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35화. 다시 찾아온 봄 (36/95)



〈 36화 〉35화. 다시 찾아온 봄


그렇게, 겨울 동안 말간테에서의길고 긴 의뢰가 끝났다. 루시안과 일행은 마차를 타고 다시 소피아를 왕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에는 짐 마차를 한 대 더 연결했다. 전장에서 잡아 온, 나가 셋을 묶어서  안에 집어넣었다.

“이젠, 푹 쉬어야겠다. 루시안이랑 같이 다니면 좋은 게 보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밌어! 나 용병일 때려치울까 봐!”
“때려치우면 뭐 할 거예요?”
“주점 하나 열까? 돈 많이 벌었는데.”
“주점 열어놓고 주인이 다 마시는 가게가 되겠네요?”
“그러네? 큭큭큭.”
“타몬트 말이 맞긴 해. 용병일 보다 더 재밌고, 뿌듯하기도 하고. 돈도 많이 받고.”
“루시안이 보수를 넉넉히 주는 건, 다들 인정하는 거죠?”

루시안의 보수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발터가 루시안에게 질문하나를 했다.

“아, 참! 루시안! 공방은괜찮을까?”
“말간테에 생각보다 오래 있어서 공방은 거의휴업 상태일걸? 아마도 마리엔이 구박하겠지. 물론, 대비는 해놨어!”
“오!”
“이 누나가, 힘  썼단다?”
“그럼 그렇지, 루시안이 그럴 리가.”
“큼! 그런데, 조만간  비워야  거 같아서 걱정이긴 하다.”
“루시안 또 어디 가냐?”

타몬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본다.

“형이 초대했잖아요? 제나르 왕국 가자고!”
“아! 곧 봄이구나!”

제나르 왕국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타몬트의 얼굴이 살짝 들떠 보인다. 반면, 루나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런 루나에게, 루시안이 아공간에서  하나를 꺼내 넘겨준다.

“이건?”

루나가 의아하다는  병을 받아들고, 루시안을 바라본다.

“나가 족의 피야! 혹시나 스승을 마주치거든 그거 주고 마탑 나와버려! 돈 달라고 하면 내가 내줄게!”

그러자 루나가, 나가 족의 피가 든 병을 품에 꼭 안고는 또 글썽거리기 시작한다.

“매번 이렇게 도움만 받아서….”
“울보 루나! 또 울어?”

소매로 급히 눈물을 걷어내고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안 울었어요!”
“누나는 울보다!”

구리가 울먹이는 루나에게 장난을 친다.

“루나 울고 웃고 난리 났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근데, 타몬트 형 가출 아니었어요? 집에 돌아가는 거 괜찮아요?”
“뭐? 야! 내가 독립이라고 했냐 안 했냐?”

타몬트가 발터의 목에 초크를 걸어 응징한다.

“켁켁! 살려줘요! 형! 형!”

발터가 타몬트의 팔뚝을 치며, 항복을 외친다.

“타몬트의 집에 갔는데, 타몬트가 혼난다면 가출이고, 반응이 없다 그러면 독립이겠지.”
“누님! 왜 환영은 없는 겁니까?”
“누가 널 환영하겠니?”
“와! 상처받았어! 너희들도 그런 거야? 어?”
“난 타몬트 형아, 환영 반 만 해요!”

구리의 절충안을 담은 대답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오랜만에 돌아온 공방은 여전했다. 거리도 여관도 사람들도 말이다. 공방을 열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 루시안 형 왔어요?”

헥터가 인기척에 방에서 나와 루시안을 맞는다.

“헥터! 안에 있었구나?”
“옆에는 누구예요?”
“구리야!”
“예? 설마 그 청개구리?”

“헥터 형아 안뇽!”

헥터에게 구리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이야기는 아니니까 입 조심할게요. 피곤한 일이 생길 게 분명해요!”

그간, 공방은 휴업 상태였다고 했다. 준비해둔 포션이 다 떨어져 가도록 루시안이 돌아오지 않은 탓이었다.

“마리엔 누나가 어찌나 형 욕을 하던지. 아마,  돌아온 거 알면 공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와 형에게 잔소리를 퍼부을지도 모르겠네요.”
“야! 루시안!”

공방 문을 ‘쾅’하고 걷어 차버린, 마리엔이 씩씩거리며 들어와 루시안의 멱살을 잡는다.

“야! 가서 아예 눌러앉는  알았는데 돌아왔네? 공방 팔러왔냐? 어!”

한참을 씩씩거리며 서운한 점을 늘어놓던 마리엔에게 루시안은 준비한 루비 목걸이를 건넸다. 그러자, 얼굴이 빨개진 채로 여관으로도망가버린다.

“누나 말을 듣길 잘했지.”

