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6화. 드워프의 도시 만달리안으로
일행이 깨어난 곳은 이름 모를 숲속이었다.
“으으, 머리야, 도대체 여긴 어디야!”
“다들 괜찮은 거야?”
다들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루나만 멀쩡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주변에 보이는 건 죄다 나무와 풀뿐이다. 방향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피닉스가 날아올라 어딘가를 가르친다. 발터가 나무 위에 올라 그 방향을 확인했다.
“저쪽으로 쭉 가면, 작은 마을 하나가 있어!”
일행이 도착한 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가끔, 용병이나 상인들이 묵어가는 허름한 여관 하나가 있는 그런 곳.
일단은, 모두 쉬기로 했다. 각자, 방에서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음날, 일행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시라한의 외곽 지역 숲이라는 거지?”
“예,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데요?”
“우리가 있던 대수림의 경계에 제피르칸 제국이 세워둔 장벽을 위그드라실이 넘겨준 거네?”
“그렇죠.”
루나는 지도를 사려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시골 마을이라, 지도 파는 곳이 없대요”
라펠라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루시안에게 수첩과 펜을 빌렸다. 그리고는 쓱쓱 대강의 지도를 그려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이곳, 시라한이면 수도가 이쯤이야. 그 사이에 파논이라는 대도시가 있어, 여기에서 동쪽 방향, 길도 잘 나 있을 테고, 이정표도 있을 테니까 가는 덴 문제 없을 거야”
라펠라가 제법,이곳 지리에 익은지 정보를 술술 내뱉는다.
“누나, 제국 지리에 밝으시네요.”
“제국에서 살았었으니까.”
대답하는 라펠라의 표정이 어둡다. 제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일까?
일행은 여관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했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진짜, 세계수인가 뭔가, 나무가 너무 자기 말만 하지 않냐? 다짜고짜 부탁 맡기고 휭 하고 보내버렸잖아!”
“덕분에, 장벽을 손쉽게 넘어오긴 했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영약이라니,식물 영양제일까요? 뭐랄까 좀, 뜬금없는 그런 부탁이랄까?”
“그러게나 말이다, 발터야. 뭐랄까? 철없는 여동생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
“타몬트 경험담이야?”
“여동생이 있어 본 자는 압니다. 누님!”
타몬트와 발터가 세계수의 뒷담화에 정신이 없다. 그녀가 마음먹는다면 다 들을 수 있을 텐데. 두 사람이 걱정된다.
“내일은 바로 파논으로 가나요?”
“최대한 빨리 이동할까 해, 딱히, 지체할 이유도 없고”
“그러면, 나침반이 작동하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루나의 물음에 두 사람이 뒷담화를 멈추고대화에 끼어든다.
“어? 그러네? 루나의 말대로 나침반이 작동하면 어쩔거야? 루시안?”
“너의 선택은?”
“회수하러 가야겠죠? 일단은, 회수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말을 하고도, 무언가 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이내 나침반 두 개를 내밀어 라펠라와 타몬트에게 내민다.
“생각해보니까, ‘모두 다 같이 움직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가 인원이 좀 되니까, 적당히 나눠서 이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
“나는 루시안 형아랑 갈 거야!”
구리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루시안이랑 구리를 떼놓긴 힘들 것 같았다.
“그렇네, 굳이, 다 같이 다닐 필요는 없지!”
“나침반을 나와 누님에게 줬다는 건 최대 3팀으로 나눈다는 거네?”
“형은 좀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누나라면 괜찮으니까요!”
“야! 내가 뭐!”
“그때, 그때 상황 봐서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계획일 뿐이니까요.”
모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위그드라실이 준 3개의 물품은 다음과 같았다.
♣ 위그드라실의 잎사귀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잎사귀
=위그드라실로 이동할 수 있다.
♣ 위그드라실의 나뭇가지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나뭇가지
막대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 위그드라실의 이슬
-세계수 위그드라실에 맺힌 새벽녘의 이슬
-막대한 마나 회복력을 지녔다.
일행은 따사로운 볕 아래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다행히도, 파논으로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정표도 있었고 말이다.
“날도 좋고. 가끔, 이렇게 걷는 것도 좋지!”
“아! 타몬트 형, 위그드라실의 의뢰 말이에요. 제나르로 가봐야겠죠?”
“식물에선 걔가 잘 알 테니까, 아무래도?”
“그럼, 드워프한테 갔다가 제나르로 가야겠네요.”
“우리, 루시안 잘나간다는 말이야. 나무한테 의뢰도 받고.”
