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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61화 (161/184)

환생의 정석 161화

율리안도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공성 마탄포를 바라보았다.

-미쳤어, 이건 미친 거야.

공성 마탄포는 본래 성을 파괴하기 위한 병기다.

그것을 사람에게 사용하다니.

그리고 그걸 알고서 빛줄기를 향해 홍련을 뽑아 든 빈첸은 미친 인간 그 자체였다.

적어도 율리안이 보기에는 그랬다.

빈첸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오늘을 위하여 내게 검을 전수해 주었느냐.’

이 상황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문득 오랜 친구가 그리워졌다.

사미온에 의하여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던 팔콘.

그가 남겨준 검은 무겁고 둔탁한 검이었다.

그렇기에, 빈첸이 아는 검들 중 가장 방어에 탁월한 검이기도 했다.

아밀룬 번외검술.

마상검식(魔相劍式).

거검검벽(巨劍劍甓).

홍련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검게 물든 검이 두꺼운 벽을 생성시켰다.

마치 검이 거대해진 것 같았다.

검은 거대하고 예리해서, 빈첸을 향해 뿜어진 빛줄기를 반으로 갈라내었다.

쏴아아아-!

빛줄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성병기가 쏘아낸 강대한 마법을, 빈첸은 검 한 자루로 양단했다.

빈첸의 검.

마도병기의 마탄.

콰과광!

둘이 부딪쳐 강력한 마나폭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이내 강대한 모래폭풍이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마리아는 팔로 얼굴로 가렸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런 파괴력이라니.’

시야가 온통 가려졌다.

사막에 온 것 같았다.

빈첸 주변의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저곳에 모래폭풍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는 급한 대로 윌슨에게 물었다.

“윌슨. 지금 빈첸 공자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엄청 쩌는 걸 하고 있는 겁니다.”

윌슨의 얼굴에는 대단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마리아는 윌슨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펜을 놀렸다.

“그러니까요. 구체적으로 뭘 한 거죠?”

“쩌는 걸 하고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

마리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윌슨이나 자기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대신 세리가 입을 열었다.

“저도 처음 보는 검식으로 막아내셨어요.”

“짐작 가는 게 없나요?”

“아주 무거운 마나가 마탄포를 막아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공자님은 이런 검을 일컬어 중검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세리는 빈첸의 중검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공자님이 익히신 중검 중에서도, 마상검식인 것 같아요.”

“오호.”

세계는 검술가들과 마법사들이 지배해 왔다.

검술가들은 마법사들을 뛰어넘기 위해.

마법사들은 검술가들을 압도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발전해 왔다.

검술가들의 ‘마상검식’은 말 그대로 마법을 상대하는 검식이었다.

“마상검식은 검술가를 상대로 할 때에는 불리하며, 일반적인 검술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고 들었어요. 대신 마법을 상대하는 검이라고 했어요. 저보다는 마리아 기자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요.”

“네. 검술가들끼리의 검투에서는 볼 수 없는 검식. 그러니까 저게 마상검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군요. 그나저나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설마 빈첸 공자가 당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아뇨. 아까보다 더 강맹한 마나가 느껴져요.”

빈첸은 심상이론을 익히지 않았기에 마나 자체가 노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리는 마탄포와 맞부딪쳐 생겨난 반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몰라 폭폭이를 지하에 대기시켜 놓았는데, 빈첸은 여전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공자님은 멀쩡하세요.”

공성 마탄포를 정면에서 받아내고도 빈첸은 멀쩡했다.

그래도 세리는 저 모래폭풍에 눈을 떼지 않았다.

빈첸이 무사하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공자님……!’

빈첸은 임무 전에 이런저런 것들을 미리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빈첸은 그저 따라와서 도와 달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말해주지 않았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계신 걸까요?’

그때.

‘응?’

폭폭이가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모래폭풍 사이를 뚫고 유유히 걷는 누군가가 있었다.

‘발걸음이 가볍고…….’

폭폭이를 움직여 누군지 알아보고 싶었으나 폭폭이가 거부했다.

폭폭이가 느끼는 감정을 세리도 공유했다.

‘무서워.’

등골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상대의 기세가 너무나 날카롭고 거대해서, 폭폭이는 크게 겁먹었다.

‘그래, 폭폭아, 그냥 지하에서 대기해.’

그제야 숨 막히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세리는 마리아 쪽을 힐끗 쳐다봤다.

아주 약간의 정보라도 얻고 싶은 듯한 눈빛이었다.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빈첸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한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세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막아내었구나.”

빈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탄포가 쏘아지던 그 시점에서 이미 느껴졌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다던 지원군이 설마 누님이었습니까?”

누군가 빈첸 옆에 섰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빈첸은 그 여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거의 아버지에 준할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군요, 데이아 누님.”

아덴카가 낳은 검술의 기재.

현 후계자들 중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2공녀 데이아였다.

“나는 소문이 과장되어있다 생각했었다.”

데이아는 그녀의 대검 ‘해일’을 꺼내 들었다.

해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옅은 검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구나.”

“…….”

“내가 네 나이 때에는 막지 못했을 것이다.”

데이아는 모래폭풍 너머의 마법결계를 응시했다.

“마탑결계도 네 생존을 파악했을 것이다.”

“예. 곧 그럴 것 같군요.”

“가자. 내가 엄호하마.”

빈첸과 데이아는 보폭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아덴카가 건재함을 증명하여라.”

마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은 위협사격이었다.”

모래폭풍이 점차 걷혀가고, 붉게 달아오른 마법결계가 보였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마법결계에 형형색색의 원형 마법진들이 피어올라 있었다.

