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2화. 에피엔 연금술 공방(2)
2화. 에피엔 연금술 공방(2)
일단은, 그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보였다.
“연금술 실험하다가 그랬어.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네.”
“마리엔, 말도말아, 내 이름도 모르더라,”
발터의 칭얼거림도 그녀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루시안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이미 반쯤 넋이 나가버린 상태다.
“신관한테 데려가 봤어?”
“안 간대, 기억은 잃었는데, 고집은 안 잃어버렸더라.”
발터가 불만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야! 루시안! 내가 너 덤벙거린다고 주의하라고 했지? 마나가 불안정해서 사고 터지니까 조심하라고 했지? 도대체가 몇 번을 말해야해! 어!”
그녀는 루시안의 멱살을 양손으로 잡고는 앞뒤로 흔들며,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이런 취급은 처음이라 멍하다. 마을 최고의 미녀가 꽤나 터프하다.
한참을 잔소리를 퍼붓던 그녀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정말 급격한 감정기복이다.
“내가 다치지 말라 했잖아! 나한테 왜그러냐고! 으아앙.”
“또, 운다. 또 울어! 어휴, 진짜 저 말괄량이 울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베티에게 무어라 말한다. 베티가 손을 닦더니, 루시안에게 다가와 등짝을 후려친다. 정신이 번쩍뜨는 충격이 등을 타고 뼛속까지 전달된다.
“아흑!”
“엄마! 더 때려 더! 이런 말 안 듣는 애는, 맞아야 해!”
“잠시만요! 잠시만. 저 아직 환자예요. 환자!”
모녀가 합심해 공격을 해오자, 다급히 그들을 말렸다.
“환자면 치료실에 누워있지 않겠니? 멀쩡히 잘 돌아다니잖니?”
베티가 싱긋 웃어 보이며, 등을 후려쳤다.
마리엔은 여전히 루시안의 멱살을 잡고 울고 있고, 옆자리엔 앉은 발터는깔깔거리며 웃고 있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없다.
베티가 식사를 가져온다며, 자리를 떴다.
‘후, 더 안 맞아서 다행이야. 정신이 번쩍 드네! 그냥.’
“그러니까 그게 하···. 미안해, 다음엔 조심할 테니까 멱살은 좀 놓고….”
“다치더니, 사람이 바뀌었어! 내가 알던 루시안은 이러지 않았다고! 얼마나 다친 거야! 으아앙!”
“아직도 울고 있네! 이년아, 그만 쳐울고 올라가서 방 청소나 해!”
“아씨! 엄마는 누구 편이야!”
베티가 턱하고 투박하고 커다란 그릇을 내려놓는다. 그릇 가득히 토끼 스튜가 담겨 있었고, 테이블에 올려둔 바구니엔 큼지막한 호밀빵이 넘칠 듯 담겨있었다.
“마리엔은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라.”
베티가 무심히 말하며, 주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마리엔, 그만 울고 밥이나 먹자.”
루시안이 밥 먹자고 하니까, 그제야 멱살을 푼다. 옷자락으로 눈물을 찍어낸 마리엔이 우걱우걱 빵을 베어 물고, 스튜를 퍼먹기 시작한다. 내숭도 스튜에 곁들여 퍼먹는 듯 했다.
“뭘, 그리 놀래? 원래 저러니까 신경 꺼!”
빵을 크게 물고도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발터의 재능이 신기했다. 스튜는 맛이 좋았다. 고기도 상당히 부드러웠고, 잡내도 나지 않았다. 루시안은 만족스럽게 스튜 한 그릇을 비워냈다.
발터는 어느샌가 스튜 한 그릇을 더 퍼온 후, 이를 먹으며, 의뢰에 대해 물었다.
“내일, 캐난 영지에 언제 갈 거야?”
“캐난 영지?”
“그 의뢰 때문에 납품하러 가야 하잖아!”
“아! 거기가 캐난 영지야?”
“에휴, 어떻게, 기억하는 게 하나도 없냐? 나랑 가자! 안내해줄게. 아침 먹고 출발하자고.”
“야! 나도 갈래!”
둘이서 옆 영지로 간다니까, 마리엔이 같이 가겠다고 끼어든다.
“마리엔, 넌 여관일 도와야지, 베티 아줌마힘드시잖아!”
