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17화. 다시 마녀의 숲으로 (18/95)



〈 18화 〉17화. 다시 마녀의 숲으로

“잠깐만요, 타몬트 형! 녹색 구슬에 대해 알고 있던 거에요?”

발터가 타몬트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늘에서야 너희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생각난 거지. 사실 어렸을 때 일은 독립하면서 묻어두었단 말이야. 너희들 때문에 억지로 후벼 파낸 유년의 기억이라고!”

타몬트가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파내는 흉내를 내었다.

“타몬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건 확실히 환수와 관련이 깊은거 같네.  추측대로 환수의 알이 맞는 거 같아!”

루시안은 품에서 녹색의 구슬을 꺼내 들어 보였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따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해답은 돌고 돌아 결국 벨가님이시군요. 그래도, 환수의 무언가라는 건 확실해졌네요. 알이건 환수의 잔재건 간에!”

이제  일이 정리되어간다. 왕국에서 우연히 얻은 물건들에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도 지나간다.

“타몬트 형은 안개 나비 인편에 대해 빨리 구할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아까는 내가 쉬운 것처럼 말했지만, 그리 간단하진 않아. 제나르 왕국 외에는 만들지 못하거든. 타국에도 팔리지 않고 자국에서만 소비시켜서 타국에는 연마된 보석으로 팔려나가. 가문과 왕실이 손을 잡았거든!”
“그럼, 통신을 보낸다는 이야기는 그냥 알아만 본다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냐? 독립했어도 난 가문의 사람이라고! 잘 부탁해볼게. 돈은 좀 준비를 해둬야 할 거야!”

타몬트가 의지를 다졌다. 완수해보이겠다고.

“빨리, 공방에 가서 돈을 벌어야겠군요. 타몬트 형! 힘내주세요.”
“응!”

일행은 하루를 더 소피아에서 지낸 후 이동 마법진을 타고 보브넨 영지로 이동했다.

“진짜로 한 달이나 걸려버렸네!”

공방에 도착한 루시안이 푯말을 치우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공방 금고에서 돈을 꺼내 라펠라와 타몬트에게 넉넉한 보수를 주었다.

“의뢰는 이걸로 끝입니다. 고생하셨어요!”
“이렇게 헤어지는거야? 아쉬운데!”
“그러게. 그간 정이 많이 들었나봐!”

그들이 툴툴거리자, 루시안이 덧붙인다.

“제가 의뢰가 생기면,  찾지 않겠어요?”
“자주! 찾아달라고, 얼굴 잊어버리기 전에!”

타몬트가 돈주머니를 챙겨 일어선다. 라펠라도 안부를 전하고 일어섰다. 다시 휑해진 공방. 창문을 열고, 그간 쌓인 먼지를 창문 밖으로 토해냈다.

“슬슬, 포션 판매를 재개해볼까나?”

루시안이 2층으로 올라가 포션 제조를 시작하려는 찰나, 공방의 문이 거칠게 열린다.

“야! 루시안! 왔으면 나 먼저 봐야  거 아니야. 어떻게 발터한테 이야기를 듣게  수가 있어?”

쳐들어온 마리엔이 성질을 낸다.

“어! 잘 지냈어?”
“선물 내놔!”

다짜고짜 선물을 달라며, 오른손을 척하고 내민다.

“어, 그게. 그러니까. 이제 준비를 할까 하는데?”
“선물 준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었어? 너무해!”

바람처럼 들어왔다 폭풍처럼 사라진다.

“이거, 참! 난감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도에서 무엇이라도 사둘 것을 하고 후회하는 루시안이었다.

공방이 열리자, 이내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유적은 아직 조사가 끝나질 않았다. 아직도 몬스터는 많았고, 탐사는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물론, 유적 안에서 귀중한 아티팩트나 보석을 발견해 큰돈을 만진 이들도 있었다.

복귀로부터 며칠이 지난 날, 루시안은 마리엔에게 줄 선물을 완성했다. 입욕제와 핸드크림 그리고 바디 로션이었다. 여관에 가서 직접 전달해줬다.

“마리엔! 선물이 늦어서 미안해 이거 받아!”

