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6화. 그 남자의 사정(5) (27/95)



〈 27화 〉26화. 그 남자의 사정(5)

여기저기 집기가 쓰러져 있는 어수선한 방안, 대머리의 외눈 사내가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야! 그딴 조그마한  하나 재대로 못해? 어!“

사내가 바닥에 떨어진 집기며, 멀쩡한 물건들이며 죄다 집어 던져댔다.

앞에서 보고하던 사내의 안면에 물건이 틀어박힌다. 새하얀 이빨이 공중으로 튀어나온다. 아프다고 하면 더 난리칠까봐 꾸욱 참았다.

“그 년, 하나  데려와서 어!”

바닥의 물건을 걷어찬다.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날아간다.

“이상한 족제비 같은 놈이 끼어든다고 죄다 죽어 자빠져?”

책상을 내리치자 책상이 쩍 갈라진다.

“내 목이 날아가면, 니들 목은 안전할  같냐? 어!“
”아니므니다!“
“야! 이 족제비 새끼 잡아올수 있어? 없어?”
“자바으게스니다. 바드시 해내게쓰니다!”

이빨이 깨져나가 발음이 줄줄 샌다.

“뭐라는거야  새끼가!”

외눈의 사내가 보고하던, 사내의 복부를 발로 걷어찬다.

“내일까지  앞에 이 족제비랑 그 년 데려와! 노예로 팔아버릴 테니까!”
“으예 드모님!”

황급히 방을 빠져나가 사라진다.

“아놔! 망할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어디서 개뼈다귀 같은 족제비 새끼가 나타나서!”

그는 분을  이기고, 집안의 집기에 계속 화풀이만 해댔다.

#

왕자가 마련한 식사 자리는 굉장히 정적이었다. 고요하고 숨 막힐듯한 그런 분위기가 흘렀다. 같이 온 필립 경도 멈칫거릴 정도였다.

“왕비님 오셨습니다.”

시종이 왕비의 입장을 알려온다.

왕비는 아름다운 금발을 층층이 땋아 올려, 머리에 장식을 꽂고, 옅은푸른색 드레스와 다이아가 박힌 장신구로 치장한 화려한 모습이었다.

“왕비님을 뵙습니다.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루시안의 급이 배운 왕국의 예법으로 인사한다. 보탄은 괜찮다 했지만, 실례를 범할까 싶어 준비했다. 라펠라의 의견이 주효했다.

“헤스티아 말간테입니다. 자네가, 보탄의 친구인 루시안인가요?”
“제가 감히, 왕자의 친구라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작은 도움을 드릴뿐입니다. 민폐가 되질 않는다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저한테 예를 그리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보탄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보탄은 그저 싱긋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다들, 저만 보면 다들 화려한 말로 꾸민 달콤한 아첨을 떤답니다. 겉으로 아무리 꾸며보았자, 속이 새까만 사람들은 다 태가 드러나는데 말이에요.”

왕비는 식전주를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해산물을 상큼하게 무쳐낸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음식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루시안? 어떤가요? 입에 음식이 맞나요?”
“예, 왕비님 맛이 좋습니다.”
“보탄은 제게 아픈 손가락이랍니다. 늘 밝고 활달하게 웃지만, 형제들은 다 보탄을 싫어합니다. 왜소한 체구라 검사로서 볼품없다고 욕을 먹고, 긴장을  몇 번 실수를 한 걸 가지고, 계속 트집을 잡으며 깍아 내리지요. 형이라는 아이도, 여동생이라고 하는 아이도 말이에요.”

왕비의 얼굴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 저는 괜찮다고  번을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탄은 옆에서연신, 왕비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래도 보탄이 밝게 웃으며,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가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보탄을  도와주면 고맙겠어요.”
“평민인, 제게 너무 과한 환대이십니다.”
“사람에게 신분이 중요한가요? 그 사람이 갖춘 인격과 지식과 성품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왕비의 말이 꽤나 묵직했다.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굉장히 신선했다.

“어머니, 루시안의 청을 들어주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너무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어머! 어미가 너무 걱정이 과했나보구나. 그래요, 루시안,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요?”

루시안이 마른 입을 물로 적시며,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했다.

“실은, 연금재료 중 발삼의 뿌리와 페피 나무의 속 껍질을 구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이라 식물을 구하기 힘든 데다가, 이 근처에는 페피 나무가 보이질 않더군요. 혹시나, 거울정원에 있다면, 얻어 갈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결론만 말하면, 두 식물 모두 거울 정원에서 자라고 있답니다. 발삼은 수수한 매력이 있어, 제가 좋아하는 꽃이고, 페피 나무는 남쪽의 네빌론 대륙에서 들어온 독특 향을 내는 나무랍니다. 거울 정원은 식물을 언제나 수 있는 데다, 건물 자체도 아름다워 말간테의 보석이라 불린답니다.”