말간테에서의 일이 끝나고, 휴식을 취할 무렵, 라펠라는 루시안에게 마리엔에게  선물을 준비하라 일렀다.

“다음부터, 누나 말은  들어야겠다. 휴!”
“루시안 형! 마리엔 누나를 다루는 솜씨가 늘었네요?”

놀리는 헥터의 머리를 가볍게 박아주고는,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구리야! 마리엔이 분명 널 봤을 텐데, 나랑 이야기하느라 까먹었나 봐.”

“나중에  볼을 늘리고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볼이 아파 오는지 볼을 만져보는 구리였다. 헥터도 들어오고, 구리도 있으니 방이 부족해졌다. 스승과 둘이 살던 집이라 방은 두 개였으니까. 그날 오후, 루시안은 마을의 목수를 찾아가 집을 확장할 공사를 맡겼다.

주변 땅에 세워둔 건물들을 다 정리하고, 하나의 건물 안에 들이기로 했다. 방도 늘리고, 서재 좀 더 키우고 해서 3층 건물로 올리기로 했다.

“이왕 공사할 거, 상수도관과 하수관을 깔아버리자!”

배관은 루시안이 연성진과 구리의 힘을 합쳐 만들었다. 공사가 진행 동안, 숙식은 베티의 여관에서 신세를 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베티와 마리엔에게도 구리의 이야기를 했다.

“어머! 그러니까 애가 구리라는 거지?”
“구리야! 넌 왜 이렇게 귀엽니?”

구리의 말은 실제가 되었다. 마리엔이 구리의 볼을 잡고 놓질 않는다.

“환수란 존재를 노리는 귀족들, 연구하려는 마법사 등등 엮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란다. 헥터도, 마리엔도 입을 조심해야 해! 알았지?.”

베티가 둘에게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다. 구리의 공개 신분은 견습 연금술사로 정해졌다.

공방의 설계도를 목수들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기초 공사가 이상 없이 진행되자 마음을 놓았다. 시간이 생기니, 루시안은 구리를 데리고 마녀의 숲에 들르기로 했다.

발터도 그간 루시안에게 받은 보수로 새집을 짓는다고 했다. 보관 창고와 가죽 펴는 작업장 등을 새로 만들겠다고 들떠 있었다.

라펠라는 루나를 데리고, 용병 일을 잠시 쉬고 겨울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봄에 돌아오겠다고는 짐을 꾸려 떠났다.

타몬트는 용병 길드의 축제에 참석한다고 얼마 전 떠났다.

헥터는 임시직으로 여관 일을 돕고 있었다. 겨울철에 갑자기 손님이 늘어 마리엔도 꼼짝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너랑 나만 가겠네? 벨가님 다시, 만나러 가는데 기분이 어때?”
“어, 뭐라고 해야 하지? 그 인간들이 할머니 집에 가는 그런 느낌?”
“무슨 기분인지 알겠다! 가자, 구리야.”

루시안은 구리를 자신의 앞에 태우고는 말을 출발시켰다. 구리는 따뜻한 털가죽과 모자에 둘러싸여 솜털 같은 모양새였다. 추울까 봐 과하게 입힌 결과였다.

“어서 오거라! 그새, 구리가 많이 컸구나!”
“안녕하세요! 벨가 님!”

구리가 살갑게 인사를 건네자, 벨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벨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벨가는 저택 안을 따스하게 데워놨다. 환수의 힘을 이용해서 말이다.

“제가 잘 아는 분의 쿠키를 가져왔습니다.”

벨가가 쿠키의 맛을 보더니, 흡족해한다.

“맛이 좋구나!”

루시안은 그간,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물의 나가 족이 결국 그렇게 사라졌구나! 저주를 이용하던 그들도 탐욕이란 건 어쩔 수 없었다니!  재미있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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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버린 찻잔을 벨가가 말없이 다시 데운다….

“탐욕의 끝은  좋지 않더군요.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에 잡아먹히진 말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칼스와 나가 여왕을 떠올린 루시안이 표정을 찡그렸다.

“아! 이번에 만난 네오돈이란 자, 이상하게도 벨가님 생각이 나더군요”
“네오돈이라, 그 아이는 건강하더냐? 그 아이나 나나 결국 어딘가에 묶여 속박된 존재니라. 우직하게도,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구나.”

잠시, 말을 멈춘 벨가가 이어 말한다.

“레비아탄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아이였느니라. 피가 절반씩 섞여 이상하다 차별받았던 게지. 그래도, 환수들의 편에 서서 아기아스와 카라함을 몰아내는데, 힘을 보탰던 기특했던 아이니라.  차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벨가의 말투에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벨가님 하나,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구리가 환수의 힘을 이용해 만든 것을 흡수했는데, 문제가없겠습니까?”
“환수의 편린이 남아 후대를 위한 것이 있는 반면, 오롯이 힘만 남은 것들이 있느니라. 그 힘의 크기는 제 각각이니라. 환수의 힘이 담긴 것은 어린 구리 같은 환수에겐 약이니라. 물론, 힘을 탐하는 자들에게는 힘에 휘둘릴 수도 있을 테지.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니라.”

