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5화. 수도 소피아로! (4)
“수도 소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리따운 여성이 마법진 관리소에서 일행과 전령을 맞았다. 전령은 서둘러야 한다며, 일행이 수도의 풍경에 빠질 틈도 주지 않았다.
“네칸 항구의 서신을 가져온 전령입니다. 여왕 폐하를 알현하러 왔습니다.”
전령이 왕성의 경비병에게 말을 했다. 칼 대장의 인장을 보여주자, 일행은 곧장, 왕궁의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휘유! 역시 왕성이라는 건가? 아주 고급품으로 장식해놨네!”
“곧, 여왕 폐하를 알현할 것이니, 복장을 단정히 하십시오.”
들뜬, 타몬트를 전령이 나무랐다. 이미, 오크와의 전쟁은 간략한 보고가 올라가 있었다. 긴급한, 서신은 이미 오고 가고, 남은 건 상세한 상황에 대한 보고. 이는 공에 대한 처리 과정이었다. 그래서, 일행이 응접실에서 느긋이 기다릴 수 있었다.
“여왕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시종을 따라, 일행은 넓고 화려한 알현실로 들어섰다.
크리스탈로 장식된옥좌에 여왕이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왕국의 별이신 클라리스 아미라즈 님을 뵙습니다.”
전령이 예를 다해 부복하며 인사를 하며, 서신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옆에 있던 궁내부 장관이 서신을 받아 여왕에게 전달한다.
서신을 읽어내린 여왕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전쟁은 잘 마무리가 되었으니 상을 내려달라는 것이로군요? 하, 이런 소규모의 전투도 전쟁이라고 치켜세운 걸 보니 상에 대한 기대가 큰가 봅니다. 재상은 네칸 항구의 주둔군에게 적당한 술과 음식 그리고 골드를 내리고 수고했다고 전해주세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여왕 폐하!”
“그리고, 흐음. 전령과 같이 온 저자들. 금패 용병 타몬트라 하였습니까? 그대들의 성과가 가장 크다고 적혀있군요? 덕분에 네칸 항구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다는 둥 이런저런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는 다 가져다 썼더군요? 칼이란 자가허언을 할 자는 아니니, 그대들에게도 상을 내리기는 해야 할 터인데······.”
옥좌에 손가락을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긴 여왕이 결정을 내린 듯 말을 이었다.
“궁내부 장관은 들으세요! 왕국의 국고 중에서 가장 낮은 급의 창고를 개방하여 이 자들에게 고르라 하세요! 물건은 한가지로 제한합니다.”
“너무 과하신 게 아닐지요?”
“이런 일에 인색하면, 그 누가 왕국의 일에 손을 들어 나서겠습니까? 용병들의 천성 상 술자리에서 떠드는 취미가 있지 않습니까? 술 좋아하고 입들 가벼운 게 용병들 아니었던가요?”
타몬트와 라펠라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으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걸리진 않았다.
“명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만! 물러들 가세요!”
일행은 알현실에서 쫓기듯 나섰다. 전령은 곧장, 네칸 항구도 돌아갔고, 루시안 일행은 시종을 따라 두꺼운 나무문이 달린 창고로 향했다.
“각자 하나씩 마음에 드시는 걸 고르시면 됩니다. 그 이상은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 다 고르시면 끈을 잡아당겨 종을 울리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시종이 자리를 벗어난다.
“진짜! 허름한 창고네!”
발터의 감상대로 정말, 허름해 보이는 창고였다.
“이야! 이렇게 허름한 창고가 왕국에 그것도 왕성 내에 다 있네? 게다가 하나씩만 챙기라고? 강조해서 말했지? 도둑 취급하는 거야? 뭐! 용병이뭐가 어쩌고저째?”
타몬트가 쌓인 게 많은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허름해 보여도, 마법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네요. 무언가 있긴 있나 봅니다.”
벽을 살펴보던 루시안이 말을 했다.
“여왕 폐하가 상당히 상에 인색하시네. 우리가 보상을 바라고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대우가 좀 그래. 게다가 용병에 대해 뭘 아신다고 참!”
가만히 있던 라펠라까지 서운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용병에 대해 말하는 건 좀 과하긴 했어요.”
발터가 라펠라를 위로했다.
“어휴! 누님도 참! 밝히는 루시안 덕분에 우리가 왕성까지 와보지 않았습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고 인색한 여왕은 잊어버리고 물건이나 찾읍시다.”
어느새, 투정을 마치고, 창고의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한 타몬트였다.
“타몬트 형, 밤을 울면서 보내게 해드려요? 무기도 새로 만들었는데?”
루시안이 슬쩍 제로를 꺼내 들었다.
“워워! 진정해 진정!”
“저 형은 참 적응력이 대단하네요. 투덜거리던 사람 어디 갔나 몰라요.”
