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1화. 루시안의 일탈
라이야 상단에서 종이가 팔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양피지보다 싸고 가벼운 데다가, 하얀 종이의 질감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루시안은 공방에 종이를 가져다 놓고는 옆에 볼펜과 방수제를 비치했다.
*볼펜 : 어디에서나 사용 가능한 전천후의 필기구!
*종이 : 양피지보다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모험의 필수품
*방수제: 물에 젖는 게 싫다면? 뿌려라!
설명까지 친절히 적어뒀다.
그리고, 비누까지 만들었다. 빨래용과 세안용으로 나누어 전용 보관함까지 해서 작은 크기로 판매했다.
“점점, 잡화점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마리엔이 새로 들어온물품을 보며 한마디 했다.
“전부, 내가 연금술에 기초해서 만들어 낸 거야! 연금 공방에 어울리는 물건이란 말이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루시안은 마리엔과 헥터에 각자 볼펜을 한 자루씩 선물로 주었다. 지인들에게 주기 위해 고급스럽게 만든 특제품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와! 예쁘다!”
모든 일행과 라이야 상단의 지부장알텐과 베티에게도 한 자루씩 선물을 나눠주었다.
라이야 상단은 종이와 비누 판매로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루시안이 만들어준 볼펜만큼 성능이 좋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펜촉보다는 유용한 기본 볼펜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상단주가, 알텐에게 준 선물을 보고는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내로라하는 기술자를 모아두고, 루시안에게서 기술을 사갔다. 시제품은 빠르게 만들어졌고, 곧 정식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라이야 상단이 점차 커지고, 성장하여 소피아르 왕국 2위 상단인 블리스 상단과의 격차가 좁아지게 되었다. 그들로서는위기를 느꼈다. 라이야 상단의 상승세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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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칸 항구의 블리스 상단본부, 상단주 브라이안 자르함은 초조했다. 라이야 상단의 상승세로 상단의 타격이 크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양피지, 깃털펜의 판매가 반으로 뚝 떨어져 버렸다니!”
“상단주님! 손해가 큽니다. 포션도 그렇고, 라이야 상단이 돈이 많아 싸고 대량으로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포션 판매는 또 왜!”
“그게, 그 공방의 생산량이 늘었습니다.”
그가, 보던 보고서를 갈기갈기 찢어 던져버렸다.
“젠장할! 이게 다, 한 명의 연금술사 때문이라고?”
“예, 발테리안 마을의 연금술사 루시안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연금술사를 데려다가 굴려보란 말이야! 그런 제품 만들면 좋잖아!”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그날, 저녁 브라이안 자르함은 아들 이르 자르함과 상단의 일을 의논했다.
“아버지! 루시안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는 자더냐?”
“일전에 네칸 항구 오크 전투 때, 활약한 이들 중 하나입니다.”
“어때 보이더냐?”
“꺼림칙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무언가 감추는 게 있어 보였습니다.”
이르는 그 찜찜했던 기억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넌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생각하느냐?”
“저희도 똑같이 연금술사를 고용하면 되질 않습니까? 그런 미천한 자도 만든 걸 우리 상단이 못 만들겠습니까?”
“그건 이미, 상단에일러놨다. 자금이 많이 들테지만, 이건 상단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까!”
상단주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이르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히죽거렸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라이야 상단이 중점으로 키우는, 발테리안 마을의 시장을 망하게 해 버리는 겁니다. 막대한 물품을 저가에 팔아, 시장 상인들에게 큰 피해를 줘 망하게 하는 겁니다.”
“거기가 망해버리면, 알아서 라이야 상단도 주춤하겠구나? 좋은 생각이야!”
“하하, 가을철이긴 하나, 설마하니, 오크가 우리가 저희가 마주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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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가을이 돌아왔다. 오크들은 지난, 가을에 있었던, 인간들이 벌인 참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족장! 취이익! 그 불쾌한 쇠냄새, 불냄새! 북쪽 취이익!”
유독 후각이 뛰어난 트뤼프 오크 부족은적의 탐색과 사냥감을 찾는 전문 탐색 꾼들이었다. 저번 가을의 사건에서도 그들의 활약이 컸었다.
“취이익! 이번엔 오크들의 힘을 보여 준다! 취이익! 모두들 배불리 먹고, 인간을 잡아먹으러 갈 준비를 한다. 취이익!”
오크들의 가을 사냥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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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안의 일상은 똑같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공방은 잘 돌아갔다.
“무언가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 공방에만 있으려니까 심심해!”
