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19화. 공방의 신제품 (20/95)



〈 20화 〉19화. 공방의 신제품

루시안은 늘, 그러니까 전생의 기억을 가진 최혁의 기준에서 이 세계는  불편하다. 현대의 이기들을 맛보았던 인간이 어찌  편리함을 잊겠는가?

“종이를 ‘누군가 만들겠지’ 라던, 내 생각이 무참히 깨지다니!”

그는 종종 상인들을 만나 ‘양피지를 대체하는 물건이 있느냐’ 물었었다.

“손님도 참! 그런 게 있으면 저희들이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무겁고 만들기 까다로워 상인들도 양피지를 어쩔 수 없이 취급하는 실정입니다.”

루시안은 일단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안토시아닌을 활용한 지시약을 만들기로 했다. 루시안이 만들 종이에는 이 지시약의 매우 중요했다. 시장에서 자주색 채소인 케랍과 붉고 파란 꽃들을 가지고 공방으로 향했다.

“가장 다루기 쉽고, 구하기 쉬운게 케랍이네.”

케랍이 우러나도록 끓인 액체는 선명한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정제한 물에 떨어뜨렸을 땐 반응이 없었으나, 시큼한 과일즙에 떨어뜨리니 빨갛게 변했다. 잿물에 떨어뜨렸을  노랗게 바뀌었다.

“이 과학실험을 여기서 다시 할 줄이야!”

지시약을 완성한 루시안은 다음으로 종이를 하얗게 만들 물품과 순수한 잿물 성분을 만들기로 했다.

“보통 나무만 가지고 종이를 만들면 누렇고 산성을 띄어서 오래 보존되기 힘들지. 한국의 한지의 장점을 살린다!”

먼저, 여러 가지 식물 줄기를 태운 재를 주재료로 연금술을 이용해 순수하게 추출했다.

“이게 가장 염기가 강하네. 연금술에 이용해도 좋겠어!”

깨끗한 물처럼 보이지만 매우 위험한 순잿물을 유리 용기에 잘 보관해 밀봉했다. 이걸 루시안은 하이드로베이스라고 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상인들과 약초꾼의 정보와 서적의 힘을 빌려, 섬유질이 여리고 부드러운 목재를 구하기 시작했다.

상인이 가져온 것은 도리안 나무였다.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다 커도 어른 키만 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나무 자체가 여리고 부드러워서 서민들이 심심풀이로 많이 씹는 나무입니다. 약간의 단맛도 가지고 있거든요”
“이걸, 많이 구할 수 있습니까?”
“따로 키우지는 않습니다. 워낙에 흔해 빠진 나무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구한 것이 끈끈한 점액질을 가진 물질이었다. 이것은 발터가 해결해 주었다.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식물이 하나 있어. 줄기건 잎이건 뿌리건 간에 자르면 하얀 즙이 나오는데 이게 엄청나게 끈적이거든! 사냥꾼의 활이나 함정 등에 두루 쓰여. 무트란이라고 하는 식물이지. 헤로나 숲에 지천으로깔려있어.”
“고마워 발터”
“그런데  만들려고 이런 것들을 구하는 거야?”
“양피지를 대신할 물품!”
“그런 게 연금술이야?”

루시안이 발터에게 진지하게 알려줬다.

“연금술은 다양한 가능성의 학문이야. 포션만 있는게 아니라고. 연금술이 살짝만 가미되어도, 놀라운 게 만들어지거든! 나중에 종이를 보고 놀라지나 말아라!”
“루시안 멋있어 보인다.”
“완성되면 제일 먼저 너한테 보여줄게!”

루시안은 재료들을 가지고 외부의 공방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일을 진행하며 세운 새로운 공방이었다. 이곳은 포션보다는 거친 작업할 장소로 쓰기로 했다. 우선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가 잘되도록 했다.

“일단은 나무를 삶아야겠지?”

연금용 솥 대신 주문 제작한 커다란 무쇠솥을 걸었다. 마법 램프의 화력을 키워 고온에 삶아내었다. 그리고는 껍질을 벗긴 후, 다시 하이드로베이스에 삶아 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깨끗한 물로 헹구어 내고는 절구로 짓이겼다. 짓이긴 나무 섬유에 다시 무트란의 즙을 물에 개어 풀어 놓은 것을 섞어 넓은 판에 떠내었다.

그리고는 마당의 건조대에 널어 말렸다.