발터도 라펠라도 창고안의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루시안도 일행을 따라 물건을 살피려는 찰나, 오른팔의 하얀 팔찌가 낮게 울리기 시작한다.
“음?”
현재, 루시안의 오른쪽 팔에는 검은 줄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하렌츠의 검은 팔찌와 반지를, 왼쪽 팔에는 벨가의 하얀 팔찌를 차고 있었다. 늘 차고 다니다 보니 있는 것도 잊었었는데, 갑자기 이 허름한 창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왼팔을 들어 팔찌를 보며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알 수가 없었다.
울리는 팔찌를 잠시 잊고는, 창고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진짜,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만 있어!”
“그러게, 먼지도 많고!”
“흐흐 난 이거다!”
타몬트가 거대한 대검이었을지도 모를, 고철을 들어 보였다.
“흐음. 이거 봉인마법이 걸려 있네요. 봉인을 풀어보면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대충, 둘러보니, 봉인된 물건들이나 출처나 사용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 즉! 가치가 애매한 물건들을 모아둔 곳이었네요.”
루시안이 타몬트의 고철 덩어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결론을 내렸다. 물론 마법의 힘을 빌린 결과다.
♣ ??????
- 세월에 낡고 바스라져 형체를 알 수 없는 대검
- 강력한 봉인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타몬트 형은 그거 잘 챙기세요. 공방에 돌아가면 제가 한번 풀어볼게요!”
“오오! 릴리스도 주고 대검도 주는 거야? 고맙다 진짜!”
“워워, 껴안지는 마시고요!”
껴안으려는 타몬트를 극구 말렸다. 발터도 무언가를 루시안에게 보여준다. 기대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도!”
♣ ??????
- 냄새나는 무언가
“흐음. 이건 아닌 것 같아 다른 걸 골라봐!”
발터는 해맑게 물건을 휙! 던져버리고 물건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루시안은 쓸만한 물건을 찾아, 창고 안쪽으로 향했다. 하얀 팔찌의 진동이 점차, 강해진다.
“무언가에 반응하는 건가?”
루시안은 왼팔을 살짝 들어 올리고는 창고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가 가장 강하게 울리네!”
그의 눈에 녹색의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먼지가 쌓여있을 뿐, 고급스러운 녹색의 정육면체 상자는 흠집 하나 보이질 않았다. 하얀 팔찌의 진동이 강해져 팔이 저릿하다. 그리고는 팔찌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루시안? 무슨 일이야!”
갑자기, 터진 빛무리에 일행이 놀라 달려온다. 정육면체 상자가 완전히 펼쳐지고, 안에서 녹색의 동그란 구슬이 하나 떠오른다. 그리고는, 하얀 팔찌를 향해 날아든다. 루시안은 동그란 구슬을 낚아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그게 뭐야?”
“오오! 역시 루시안인가 좋은 걸 구한 거 같은데?”
“에메랄드 같네! 예쁘다!”
“이게 제 하얀 팔찌에 반응했어요. 다들 하나씩 차고 있는데. 저한테만 반응을 해오다니.”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더 알 수 없는 건 그 물건의 정체였다.
♣ ??????
- 환수의 힘에 이끌린 무언가.
“정말! 알 수가 없네!”
라펠라도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방패 비슷한 거였다.
“루시안! 난 이걸 골랐어! 확인해줄래?”
♣ ??????
- 금속 ???으로 된 알 수 없는 방패
- 강력한 봉인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타몬트 형꺼보다 나은 거 같아요.”
라펠라는 환하게 웃었고, 타몬트는 그럴 리 없다며 고철 덩어릴 소중히 껴안았다. 발터도 이에 질세라 무언가를 들고 왔다. 작은 칼날 같은 거였다.
♣ ??????
- 주인을 기다리는???
- 강력한 봉인마법의 흔적이 보인다.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내꺼 다음으로 정체를 모를 물건이네!”
일행은 각자 물건을 챙겨, 시종을 부르고 왕성을 빠져 나왔다.
“여관 가자, 여관! 밥 먹고 쉬자!”
“누나! 수도에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던데요?”
“난, 주점을 살펴보겠어!”
“일단, 여관을 잡고 짐부터 풀죠!”
수도에 있는 깔끔하고 좋은 여관 하나를 잡고는, 각자 알아서 쉬기로 했다.
“하루 정도 쉬었다가 발테리안 마을이 있는 보브넨 영지로 이동할 거예요. 네칸에서 공짜로 마법진을 이용한 탓에 경비가 굳었습니다. 마법진으로 편하게 가죠.”
루시안의 결정에 다들 환호를 내질렀다. 비싸지만 편하니까. 일행이 빠져나가 혼자 남은 방안. 루시안은 녹색의 구슬을 보며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이거, 벨가님을 만나러 가야 하나? 분명, 이 하얀 팔찌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루시안이 왼팔을 들어 팔찌를 살펴보고는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벨가가 무언가 장난을 친 것인지는 몰라도, 루시안에게만 반응한 상황이라 상당히 궁금했다.