“저는 위그드라실, 세계수 하면 근엄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었는데, 줄기가 시들시들 하다는 둥, 뿌리가 축축 처진다는 둥, 귀족가 여인인 줄 알았어요. 약간, 발랄한 귀족 아가씨 그런 느낌”
루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진짜, 딱 그런 기분이 들더라.”
“막무가내로 의뢰 맡기고, 휙! 던져 버린 그런 느낌.”
“발터 오빠의 말에 동의해요.”
도착한 파논은 사람의 파도가 휘몰아치는곳이었다. 모험가와 용병들이 분주히 돌아다녔고, 상인들의 행렬도 끊이질 않았다. 알고 보니, 근처에 대규모 지하 유적지가 있었다.
루시안은 일행들이 쉴 편안하고 고급스런 여관을 구했다. 일행들은 루시안의돈 걱정을 하면서도 표정이 매우 밝았다. 그렇게, 각자의 개인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루시안은 발터와 나가서 지도를 샀다.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식사가어느 정도 끝나고, 테이블엔 차와 디저트가 놓였다.
루시안이 테이블 가운데에,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표시했다.
“지도를 보시면, 저희 위치는 파논이고 목적지는 여기, 죽음의 협곡 너머 드워프의 도시 만달리안입니다. 내일은 수도인 테칸을 거쳐, 빠르게 마르키로 향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협곡이라니! 도대체, 루시안이랑 다니면 왜 이런 곳만 가는 거냐고!”
“타몬트 형, 적응될 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떠드는 일행을 유심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까마귀가 먹이를 발견했다.”
“알겠다, 동료 까마귀를 보내겠다.”
그들은, 검은색 옷 일색이었고, 아티펙트로 무언가를 주고받더니 이내 사라졌다.
구리가, 기분이 더러웠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칭얼거렸다.
“형, 누나아!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어!.”
“삐루르르”
피닉스의 눈이 사라진, 그들이 떠난 자리를 노려본다.
“왜 그래? 피닉스? 구리도 뭘느낀 거야?”
“불쾌하고 더럽고 축축한 기분!”
구리는 여전히 표정이 불퉁했다.
“불길하고 더러운 건 딱 그놈들 아니냐?”
“아기아스 교요?”
“그놈들이 여기로 쳐들어오면, 사람들 피해가 클 거 같은데요?”
“그놈들이 그런 걸 신경 쓰겠냐?”
타몬트가 툴툴거렸다. 일행들의 걱정도 같았다.
“여기 경비대에게 말해봤자, 믿지도 않겠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경계하는 수밖엔….”
“그러게, 사람들 피해가 적어야 할 텐데.”
“오늘 밤은 길 것 같네요. 다들, 푹 쉬라고 좋은 여관도 잡아놨는데.”
“망할 아기아스교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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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내린 파논의 지하수로,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과 몬스터의 신체가 뒤섞인 끔찍한 몰골을 한 형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 지하수로를 가득 메웠다. 그들은 지하수로를 막은 철창을 뜯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살아있는 살점에 입맛을 다시며, 피를 마시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술에 취한 사내가, 대로에 누워 자다가 무엇인가와 부딪혀 잠에서 깬다. 기분이 나빠진 사내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친다.
“야! 너어 머어야? 어엉 이씨, 내 마르리 아드려?“어?”
삿대질하던 그가 자신과 부딪힌, 형체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술이 확 깼다. 왼쪽 눈은 없고, 오른쪽 눈은 반쯤 빠져나와 있었는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다른 생명체의 눈을 억지로 집어넣은 그런 느낌이었다.
“으아아악!”
비명 지르는 사내의 목을 양손으로 잡고는, 머리에 이빨을 박아넣고 씹기 시작한다. 산채로 머리가 씹혀 들어가는 극도의 공포에 몸이 덜덜 떨린다. 비명도 나오질 않았다. 박살 난 두개골 사이로 흐르는 뇌수를 마시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꼭 씹어먹는다.
“크르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그 형체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 배가 고프다.
“어이! 비명 안 들렸어?”
“누가 싸우나 보지, 술 먹고 난동 피우거나! 내버려 둬!”
“컥!”
각자 다른 방향을 보며 이야기하던 경비병 하나가, 숨이 막힌 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어이 왜 그래? 어? 죽었 잖….”
남은 경비병도 그렇게 사라졌다. 서서히, 핏빛 밤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바람에 피 냄새가 진동해! 한둘이 아닌 것 같아!”