“치잇! 발터가 도와드리고 내가 가면 되잖아? 안 그래?”
“가는 길에 숲이 있는 거 몰라? 몬스터가 있다고! 위험해서 안 돼!”
“아! 몰라, 내일, 엄마한테 여관 닫으라고 하고 나도 갈 거야!”
발터의 제지에도,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그릇을 들고 일어나버린다. 발터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버린다.
“쟤는 언제나 내숭이란 걸 배울까? 다른 여자애들은 부끄럼도 타고 그러던데. 쩝”
발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루시안은 그게 나쁘진 않아 대꾸했다.
“뭐! 보기만 좋은데, 뭘 그래?”
“그래! 너희 사이에 껴있는 내가 문제지. 그래 내가 문제다!”
투닥거리며, 식사를 마친 그들은, 베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공방으로 향했다. 루시안은 발터에게 할일이 있으니, 먼저 자라고 했다.
“2층엔 올라오지 마! 중요하게 할 일이 있는데, 방해받으면 안 되거든.”
“친구 사이에 비밀이 어딨다고? 알았다 알았어! 못되고 나쁜 친구는 찌그러져 있을게!”
감추는 게 있어 보이자, 추궁하고 드는 발터였다.
“하! 내일 숲 지나간다면서? 약간의 준비를 해두려고 하는 거야”
“약골이자 마나 불량자가 퍽이나 도움 되겠다. 넌, 그냥 내 뒤에서 따라오면 된다니까?”
”아까, 사고로 깨달은 게 있어서 그래. 먼저 자라 좀!“
”뭐라고? 너도 갑자기 막 강해지고 그러는 거야? 깨달음을 얻으면 기사도 마법사도 막 강해지고 그러잖아.”
말실수 하나 했더니, 더욱 귀찮게 한다.
“소설은 그만 보고 자라!”
“이젠, 너까지 날 무시하냐! 착한 루시안은 어디 가고 못된 루시안이 온 거냐고! 서럽다, 서러워!”
할 일도 많은데, 자꾸 귀찮게 하니 마나를 써서 재워버렸다. 슬립 마법을 쓴 것이다. 잠든 그를 대충 빈방의 침대에 던져 두었다.
“에휴, 그러게 자라니까, 말을 안들어!”
손을 턴 루시안은 지하실로 내려가, 미리 봐두었던 재료 몇 가지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는 뿌리부터 잎사귀, 꽃까지 모두 새빨간 풀이었다.
“분석 감정”
푸른 빛이 감도는 검지가 풀에 닿으며, 정보창을 띄운다.
♣ 파틸란
- 뿌리부터 잎사귀, 꽃까지 모두 붉은 풀
- 화기에 매우 취약하여 쉽게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취급에 주의해야 함
그리고는, 붉으스름한 광물을 꺼내들었다.
♣ 스랄나이트
- 충격을 받으면 불꽃을 냄
- 부싯돌로 애용됨
루시안은 두 재료와 지하실에 있던 광물들과 연금 시약들을 꺼내왔다. 지하실 한쪽에 연성 마법진을 그리고는 그 위에 가져온 재료들을 놓았다. 마나석3개를 올려 부족한 마나를 보충했다.
“빨리, 체질 개선을 하든지 해야지, 고작, 1서클이라니!”
손에 마나를 일으켜 연성 마법진에 가져다 댄다. 마나가 진을 타고 퍼지며 마나석과 공명한다. 올려둔 재료가 푸른 기운에 휩싸인다. 연성할 이미지를 떠 올리고는 그 모습을 실체로 구현화 시키기 시작했다. 진에 연결된 마나석이 빛을 다 잃어 투명해지고, 루시안의 몸의 마나가 고갈되었을 때 연성 마법진에서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권총 두 자루였다. 그리고,기본으로 사용할 총알도 만들었다. 지하실에 있던 가죽 조각으로 홀더를 만들고, 탄알집을 꽂을 벨트도 만들었다.
기본적인 무장을 마친 루시안은, 연성 마법진을 지우고, 새로운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지하실에 있던 마나석을 모두 마법진에 배치했다. 총 5개였다.
1층에서 가져온 마나 회복제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마법진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법진과의 마나 공명을 시작했다. 체내의 모든 마나를 방출해 마법진에 연결시켰다.
