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화. 제 자리로
“인간으로 모습을 바꿨다고, 날 몰라 보는 거야?”
소년이 손을 모으고 ‘얍’하고 힘을 주자 구리의 모습으로 변했다.
“뭐! 구리?”
“어제, 연금재료를 다 먹고 이렇게 컸어!”
그동안 잠도 많이 자고, 먹기만 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성장기였나보다. 구리가 다시 작달막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알몸이다. 급히, 땅에 떨어진 루시안의 옷을 입는다. 옷이 너무 커서 바닥에 끌린다.
“아직, 벨가님처럼 옷까지 자유자재로 못해! 히잉”
한 5~6살 정도 되어 보이는 키와 외모, 짙은 녹색의 머리, 가운데 삐죽 솟은 머리카락 한 가닥, 그리고 커다란 눈. 개구리라는 걸 알리는 듯이 눈이 진짜 크다.
“변해도 귀여운 건 여전하네! 우선, 네 옷부터 사야겠다.”
임시방편으로, 루시안이 단검으로 옷을 적당히 잘라 주었다.
“고마워, 형아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앉은 발터와 루나의 시선이 구리에게 꽂힌 채 미동도 없다.
“정말 귀여워요!”
“저기, 누나 일단 좀 놔줘!”
루나는 아예 껴안고 놔주질 않는다.
“오늘, 구리를데리고, 옷 좀 사줘. 칼스 공작 조심하고.”
“저도, 같이 나갈게요. 발터님 계시니,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고 올게요.”
루시안이 평소 연금재료만 먹어서 괜찮겠냐고 했더니 구리가 대답했다.
“이젠 몸이 커서 괜찮아! 형아, 나 마아니 먹을 수 있당!”
손으로 엄청나게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게,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난 공방으로 갈 테니까, 일 있으면 그쪽으로 와! 구리도 잘 놀다 오고!”
“응!”
공방에 도착한 루시안은, 왕비의 의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베티 아줌마나, 벨가님 그리고 마리엔에게 만들어 준 게 다 주름 개선과 보습 관련된 것들이었지. 달팽이 점액이 다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늘 있던 구리가 없으니 허전하긴 하네. 쩝”
상인 길드에 들러 필요한 부재료를 사들이고, 주재료는 하렌츠의 재료 보관 반지에서 꺼내었다. 아침에 시작한 작업이 오후 늦어서야 끝이 났다. 기존의 구성에 향긋한 허브를 추가하고, 비단 버섯의 점액을 추가했다.
전생에서 이 버섯을 사용한 화장품이 왕실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추가해보았다.
“으으, 온몸이 삐거덕거리네.”
루시안이 직접 손등에 발라보니, 흡수도 잘 되고 끈적임도 없고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필립 경이 어디 계시려나?”
“루시안님 계십니까?”
마침, 필립이 공방으로 찾아왔다.
“안그래도, 필립 경을 찾아가려는 참이었습니다.”
“왕비님께 드릴 물건이 완성된 것입니까?”
루시안이 화장품을 필립에게 건넸다.
“왕비님이 기다리실까 봐, 확인 차 들렀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만들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필립이 재촉하려 왔다가, 민망했는지 웃음으로 무마하려 한다.
“왕비님께 잘 전달해 주세요. 필립 경.”
루시안은 사용설명서도 적어서 건넸다. 필립이 떠난 후, 발터와 루나 그리고 구리가 먹을 걸 가득, 든 채로 공방에 왔다.구리는 녹색의 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형아! 옷 예쁘지?”
구리가 새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보인다. 그런 구리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구리야, 정말잘 어울린다!”
“너! 또, 밥 제때 안 먹고 연금술 하고 있었지?”
“발터 님이 어찌나 걱정하시던지. 남편 구박하는 아내 같았어요.”
루나의 고자질에, 발터가 발끈해야한다.
“루나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아내라니요! 저런 놈한테!”
“내가 뭐!”
루나가 사이좋아, 보이는 둘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루시안 형아! 이거 다살펴 볼거야?”
구리가 사탕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물었다.
공방 한 구석에 쌓인, 발터가 사온 물건들이다.
“어! 하나하나 추출해서 효과를 확인해봐야 해.”
“내가 도와줄게 형아! 나, 이제 엄청 힘이 쎄졌다!”
구리는 쌓인 재료들에 손을 뻗었다. 녹색의 빛이 구리의 손을 따라, 서서히 퍼지더니 재료를 감싸 안았다. 재료들에서 여러 색깔들의 덩어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같은 색깔끼리 뭉쳐지기 시작했다.
“루시안 형아! 병!”