“두 팀으로 나눌게요. 라펠라 누나가 발터와 루나와 함께 해주세요. 타몬트형은 저와 구리, 피닉스랑 같이 다니시고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걸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래! 가자!”
대도시라고 켜진 마법 등들도 다 깨져 있다. 그 어둠 속 여기저기 핏자국들, 뜯겨 나간 팔다리가 보인다.
라펠라의 눈에 도시를 습격한 형체가 보인다.
“좀비?”
라펠라가 빠르게 칼을 휘두르며 좀비를 베어낸다. 잘린 자리에 가스가 새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상처를 입고도, 여전히 빠르게 움직여 손톱으로 긁어온다. 방패로 손톱을 막아 내고, 그대로 목을 날렸다.
목이 날아간 좀비가 부글거리며 녹아내린다. 그 후로 몇 차례의 싸움이 이어졌다. 확실히, 냄새도 그렇고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에 보이는 그들의 피부가 시퍼렇다. 그간의 감으로 독이 있음을 알아챘다.
“발터, 이거 조심해야 해! 좀비보다 속도도 빠르고 힘도 강해, 신체를 베어내면 독이 새어 나와. 손톱이나 이빨에도 독이 있고!”
루나는 일행들의 무기에 화계 속성 인챈트를 걸었다. 낼 수 있는 최고위의 화염 마법으로 좀비들을 태워 나갔다. 토네이도 마법으로 독기를 빨아드리고, 화염 마법을 덧씌워 태웠다.
발터는 루시안으로 받은 화염 포션과 빙결 포션을 화살에 달아 쏘아냈다. 일행들이 점차, 좀비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서로서로 뭉쳐 그들의 주위를 둘러싼다. 그리고 서로의 팔다리를 잡아 뜯는다. 자해한다. 그들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독기가 일행을 포위해나갔다. 땅이 꺼멓게 죽어가고, 주변의 식물이 시들어 말라붙었다.
“모두 코와 입을 막아!”
이미, 퇴로까지 막혀버린 상태다. 라펠라와 루나 발터가 등을 맞대고 호흡을 참고 있었다. 그들이 독기에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독기가 그들을 막 덮치려는 찰나, 그들의 목에 나뭇잎이 선명히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으로밝은 녹색 빛이 퍼져나가며, 독기를 물리치고 정화를 시켜갔다.
루나가 그 기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건, 위그드라실의 기운이에요.!”
위기를 벗어난 일행들은 빠르게 주변의 좀비를 처리하고, 생존자를 찾아 나섰다.
서서히,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 소리를 지른다. 경비병들도 그제야 심각성을 깨닫고, 비상종을 요란히 울린다. 고요히 잠들었던 도시가 공포에 질려간다. 모험가와 용병이 뛰쳐나와 주민들의 대피를 돕고, 좀비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루나! 사람들에게 독을 조심하라고 해줘! 이대로 있다간 피해가 커질 거야!”
“알았어요. 언니!”
루나가 확성 마법으로 사람들을 몬스터가 적은 곳으로 안내하고, 독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알렸다. 각자, 입을 천으로 가리거나, 들고 있던 해독약으로 버티며, 소란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연금술 공방과마탑, 상인들이 포션을 풀어 전투를 도왔다.
파논의 어느 건물 위, 매부리코의 구부정한 노인과 녹색 옷 쪼가리로 겨우 몸을가린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몬스터가 날뛰고 사람이 찢어져 죽는 걸 보며, 손뼉을 치고, 깔깔댔다.
“끌끌끌, 불붙은 멧돼지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꼴이라니!”
“어머! 저 쓸데없이 약한 인간들을 왜 돕고 그런담?”
“애피타이저는 이만하면 되었고, 다음 요리를 내어볼까나? 끌끌”
노인이 해골이 주렁주렁 달린, 지팡이를 치켜들고 주문을 외웠다. 검은 기운이 지팡이에 몰려들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작해라! 나의 아이들아, 아버지를 즐겁게 해다오!”
여러 가지 몬스터를 서로 꿰매놓은 몬스터들이 몸을 일으킨다. 눈이 벌겋게 빛나며, 살아있는 자의 피를 찾아 움직였다.
“할배! 나도 할래 나도!”
여인이 손으로나비 모양을 만들어 움직인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녹색의 기운이 뭉치더니 백여 마리의 독 나비가 만들어진다.
“가라, 나의 아이들아, 가서 인간들의 뇌수를 빨아먹고 살을 찌우렴!”
나비가 너울너울 움직여, 파논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녹색 형광을 뿜어내는 나비의 인편이 달빛에 반사되며,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