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8화. 마녀의 숲(3)
8화. 마녀의 숲(3)
“어이! 형씨! 그렇게 소리치면 어떻게 해! 다른 놈들이 몰려오면 어쩌려고?”
발터가 본 것은 거대한 하얀 뱀이었다. 일행의 주위를 뱀의 거대한 몸통이 감고 있었다. 발터가 본 열매의 정체는 그 뱀의 눈이었다.
안개를 뚫고 뱀의 거대한 대가리가 튀어나온다. 입맛을 다시듯이 혀를 날름거린다.
“저건 나도 처음 보는 몬스터야. 비슷한 스네이크 류의 몬스터들은 보았지만 이렇게 크고 하얀 놈은 처음이네”
타몬트가 대검을 고쳐 들고 긴장한 듯 말을 했다.
“뱀에 휘감기지 않게 주의하셔야 합니다. 저 뱀에게 조이기를 당하면 그대로 으깨져 버릴 테니까요.”
발터도 활을 고쳐 들고, 화살을 쟀다.
<이 숲에 들어온 외부자들에게 묻는다. 이 숲에 무슨 일로 왔는가?>
“어? 뱀이 말한다.”
<내 이름은 벨가. 이 숲의 주인이자 사명을 다하는 자이다. 다시 묻는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 숲에 들어왔는가?>
“저는 연금술사로 재료를 구하러 왔습니다. 제가 아는 이름은 크나르 열매이고, 하얀 나무에 붉은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루시안이 나서서 설명했다.
<그런 나무라면 알고 있다. 교미 열매를 찾으러 온 인간은 처음이군.>
“뭐? 교미 열매? 형씨가 찾는 게 그거였어?”
“.........”
타몬트의 눈이 루시안게에 꽂힌다. 음흉한 눈빛이다. 라펠라는 얼굴을 붉힌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큼큼, 의뢰 때문에 온 겁니다. 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저기 형씨, 그거 남으면 나도 좀 나눠줄 수 있어?”
타몬트가 살갑게 말을 건네온다. 루시안은 무언의 긍정을 표하자, 타몬트가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보인다.
“역시, 마리엔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최선이었어!”
발터가 중얼거렸다.
<교미는 당연한 본능 아닌가? 왜들 그리 부끄러워하는 게지?>
“아닙니다. 얼마나 내어 주실 수 있습니까?”
<아직 교미의 시가가 아닌지라 여유는 많다네. 워낙에 열매를 많이 맺는나무이기도 하고 말이지.>
벨가가 혀를 날름거리더니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가만히 있었다.
<흠, 그래 열매를 그냥 내어주면 재미가 없질 않은가? 나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열매를 내어 주지. 어떠한가? 나의 제안이?>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어떤 것을 부탁하고자 하십니까?”
벨가가 한참 고민을 하더니,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 숲에서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잠과 비늘을 단장하는 일이지. 하얗고 반짝이는 윤기 있는 비늘은 나의 자랑거리라네. 그런데 요즘 비늘이 윤기도 없고 푸석푸석해 고민이라네. 듣자 하니 연금술사라고 하였으니, 나를 위한 물품을 하나 만들어주지 않겠나?>
저런 의뢰라면 해본일이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만들어 드리는 거야 상관없지만, 공방이 아니라서 만들기 어려운 데다 재료도 구해야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오래전, 이 숲에 살던 연금술사의 공방이 남이 있을 테니까. 한 오백 년쯤 되었나? 아무도 건드리질 않았으니까 괜찮을 것이야!>
“벨가님? 일단 공방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몸을 내게 맡기게 잠시 어지러울게야!>
벨가의 꼬리가 일행을 휘감는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벨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웩!”
“어어어. 나 살아있는 거야?”
“루시안님 약 없습니까?”
“........”
청룡열차를 타고 내달린 기분이었다. 숲 지대를 따라 웨이브 치는 벨가의 몸뚱이를 따라 일행은 공중에서 위아래 좌우로 흔들리며 허공을 끌려다녔다.
<여기일세, 이곳은 500년 전, 이 숲에 찾아온 내 마지막 인간 친구가 머물던 곳이었네>
커다란 바위 절벽 가운데 두꺼운 나무문이 달려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데?”
“보존마법이 걸려 있어. 내부도 멀쩡할 가능성이 커”
일행이 신기하다는 듯이 뒤를 따랐다. 거대한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동굴 안은 밝았다. 마법 등이 달린 내부는 매우 안락해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응접실이었는데 깔끔한 탁자와 가구가 보였다. 왼쪽엔 서재가 있었는데. 서재의 의자에 해골이 앉아있었다.
“이곳의 주인인가?”
루시안은 동굴의 벽 한쪽을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킨 단검으로 깎아내고 바닥을 팠다.