루시안이 눈치껏 색깔별 시약 보관 병을 늘어놓았다. 이내 각 병에 색깔 별로 덩어리가 들어가고, 재료는 다 없어져 버렸다. 보관 병을 보니, 찰랑거리는 색색의 용액들이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구리야.”
“내가 재료마다 성분을 뽑아서, 같은 성분끼리 합친 거야!”
허리에 손을 얹고 ‘나 잘했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구리의 머리를 쓰다듬는 거로 포상해줬다. 액체들을 마법으로 확인 해보았다.
“새콤함의 에센스, 달콤함의 에센스, 지방 에센스, 활력의 에센스, 꼬릿한 에센스….”
여러가지 에센스 중에서 의뢰에 필요한 걸 하나 발견했다.
♣ 복합재료의 성장과 발육의 에센스
여러 재료의 성장과 발육의 성분이 농축되어있다.
“구리 덕분에, 일이 쉽게 해결되겠는걸?”
“히히! 형아, 나! 피곤해. 하아암!”
구리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신나서 무리한 모양이다.
“발터! 숙소로 가자. 형이랑 누나가 구해올 재료까지 확인하고, 작업하면 될 것 같아.”
루시안이 구리를들어 업었다. 구리는 이미 잠에 빠졌는지 미동도 없다. 그렇게, 사 온 음식은 숙소로 다시 가져가야 했다.
다음 날 점심, 라펠라와 타몬트가 필립 경과 함께 들어왔다.
“어! 두 분 다 돌아오셨군요?고생하셨어요! 필립 경도 오셨습니까?”
“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야. 술 없냐?”
타몬트는 오자마자, 술 타령이다.
“자, 이게 우리가 찾은 거야!”
라펠라가 나무함을 내밀었다. 열어보니 뾰족하고 가는 잎을 가진 식물이 들어 있었다. 그 식물은 뿌리째 채취되어 있었다.
“이거, 제가 너무 바쁘실 때 온 것 같습니다. 왕비님의 물건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찾으실 땐 이리로 오시면 됩니다.”
그간 필립이 알아서 나타나서 찾을 일은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 감사히 쪽지를 받아 두었다.
“어! 라펠라 누나랑 타몬트 형아다!”
구리가 라펠라와 타몬트를 반겼다.
“너는 누구니?”
“뭐야! 루시안 그새 애 만들었어? 연금술로 그런 것도 가능해?”
의문은, 음식을 나르던 발터가 풀어줬다.
“구리에요, 구리! 얘가 많이 컸죠? 그리고, 새로운 얼굴이 또 있습니다!”
발터가 뒤에서 쭈뼛거리며 서 있던, 루나를 소개했다.
“아,아,안 안녕하세요! 루나 세라스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루나님”
“구리가 저렇게 컸다고? 그리고 거기, 이 예쁜 아가씨는 발터의 애인?”
루나가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식당으로 가버린다.
“자리 비운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발터와 세라가 부지런히 음료와 음식을 날라다 놓은 덕에 금세 한 상이 차려졌다.
“식당보단 여기가 분위기가 더 좋으니까요!”
응접실의 커다란 테이블에 음식을 준비한 발터의 말이었다. 루시안은 열심히 과일을 집어 먹는 구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구리는 최근에 급성장을 해버렸어요. 본인 말로는 저한테 힘을 얻어서,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뭔 소리인지는 저도 잘.”
“형아! 형아의 연금술에 기반한 모든 것들로, 내가 힘을 보충한다고 했잖아!”
우물우물하면서 말을 정말 잘한다.
“진짜 귀엽다!”
“늘 루시안의 머리에 붙어 있던, 구리가 이렇게 커버리다니.”
타몬트의 시선이 이내 루나에게 향한다.
“그래서 저 아가씨는? 발터야! 외롭다고 애인 데려온 거야?”
“형! 그게, 무슨!”
루나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타몬트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루나님, 얼굴이 빨개진 거로 봐선 뭔가 있는데?”
“루나 님! 여기 짓궂은 아저씨 말은 무시해요!”
라펠라는 루나가 놀랄까 봐 진정시켰다. 발터가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뭔, 그런 썅XXXXXX! 당장, 돌아가서 반으로 갈라버릴까?”
“타몬트! 나도 같이 가자!”
“이제 딱히 갈 데도 없다고 해서, 우선은 숙소에 머물라고 했어요!”
“발터는 이미 동료로 받아들이자는 거고, 루시안은 확인?”
“어차피, 마법사가 파티에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화력은 마법사 아니겠어?”
“내가 구해놓은 집에도 방이 있으니까, 나랑 살면 되겠네!”