세 가지나 되는 물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마리엔은 입욕제와 바디로션에 대해 설명을 듣자, 얼굴을 붉히고 몸을 배배 꼬았다. 뭘 상상하는건지  수가 없었다.

“고, 고, 고마워!”

말을 더듬고는 2층의 방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런 모습을 베티가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니 루시안?”
“예? 그게 어······.”

대충, 둘러대고는 여관을 빠져나왔다. 공방 앞에는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었다.

“오! 루시안님 드디어 만나 뵙는군요.”

멋진 콧수염의 사내, 게르가였다. 그닥 별로 보고싶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안 그래도, 거의 끝마쳐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번에 좋은 재료를 구했거든요!”
“아아! 그렇습니까? 시간이 촉박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조합식은 거의 완성했고, 농도를 맞추는 중입니다.”

요즘, 지하실의 오크와 고블린의 금실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몬스터 실험을 통해, 사람에게 쓸만한 정도로 약효를 조절했다. 그 후엔 타몬트를 통해서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농도별로 나누어 제조한 알약을 타몬트에게 주고 후기를 알려 달라 했다. 타몬트는 자신의전공분야라며, 신이 나서 일을 받았다.

그렇게, 타몬트에게 좋은 약이 있다는 꾀임에 넘어간 이들은 거사를 마치고 후기를 알려줬다. 그리고, 그 후기를 바탕으로 복용량과 강도를 맞추어 나갔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게르가는 초조한 듯이 손톱을 깨물어댔다. 중년의 사내가 저리도 초조해 보이니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적어도 일주일 이내엔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게르가는 연신 인사를 하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집을 알려주고 떠났다. 그로부터 3일 후, 릴리스가 최종 완성되었다. 완성된 릴리스를 경험한 타몬트는 입이 마르게 릴리스를 칭송했다.

“와! 이게 좋은데 남자에게 참 좋은데, 뭐라고 말하기가 좀 그러네!”

타몬트가 뿌린 시험작들로 신세계를 경험한 이들이 타몬트에게 또 달라며 달라붙는다고 한다. 죽은 나뭇가지에 생기가 돋고, 싱싱해진다는  그들의 증언이었다.

“게르가님! 루시안입니다. 의뢰 주신 물건이 완성되었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게르가가 맨발로 뛰쳐나왔다.

“오오! 이것이 바로!”

루시안은 목재함에 파란 알약 10개를 넣어 게르가에게 넘겼다.

“복용법 적어놨으니까,  지키셔야 합니다. 과용하시면 영원히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게르가가 감격하며 목재함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건넸다. 안을 슬쩍보니 금빛이 아니다. 백금빛이다. 5개 가량의 백금화가 들어있었다.

“제가 넉넉히 챙겨드렸습니다. 전 길을 재촉해야 하니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
게르가는 분주히 움직여, 바로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

그날부터, 공방의 운영시간이 변경되었다. 오전 9시부터 일반 포션을 팔고 매진되면 닫는다. 그리고 다시 저녁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공방이 열린다. 빛을 감추고 싶은 자들과 밤에 빛나고 싶은 이들이 찾는 시간이었다.

타몬트에겐 약속대로 10개들이 릴리스 한 상자를 넘겨주었다. 그때의 타몬트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환했다.

타몬트가 어찌나 열성적으로 홍보를 해댔는지, 야간 영업시간엔 용병들의 숫자가 제법 되었다. 용병에게 이야기를 들은 귀족들도 호기심에 사갔다가, 대여섯 상자씩 사가기도 했다.

인간에게 적당한 양을 맞추고 보니, 현재 가진 크나르 열매와 오크  약초로 약 2천알 정도가 나왔다.

물론, 배합된 다른 약제들이 많았다. 부작용을 줄이는 보조 약제와 유효성분을 강화하는 연금강화제 등이 조합되어 있었다. 아무튼, 당분간은 걱정 없이 팔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오크한테 쓰고도 남는게, 이 정도면 오크가 맞은 강도를 인간이 쓰면 어떻게 된다는 걸까?”