“마탑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침입자를 처단할 것이다. 돌아가라.”

한편,

마리아의 종군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또 다른 종군기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대검?”

“저렇게 거대한 대검을 다루는 여자는…….”

“데이아다! 데이아 공녀야!”

데이아는 사람들 앞에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격적인 후계자 수련을 위한 폐관수련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데이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아 공녀와 빈첸 공자의 조합이라니.”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조합이었다.

“마탑에서 마탄포를 또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닌 것 같아.”

기자들 또한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땅이 울리고 대기가 진동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이동하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마법결계는 명백한 살의를 내뿜고 있었고, 회전하는 원형 마법진들은 그 하나하나가 강력한 마도병기였다.

“쏘, 쏘, 쏘아진다!”

수십 다발의 빛줄기가 쏟아졌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 같았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녹여 버리는 마도 병기.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을 파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성 병기가 마탄을 토해냈다.

고오오-!

강력한 기압이 생성되고.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빈첸의 퇴로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전방위적으로 마탄을 쏟아부었다.

“저, 저것이 마도병기……!”

소문으로만 들었지.

저것을 직접 보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것은 천재지변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놀라운 건,

“데이아 공녀의 검이 마탄을 모조리 파훼하고 있어.”

데이아가 검을 휘둘렀다.

마탄의 일부를 굴절시켰다.

또한 일부는 베어냈다.

문명을 파괴하는 마도병기는 한 사람이 든 대검을 뚫어내지 못했다.

저 강력한 마도병기들이 데이아와 빈첸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누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아도 전진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이 마도병기들의 기세를 압도했다.

마도병기는 두 사람의 발걸음을 단 한 걸음도 멈추지 못했다.

둘은 함께 걸었다.

“네가 걷는 이 길이 역사가 될 것이다.”

데이아는 모든 힘을 끌어내어 마탄을 베어냈다.

빈첸이 마법결계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빈첸과 데이아가 마법 결계의 경계에 닿았다.

“누님. 시간을 좀 벌어주십시오.”

마법결계에 가까워질수록 마도병기의 화력은 강해졌다.

데이아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깨끗했던 제복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빈첸의 제복은 여전히 깔끔했다.

빈첸에게 그 어떤 마탄의 여파조차 흘러가지 못할 정도로, 데이아는 완벽하게 마도병기의 마탄을 파훼했다.

“얼마나?”

“3분입니다.”

“쉽지 않겠군.”

“부탁드립니다.”

“그래.”

빈첸도 데이아가 한계가 다다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버텨 주십시오.’

3분.

지금의 데이아에게는 너무나 힘겹고 긴 시간이었다.

2분.

1분.

데이아조차 쓰러질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힘을 한계까지 끌어내어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해내야 했다.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빈첸이 부탁했던 3분을 버텨냈다.

‘그러나 나도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으나 이미 속은 만신창이였다.

8개의 심상은 이미 너덜너덜했고,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담담히 말했다.

“아덴카를 증명하여라.”

또다시 마탄이 쏘아질 때.

그녀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

빈첸이 곧 새로운 역사를 써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마탄이 데이아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마도병기의 빛줄기가 사라졌다.

“이것이 제가 아덴카를 증명하는 방식입니다.”

빈첸이었다.

빈첸이 강을 둘러싼 마법결계를 통째로 베어냈다.

데이아가 눈을 천천히 떴다.

죽음을 각오한 적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평온했다.

“네가 말했던 3분이 이런 의미였었나.”

데이아는 빈첸을 둘러싼 소문을 의심했었다.

소문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빈첸을 직접 본 이후,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빈첸에 대한 평가를 전면 수정했었다.

이제는 빈첸을 바로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널 지나치게 과소평가했었구나.”

빈첸이 요구했던 3분.

그 3분 동안, 빈첸이 틈을 만들어 마탑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 3분이 지났을 때, 마탑이 자랑하는 전쟁용 마법결계가 모조리 파괴되어 있었다.

결계 없이는 마도병기도 더 이상 화력을 뿜어낼 수 없었다.

“나는 네 임무가 마탑 안에 침투하여 마법결계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 번 무력화된 마법결계가 다시 발동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필요했다.

그사이,

아덴카의 무인들이 집결하여 마탑에 진격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로 오해했다.

그런데 빈첸 본인이 혼자서 결계를 무너뜨렸다.

이것은 설령 아버지인 칸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로지 너만이 가능한 일이구나.”

빈첸은 기적을 일으켰다.

이능을 베는 힘으로 마탑의 결계마저 무너뜨렸다.

일단 빈첸 수준의 검술가가 마탑 안으로 진입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공격마법은 보통 ‘대량 살상’을 전제로 하여 펼쳐진다.

마탑 내에서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여 빈첸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마법결계가 뚫린 지금, 빈첸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온 셈이었다.

“누님의 말씀을 받들어, 아덴카를 증명하겠습니다.”

육지와 마탑을 연결하는 다리를 향해 움직였다.

빈첸의 몸이 결계 너머로 사라졌다.

‘이중결계?’

결계를 모두 벤 것이 아니었다.

결계 안쪽에 또 다른 결계가 있었다.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군.’

누군가가 이 인위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그 위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 참. 이런 어린애 때문에 내가 직접 움직이게 될 줄이야.”

6마탑주.

헬리오스였다.

“반갑구나.”

빈첸은 그에게 딱히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예를 취할 필요가 없다 판단했다.

“나도 딱히 마탑에 볼일이 있었던 건 아냐. 네게 볼일이 있던 거지.”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경고하는 것 치고는, 지팡이에 맺힌 살의가 지나치게 진심인데.”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것.

알 수 없었던 것.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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