“마법을 가리는 힘, 분명 강력한 힘으로 막은 건데.”
일행은 현재 창고에서 가져온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루시안에게 맡겨놓았다. 아공간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비싼 아티팩트를 찬 루시안님이 모든 걸 책임지실 겁니다. 하하.”
타몬트는 일행의 물건을 모아 자연스럽게 떠 넘겼다.
“도서관과 서점도 가보고, 하렌츠의 다른 책들도 봐야겠어!”
하렌츠의 책과 공방에 있던 책들은 아공간에 넣어놨는데. 혹시나 여기에도 봉인에 관한 내용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금 비술서에는 연금술의 조합과 희귀 약초와 재료들의 갈무리 법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일단! 밥 먹고 한숨 자자!”
루시안이 잠에 빠져든 그 시각, 테이블에 올려둔 동그란 구슬이 살포시 떨렸지만, 루시안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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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게 낀 숲속의 저택 안, 하얀 백발에 적안의 미녀가 목욕하고 있었다.
“향이 너무 좋구나. 쓰는 게 아까울 정도로!”
미녀는 따뜻한 목욕물에몸을 푹 담그고 여유를 즐겼다.
“나의 편린이 기지개를 켜다니, 세상에 아직 남은 자들이 있었던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미녀는
“생각보다 재회의 날이 빠르겠구나!”
미녀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위로 솟았다.
“다음엔, 무얼 만들어 달라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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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낮잠을 즐긴 루시안은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마침, 무언가를 잔뜩 사 들고 온 라펠라와 그 짐을 나눠서 진 발터가 들어온다.
“그게 다 뭐야?”
“수도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길래 갔거든! 누나가 반해서 이것저것 고르다 보니.”
발터가 질린 얼굴로 대답한다. 반면, 환한 얼굴의 라펠라는 빵을 권유해온다.
“너도 먹어볼래? 루시안? 천연 벌꿀을 넣었대. 정말 달다?”
아기자기한 과자와 빵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과일이 듬뿍 올라가고, 꿀이나 설탕이 들어가 보기만 해도 달아 보였다.
“어윽! 맛있긴 한데 몸 서치리게 다네요!”
한입 베어 물어본 루시안이 급히, 물로 입을 헹구었다. 헹궈도 입안이 설탕으로 가득찬 그런 기분이 들었다.
“타몬트 형은요?”
“몰라! 어디 주점에 가서 술독에 절어 숙성되고 있겠지. 뻔하잖아?”
라펠라는 그 다디단 빵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어치우고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표정은 덤이었다.
“계획을 살짝, 바꾸어야 할 거 같아요. 일단, 수도에 온 김에 정보와 연금재료를 산 다음에 이동하려고요.”
“그, 물건들 때문이지?”
여관에서 내어준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며, 라펠라가 물어온다.
“그렇죠. 제 녹색 구슬도 그렇고 다른 물건들도 그렇고. 도서관이랑 서점에 들러볼 생각이에요. 시간을 내서 연금재료 상점과 공방, 상인에게도 가볼 생각이고요.”
“네가 찬 하얀 팔찌만 반응했으니까, 네 계획엔 마녀의 숲에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겠네?”
“그렇죠. 당장은 힘들지만 이른 시일 내에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루시안 내가 도울 건 없어?”
발터가 매콤한 스튜를 떠먹으며 일을 달라 했다.
“책을 뒤져야 하는 일이야. 너 금방 잠들걸?”
“해볼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나 알려줘!”
발터의 의지에 일을 나눠주었다.
“그러니까, 누나와 발터는 마녀의 숲과 녹색 구슬에 대해서 알아봐 주면 될 것 같아. 나는 연금술과 봉인해제 시약에 대해 알아볼게!”
“수도에 내가 아는 정보상 들이 있어. 밤에 의뢰를 넣고 올게.”
“감사합니다. 라펠라 누나. 발터도 고맙고!”
문득, 자리에 없는 타몬트가 생각난 발터.
“타몬트 형이 자기만 빼고, 우리끼리 돌아다녔다고 화내진 않겠지?”
“타몬트가 그러면 누나가 혼내줄게! 걱정 마라 발터!”
라펠라가 허공에 주먹을 날려보인다.
“발터! 빨리 일 끝내고 마을에 돌아가자. 벌써, 마을이 그리워진다.”
“나도 그래!”
그날 밤, 침대에 누은 루시안의 머릿속은 녹색구슬로 가득차 있었다.
‘녹색 구슬의 정체가 뭘까? 은근히, 기대된단 말이야!”
어느새 잠든, 루시안의 옆, 달빛을 받은 구슬이 살짝 떨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