“형씨 뭐해? 묻어드리려는 거야?”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관은 준비하기 어려우니 이렇게라도 해드려야죠”
루시안이 해골을 수습하고자, 손을 대자 갑자기, 시체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 흐음? 여긴 벨가가 지키고 있을 텐데? 어찌 들어온 것인가?
하얀 긴 수염을 자랑하는 땅딸막한 할아버지가 허공에 둥둥 떠서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루시안은 간략히 이야기를 전달했다.
‒ 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는가? 그 친구가 전해준 유품이 영혼을 잠시 얽매어 두는 것이었나 보군. 무정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렇게나 보고 싶었으면 말을 할 것이지. 쯧쯧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유령.
‒ 난 하렌츠 그로하임이라 하네. 연금술사로 살아가던 자였네. 사정이 있어 모든 걸 버리고 이 금지라 불리는 마녀의 숲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네. 후계도 남겨두질 않았고, 제자도 없다네. 벨가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하였으니 공방 내 기구를 사용하시게나. 그리고, 여길 열어보면 선물이 하나 있을 걸세.“
하렌츠가 가리킨 서랍을 열자 팔찌 하나가 나타났다.
“이건 아공간 마법이 새겨있는 아티팩트군요?”
‒ 확실히 보는 눈이 있는 친구군?
“다시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저도 미약하나마 연금술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 그렇군 그랬어. 이것도 하나의 인연일 테지. 연금술의 길을 걷는 후배에게 선물을 주어야겠네. 적당한 것이 있군. 여기 내 연금술을 정리한 책을 주겠네.
하렌츠가 손짓하자 하렌츠 뒤쪽의 벽에서 책이 한 권 튀어 나왔다.
- 꽤 볼만할걸세! 끌끌
“감사합니다. 선배님.”
- 선배님이라 그거 듣기 좋은 소리군. 연금술사에게 가장 필수적인 건 재료의 보관일세. 잘 갈무리된 재료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네. 둘째론 연금술의 실력과 세 번째로 마나의 자유로운 수발이고. 지식은 기본이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겠네.
다시, 서재의 서랍이 하나 열리고, 이번엔 반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건 재료보관함일세. 재료를 채집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보관시켜주지. 연금의 길에서 빛나는 별을 만나리라!
“연금술의 길에서 빛나는 별을 만나리라!”
하렌츠의 형상이 서서히 사라졌다. 뼈가 먼지가 되어 흩날린다. 루시안이 허공에 흩어지는 먼지를 모아 빈 병을 찾아 담았다. 그리고는 묘지로 잡아둔 장소에 잘 매장했다.
동굴의 벽에 하렌츠 그로하임이라 적고 ‘위대한 연금술의 길에서 빛나는 별을 만나리라’라고 적어 넣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이 그제야 다가온다.
“오! 형씨 진짜로 멋진 연금술사 같았다니까?”
“루시안 반지 좀 보자 반지! 반지!”
“500년 전의 인물과 만나다니 참 신비로운 경험이네요.”
타몬트가 신이나 떠들었고, 발터는 반지에 정신이 팔려잇었다.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백발의 긴 머리, 붉은 입술과 붉은 눈 그리고 하얀 로브를 입은 여인이었다.
“하렌츠그자를 만난 것이냐?”
“벨가님?”
“이런 모습은 낯설지 모르겠구나?”
“아,아,아름다우십니다. 누님!”
타몬트가 한눈에 반했다는 듯이 소리쳤다.
“호호호! 역시 인간은 재밌느니라!”
“공방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결과물을 만드는 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거참 반가운 소리로구나”
“재료를 구하려면 일단 숲을 좀 돌아다녀야 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가능하느니라”
벨가가 허공에 손짓하자 하얀 실 가닥들이 허공에 맴돌다 각자의 팔뚝에 채워진다.
“내 기운이 담긴 팔찌이니라. 안개는 너희의 방해물이 되지 않을 것이며, 숲의 어느 존재도 너희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니라.”
“감사합니다. 벨가님”
“일이 끝나면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거라. 그럼 내가 올 것이니!”
이내 벨가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우와! 팔찌 멋있다. 루시안 이거 계속 차고있어도 되는 거야?”
“아마 숲을 나서면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벨가 님의 기운을 담은 거잖아”
“오오. 벨가님 아름다우십니다.”
타몬트는 완전히 벨가에 빠진 듯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팔찌가 참 예쁘네요.”
라펠라는 팔찌를 쓰다듬으면서 정말 맘에 든다는 듯이 말했다.
“루시안! 너를 따라오니까 재밌는 일이 진짜 많다.”
“의뢰를 조르길 잘했어, 잘했어! 타몬트! 나를 칭찬해 타몬트!”