“1단계, 서클을 깬다.!”
마법진의 마나를 써클로 밀어 보내 불안정한 써클을 과부하를 시켜 깨뜨렸다.
“2단계, 마나를 각 세포에 담는다!”
몸 안에 서클이 깨져 갈 곳을 잃은 마나를 천천히 움직여, 전신의 세포로 보낸다. 마나가 서서히 세포로 스며든다.
“3단계, 혈맥과 세포의 마나 공조를 이룬다.!”
세포로 스며든 마나가 완전히 자리를 잡자, 이곳에서 조금씩 마나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이를 모세혈관으로 보내, 전신의 혈맥을 따라 마나가 흐르게 한다. 마나는 자연스레 심장에 머물게 된다.
“4단계, 혈맥을 따라 흐른 마나를 근육과 뼈까지 전달한다.!”
혈관을 돌던 마나가, 근육세포와 뼈에 스며든다. 근육과 뼈가 강화되고, 뒤틀렸던 몸이 교정되면서, 쌓였던 노폐물이 혈관을 타고 흘러 세포를 통해 피부로 배출된다.
마법진에 강력한 열기가 맴돈다. 마지막 정화단계였다. 피부로 나온 노폐물과 옷가지가 완전히 타버린다. 피부가 뽀얗게 변하고, 키도 커졌다. 외모도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아! 옷을 벗고 한다는 걸 깜빡했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다. 몸을 점검해보니, 불안정한 1서클이 사라지고, 마나와 신체가 완전히 합일을 이루었다. 신체에 마나가 자연스레 깃들어 숨 쉬듯이 마나가 쌓이고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마나가 제법 쌓였네? 마음에 드는 결과야!”
마지막으로, 두 자루의 권총에 마법부여 및 각인 작업을 한다.
“관통, 흔들림 보정, 타겟팅을 부여하면 되겠네! 총알은 포션을 이용해 특수탄을 만들어야겠군.”
그럭저럭 쓸 만한 총을 보자 문득, 전생에 두고 온 애병이 생각난다.
“내가 아니면 쓰지도 못할 무기일 텐데, 누구 손에 들어가 있으려나? 아! 그 오두막을 찾기도 쉽지가 않겠구나! 그래, 이번 생에서도 빨리 다시 만나자. 오딘!”
루시안은 묵빛의 권총 두 자루를 손에 꼭 쥐고 건 카타를 기초로 전생의 체술과 단검술을 결합하여 만든 독창적 체술인 나락을 시연해보았다.
양손의 총을 쏘고 반동을 이용해 몸을 다시 역방향으로 튕겨 앞으로 튀어 나간다.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총알을 쏘고, 착지하며 발차기로 적의 하체를 노린다. 쓰러진 적의 목에 총구 아래로 생성한 마나블레이드를 찔러 넣는다.
무언가 동작이 매끄럽지가 않은지 루시안이 얼굴을 찡그린다.
“아직 몸이 완전하질 않네! 생각대로 육체가 따라오질 못해. 개조해서 그나마 이 정도라니! 에휴.”
알몸으로 1층으로 올라가 길어둔 물을 이용해서 간단히 몸을 씻어냈다.
“나중에 여기에 상수도를 깔아버려야겠어. 귀찮네!”
옷을 갈아입고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간 루시안은 포션 병과 파틸란과 스랄나이트 외 여러 독물, 불안정한 폭발물들을 챙겨서 2층으로 향했다.
“폭발형 포션 기본형, 쇳조각을 넣어 만든 비산폭발형 포션에, 독액을 담은 포션, 이건 최루탄이고”
포션을 여러 개 만든 다음, 간단한 연성진을 빈 책상에 그렸다. 그리고는 포션을 두고는 총알에 쓰일 구리주괴를 올려 특수탄을 제조했다. 별도의 탄창에 만들어진 특수탄을 채워놓고는, 포션도 포션 벨트에 채워두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친 후, 늦은 잠을 청했다.
2시간 후, 잠에서 깬 루시안은 집 안에 있던 달걀과 빵을 이용해 간단히 토스트를 만들어 아침을 해결했다.
