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81화
대륙에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빈첸이 이룩한 모든 무위는 각종 소식지들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떤 이들은 빈첸을 위한 신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주의 탄생에 수많은 이들이 기뻐했다.
율리안이 말했다.
“제대로 된 가주 즉위식을 치러야 해요.”
“가주 즉위식?”
지난 며칠간 빈첸은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데이븐과 싸우기 이전의 몸 상태였고, 몸은 어느 때보다 가뿐했다.
“네. 태양이 떠올랐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해야죠. 꼭 필요한 절차에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무는 어머니와 상의하여 진행하면 되겠군.”
“나보고 하라는 얘기죠?”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느냐?”
“아무튼 귀찮고 번거로운 건 다 나한테 떠넘긴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율리안은 무척 기뻤다.
무언가 자신에게 일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것도 가주의 권한을 일부 대행하는 역할.
“바르곤 경을 스카웃한 건 진짜 신의 한 수였어요.”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
“헤르카 경 밑에서 단련되어서 그런가, 혼자서 한 10인분쯤 하는 것 같아요.”
율리안.
베르사.
바르곤.
이 세 명의 조력 아래, 아덴카의 전반적인 상황들은 금방 정리되었다.
[절대적인 무가(武家)의 탄생!]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태양이 떠오르다.]
사미온이 다스리던 모든 도시들은 아덴카의 영역이 되었다.
그 어떤 가문도 감히 그것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
[홀로 사미온을 집어삼킨 아덴카의 태양.]
전후사정이 어찌 됐든, 세상 사람들은 빈첸 혼자서 사미온을 무너뜨렸다고 인식했다.
그렇기에 사미온이 남긴 것들은 모두 아덴카의 것이었다.
아덴카의 집무실에서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던 바르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반발은 그다지 없군요.”
“무슨 반발?”
“사미온이 다스리던 영역들에는 수많은 이권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마정석 광산 채굴권은 물론이거니와 효용가치 높은 마물들이 서식하는 서식처, 마탑과 케르빌로 향하는 주요 거점 도시들…… 음?”
바르곤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모르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으아악!”
천장 위에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바르곤 입장에서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바르곤 경, 안색이 너무 좋아 보이네. 여기가 살 만한가 봐.”
힐끗 책상을 살펴보았다.
책상에는 수많은 서류더미가 널려 있었다.
저렇게 많은 서류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안색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내 품을 벗어나니까 행복해?”
“물론입니다.”
“바르곤 경처럼 유능한 사람이 빠지니까 붉은 요새는 엉망이 되어버렸어.”
“저보다 더 유능한 후임들이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걔네들은 재미없단 말이야.”
헤르카는 헤헤- 웃었다.
바르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요새장이 여기서 농땡이 피우고 있으면, 제 후임들이 고생하지 않습니까?”
“나 쫓아내는 거야? 매정하게? 그래도 우리가 함께한 세월과 정이 있는데? 차라도 한 잔 대접 안 해줘? 바르곤 경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이었어?”
“…….”
바르곤은 울며 겨자먹기로 헤르카에게 차를 대접했다.
“차가 왜 이렇게 미지근해?”
“뜨거우면 오래 마실 거 아닙니까?”
“그래서 빙결마법으로 식힌 거야? 나 빨리 쫓아내려고?”
헤르카가 또다시 히히 웃었다.
그녀의 속내를 알 수 없던 바르곤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일해야 합니다. 안팎으로 단속할 것이 너무 많아서요.”
“바깥으로 단속할 건 내가 도와줄게. 나 싸움 잘하거든.”
지금 같은 시기에는 무엇보다 치안력 확보가 우선이었다.
헤르카는 8성에 가까운 7성 무인이었고, 그녀라면 아덴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바르곤은 순간 혹할 뻔했다.
“붉은 요새의 요새장은 원래 각종 임무에 투입되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생색내듯 말할 문제가 아닙니다, 헤르카 경.”
“대신 조건이 있어.”
“제 말을 듣기는 한 겁니까?”
“나랑 사귀자.”
바르곤의 몸 주변의 마나가 들끓어 올랐다.
이제는 하다 하다 별 이상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자신을 귀찮게 만들었다.
“바쁩니다.”
“바빠도 연애는 할 수 있잖아.”
“…….”
바르곤은 입을 다물고 헤르카를 바라보았다.
헤르카는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다.
“농담은 그만 두십시오.”
“진담인데.”
“헤르카 경이 왜 저랑 사귀고 싶은 겁니까?”
“음, 듬직하지, 일 잘하지, 착하지, 한결같지, 마법도 잘 쓰지, 놀리는 재미도 있지, 돈도 많지. 이 정도면 안 좋아할 이유는 별로 없지 않아?”
헤르카의 몸이 사라졌다.
마법사인 바르곤은 헤르카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헤르카가 뒤에서 바르곤의 귀에 입김을 후- 불었다.
바르곤의 몸이 바짝 굳었다.
평생 마법과 일에만 매진해 왔던 바르곤은 이런 상황을 처음 맞이했다.
“어때? 나 정도면 꽤 괜찮지 않아?”
“…….”
그 날.
둘은 같은 밤을 보냈다.
그날따라 그 밤의 온도가 무척 뜨거웠고, 또한 짧기도 했다.
* * *
각종 소식들이 소식지를 도배했다.
[제1마탑 마탑주 알키소, 아덴카 가주에게 축하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제2마탑 마탑주 하릴, 아덴카에 직접 방문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제5마탑 마탑주 아르미온, 아덴카와 적극적인 협력관계 고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현존하는 5개의 마탑들이 전부 아덴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빈첸에 의하여 6마탑이 궤멸된 지금, 그들은 모두 빈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정치 관계.
