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8화. 다시 마녀의 숲으로(2)
녹색의 구슬이 환히 빛나더니 서서히 무언가의 형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망울에 큰 입과 짧은 네 개의 다리가 나타났다.
“꽥, 꽥,꽥,꽥!”
영락없는 청개구리였다.
“어어?”
영혼 이야기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루시안이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벨가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루시안이 개구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영혼 말이냐? 보자마자 신기한 인가라 여겼느니라. 걱정 말거라! 누구에게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다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는 법이 아니더냐!”
“감사합니다. 벨가님.”
벨가가 청개구리를 보며, 루시안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다.
“그 아이를 잘 돌봐야 하느니라. 아직은 여리디 여린 아이니라. 허나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니 잘 살펴주거라!”
청개구리가 폴짝 뛰어, 루시안의 머리 위에 안착한다.
“거기를 네 자리로 정한 거냐?”
“꽥,꽥!”
“이 아이는 말을 못 하나요?”
“그건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느니라. 환수에 따라 제각각이니.”
벨가가 싱긋 웃어 보였다.
“아! 저, 일전에 열매를 더 받아 갈 수 있겠습니까? 연금술 재료로 아주 쓸만해서 말입니다.”
“그건 문제 될 것이 없느니라. 워낙에 많은 열매를 맺는 식물이라 하지 않았더냐!”
루시안이 가볍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벨가님은 이곳을 벗어나질 못하시는 겁니까? 이 넓은 숲에 혼자 계시니 적적하실 것 같습니다.”
루시안이, 휑하게 보이는 넓은 저택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오래 지내다 보니, 이젠, 익숙 하느니라. 숲의 동물들도 식물들도 다 나의 벗이지. 가끔, 이리 찾아온 말동무가 있어, 요즘 더 기쁜 참이니라.”
찻잔을 내려놓은 벨가가 루시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음에 올땐 인간들의 음식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 오래전 맛보았던 인간들의 음식이 꽤 입에 맞던 기억이 있구나.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렇게 찾아온 말동무에게 부탁이나 하는 신세이니.”
벨가의 웃음이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알겠습니다. 벨가님.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벨가는 미소로 화답했다.
“꽥!,꽥!”
“아!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어야 할 텐데···. 벨가님? 혹시 좋은 이름 생각나시는 거 없으십니까?”
“너의 동반자이니 네가 짓는 것이 좋아 보이는구나.”
벨가는 자연스레 공을 넘겼다. 순간, 루시안의 머릿속에는 전생에 보았던 화장품 브랜드가 떠올랐으나 이내 지워냈다. 한참을 생각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펜과 수첩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생각나는 이름을 적어 단어카드를 만들었다.
“글자를 보고, 네가 한번 골라 볼래?”
녀석이 울음 주머니를 부풀리고는 단어카드를 유심히 살펴 본다. 진짜 말귀도 알아듣고 글도 알아보는 모양이다. 녀석이 처음으로혓바닥으로 찍은 단어카드는.
“케로? 흠, 이거 저작권이 걸릴, 쿨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짧게 몸을 부풀려 소리를 내고는 혓바닥이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갔다.
“구리? 동을 연성해 금을 만들어달라는 거냐? 큭큭, 그래! 구리로 하자! 넌 이제 구리다!”
루시안은 불렀을 때 무엇인가 어감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냥 구리로 정해버렸다.
“자주 놀러 오거라. 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느니라.”
벨가의 배웅을 받으며, 숲을 빠져나왔다. 구리가 조용한 걸 보니 머리 위에서 잠든 것 같았다.
“말을 달리면 떨어지려나?”
숲을 빠져나올 때까진, 말을 끌고 다녔지만 이젠 타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꽉! 잡아라! 구리야. 이럇!”
답답했던 안개를 지나니 말도 신이 났는지 세차게 달려 나간다. 구리는 머리 위에 착 달라붙어서 미동도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휴식을 최소화하며 말을 몰았다. 구리에게 공방을 구경시켜주고픈 마음이 컸다.
“구리야! 여기가 내가 지내는 공방이다.”
야간 영업도 끝난 시각이다. 마을이 고요하다. 루시안은 평소에 하던 대로 지하실로 내려가 재료를 점검했다. 손상이 간 재료를 정리하고 부족한 재료를 채워 넣어야 하는 일이다.
“꽥,꽥!”
지하실의 약초 냄새가 쌔서 그런지 구리가 깨어났다. 그리고는 폴짝 뛰어내리더니 루시안이 변질된 재료들을 모아둔 곳을 향했다. 그리고는 혓바닥을 내밀어 변질된 재료를 꿀꺽 삼켜버렸다.
“야! 구리야 그걸 먹으면···?”
그리고, 잠시 구리의 몸이 빛나더니 무언가를 다시 뱉어냈다.
