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6화. 떠난 자와 남겨진 자
소피아 왕립 도서관은 수많은 장서 보관량과 유려한 건축미로 유명했다.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도 이름이 높아, 명실공히 소피아르 왕국의 자랑거리였다.
“어서 오세요! 소피아 왕립 도서관입니다. 책의 손상 및 도난 시에는 막중한 책임을 지시게 됩니다. 이에주의하시길 바라며,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라펠라는 발터와 함께 정보상을 만나러 갔기에, 도서관은 루시안 혼자였다.
“일단은, 마법 쪽부터 파볼까?”
도서관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역사나 마법, 기사학 등주요 주제별로 책장이 구분되어 있었다. 연금술은 마법과 같은 책장이었다.
“마법서와 전문도서는 아카데미와 마탑으로 빠졌을 텐데도 책이 꽤 많네!”
책으로 압도당한다는 기분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양이었다.
“어디 보자! ‘마법의 역사‘ 흠, 이건 아니고, 연금술….연금술.”
책장의 끄트머리에 작은 책장 하나 분량의 연금술책들이 모여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없는 건가? ‘연금술의 역사’ 아니고, ‘라피엘라 연금학파의 이론 강습’ 이것도 아니고······.”
한참을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던 루시안이 눈에 낡고 두꺼운 책 한 권이 들어왔다. 누가 보다가 대충 끼워 넣었는지 거꾸로 들어가 있었다.
‘연금술을 이용한 봉인의 파훼를 위한 이해와 적용에 관한 고찰’이란 제목이었다.
“어휴. 제목 진짜 왜 학자들은 이렇게 제목을 지을까? 발터의 수면제로 낙점이다!”
[ 금을 연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 아래 시작된 연금술은 점차, 여러 사람을 거쳐 체계화되고 분화되어 발전해온 지난한 역사의 산물로써······. 중략.
마법이란 본디 마나의 배열을 통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무릇, 봉인이라, 함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배열로 이를 꼬아 자신 외엔 풀기 힘들게 만들어놓은 퍼즐과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의 이론은 이 마나 배열을 풀어내는 것이 봉인 파훼의 열쇠로 작용한다고 보았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물질을 연구했다······. 중략
이에 따라 가장 최적의 물질은 드래곤의 눈물이나, 구하기 쉬운 안개 나비의 인편을 추천하는 바이다. 안개 나비의 서식지는 엘프의 숲이 있는 대수림이다. –저자: 스타토 카스카네-]
“뭐? 구하기 쉬운 안개 나비가 대수림에 있다고? 그래 드래곤보다는 구하기 쉽네!”
전생에서의 엘프는 확실히 까칠했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는 종족들이었다. 인사는 상큼하게 화살로 하는 종족이었다.
“이, 안개 나비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다시, 책장을 옮겨, 동식물과 곤충 관련 서적의 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흐음! ‘안개 나비의 사육과 상업적 가치에 관한 제언’? 이 책도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안개 나비의 생활사는······. 중략. 안개 나비의 인편은 옅은 푸른 빛을 내며, 이 인편을 모아 보석 세공에 활용하면, 보석의 흠집을 메우고 보석의 빛 반사를 높여서 더욱 반짝이고 화려해 보이는 보석으로 연마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중략.
필자는 이를 사육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정원을 개조하여 사육장을 만들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주 먹이는 엘프의 숲에 있는 엘가 나무의 수액이다. 이를 위해 엘프와의 지난한 협상을 통해 나비의 유충과 묘목을 얻을 수 있었다.
마나를 충분히 공급해주어야 하고 ······. 중략 새벽녘에 날아오르는 나비의 날갯짓 때문에 인편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이때 미리 바닥에 깔아둔 천을 털어 인분을 수집할 수가 있다. 또한 ······. 중략 –저자: 그라비스 자이어- ]
“또, 엘프네 엘프! 에휴. 어쩌면, 지금은 더 개량화되어 구하기가 쉬워지지 않았을까?”
책을 마저 덮었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양피지로 된 수첩에 적어넣었다.
“조만간 종이라도 만들어야겠네. 양피지는 불편해!”
도서관을 나온 루시안이 약속된 카페로 향했다. 테라스에 앉아 홍차를 마시며, 책을 보며 일행을 기다렸다. 얼마인가의 시간이 지나 라펠라와 발터가 왔다.
“어제, 정보상에게 의뢰를 넣어놨고, 오늘 발터와 같이 결과를 얻어오는 길이야.”
정리된 서류 더미를 내려놓자, 루시안이 서류를 들어 읽기 시작한다.