밖으로 나가 시장과 잡화점, 대장간을 방문했다. 다행히도 일찍 연 곳이 있었다. 육포와 건량, 단검두 자루와 여행물품을 산 후, 마구간에 들러 말 두 마리를 샀다.
다시 공방으로 돌아와 보니, 발터는 여전히 침대와 한 몸이었다. 버리기로 했다.
“잘 자라고! 나 혼자 갔다 올 테니까!”
영주에게 넘겨줄 물건과 간단한 여장까지 챙겨들고 거기에 포션 벨트까지 챙겼다. 길은 가면서 물어보기로 했다.
“자 이제 가볼까?”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문을 박차며 들어오는 마리엔과 딱 마주쳤다.
“야!! 루시안 갔냐?”
그 소동에 발터도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발터의 눈에 보인것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기 직전의 루시안이었다.
“야! 루시안 너 혼자 갈려고 했냐!”
“와! 나 안왔으면, 그냥 두고 갔겠네? 너 딱 걸렸어!”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 거리던 마리엔이 결판을 내겠다는 듯이 두 팔을 걷어올린다.
“야! 루시안. 내가 어제 뭐라고 했어? 같이 간다고 했어? 안 했어?”
골치가 아파져 머리를 짚었다. 그 와중에 발터는 유유히 옷을 입고, 식탁에 둔 토스트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마리엔 이거 봐라? 루시안이나 먹으라고 빵을 구워줬다! 엄청 맛있다?”
“야 그런걸. 너만 먹냐?”
얄밉게 말하는 발터의 멱살을 마리엔이 붙잡고 흔든다.
“캑캑! 야! 나 숨 막혀 죽어!!”
루시안은 둘이 싸우는 틈을 타, 밖으로 나가버렸다.
“야! 문 잘 잠그고 나와라!”
발터가허둥지둥 옷을 마저 입고는, 활을 챙겨 뒤따라 나섰다. 마리엔도 그 뒤를 따랐다.
“야! 반대쪽이야 임마! 길도 모르는 놈이 무슨 자신감이냐?”
“너희들, 오는 시간 벌려는 거였어!”
“와! 뻔뻔하다. 루시안이 이렇게 뻔뻔할 줄은. 야! 마리엔 이게 루시안의 실체다.”
“뭐래?”
루시안에게 뭐라하는 발터를 째려보고는 루시안에게 달려가 팔에 매달린다. 당황해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둘을 보니 준비라곤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맨몸이다.
“그런데 너희 둘은 왜 아무것도 없어?”
“난 활만 있으면 되니까!”
“난 발터가 지켜줄 테니까!”
“하!”
“그래도, 너무 하지 않냐?”
일단은 마구간으로 가 말을 받았다. 두 마리라서, 한 마리는 발터가, 다른 한 마리는 루시안과 마리엔이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너 말 탈 줄도 알았냐?”
“어! 네가 모르는 비밀이 아주 많아.”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마리엔을 말에 태우고, 루시안도 올라탔다. 그리고는, 포션 벨트를 풀어서 마리엔에 건넸다.
“이건 마리엔이 써, 꺼내서 그냥 던지면 되는거야. 대신, 멀리에서 던져야 해! 안 그러면 아군까지 다칠 수 있어!”
“우와! 색깔이 알록달록한게 예쁘다.”
“빨간 건 폭발하는 거고, 녹색은 독이야. 검은색은 나중에 내가 말하면 주면 돼!”
“우와 재미겠다! 던지는 맛이 있겠어!”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여러 번의 전생 동안 처음 보는 캐릭터다.’
“루시안! 내껀 없어?”
잔뜩 기대한다는 표정으로 물어오는 발터의 기대를 무참히 뭉개주었다.
“어! 없어.”
“에이! 친구한테 줄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마리엔은 저런 어마무시한 걸 줘놓고?”
“어! 없어.”
“친구 다 소용없다! 자기 여자만 챙기는 더러운 현실!”
“응, 잘 아니 다행이네”
헛소리가 길어질듯하니, 빠르게 길을 나서기로 했다. 루시안이 고삐를 세게 당겼다. 말이 튀어나간다.
“빨리 가자!”
“하! 진짜 너무한다. 야! 그쪽 아니라니까!”
투닥거리며 멀어지는 일행의 뒤로, 에피엔 연금술 공방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인사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