“확실히, 하얀 종이네. 표백이 제대로 되었어!”

케랍 추출액을 살짝 적셔보니, 중성으로 나타났다. 보존이 용이한 중성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역시, 종이가  거칠어, 섬유를 떠내는 게 능숙하지 못해서 그런 거 같은데. 매끄럽지도 못하고, 뭐! 이 부분은 상인들한테 떠넘겨야지”

루시안은 발터에게 종이를 보여주었다.

“일단 시험작으로 만들어 본거야. 양피지보다 가볍고 재료도 구하기 쉽고”
“오호! 가볍다, 그리고, 하얗고, 잉크도 안 번지네?”

발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들떠있다.

“이걸 상인들한테 넘기고, 물품을 받아 쓸려고 해, 판매 대금의 일부를 받으면서 말이야!”
“네가 만들어 파는 게 낫지 않겠어?”
“종이는 공정이 많아서, 나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어. 게다가 많이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난 또, 연금술 공방에서 판매될  알았지.”
“당연히, 여기서도 팔 거야. 내가 만든 건데 팔아야지.”
“꽥,꽥!”

잠에서 깨어난 구리가 종이를 노린다. 날름 발터가 들고 있던 종이를 낚아채 먹어버린다.

“야! 그걸 가져가면 어떻게 해!”
“꽥,꽥!”

울음주머니를 크게 부풀리며 발터를 놀리던 구리가 더 없냐는 듯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에휴,   사이좋게 하나씩 가져가!”
“꽥,꽥!”
”고마워, 루시안!”

다음날, 공방을 연 루시안은 판매를 마리엔에게 맡기고, 종이를 챙겨 마을에 있는 상인을 찾아 나섰다. 유적지가 생긴 영향으로 상단 하나가 지부를 낸 상태였다. 소피아 왕국 내에서 3번째로 규모가 큰 상단이라고 했다.

다른 상단들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돈을 잘 벌지만, 3위인 그들은 이렇게라도위로 올라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 루시안님이시군요? 일전에 포션 판매를 제의 드렸을 때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라이야 상단의 발테리안 마을 지부장 알텐 마르가가 루시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래전, 루시안에게 퇴짜를 맞은 일을 가지고, 여전히 투덜거리는 그였는데, 그간 많은 약초와 재료를  갔기에 그나마 살가운 것이다.

“지부장님, 오래전 일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입니까? 제가 오늘 지부장님에게 큰 선물을 드리고자 찾아왔는데 이거 대접이 이래서야!”

루시안이 아쉽다는 듯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알텐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하하! 어딜가십니까? 루시안님! 그 좋은 이야기 좀 들려주시지요!”
“꽥,꽥!”

구리가 웃긴다는 듯이 울어댔다.

지부장 사무실 안,

“상단에서 귀한 손님을 맞이할  내는 특산품 차입니다.”

비싼 값을 하는지 향이 아주 그윽했다.

“그러니까 어떤 선물이실까요?”

알텐의 눈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라는 겁니다.”

루시안이 종이를 꺼내, 알텐에게 보여주었다.

“호오? 하얗고 무척이나 가볍군요?”

알텐이 잉크와 펜을 가져와 글을 써본다.

“글이 아주 부드럽게 잘 쓰입니다.”
“이 종이의 생산 기술을 넘기고자 합니다. 판매 대금의 30프로를 받고, 일정량의 종이를 제 공방에 납품받고 싶습니다.”
“흐음, 30프로라 기술을 넘긴 대가로는 적게 가져가시는 것 같습니다만?”
“솔직하게, 전 이 기술을 넘기지 않아도  버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조만간 보급형보다 윗줄의 포션을 만들어 팔 계획이니까요. 제 포션 아시지 않습니까?”

알텐이 쓰게 웃는다. 저 포션을 자신들도 사다가 다른 마을에 이윤을 붙여 되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말입니다. 생산시설에 인건비 하며 각 상단에 보내는 비용 등등 판매가 어느 정도 될 때까지 많은 돈이 들겁니다. 전, 그걸 감당하기 싫어서 맡기는 겁니다.”
“흐음, 일단 상단본부에 제안을 올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늦으면 다른상단을 가면 되니까요. 문제  것이 있겠습니까?”

루시안이 식은 차를 마저,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텐이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저, 저기 루시안님 좋은 소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방으로 돌아온 루시안은 또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성진을 그리고, 다량의 펜과 잉크, 강철주괴, 속이 빈 가느다란 식물의 줄기를 늘어 놓았다.