“어머니, 거울 정원에 대한 자랑은 저도 하였습니다.”
“어머, 제가 너무 주책맞았나요? 거울 정원을 직접 가꾸고 관리하는 저로서는 자부심이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주겠지요? 루시안?”
“예, 물론입니다. 왕비님!”

“어쩔수 없이 식물을 해쳐야 하는 상황인데, 저로서는 매우 마음이 아프답니다. 보탄을 보아 그냥 내어줄 수도 있지만, 저도 무언가를 얻어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한 왕비가 루시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특별히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제 나이쯤 되면, 얼굴과 손에 주름이 잡힌답니다. 그 자체로 나이가 드는 아름다움이라 하지만, 당사자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고민을 알겠나요?”
“마침, 제가 비슷한 걸 만들어본 일이 있으니, 만족하실만한 물건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왕비님!”
“그래요! 기대 하겠어요. 루시안. 그리고 필립 경? 식사, 다 마치셨지요? 앞으로 루시안과 제 사이의 물건 전달을 맡기겠습니다. 식사하신 값은 하셔야 하지요?”

왕비의 웃음이 필립 경에게 향하는 순간 필립은 급히 물을 들이켜야 했다.

“네! 왕비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즐거운 식사 자리였어요. 보탄? 좋은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구나!”

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나고, 필립과 루시안은 천천히 숙소를향해 걸었다.

“전 빨리 시원한 맥주로 속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를 앉혀 놓고선 그런 농담을 하실 줄이야.”

필립의 얼굴엔 아직도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식사를 하긴 했는데, 무얼 먹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꽥!”

식사 내내 머리 위에 앉아서, 조용히 있던 구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었다.

“구리야! 깬 거야?”
“꽥!꽥!”
“분위기상 조용히 있었다고?”

루시안이 연금재료를 하나 재료보관함에서 꺼내 넘겨주었다. 고가에다가 재료보관이 어려운 건 이렇게 따로 보관 중이었다. 구리가 날름 집어먹었다.

“구리야!건강하게만 있자!”

요즘 들어, 부쩍 잠이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다행이라면, 자면서도  루시안의 머리 위에 착 달라붙어 있다는 점이다.

“저기 숙소가 보이는군요. 루시안님,  이만 시원한 맥주를 마시러 가보겠습니다.”

필립이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탄산 음료가 땡기네! 이렇게 간절하긴 처음이야.”

숙소로 들어서려는 순간, 구리가 앞발로 루시안을 머리를 툭툭 친다.

“왜 그래 구리야?”

루시안이 구리가 친 방향을 바라보자,딱 봐도 수상함이라 써 붙인 사람들이 담벼락을 타고 안을 살피고 있었다. 숙소는 보탄 왕자가 직접 지시해 구한 곳으로 순찰도 잦고, 귀족가에 있어서 접근이 쉽지는 않은 곳이다. 수상함이 배가 되었다.

“쟤들은 뭘까? 날파리는잡아서 확인해봐야겠지?”

구리가 맞다는  낮게 울어 보인다.

총을 들어, 점착 특수탄을 장전해 쏘았다. 루시안이 표적으로 삼은 위치에서 탄이 터져 적들의 위로 끈적한 점착액 쏟아져 내린다. 그들은 한데 뒤엉켜 버무려졌다. 루시안은 발터에게 통신 반지로 나와달라 말해놓고선 그들에게 다가갔다.

“남의 집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수상하게 담도 타시고?”
“이런! 저 새끼가 왜 와?  보던 놈 어디 갔냐?”
“몰라! 아! 젠장 망한 거 같은데?”

발터가 나오자, 그와 함께 점착액으로 범범이 된 그들을 지하실로 끌고 갔다.한쪽 벽에 거꾸로 잘 붙여 놓은 후에 나무로 된 통을 각자의 머리 맡에 놓았다.

“그 통은 뭐야 루시안?”
“피 담을 통이야. 바닥에 흐르면 닦기 귀찮잖아?”
“아하!”
“일단, 네 화살 테스트부터 해볼래? 이번에, 화살 쏘니까 맞은 부위가 터져나간다며?”
“맞아! 요즘 훈련을 하면 할수록 힘이 늘더라고, 무거운 화살이라 그런건지.”