요즘들어, 무료하고 힘이 쭉쭉 빠진다.
“어이! 루시안, 들었냐! 무간나 초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거!”
“뭐! 오크 대족장이라도 오는 건가요?”
루시안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어떻게 알았냐?”
“진짜에요?”
“그럼, 심각한 거 아니에요?”
루시안이 눈빛을 반짝였다. 재밌는 일이 생각난 것이다.
“오크라, 오크. 저번에 우릴 괴롭혔으니까, 이번엔 저희가 괴롭혀볼까요?”
“뭘, 어떻게 하려고?”
“오크가 이쪽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게 해야죠!”
“루시안?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가끔은, 일탈을 즐길 필요가 있어요!”
“너 같은 애가 사고를 치면 꼭, 대형사고를 치던데?”
“에이, 그냥 사소한 장난하나 쳐볼까 해요!”
“누님, 나만 불안해요?”
“아니, 나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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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브넨 영지는 오크들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성벽에 병력을 보내서 배치하고, 무기를 배치하고 성벽을 보수하는 등 방어를 빈틈없이 하고 있었다.
“오크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대족장을 비롯한 다수의 오크 부족장들이 대형을 이루고 북상 중입니다.”
“수가 상당하겠군! 아무래도, 용병과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걸어야겠네! 오크 머리 당 보수를 지급한다는 의뢰를 내걸게!”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렇게 보브넨 영지, 전역에 의뢰가 나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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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대부분의 오크는 수도가 있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먹을 게 가장 많아서다. 네칸 항구 쪽은 어쩌다 한두 마리 오는 곳이었다.
블리스 상단은 그들의 목적지인 북쪽의 보브넨 영지로 가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인 초원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동쪽으로 가면 오크와 마주칠 테니, 서쪽으로 살짝 틀어서 가기로 했다.
“설마! 우리가 가는 길에 오크가 있겠어?”
오크가 동쪽으로 갔다면, 상단과는 마주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발테리안 마을의 시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막대한 물자가 실린 마차가 무간나 초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안일함은 화를 불렀다. 북쪽으로 향하던 오크와 마주쳐버린 것이다.
“취이익! 인간이다! 모자란 인간이다! 취이익”
오크들이신나서 달려들었다. 이 시기에 무간나 초원을 가로지르는 상단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무식하게 많은 물품을 운반하지도 않는다.
고용한 용병들은 그대로 오크들에게 찢겼고, 상인들도 그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팔고자 했던 상품들 포션과 무기, 의류, 밀 같은 것들이 전부 오크의 보급물자가 되었다.
블리스의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야심찬 계획은 그렇게 처음부터 대차게 망해버렸다. 오크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되었다. 오크들은 새로운 무기로 무장하고 새로운 옷을 입고 식량을 먹어치웠다. 오크들은 신이 났다. 여러 번의 가을 중 가장 큰 수확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크들의 사기는 높았다. 그들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북쪽의 보브넨 영지로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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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 의뢰를 할까?”
타몬트가 의뢰서를 가져왔다. 오크 머리당 현상금을 지급한다는 보브넨 영지의 의뢰서였다.
“어차피, 잡을 생각이었잖아요. 같이 하죠. 뭐!”
“그럼, 출발해 볼까?”
그들이 도착한, 보브넨 영지와 무간나 초원 사이에 있는 성벽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들, 의뢰서를 보고 온 용병과 모험가들이었다. 병사들은 열심히 화살을 날랐고, 투석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표정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용병과 모험가들은 기대에 차 있고, 병사들은 굳어 있네요”
“몬스터야, 지긋지긋 할테니까!”
“사람이 많으니, 재밌는 걸 해도, 들키진 않을 것 같네요. 적합하기도 하고.”
“무슨 짓을 하려는데?”
라펠라가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루시안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하루 뒤, 오크들이 성벽에서 보일 거리에 도착했다. 보브넨 영지의 앞 들판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수였다.
루시안은 일행들에게 강화한 비산폭발형 포션을 나눠주었다. 루시안은 따로 준비한 장난감을 장전했다.
“루시안! 이상한 짓 하지 마라! 너 웃는 거 보니까, 굉장히 불안하다!”
오크들의 선봉대가 성벽으로 돌진해왔다. 도끼와 글레이브를 던지며, 거리를 좁혀온다.
“모두 화살을 쏘고! 마법사는 마법을 날려라!”
화살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쓰러지는 오크를 밟고, 또 다른 오크가 돌진해온다. 그들에게 불덩이가 날아든다.