[고대에는 환수와 엘프, 드워프, 정령과 인간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시대였다. 힘을 합쳐 대륙의 어려움과 문제를 헤쳐나갔다.
이러한 관계에 불만을 가지던 환수 종의 일부 세력들은 자신들의 힘 아래에 모든 종족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수 아기아스는 어둠의 힘을 끌어들여 힘을 키워나갔고,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커다란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에게 반하는 세력들은 연합을 결성하여 긴 싸움에 돌입했다.
-‘고대 대륙의 전쟁 역사 - 환수전쟁 편’에서 발췌- ]
쭈욱 서류를 넘기던 루시안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기아스 쪽에 배신자가 생겼고, 타격을 받은 아기아스가 차원을 열어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존재에 의해 다 같이 사이좋게 공멸.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그 이야기가 왜 중요하냐면. 마녀의 숲이 봉인지라는 거야. 폭주한 타차원이 존재 카라함과 아기아스가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존재가 되었고, 모두의 힘을 합쳐 겨우 봉인에 성공했다는 거지. 차원문이 열렸던 그 장소에!”
“벨가님은 역시 라펠라 누나의 말대로 환수였던 걸까? 무언가를 지키는 수호자로 보인다고 했었잖아?”
루시안이 팔찌를 들어본다.
“환수라 환수. 그럼 이 팔찌에도 환수의 힘이 깃들어있다는 거잖아? 그러면 여기에 반응했던 그 녹색 구슬은 대체 뭘까?”
“혹시? 환수의 알이 아닐까?”
라펠라가 그럴듯한 의견을 내었다.
“봐봐! 환수의 기운에 이끌렸다면 환수일 확률이 높지 않겠어?”
“아니면, 환수를 싫어하는 그 타차원의 존재일지도 모르죠?”
“발터, 그건 말이 되질 않아. 봉인이 풀린 것도 아닐텐데 있을 리가 없지.”
“그런가?”
라펠라의 말에 발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또, 하나 재밌는 점은, 봉인 당시 인간들은 그 차원 문에 욕심을 내었다고 하더라. 저걸 이용하면 어쩌면 인간이 다른 존재들의 위에 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거지!”
라펠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존재만 봉인한 후 차원문의 처리를 고심하고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차원문을 통해 넘어온 이계의 에너지가 봉인을 약화시킨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 에너지를 이용해 군림을 꿈꾸었으나, 봉인이 약화되는 걸 두고 볼수 없던 나머지 세 종족은 인간을 따돌리고, 차원문까지 봉인한 후 결계를 쳐버렸다. 그 후 인간과 세 종족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그때의 그 전쟁 이후, 환수종은 자취를 감추었고, 엘프와 드워프는 각자의 터전에 틀어박혀 인간과의 교류를 끊었다고 전해져. 지금에서야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몇몇 드워프나 엘프가 인간과 다시 섞여 생활하고 있지만.”
“결국, 그 녹색 구슬에 관한 이야기는 찾지 못했네요. 마녀의 숲 그리고 벨가님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 재확인했어요!”
구슬에 대한 단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것도 겨우 구한 정보라던데?. 고대와 관련 자료가 거의 소실되어 찾을 수가 없다고하더라고. 누가 없애버린 듯이.”
“당시의 인간들은 세 종족으로부터 배척받았잖아! 그래서, 자료를 없애버리지 않았을까? 내 탓이라는 걸 들키기 싫어서!”
발터의 의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가장 맞긴 하겠네. 우리가 모르는 추악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지.”
루시안이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너는 어때? 도서관에 자료가 있었어?”
“안개 나비의 가루라는 걸 구해야 해요. 책을 보니까 엘프만 부르짖더라고요. ”
“엘프?”
둘다 의아한 듯이 물어온다. 갑자기 엘프라니?
“서식지도 먹이도 다, 엘프가 사는 대수림이라서 그래요.”
“대수림이면 캐난 영지 북쪽에 거기 아닌가? 제국이 정복하지 못한 땅!”
“발터 말대로야. 소피아르 왕국 위에 대수림이 있고, 그 옆으로 제피르칸 제국이 있지. 제국이 여러 번 토벌하려 했으나, 몬스터와 엘프, 그리고 수인족까지 합세해 번번이가로막혀버렸지.”
타몬트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나타났다.
“대수림까지 굳이 안 가도 돼! 하아암!”
“어! 타몬트 형?”
“일어나니까 아무도 없더라고, 너희들이 갈만한데 둘러보다가 겨우 찾았네. 아웅.”
루시안은 그것보단 아까의 타몬트의 뒷말이더 궁금했다.