루시안은 생각을 하다 말았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다. 언젠가 쓸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에, 포션이 빨리 팔려나가는 통에 시간이 남아돌았다. 여유시간에 설렁설렁 포션을 더 넉넉히 만들기 시작했다. 요령이 붙으니 손이 더 빨라져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 삼아서 릴리스를 이용한 총알도 몇 개 만들어두었다. 오크 강도로해서 말이다. 이건 주사 형태로 총알이 피부에 닿으면 침이 찔러서 약물이 들어간다.

오크족 약초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루시안은 이 약초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상단과 약초꾼들을 상대로 수소문을 했었다. 공통된 이야기는 하나였다. 잡초! 누구도 거들떠보지도않는 흔한 풀! 알고 보니 무간나 초원과 그 주변에 흔히 자라는 잡초라는 것이었다.

“알면 약이라지만, 그 고생의 대가가 참 허무하네.”

그날 후로, 루시안은 아이들에게 잡초를 뽑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심심했던 아이들이 잡초 뽑기 놀이를 하며 돈을 벌어오자. 이젠 어른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약초를 확보해둔 루시안이 지급을 멈췄지만 말이다.

벌어들인 돈으로 루시안은, 공방 주위의 빈 땅과 빈집들을 사들여 약초밭을 꾸리고, 재료 보관창고를 하나 짓기 시작했다. 약초밭엔 흔히 자주 쓰이는 약초를 길러 볼 계획을 세웠다. 마을에 사냥일을 하다 다친 이들을 고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재고 포션도 여유가 있어 며칠간, 자리를 비워도 되겠다 싶은 때가 왔다. 벨가를 만날 때가 온 것이다.

마리엔에게 잠시 공방을 맡겼다. 하루에 진열대에 올릴 포션의 양을 알려주고 일정 양만 판매하도록 했다. 야간 영업은 발터에게 맡겼다. 마리엔은 야간 영업에 대해 모른다.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알면 귀찮아질 게 뻔했으므로, 숨기기로 했다.

공방을 나선 루시안은 말을 타고, 마녀의 숲으로 달렸다. 품에는 녹색의 구슬을 잘 챙겨서 길을 나선 참이다.

“많이 늦었지? 빨리 가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거야!”

루시안이 품에 있는 녹색 구슬에 어루만지며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어쩐지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녀의 숲은 여전했다. 짙은 안개가 숲을 가리우고 있었다. 숲에 들어서니, 흰색의 팔찌에서 빛이 새어나와 어딘가를 향한다. 루시안은 잠자코 그 빛을 따라 말을 몰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만나는구나?”

어느새, 나타난 벨가가 루시안의 뒤에 서 있었다. 뱀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나를 잘 따라오너라!”

벨가가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한다. 숲속의 안개가 벨가의 움직임을 따라 흩어지며 길을 낸다. 이내, 안개 속에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들어가자꾸나.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니 들어가서 천천히 대답해 주겠느니라!”

벨가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차를 대접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향도 맛도 아주 좋습니다.”

루시안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녹색 구슬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것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느니라. 너에게 준 팔찌에는 내 보답으로 힘을 좀 더 많이 넣어 놨으니 말이다. 그 팔찌가 언젠가 너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니 잘하고 다니거라.”
“그래서, 이 구슬이 저에게 반응한 것입니까?”
“팔찌는 거들었을 뿐이니라. 답은 너의 영혼이니라. 몸에 맞지 않는 덧씌워진 영혼과 차원의 에너지가 묻어있지 않느냐?”

루시안은 너무 놀라서 말을 이어나가질 못했다.

“환수들이란 본디 차원의 틈에서 생겨난 존재들이니라. 차원의 막대한 에너지를 받아 거대한 힘을 다루게 되니라. 오래전 일족에 나타난  이가 불러온 타차원의 존재로 인한 일련의 사태로  땅의 환수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느니라”

벨가는 어느새 비워진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능숙하게 우려내었다.

“네가 데려온 아이는 오래전 이 땅을 떠났을 이의 잔재니라. 환수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으면 후손을 남기고 사라지니라. 많은 환수가 아스라이 바스러져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무로 돌아갔느니라. 나의 친한 벗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갔느니라.”

아련히, 녹색 구슬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벨가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인연이 닿고  닿아 연결되어 이리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벨가가 손을 뻗어 녹색 구슬에 가져다 대고 힘을 불어넣었다. 녹색 구슬이 환하게 빛나가 시작한다.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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