라펠라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 저기 저를, 그냥 받아 주시는 건가요? 전 아무것도 드릴 것도 없는데.”
루나만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일행과는 조만간 다시 헤어질 거로 생각하고 있었던 루나였다.
“이 아가씨가 뭔 의심이 이렇게 많아? 발터가 구했고, 루시안이 집안에 들였으면 끝이야!”
“둘이 보는 눈이 워낙에 좋아야 말이지. 눈치는 좀 떨어져도. 게다가, 구리도 아무 말 없잖아?”
“헤헤, 저도 세라 누나 좋아요!”
“감사하니다.”
울면서 말하느라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라펠라가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자! 이제, 우리 차례다.“
타몬트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라펠라와 타몬트는 대수림에서, 무언가를 본 사람들에 대해 수소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대수림을 들락거리는 사냥꾼들이소문의 그 이상한 몬스터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다.
“대수림에 드나드는 사냥꾼이 있다니 간도 크네요.”
“사냥감만 잡아서 바로, 철수하는 데다가. 늘, 공물이라고 해서 무언가를 주고 온다더라. 암묵적인 거래라는 거지.”
“신기하네요!”
“아무튼, 그 몬스터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나무 요정의 일종으로 항상 풀을 들고 다닌 대. 위기에 닥치면, 그 풀을 씹어 먹는 거지. 그러면, 키가 훌쩍 크고, 몸집도 다부지게 된다고 해.“
“누님이 말한 대로, 그 풀은 입피리라고 부르는 건데, 정확히는 뿌리를 씹어먹고 잎줄기는 입가심이더라고.”
라펠라가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타몬트는 그 몬스터를 죽여서 빼앗자고 쪽이었고, 난, 그 풀이 자라는 곳만 알면 되니까 협상을 하자는 쪽이었지.”
“그걸로 좀 싸웠지 뭐!”
타몬트가 뻘쭘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용한 용병들도 반으로 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묘인족 하나가 나타나, 대수림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고 한다.
“우리가 시끄럽다고 다짜고짜 발길질하더라니까! 그냥, 토끼 가죽을 확 벗겨버릴까 하다가 누님이 말려서 참았다.”
“내가 타몬트와묘인족 둘을 진정시키고,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물물교환을 제안하더라고.”
“그때, 누나가 나를 넘겨 버리려고 하더라! 어이없지 않냐? 나, 여기 못 올 뻔했어!”
루시안이 타몬트에게 당연해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묘인족이 거부하지 않던가요?”
“응! 날 싫어하더라, 질색하던데? 내 매력을 몰라봐 주더라고.”
루시안과 발터가 타몬트를 지긋이 바라본다. 루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타몬트 형아니까!”
구리의 말 한마디는 모든 게 축약된 말이었다.
“묘인족이 타몬트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더라고! 표정이 정말 어우. 그래서, 루시안이 만든 치유 포션이랑 마나 포션을 넘겨줬지. 살짝 맛을 보더니효능을 바로 알더라고! 그리고는 잠시 사라졌다가, 풀을 잔뜩 캐와서 주더라고.”
“그럼, 이게 다가 아니겠네요?”
“나머진, 공방에다가 가져다 놨지!”
일단, 시험품으로 하나만 확인해보기로 했다.
“구리야 해볼까?”
“응!”
구리가 그 입피리에 녹색 기운을 흘려 넣었다. 이내, 에센스가 추출되었다. 그걸, 병에 담아서 확인해본다. 양은 얼마 되지는 않는다.
♣ 입피리의 생장의 에센스
- 대수림에서 자라는 입피리의 정수
- 나무 요정의 힘을 키워주는 생장의 힘이 담겨있다.
“발터! 토끼나 쥐 한 마리만 구해줘! 산채로.”
“실험, 들어가는 거냐?”
“어! 재료가 잘 모인 것 같아!”
“두 분께 부탁 드릴게 있어요. 곰팡이를 모아주세요. 다양할수록 좋을 것 같아요.”
“으윽! 나가에 레비아탄에 대수림에 이젠 곰팡이야? 야!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불만 있냐?”
“에휴, 어차피 할 거면서, 말만 저리 툴툴거리면 누가 들어주니?”
“누님은 진짜!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루나는 자신이 ‘여기에 끼어도 되는가’라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루나님? 나이가 몇이에요?”
“저기, 저는 16살이에요!”
“난 28살이니까 언니라고 하고, 난 루나라고 부를게! 여기 이 아저씨는 얼굴은이래도 26살이야!”
“예? 예에에에?”
놀라서 소리를 치는 루나를 보며, 타몬트가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왜! 나만 보면 그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