발터가 헤맑게 ‘팡’ 터지는 시늉을  보인다. 벽에 붙은, 이들의 머릿속이새하얘진다. 자신들을 앞에 두고 어떻게 죽일지 논의하는 둘을 보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대장이 죽도록 미웠다.

“저기, 저희한테 물어보실 것 없나요?”
“대장이 밉긴 한데, 배신하면 뒤가 더 무섭잖아!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살려주세요!”

발터의 화살이 입을 다물라 말했던, 사내의 가랑이와 머리 밑에 박혀든다. 정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크헉!”
“......”
“살려주세요 제발!”
“다 털어놓고, 맞으실래요? 화살 꽂이로 맞으실래요?”
“제가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말간테의이빨들이라는 조직입니다.”
“저 배신자 새끼가!”

사내의 이마에 화살이 틀어박힌다.

”컥!“
“말할테니 제발! 쏘지마세요! 누구한테 자금을 받는지는 비밀 아닌 비밀인데 그게, 칼스 마카트 공작이거든요!”

다른 이가 말을 가로채서 실토한다.

“나가를 캐묻고 다니는 자, 나가의 섬에 가는 자, 관련 책들 전부 없애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수상했지만, 돈 주니까 했어요!”

입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하니, 정보가 줄줄 나온다.

“공작이 용의 둥지에 빈번히 드나든다고 하던데! 들은  있어?”

루시안이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여기, 온 목적은?”
“두목이 시장에서 우리 조직원 죽인 족제비랑 어린년 하나 잡아 오라고 했습니다!”
“뭐! 족제비? 내가, 어딜 봐서 족제비야?”

발터가 발끈해서 활을 들어 올렸다. 루시안이 제지를  했으면 쏘고도 남았을 것이다.

“너희들은 사람 데려다가 어떻게 하지?”
“뻔하지 않습니까? 노예로 팝니다. 어리고 예쁠수록 귀족들이 좋아합니다. 남자아이를 찾는 귀족도 많습니다.”

둘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하나 더! 혹시, 최근에 잡아 오라거나 죽이라거나 그런거 있나?”
“그, 갈색머리 여자 용병이랑 빨간 머리 남자 죽여버리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다른, 작업조가 갔습니다.”

발터와 루시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형이랑 누나가 당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리고, 개구리를 머리 위에 얹은 미친놈 하나랑  든 해골 놈도 죽여버리라고 했습니다.”
“,,,,,,,,,,”

루시안이 조용히 총을 들어 올렸다. 발터는 말리지 않았다.

“먼저 가서 대장 자리 맡아둬라.”
“잠깐! 잠깐! 말했으니까 살려주는 거 아닙니까?”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준다고 했잖아 이 XXXX!”

화염특수탄을 장전해  발씩  태워버렸다.

“대장 새끼 반드시 죽인다.”
“나도 그래!”

발터와 루시안이 숙소로 들어가니, 루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때문에 곤란해 지신거죠? 죄송합니다.”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저희도 찍힌 상태라서 말입니다. 둘 다 노리고 있어요. 미안해하지마세요.”

루시안은 발터에게 루나를 봐달라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통신 반지를 켜 라펠라와 타몬트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도, 둘은 이상 없었다. 라펠라가 말하길 ‘수상해 보이는놈이 습격하길래 대수림에 던져버렸다’라고 했다.

- 누나! 몸 조심하세요. 칼스 공작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전문 암살자가 아닌 이상에야, 지금 이 정도 수준이면 문제 될거 없어.
- 일은 어때요?
- 단서를 찾은 것 같아. 오늘, 신기한 몬스터를 본 목격자를만났거든!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몸조심하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 그래, 루시안.

“다행이네, 별일 없어서.”

어느새, 침대 위에 올라가 자리 잡은 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구리도 다행이라는 듯 울었다. 루시안은 구리에게 먹일 재료를 꺼내놓고는, 그옆에 앉아 발란 서점에서 사온 연금술 서적을 폈다.

“확실히, 약초 다루는 법이나 종류 조합비가 다르군.”

어느새, 구리는 그 많은 양의 재료를 꿀꺽 삼키더니, 조용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구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루시안도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비빈 루시안은 침대가 이상하리만치 무겁다고 느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손을 뻗었는데, 옆에 무언가 몰캉하고 만져졌다.

놀란, 루시안이 정신을차리고 슬쩍 옆을 보니 짙은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루시안의 옷을 입은  잠들어 있었다.

“헉?”

루시안이 깜짝 놀라자, 녹색 머리의 소년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루시안 형, 좋은 아침!”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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