠라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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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사도 베카린 홀런은 교단의 검과 함께 루시안 일행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가, 나침반이 움직이는 걸 보고는 목표를 변경했다. 곧장, 나침반의 방향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의 파편이 더 중요하니까! 모든 검은 나를 찾아 파편을 수색한다. 너! 너는 남아서 저들을 감시하고 연락을 해라!”
“예!”
그렇게 베카린은 교단의 검, 열 명을 데리고, 나침반을 따라 유라즈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루시안 일행이 막 유라즈로 출발하려는 때였다.
“이 저택인가? 여기에 있는 모두를 죽여서라도 반드시, 파편을 찾는다!”
“예!”
대낮에 쳐들어온 습격자들로, 유라즈 백작 가문이 발칵 뒤집혔다. 다짜고짜, 정문을 지키는 경비를 공격해 죽여버리고는 문과 담벼락을 부숴버렸다.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유라즈 가문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특이한 모양의 무기를 낀 거구의 사내가 오러를 실어 내질렀다. 교단의 검들이 오러의 기파에 움찔거리느라 몸이 멈춰 섰다. 사내가 든 무기는 톤파 네 개를 한데 합쳐놓은 모양이었다. 얼핏 보면 얼레 같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이런, 이곳은 유라즈 가문의 땅입니다. 침입자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외눈 알의 안경을 낀 집사 복의 중년의 사내가 날카로운 레이피어 두 개를 들고 나타나 말한다.
“큭큭, 이거 재밌는 놈들이 나타났군! 신의 파편을 찾으러 왔다가 이런 재밌는 장난감을만나게 될 줄이야!”
베카린이 너클을 맞부딪히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어이! 쿠르카 할배! 이 대머리는 내가 잡을 테니까! 저 시꺼먼 애들 좀 맡아줘 봐!”
“이런 이런, 다 늙은 사람을 이렇게 부려먹다니. 아돌렌, 아주 못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