오크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성벽의 문이 열리고 모험가와 용병이 뛰어든다. 모험가는 아티펙트와 유물을 이용해서, 용병은 타고난 경험을 이용해 오크를 배어 나갔다.
타몬트와 라펠라도 나가고, 옆에는 발터가 열심히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루시안은 조용히 총을 들어 중앙의 몸집이 유달리 큰 오크들을 노려 총을 쏘았다. 주사 형태라 소리도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싸우느라 바빠, 루시안을 유심히 보지도 않았다.
총에 맞은 오크들이, 갑자기 주변의 오크를 덮치기 시작했다. 루시안이 준비한 장난감은 일전에 만들었던, 릴리스 탄이었다.
오크들은 무기를 버리고, 동료를 향해 다른 무기를 휘둘렀다. 전장이 발정 난 오크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취이익! 오크가! 미쳤다 취이익!”
“재들 미친 거 아냐? 왜 저래?”
타몬트와 라펠라 그리고 발터만이 사태의 원흉을 알았다.
“사고 치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타몬트가 보다못해, 오크 사이에 폭발 포션을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미 전장 곳곳에 흔한 광경이 되어버린 후였다.
“야! 루시안 미쳤냐? 여기서 그걸 쓰면 어떻게!”
“생각해봐, 오크가 이걸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오겠냐?”
“허!”
“그리고, 아직 시작도 안했어!”
루시안은 성벽에서 훌쩍 뛰어내려, 오크를 사이로 숨어들었다.
“저건, 오크의 수치! 취이익!”
대족장은 기가 막혀서말문이 막힌 상태였다. 자신이 자랑하던 오크들이 왜 저러단 말인가! 대족장은 오크신을 찾았다.
루시안은 오크 사이를 누비며, 릴리스탄을 쏘아댔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선두에서 지휘하던 오크 부족장 하나가, 릴리스 탄에 눈이 돌아갔다. 다른 부족장을 덮쳤다. 오크 진영이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대족장이 분노해 맛이 간 부족장의 머리를 쳐버렸다. 하지만, 그런 부족장이 한둘이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열심히 목을 쳐대던 대족장도 릴리스 탄을 맞았다. 루시안은 대족장에겐 특별히 10발을 꽂아줬다.
무릇,대족장이라 함은, 오크 중 가장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오크가 맡는다. 그런 대족장이 날뛰면? 답이 없다. 그런 대족장이 부족장과 오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취이익! 대족장도 미쳤다!”
오크들이 대족장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애썼다. 참다못한부족장들이 모여 대족장을 막아 세우기 위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크의 무기가 인간이 아니라 대족장을 향했다.
“정말, 개판이네!”
“하! 이 일 끝나면 루시안하고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누님, 이건 루시안의 일탈입니까? 애가살짝 맛이 간듯한데!”
“하, 나도 몰라!”
이미 라펠라와, 타몬트 그리고 발터는 성벽위에서 구경중이었다. 싸우기 싫었다. 성벽위가 가장 마음이 편했다.
루시안은 열심히 릴리즈탄을 소모했다.
“만들기도쉽고, 효과는 뛰어나고!”
가성비가 뛰어난 탓에 루시안은 흡족했다.
점차, 오크들이 치욕을 느끼고, 퇴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오크의 명예로운 싸움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이 밝힌다고는 하지만 전장에선 자제했어야 했다. 부족장들도 대족장에게 실망해버렸다. 결국, 남은 건 릴리스에 취한 대족장과 몇몇의 부족장과 오크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오크들이 떠나가든 말든, 인간들이 공격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전쟁에힘쓰고 있었다.
“오늘은 취이익, 오크 치욕의 날이다 취이익!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취이익!”
차기 대족장으로 내정된 오크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영주님! 오크들이 물러갑니다! 저희의 승리입니다.”
“자넨 이게 승리라 보는가?”
“,,,,,,,,”
뒤에서 쭈볏거리던 부하하나가 물어온다.
“저 영주님, 대족장 오크는 어찌해야 할까요?”
열심히 사랑을 꽃피워가는 오크가 그들의 안구를 괴롭히고 있었다.
“빨리, 죽이고 돌아가세, 에잇!”
보브넨 영지의 물리적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극한에 다다랐다.
“이젠, 오크가 못 오겠네요. 부끄러워서 어디 오겠어요?”
“루시안?”
일행들이 모두, 루시안을 노려봤다. 루시안의 짧은 일탈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