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5화. 그 남자의 사정(4) (26/95)



〈 26화 〉25화. 그 남자의 사정(4)


루시안은, 해주포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연의 이빨 네오돈이 지키는 곳이 지상일 리가 없지. 당연히,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루시안이 만들고 있는 것은 수중호흡포션이었다. 하렌츠가 남겨놓은 연금비서에 적혀있었다.

그는 신비한 약초들을 연구하다가, 공기 방울을 만들어내는 풀을 발견하고 이를 잘 갈무리하는 요령과 이를 활용한 포션의 조합까지 적어두었다. 다행인 점은 상단에서 취급하거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방엔 발터가 구해온 재료들이 쌓이고 있었다. 저걸 언제다 확인하나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인원을 다 구한 라펠라와 타몬트는 어제 대수림으로 출발했다.

문제라면 왕자의 답신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나머진 순조로웠다.

일단, 루시안은 하렌츠의 조합식에 있던 수중호흡포션부터 만들기로 했다.

“워터벌룬플라워의 잎에, 스웜리드의 줄기, 그리고 연금강화제를 넣고······.”

보글거리는 마나 정제수에 재료를 넣고, 끓여서 증류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포션이 완성되어 기지개를 켜는데.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거 놀라셨습니까? 아무리 인기척을 내어도 모르시길래 그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필립 경이다. 말을 들어보니  시간가량 있었다고 한다. 머쓱해진 루시안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왕자님께서오늘 저녁에 왕비님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참여해달라 전하셨습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루시안이 급히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저녁이 되지 않았다. 루시안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은 공방에 마련된 응접실로 이동했다.

“연금술에 그리도 집중해 계셔서 말을 걸 수가 있어야 말입니다. 일은 잘 진행이 되고 계신 겁니까?”
“이리저리 실마리를 잡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만 어렵군요.”

루시안은 차를 내려 필립에게 내어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필립은 무언가 중요한 말을 꺼낼 듯이 뜸을 들였다.

잠에서  구리도 궁금하다는 듯이 울었다. 최근 들어, 구리는 연금재료를 많이 먹었다. 변환시키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수면시간을 가졌다. 라펠라는 성장의 시기일 거라고 했다. 루시안은 그저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오! 구리야 너도 궁금해?”
“꽥!꽥!”

목소리가 우렁차다.

필립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야 해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구리 덕분에 긴장을 덜었다.

“하하! 이거 제가 너무 분위기를 잡았나 봅니다. 실은, 공작이 병력을 모으고 용의 둥지에 빈번히 출입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왕실 방계와도 만남도 잦고요.”
“내용이 상당히 심각하네요. 긴장하실 만도 합니다.”

루시안이 머리 위의 구리를 내려, 무릎에 앉히고는 쓰다듬었다. 구리의 덩치가 제법 커졌다. 이젠, 머리 위에 있으면 모자처럼 보였다. 신기한 건 무게는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구리가 기분 좋다는 낮게 울었다.

“물론 왕자님께 보고 올렸습니다. 이 내용도 허락 맡고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필립이 목이 타는지 차를 들이켠다. 루시안은 조용히 찻잔에 차를 더 따라 주었다.

“공작 측에서도 나가에 대해 정보를 찾는, 루시안님 일행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일행에게 마수가 뻗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시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신은 괜찮지만, 일행에게 손을 댄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루시안! 루시안 있어?”

그때, 발터가 급히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연 루시안을 본체만체한 발터는 등에 업은 소녀를 응접실의 소파에 눕혔다. 루시안에게 포션을 빼앗다시피 가져가 입에 흘려 넣었다.

“으음….”

소녀가 정신이 드는지, 신음을 내고는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갈색 단발머리에 어려 보이는 소녀였는데, 한 15살이나 되었을 듯한 앳된 얼굴이었다. 손에  쥔 완드가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야, 발터?”

루시안이 내민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발터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본다.

“필립 경이  계셨군요? 손님이  계시는데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야! 나는 안 보이냐? 포션도 뺏어가 놓고!”
“야! 네꺼가 내꺼고 그런거지, 우리 사이에 뭘!”
“하하하, 두 분 사이는 여전하십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셔서, 천천히 말씀을 나누시지요!”

발터의 이야기는 이랬다.

몇 시간 전 발란의 시장, 오늘도 어김없이 목록에 적힌 재료를 사러 돌아다니던 발터는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다.

“꺄아아악!”