“이건, 새로운 연금술 재료잖아? 변환을 시킨 거야?”
“꽥! 꽤애액!”
표정이나 말이 자랑하는 듯 했다.
“그래 잘했어, 고마워! 구리.”
상해서 버릴만한 재료가 쓸만한 재료로 태어났다.
루시안이 그날 지하실에서 구리를 관찰한 결과 3개까지는 변환을 하고 그 후론 식사였다. 연금술에 들어간다면 변환과 섭취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아무거나다 가리지 않는다고 이야기다.
“그래도, 좋은 것만가려서 줄게 구리야!”
“꽥,꽥!”
다시, 루시안의 머리 위로 돌아간 구리는 이내 잠에 빠진 듯 조용해졌다.
다음날, 타몬트가 찾아왔다.
“여어! 돌아왔네? 혼자서 숲에 갔다 왔다며? 이 형을 놔두고 말이야!”
타몬트가 루시안의 목을 걸려고 하다가,머리 위에 생물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야! 네, 머리 위에 개구리가 있어!”
“어제, 새로 들인 친구에요. 구리라고 합니다.”
“꽥,꽥!”
구리가 반갑다는 듯 울음주머니를 부풀린다. 루시안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오호라! 이 녀석이 그 녹색 구슬에서 태어난 녀석이구나? 난 타몬트라고 한다. 구리야!”
뒤이어, 라펠라도 발터도 그리고 마리엔까지공방에 들어왔다.
“여기가 카페는 아닙니다만? 다들 무슨 일로?”
“오랜만에 공방 주인이 돌아온 것 같아서 와봤지.”
“야! 루시안 오면 안 되냐? 어?”
“루시안!”
마리엔은 아에 달려들어 껴안는다. 지난번에, 선물을 주고 난 후로 이런 상태다.
“누님 보십쇼, 저 녀석이 그걸 만든 게 쓸데가 있어서라니까요?”
루시안은 눈빛으로 타몬트를 협박했고, 타몬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충, 릴리스를 받고 싶으면 입을 다물라는 이야기였다.
일행에게 구리를 소개해줬다. 마리엔은 구리를 상당히 귀여워했다. 여관에 일이 생겨 바로, 돌아가 봐야 하는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 자주 가봐야 한다며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러니까, 벨가님이 도와주셨다는 거네?”
“결국, 환수였던 거였어! 역시 내 추리가 맞았어!”
라펠라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며 좋아했다. 타몬트는 루시안에게 다음 일을 물었다.
“루시안, 앞으론 어쩔 계획이냐?”
“당연히 공방일 해야죠! 새로운 포션도 만들고, 새로운 물품도 만들고. 금을 연성해내지는 못해도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루시안의 머릿속에는 종이나 비누 같은 기본 물품 외에도 향수 같은 것도 떠올랐다.
“아참! 가문에서 서신이 왔더라고 오늘 아침에 말이야! 거래하던 상단을 통해 물건을 보내주겠다고 하시네. 한번 집에 들르라고 몇 번을 말씀하시던지. 그래서 다음에 한번 다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다음해, 봄이 되면 출발하시죠.”
“형의 독립이냐, 가출이냐가 밝혀지는 거야?”
“딱! 봐도 가출 아니겠니?”
“꽥, 꽥!”
가을이 서서히 물러나고 겨울의 초입이 되어 날씨가 제법 추워질 즈음, 공방에 상인이 찾아왔다. 상인은 커다란 상자를 내려놓고는루시안의 확인을 받았다.
“대금은 지불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만.”
루시안이 상자를 열어보니, 푸른 빛의 유리병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옅은 푸른빛을 내는 가루들이 많이 모여, 푸른 빛이 강해 보이는거 였다.
루시안은 수첩을 꺼내, 책에 있던 실험내용을 복기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해보기로 했다
“일단, 연금용 모래에 안개 나비 가루를섞고 가열을 해 완전히 녹인다. 그러면 유리처럼 투명하게 굳어지는데….”
결정화된 고체를 잘게 부순 후, 다시 그걸 연금막자에 넣고 잘게 부수었다. 그리고, 연금술에 중요한 시약 중 하나인 비트리올을 넣고 가열했다. 비트리올이 몸에 위험한 성분이라, 환기를 시키고, 코와 입을 잘 막아야 했다. 결정과 비트리올이 반응하며, 증기가 발생하는데 이를 증류관을 통해 냉각시켜, 액화시켰다.
“오오! 파란 액체가 만들어지네? 그러면 여기서, 연금강화제를 넣고 잘 섞으면 완성!”
루시안은 푸른 빛 액체가 든 포션을 들어 보였다. 무언가 신비롭다는 느낌이 드는 파랗게 반짝이는 입자들이 돌아다녔다.
“확인해볼까?”
♣ ??????
- 세월에 낡고 바스라져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대검이었을지도?