“구조를 알고 있는 것들은 연성진이 편하지!”

연성진에서 빛이 나고, 식물의 줄기에 잉크가 농축되어 젤 형태로 담긴다. 그리고 펜의 촉에 금속 구슬을 넣었다. 그리고 이를 하나로 조합을 했다.빛이 사라지고, 연성 마법진 위에 볼펜 50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나석이 조금 들긴 했지만, 이젠  정도 연성 마법진은 거뜬하네!”

볼펜을 나무통에 꽂아서 가격표를 붙였다. 자루 당 1골드, 설명은 ‘잉크 없이도 사용 가능한 어디에서나 필기가 가능한 도구’라고 적어두었다.

“슬슬, 날을 잡아 기존의 포션들을 개량시켜야 할 텐데!”

루시안은 할 일이 많다는  느끼고는, 오늘은 쉬기로 했다.

“일은 적당히, 노는 건 많이 대신 돈은 많이 벌자!”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던 루시안은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구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꽥! 꽥! 울어댔지만 루시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포션의 양을 늘려서 팔고는 있으나 언제나 공방의 운영시간은 짧았다. 싸고 효과가 좋다는 게 소문이 난 탓이었다.

오늘도 자리를 지키던, 마리엔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원래는 루시안하고 같이 일을 하는 거였는데, 나한테 맡겨놓고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지.”

마리엔의 작전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루시안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답답했다.

 루시안의 머리에 붙어 지내던 구리가 1층에 내려왔다. 마리엔을 보며 울어댔다.

“응? 구리? 여긴 무슨 일이야?”
“꽥! 꽤애액! 꽤액!”
“뭐라고? 일하기 싫다고 잔다고?”
“꽥!”

마리엔은 순간 화가 났다.

“내가 바라던 공방일은 이런 게 아니란 말이야! 좀 더 분위기가 좋은 그런거였는데!”

2층으로 달려 올라간, 마리엔이 그대로 루시안의 늘어진 등을 때렸다.

“야! 너, 너무 한거 아니야?”
“으아악! 마리엔 무슨 일인데 그래?”
“뭐? 무슨 일! 무스은 일?”

마리안은 욱하는 마음에 달려왔지만, 그렇고 그런 분위기를 바랬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넌, 공방 주인이 공방엔 신경도 쓰지 않고, 나한테 이렇게 다, 떠 넘기면 되는 거야? 너무 한 거 아니야?”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정식 직원을 고용해야겠구나. 마리엔이 힘들지 않게 말이야. 미안! 내가 너무 무심했지?”
“뭐! 뭐라고?”
“널, 자른다는 게 아니라! 넌 매장관리를 맡고, 판매는 직원이 하는 거야. 난 판매에 신경 끌려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
“하···. 내가 너한테 바란 게 잘못이지!”

마리엔이 어깨가 축 처져서, 공방을 나가 버린다.

“꽥! 괙 꽥괙!!”
“어! 구리야, 어딜 갔었어! 뭐라고? 한심하다고! 애는 또 뭔 소리를 하는거야?”

구리가 앞발을 머리에 가져다 댄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난, 사람 구한다고 써 붙이고 와야겠다”

그렇게 루시안에겐 작은 소동이나 마리엔에겐 큰 사건이었던 하루가 지났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공방을 연 루시안은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급히 공방으로 달려와 숨을 헐떡였다.

“어? 알텐 지부장님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계약 말입니다. 계약! 하시죠. 계약! 오늘 오후에 상단에 오시면 상단주님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저와 계약해 주실 겁니까?”

알텐이 루시안의 손을 꼭 붙잡고  듯한 눈으로 바라본다. 누가 보면 사랑에 빠진 남녀 사이로 볼법한 광경이었다.

“저기 알았으니까! 일단, 손부터 놓으시죠?”

알텐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며 상단으로 돌아갔다.

“휘유! 루시안, 마리엔을 버리고 남자와 눈이 맞은 거야?”
“이 형이 아침부터 뭘 잘못 드셨어요? 왜 시빕니까!”
“아! 눈빛이 얼마나 애틋하던지!”
“형! 그간 드렸던  대금 청부해볼까요?”
“아!날이 무척이나 좋네. 저기로 가볼까나?”

딴청을 피우며 타몬트가 부리나케 사라진다.

“구리야 너는 나중에 저렇게 되면 안 된다.?”
“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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