발터는 무심코 발길을 옮겨, 비명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어이, 꼬마 아가씨! 뭐, 하는 사람인데 나가에 대해서알려 하는 거야?  섬엔  가려는 거고?”
“대장 말 안 들려? 어! 쉽기 쉽게 가자고! 누가 시킨 거야? 배후를 불라고!”

가냘픈 체구에 1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리에 주저앉아있었고, 그 앞을 우락부락하고 흉터 가득한 사내 다섯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중, 대장격인 사내가 단검을 여자아이의 코앞에서 흔들며 무언가를 캐묻고 있었다.

“야! 거기 여자한테 너무 거친 거 아니야?”
“넌 뭐냐?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죽이나 먹고 다니냐? 애새끼는 빠지고 갈 길 가라!”

대장 옆에 있던 부하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귀찮으니 꺼지라는 거였다. 그간, 라펠라와 타몬트의 지도 아래에 근육을 키우고, 오러 훈련을 하던 발터는 내심 몸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비실이라고 무시를 당하니 욱하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뭐? 야이! 돼지 새끼들아, 어디서 길거리에서 꾸잉 꾸잉 거리고 있냐?”
“뭐? 돼지 새끼?”
“그래!  아빠 돼지와 4 형제 같은 놈들아!”

대장의 민머리에 십자의 혈관 마크가 새겨진다. 멧돼지 마냥 씩씩거린다.

“야! 이년 묶어놔! 저 비루한 고블린 같은 새끼부터 족친다.”

발터가 활을 들고는 대꾸했다.

“뭐래, 이 오크 같은 놈들이”

그간의 수련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모두 급소에 화살이 박혀, 그 자리에서 숨이 끊겨버렸다.

발터는 그들의 품에서 수상한 편지와 동그란 패 같은 걸 찾아 챙겼다. 혹시나, 이들의 배후가 다시 노려온다면 이것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데 용이할거란 판단이었다.

소녀를 풀어 주려는 찰나, 소녀가 묶인 채로 쓰러져버렸다.놀란 발터는 줄을 끊고는 그대로 소녀를 등에 업어 무작정 루시안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그러니까 이름도 모르고, 아는  하나 없는 데다가 알  없는 무리를 죽이고 데려온 거네?”
“그래서, 내가 혹시 몰라 챙겨온  있지!”

수상한 편지와 동그란 패를 꺼내놓자, 필립이 동그란 패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이거 제대로, 엮여버린 것 같습니다.”

필립이 한숨을 내쉰다.

“이건, 공작이 손길이 닿아있는 단체의 표식입니다. 온갖 더러운 일, 궂은일을 하는 집단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가가 어쩌고저쩌고 그랬어!”
“공작이 나가를찾는 이들을 없애고있는 거네요. 발터, 너도 당분간은 나랑 다니고 내가 없으면 숙소에 있어라. 누나랑 형한테도 통신 반지로 조심하라고 전해야겠네.”

발터가 소녀를 보며 말한다.

“그럼 저 아이는?”

루시안과필립의 눈이 소녀로 향했다. 어느새 깨어나 긴장한 표정으로 말똥말똥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꽥!꽥!”

구리가 반갑다는 듯 볼을 부풀려 운다. 구리를 본 소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꼬르르륵!”

갑자기,울린 소리에 소녀가 급히 배를 가리고는 얼굴을 붉힌다. 공방 건물이라, 주방이 휑하다. 차와 간단한 다과만 있었기에, 발터가 나가서 스튜와 빵등 음식을 사왔다. 발터가 넉넉하게 많이 사왔음에도, 그걸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잘 먹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배가차고 진정이  소녀가, 입가에 묻은 수프를 손으로 쓰윽 훔친다. 부끄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루나 세라스라고 합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나르 왕국의 청탑의 수습마법사입니다. 스승님의 명으로 나가의 피를 구하러 이곳까지 왔습니다.”

일행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아니! 나가의 피를 혼자서 구하러 와요? 그걸 시켰다고요? 스승이 미친 건가요?”
“어린아이가 혼자서 구해올 물건이 아닙니다만, 스승의 목적이 의심스럽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루나가 고개를  숙인다.

“그게 제…. 제가 평민 신분이라 그래요.”

울먹이듯이 말을 이어나가는 루나의 말에 일행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마탑에서의 온갖 궂은일 담당에 마법은 거의 알려주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머리가 좋았던, 루나는 마법서만 보면 바로바로 익혀 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시가와 질투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스승도 그녀의 재능에 질투했다고 했다.

“그걸 알면서도 마탑에 붙어 있었어요?”
“갈 데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거기에 있으면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루나의 말이 서글피 들렸다.