“반갑긴 한데요. 아까 말한 게 무슨 말이에요? 안 가도 된다니요?”
“그 저자, 기억나냐?”
“그러니까 어디 보자….”
루시안은 책 제목과 저자를 적어둔 수첩을 꺼내 확인해보았다.
[안개 나비의 사육과 상업적 가치에 관한제언 - 그라비스 자이어-]
수첩에 적힌 이름을 타몬트가 가리킨다.
“내 이름 타몬트 자이어! 그리고, 여기 이 사람, 그라비스 자이어. 알겠어?”
“어?”
그제야 일행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책 쓰신 게 작은 할아버지시거든. 50년 전쯤 되었나? 지금은 돌아가셨지. 그 안개 나비의 인편의 책을 쓰신 후, 그 쪽 집안에서 그게 돈이 되겠다 싶었는지 사업을 시작했어. 엘프와 인연을 맺어둔 사람이 마침 그 집 안에 있었던 거지. 그 사람이 협상도 진행해서 책의 연구에 쓸 나비 유충과 나무를 구했다고 해.”
“그럼, 지금도 그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어! 시작은 그 쪽 집안이 했는데, 이게 큰 돈이 벌리고 규모가 커지니까 직계 방계 할 것 없이 다 달라붙기 시작했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봤던 게 그 나비랑 인편이니까. 난, 벌레가 싫단 말이야!”
발터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서, 가출하고 용병을 한 거예요?”
“가출은 아니고 독립이야! 독립!”
타몬트는 독립이라 당당히 말했다. 가족과의 안부를 묻느냐는 질문엔 침묵을 지켰지만 말이다.
“직접, 찾아갈 필요는 없어! 제나르 왕국에 있어서 가기도 힘들 거고.”
제나르 왕국이면 육로로는 제피르칸 제국을 지나서 가던지, 뱃길로 가야 하는 곳이다. 어느 길로든 한 달은 잡아먹을 거리다.
“제나르 왕국이라니 멀리서도 오셨네요.”
“내가 마법 통신으로 서신을 보내놓을 테니까. 공방에 돌아가 기다리면 될 거야.”
생각보다 수월하게 안개 나비 건이 해결되었다. 남은 건, 녹색 구슬이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타몬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있던 집에는 고서적들이 정말 많았어. 할아버지가 날, 무릎에 앉혀두고 많은 책을 읽어주셨지!”
“어쩌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라펠라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 내가 어때서 그래요! 누님?”
“술꾼!”
“붉은 피 대신 붉은 와인이 흐르는 남자!”
“오! 그건 좀 멋있다야. 발터.”
루시안은 헛소리를 차단했다.
“이야기나 계속해봐요. 타몬트 형!”
“루시안이 많이 궁금했나 보네?”
마침, 타몬트 몫으로 시킨 음식이 나왔다. 빵을 한입 베어 물은 타몬트가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바로, ‘욕심의 대가’라고 하셨던 책이었지. 빛나는 문에서 나오는 막대한 힘에 이끌린 인간들이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거야.
망치와 활과 그리고 빛의 존재들이 막아섰지만, 인간의 탐욕은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탐할 뿐이었다고 해.
인간은 힘을 얻고 나자, 같이 싸운 전우였던 이들을 발밑에 두고자, 전쟁을 일으켰어. 그 덕에 어둠의 힘을 지키던 이들의 눈이 가리워지고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한거지.
전쟁은 중단되었지, 공적이 나타났으니까. 인간들은 전우들의 탓으로 돌린 채 몸을 숨겨버렸어. 남은 세 존재가 빛나는 문을 막아 어둠을 다시 잠재웠지만, 빛의 존재들의 희생이 매우 컸었다고 해!”
잠시, 말을 멈추고 식어가는 음식을 입안에 쑤셔 넣은 타몬트가 물을 마시고는 물었다.
“재밌지? 어렸을 때 얼마나 이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여러 번 읽어달라 졸랐었어. 할아버지는 귀찮으실 법한 데도 늘 웃으시면서 읽어주셨지!”
“결말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젠 다들 재촉하기 시작한다.
“빛의 존재들이 바스러진 자리엔 녹색의 빛의 구체만 남았고, 다른 이들이 이를 챙겨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 어둠이 물러간 땅에는 누군가는 남아 그곳을 지켰고, 누군가는 떠나갔지. 인간에게 실망한 이, 재발을 막고자 하는 이 그리고 빛의 존재들을 기리는 이까지 떠나간 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는 게 결말이야.”
타몬트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루시안은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아서 지키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조만간 찾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