- 강력한 봉인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처음엔 이걸로 해보자. 타몬트 형께 가장 가치가 없어 보이니까!”
타몬트가 들으면 섭섭해하며, 루시안을 구박했을 터다. 액체를 ‘똑똑’ 고철 덩어리에 떨어뜨렸다. 액체는 빠르게 고철에 흡수되어 사라지더니, 고철의 표면에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빛이 고철을 감싸며 점점 형태가 변했다. 예사롭지 않은 예기가 감돌고, 화려한 듯 평범한듯한 묵빛의 예스러운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 타알크의 날개
- 고대 몬스터 타알크의 날개로 만들어진 대검
- 주인을 잃은 대검. 누군가에 봉인을 당해 세상에서 버려졌음
“정보가 심상치가않은데?”
일단은 무시하며, 나머지도 마저 풀어내었다.
♣ 라칸의 신념
- 고대 기사 라칸의 방패
- 인간의 수호자로 명성이 드높던 이를 위해 환수종이 선물한 방패
- 인간의 탐욕에 절망하여 그는자신의 방패를 봉인시켜버렸다.
♣ 나무의 독
- 주인을 기다리는 저주받은 독단검
- 인간의 멸절을 바란 엘프의 원망과 집념이 깃든 최악의 무기
“허! 이거 고대 시대의 유물들이었어? 봉인을 해제해도 되는 거야?”
이를 봉인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나중에,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이른 새벽부터 시약을 만들고 봉인을풀다 보니, 어느새 영업시간이 다 되었다. 마침,마리엔이 들어와 능숙하게 진열대를정리하고는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오늘도 잘 부탁해, 마리엔!”
“걱정하지 말라고!”
루시안은 일행들을 기다리며, 간단한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었다. 통신용 아티팩트를 말이다. 평범한듯한 은반지에 가넷을 박아 멋을 내고는, 마법 각인을 새겼다.
“어이! 마리엔 좋은 아침. 루시안은?”
타몬트를 시작으로 라펠라와 발터까지 도착했다. 요즘 들어 이들의 일과는 공방에 들러, 루시안과 수다를 떠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2층으로 올라온 일행들에게 루시안이 각자 반지를 하나씩 건넸다.
“통신용 아티팩트에요. 일단 하나씩 차시고 아! 발터, 요즘 타몬트 형하고 라펠라 누나한테 오려 수련 받는 건 좀 어때? 반지를 사용하려면 오러든 마나든 사용할 줄 알아야 하거든!”
“오러 사용자가 되긴 했지. 익스퍼트도 안되는 오러 초보자 말이야!”
발터의 성장이 빠르다. 진심을 담아 축하를 건넸다.
“누나랑 형들 도움 받아서, 더 강해지라고!”
“응!”
말을 마친, 루시안은 봉인을 풀은 물건을 꺼내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건 타몬트 형꺼에요. 이건 라펠라 누나꺼고, 이건 발터꺼”
“우와! 내가 고른 대검이 이렇게 멋지다니!”
라펠라는 흡족한 듯 방패를 쓰다듬었고, 발터는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단검을 바라보았다. 루시안은 그들에게 각자 무기의 정보와 내력을 알려주었다.
“주인을 의식하는 건, 피로 매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타몬트는 호신용 단검을 꺼내 손끝을 살짝 찔러 피를내고는 대검에 떨어뜨렸다. 대검이 피를 흡수하더니 ‘우웅’ 하고 진동하며, 저절로 떠올라 타몬트에게 달라붙었다.
“거부하진 않았네요.”
라펠라도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발터인데, 인간을 저주한 엘프의 단검이라니!”
“그러게 말이야. 저주받았다는 둥 독이라는 둥 불길하기 짝이 없다니까?”
타몬트와 라펠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발터를 바라보았다. 정작 발터는 태평했다.
“저주받으면 루시안이 풀어 주겠죠, 뭐!”
발터는 무심히 피를 내어 단검에 먹였다. 단검이 심하게 요동을 친다. 반응이 매우 거세 다들 긴장을 하며 바라보았다. 이내, 다시 잠잠해진 단검은 검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붉은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 배신한 나무의 독
- 멸절을 바란 인간의 피를 주인으로 삼아 다시 태어난 단검
- 이 단검을 든 자는 엘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루시안은 다시 확인한 정보를 보며, 어이가 없어 했다. 일행들에게도 설명을 해주었다.
“단검이 배신했다고?”
“주인을 오랫동안 기다리다 보니 삐진 모양이지!”
“뭐, 어때? 엘프를 만날 일도 없을 텐데! 보통의 사람이 엘프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고! 그 흉악한 대수림에 누가 간다고.!”
발터는 단검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소중히 만졌다.
“글쎄? 네가 루시안에게 붙어 있는 한 그런 확신은 버리는 게 나을 건데?”
라펠라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