“그런데 세라스라는 성이 있는데 평민이 맞긴 합니까?”

필립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몰락한 귀족이에요. 아버지가 억울하게 살해당하시고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가족은 저 혼자뿐이었어요. 가문이 망하게 되자, 제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그런 루나에게 청마탑의 현 스승이 재능이 아깝다며, 마탑으로 꼬드겼다고 한다. 갈 데가 없던 루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젠  평민이에요. 그래도 성을버릴  없어 쓰고는 있지만요.”
“와! 그 스승 진짜, 자기가 꼬드겨놓고 너무 잘하니까 질투를 한다고요?“
“제 마법은 근본이 없다고, 허술하다고 구박하기 일쑤였어요. 스승님이 마법을시연하면 전 허술한 부분이 다 보였거든요. 그걸 말하면 혼날  아니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 나가의 피를 구하면, 마탑 생활이 나아질까 해서 스승의 목적을 알면서도 수락한 겁니까?”

루시안의 물음이 제법 무거웠다.

“네, 바보같이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비도 없어서 여관 일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며 돈을 벌어 여기까지 왔어요. 스승님이 저를 나가의 먹이로 던진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루나의 말에 물기가 촉촉하게 묻어나왔다.

“이 스승 놈을 그냥, 화살을 꽂아서 구워버릴까?”

밭터가 활을 들고는 평소 하지도 않던 거친 말을 쏟아내었다.

루시안이 궁금한  있다는 듯 물었다.

“혹시 쓰러진 게 배가 고파서?”
“네···. 5일간 굶었더니 그만!”

행색이 남루해지니, 일을 맡기는 이도 없었다고 한다.

“당분간은 저희 숙소에서 지내세요. 발터가  돌봐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것도 드릴 게 없어요. 혹시나 마탑의 해코지를 당할지도 몰라요.”

필립이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이분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수상해 보이던 저를 내치지도 않았거든요. 귀찮게 굴었던 저를 죽이고 싶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죽이려 든다고 죽을 사람도 아니면서 저런 소리를 하는  본 루시안과 발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필립을 쳐다보았다.

“큼큼, 아무튼 이분들이라면 걱정할  없습니다. 그 숙소에 방도 남지 않습니까?”
“발터는 옷 가게에 가서 새 옷을 산 후에 숙소로 데리고 가줘. 하인에게 말해서 목욕물도 준비해 달라고 하고.”

루시안이 발터에게 루나에 관한 일을 맡겼다.

“걱정하지 말라고!”
“저희 일행도 나가족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아마 공통의 적이 생겼을 테지요. 루나 님을 습격한 무리도 저흴 노릴 테고요.”

루시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발터가 어디서 당하고 다닐 녀석은 아니지만, 일단 준비가 되면 숙소에만 계시길 바랍니다. 혹, 나가시더라도 발터와 꼭 동행하시고요.”
“제게, 이런 호의를 베푸시는 이유가?”
“꼭! 이유가 있어야 돕습니까?”

루시안의 말에 루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루시안이 멋진 말을 한다고 해서 반하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저놈 짝이 있어요. 마을에 가면 저 녀석 잡아먹으려 노리는 오크 같은 여우가 있는데. 저 녀석은 눈치가 빵점이라.”
“야! 나도 알건 알아. 큼!”

이 몸의 주인인 루시안이 품었던 호감에 따라 끌렸다면, 지금쯤 되니 최혁으로서도 호감을 느끼는 상태였다. 다만 아직은 연금술이 더 좋을 뿐이었지만.

“와!  나쁜 놈! 알면서 그랬다고? 야! 마리엔이 네 욕을 얼마나 하는데 둔탱이라고!”

둘은 루나와 필립의존재를 잊고 다투기 시작했다. 필립은 자주 보던 일인지 과자를 깨물며 구경 중이었고, 루나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사실, 루나의 마음엔 루시안 보다는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차고 있었지만, 루시안 만큼 눈치가 없는 발터가  리가 없었다. 위기에서 멋지게 나타나 구해준 백마 탄 왕자의 전형이라 하여도 루나에겐 발터가 그리 보였으니까.

그날 저녁, 약속 시간이 되자, 필립과 루시안은 왕실로 향했다.

루나를 데리고 숙소로 온 발터는 새 옷을 입은 루나의 자태에 입을 턱 벌리고 침을 흘렸다. 씻고 새 옷을 입은 루나는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빤히, 바라보는 발터를 보며 얼굴이 달아올라 급히 자리를 피하는 루나였지만, 발터는 자기가 침 흘려서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만의 어색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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