나사가 반쯤 풀려 헤헤거리는 타몬트의 모습에 모두 혀를내둘렀다.
“그런데, 어떤 걸 구할 건데?”
“안 그래도 생각해둔 게 있어.일단 달팽이의 점액과. 슬라임 체액하고 향긋한 냄새를 가진 풀이나 열매, 수분을 머금고 있는 식물 등을 찾아야 해.”
“저분은 빼고 가자.”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타몬트는 여전히 벨가를 부르며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타몬트를 제외한 일행은 마녀의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식물과 나무들 몬스터와 동물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정보분석마법을 걸어 효능을 살피고 재료를 갈무리해 보관했다.
“으으윽! 끈적거려. 이걸 바른다고.?”
“오 이거 이슬이 잎을 코팅하듯이 감싸고 있어!”
“이거 열매 맛이 좋은데 기름진 맛이나.”
다시 돌아온 일행들.
“가서 빈방에서 쉬고 계세요.”
루시안이 공방에 들어섰다.
“피부에 잘 발리고, 흡수력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보습력과 향기를 가져야 하고.”
솥단지에 마나 정제수를 끓이고, 달팽이 점액과 슬라임 체액을 넣어 졸였다. 그리고, 여러 부재료를 넣고 잘 섞었다. 가장 위에 뜨는 불순물 덩어리를 마나로 태워버리고는 마지막으로 향을 집어넣었다. 빈 그릇에 떠내어 서서히 식도록 두었다.
그리고 다시 플라스크를 준비해 증류 관을연결하고 액상형 입욕제를 만들었다. 각종 허브를 주재료로 삼아서 만들어냈다. 향긋한 향이 감도는 분홍색의 액체가 담긴 큰 유리병과 크림 형태의 보습제가 담긴 큰 통이 준비되었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벨가님을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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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하였느냐? ”
“양을 많이 만들고 과정이 번잡하여 5일이나 걸렸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크림처럼된 것은 직접 바르시면 되는 것이고 액체로 된 것은 목욕하실 때 물에 몇 방을 타서 쓰는 것입니다.”
크림을 살짝 손에 발라본 벨가가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느낌이 매우 신기하구나? 손이 매우 보드랍구나. 막 씻은 듯이 물기도 있는 것 같고. 이거 참 신기하구나”
벨가가 아주 완벽히 만족해했다. 벨가는 손을 들어 허공에 세로로 그었다.
그리고는 그 틈새에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손에는 잎사귀로 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크나르 열매니라”
크나르 열매는 도토리 같았다. 주먹만 한 크기에 빨간 껍질로 되어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열매가 상당히 크네요. 다들 챙길 수 있을 만큼만 챙기죠!“
”인간이란 탐욕과 이기심의 결정체라 들었네만, 자네들은 특이한 부류인 것 같군. 하렌츠 이후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인간은 처음인듯하구나.“
”인간이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니까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옅은 미소를 띤 벨가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져간다.
<오랜만에 인간을 만나 즐거웠느니라. 가끔 놀러 와주어도 좋을 것 같구나.>
벨가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다.
<아! 팔찌는 나의 선물이니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내가 다 기쁘군. 조심히들 돌아가게나.>
허공에 흩어지며 울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일행은 숲 밖으로 향했다.
“다행이긴 하네. 저런 덩치 큰 몬스터랑 안 싸워도 되니까 말이야. 싸웠으면 엄청 힘들거나 죽었을 걸?”
“몬스터보단 환수인 것 같습니다. 저런 힘이나 외형을 보아 이곳 마녀의 숲은 무엇인가를 봉인한 봉인지로 보입니다. 수호자가 저토록 강력하다면 봉인도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니까요.”
”저희의 여행이 무사히 끝났다는 게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선물도 받았고요.“
루시안이 팔찌를 들어 보였다. 팔찌 덕분인지 일행은 손쉽게 안개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다.
“휴! 무사히 빠져나왔네요.”
발터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근데 루시안 그 열매 효과가 그렇게 좋아?”
“왜? 먹어 볼려고?”
발터가 얼굴을 붉혔다.
“이봐! 활쟁이 형씨! 먹고 흥분하면 어디에다 풀려고 그래? 하하핫”
발터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
라펠라는 말을 잃었다.
“하하하! 마녀의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우리가 최초일 거라고! 큭큭. 좋았어! 술안주 추가다!”
타몬트가 팔찌를 만지며 말했다.
“글쎄요. 마녀의 숲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겨우, 쌓은 호감을 깎아 먹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 숲에 오면 타몬트 아저씨는 한입에 꿀꺽! 삼켜질지도 모르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하하!”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흘리는 타몬트였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짙은 안개 속 붉은 눈동자가 보인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