벨가가 구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군가는 환수의 구슬을 악용할 테지만, 너와 구리가 잘 헤쳐나가리라 믿느니라. 아직  여물지 못했으나, 엄연한 환수이니 믿어주고 응원해 주어라.”
“잘 들었지, 형아?”
“어!”

루시안은 궁금하던 것을 더 물었다.

“벨가님 혹시, 금을 먹는 자에 대해 아십니까?”
“아직도 그 구전을 기억하는 자가 있더냐? 금을 먹는 자는 오래된 구전이니라. 환수의 왕의 재목이라고도 일컬어지기도 했었지. 구리도 그 금을 먹는 자니라. 외형은 다양하나 연금술에 큰 힘을 가지는 공통점이 있느니라. 왕을 자칭하던 힘 있던 자들은 많았으나, 누구도 왕이 되지 못하였지. 아기아스도 왕이 될 힘은 충분했으나, 결국 탐욕에 삼켜져 덧없이 사라지고 말았느니라.”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달콤한 쿠키를 베어 물은 벨가가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다음에도 또 가져오면 좋겠구나!”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뒤로, 루시안과 구리는 벨가의 저택에서 3일가량 머물다 돌아갔다.

“다음에도 찾아뵙겠습니다.”
“벨가님 또, 놀러 올게요!”

벨가는 손을 흔들어 그들을 배웅했다.

“오랜만에 저택에 누군가를 들이니 좋구나!”

벨가는 루시안과 구리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긴 하얀색 머리와 뾰족한 귀, 거대한 활을  아름다운 엘프 여성이었다.

“벨가님! 취미가 많이 느셨군요.”
“타니엘? 아, 그들을 본 것이냐!”

벨가가 자리에 앉길 권한다.

“네가 온 걸 보니 벌써, 100년이 되었더냐?”

타니엘이란 엘프가 활을 벗어 내려놓고는, 품에서 찻잎 주머니를 꺼내 차를 우리고, 열매를 꺼낸다.

“엘가 열매가 맛이 좋게 들었습니다.”
“매번,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구나. 타니엘.”
“당연히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드워프 들은 여전히, 자책으로 성을 쌓았더냐?”
“이젠, 예전처럼 용감하던 그들이 아닙니다. 줄어든 세 만큼이나 망치처럼 무뎌졌습니다.”

벨가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스친다.

“그런데, 금을 먹는 자와 이상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니.  착각일지 모르나 유독, 벨가님이 인간에게 마음을 많이 쓰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에페넨시아가 떠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도 인간을 참 좋아했었느니라.”
“에페넨시아 님이라…. 이젠 기억하는 이도 없어진 대영웅 아니십니까? 혹시? 대봉인이 풀릴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벨가가 씁슬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더냐? 모두 세월이란, 시간 속에 바스러져 가는 것일 진데.”
“우려가 현실이 되면,  인간은 큰 슬픔에 잠기겠군요. 가혹한 운명입니다. 벨가 님의 마음 쓰심이 이해가 갑니다.”
“인간을 혐오하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신기하구나”
“인간도 인간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선한 영혼이 느껴집니다.”
“그러게 느꼈느냐?”

벨가가 엷게 웃어 보인다.

“저 인간을 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던, 하렌츠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는 아직 하렌츠를 잊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때, 마음에 든 병을 이기지 못해 자리마저 제게 넘기셨지요.”
“그랬었지.”
“벨가님과 제가 하렌츠의 존재를 숨기는 게 맞았는지, 아직도 전 모르겠습니다.”
“그게 하렌츠의 의지 아니었더냐? 안 그래도 하렌츠와 마지막 대화를 하고 그의 지혜를 이어받은 자가 아까 그 인간이니라.”
“그렇습니까? 운명이라는   신기합니다. 끊어진 듯해 보여도 이렇게 이어지니 말입니다.”
“아마, 저 아이도 머지않아 너를 찾아가게  게다. 무언가의 끌림처럼 말이다. 그때는 테란페에게 저 아이를 소개해 주거라.  한이 조금이나마 가실 테니 말이다.”

타니엘은 골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벨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에페넨시아 너의 편린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깨어난 것은 우연이아닐 것이니. 나는다가올 위협을 대비하겠네.  아이가 부디, 잘 이겨내고 많은 추억을 쌓아두길 바랄 뿐이라네’

벨가가 쓸쓸해진 표정으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어서 따듯한 봄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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