복잡한 이권 구도.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빈첸의 무력이 그 모든 것들을 압도했다.
율리안이 히히 웃었다.
“형님 즉위식에 5명의 마탑주 전원이 참석 의사를 밝혔어요. 우와,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오네요.”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누구누구 오는지 정도는 알아야죠.”
빈첸은 가문 내의 대소사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정치가 아니라 무학이었다.
어떻게 하면 10성의 힘을 자연스레 다룰 수 있을까.
그것이 빈첸의 최대 관심사였다.
“케르빌가의 가주도 직접 온다고 했고요.”
대륙의 금융을 대표하는 케르빌가.
그리고 또 다른 무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바르티칸가(家)의 폰시아노는 아예 식솔들과 정예 창술가들을 데리고 열병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율리안이 설명을 이었다.
“보통 그 정도로 단련된 창술가들을 이끌고 오는 것은 거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지만요.”
힐끗 빈첸을 바라보았다.
빈첸은 약간 졸린 것처럼 보였다.
“형님이라는 이례적인 존재 덕분에 그런 것도 가능해졌어요.”
제아무리 단련된 창술가들이 떼로 덤벼든다 할지라도 빈첸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빈첸이라는 거대한 존재 한 명이 아덴카에 버티고 있으면, 아덴카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가 되었다.
“얘네도 오라고 할게요?”
“그렇게 해.”
“그리고 나이메르 경을 비롯하여 용아인 전사들도요.”
그들 또한 정예 전사들을 꾸려서 열병하겠다고 했다.
빈첸의 즉위식을 빛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각 신전의 최고위 신관들은 물론이고 둘란 대신관도 직접 오겠다고 했어요. 형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역사상 유례가 없어요. 그냥 모든 것이 다 사상 최초에요.”
율리안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 ‘사상 최초’를 주도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무척 설레는 듯했다.
이윽고 가주 즉위식의 날이 도래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수많은 유력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편에는 아덴카의 무인들이.
또 한편에는 붉은요새의 생도들이.
또 한편에는 바르티칸의 무인들이.
또 한편에는 용아인 전사들이.
또 한편에는 자유연합의 사절단이.
또 한편에는 각 마탑을 대표하는 마법 사단들이.
또 한편에는 용병길드에서 파견한 용병들과 탑외 마법사들이.
대륙을 대표하는 세력들이 모여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양각색의 모양새였고 익히고 있는 것들도 모두 달랐으나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빈첸 아덴카가 서 있었다.
빈첸 아덴카는 검은 제복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여, 전대 가주 칸의 부인이었던 나는, 전대 가주의 뜻을 받들어, 빈첸 아덴카에게 이 검을 하사한다.”
그 검의 이름은 칸.
본래부터 빈첸의 것이었으나, 오늘은 베르사의 손을 통하여 다시금 전해졌다.
“검을 높이 들라!”
아덴카의 검술가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들이 모시는 자가, 역사상 가장 높이 떠오른 태양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다.
“깃발을 높이 들라!”
붉은요새의 생도들이 차례차례, 깃발을 들어 올렸다.
1급을 상징하는 흑색 깃발.
2급을 상징하는 적색 깃발.
3급을 상징하는 갈색 깃발.
4급을 상징하는 자색 깃발.
5급을 상징하는 청색 깃발.
6급을 상징하는 황색 깃발.
7급을 싱징하는 백색 깃발.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8급, 9급 생도들은 의전용 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이 목소리 높여 외쳤다.
“온전한 명예에 겸손한 경의를!”
그들의 눈에는 선망이 가득했다.
그 이후, 용아인 전사 칼백이 외쳤다.
“뿔나팔을 불며, 제왕의 탄생을 기념하라!”
뿌우우-!
용아인 전사들이 뿔나팔을 불며 제각각 무기를 들어올렸다.
“자유연합의 은인께, 전심으로 경례하라.”
자유연합에서 자원한 사절단들은 모두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그들은 무인들처럼 화려한 열병식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마음을 담아 빈첸에게 경례했다.
“1마탑의 마법사단은 축포를 준비하라.”
“2마탑의 마법사단은 축포를 준비하라.”
“3마탑의 마법사단은 축포를 준비하라.”
“4마탑의 마법사단은 축포를 준비하라.”
“5마탑의 마법사단은 축포를 준비하라.”
세계 각지에서 모인 최정상급의 마법사들이 마나를 움직였다.
우웅-
마나가 공명하여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다.
펑!
퍼펑!
하늘을 향해 불꽃이 피어올랐다.
형형색색의 불꽃은 거대한 폭죽이 되어 아덴카 영역의 모든 하늘을 뒤덮었다.
용병길드의 용병들은 이렇다 할 격식없이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
그들의 함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율리안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한 명 한 명들도 영웅의 반열에 들어간 사람들인데.’
저들이 오로지 한 명의 태양을 향해 경외의 시선과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빈첸은 베르사로부터 검을 받아들었다.
그의 소감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덴카는 500년간 긴 길을 달려왔고, 이제는 그 종착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명을 모두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이제 아덴카는 새로운 길을 찾을 것입니다.”
빈첸의 즉위식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즉위식이 끝난 이후로 한 달이 흘렀다.
빈첸이라는 걸출한 지배자의 탄생 하에, 대륙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수련을 끝내고 잠을 자던 빈첸이 눈을 번쩍 떴다.
‘암살자의 기척?’
매우 은밀하고 이질적인 기척이었다.
그러나 아주 익숙한 기운이기도 했다.
빈첸이 다시 눈을 감았다.
“진짜 암살자였으면 죽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