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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52화 (152/184)

환생의 정석 152화

아덴카의 규율을 지키는 호법당.

그들은 아덴카가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력단체였으나, 그들의 실체를 본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오죽하면 호법당은 실존하지 않는 집단이라 믿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히 존재하는 집단이었다.

호법당 소속 무인들에게는 성과 이름이 없었고 직책 또한 없었다.

그들은 모두 당원이라 불렸는데, 특별한 직책을 가진 자가 딱 한 명 존재했다.

바로 호법당의 ‘당주’였다.

베르사가 말했다.

“당주는 명령을 수행하라.”

“호법당주 시론. 부인의 명을 받듭니다.”

시론은 아덴카의 12검 중 한 명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백색검대의 검대장을 맡고 있으나, 실질적인 직책은 호법당주였다.

그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덩치가 상당히 컸으나 움직임이 굉장히 날랬다.

발걸음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고, 소리로 그의 움직임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장로원에서 빠져나가는 마차를 검문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마차 안에는 신입장로 테일린이 타고 있었다.

테일린이 마차에서 내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이냐?”

그는 호법당주 시론을 발견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구별할 수는 없지만, 테일린은 저자가 당주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베르사 부인의 명령입니다.”

“아무리 베르사 부인의 명령이라도, 장로가 탄 마차를 불시에 검문하다니요?”

테일린 장로가 아무리 장로원을 싫어한다고 해도, 그 역시 장로였다.

호법당주의 행동은 지나친 월권이었다.

“무력으로라도 제압하겠습니다.”

“쯧, 부인께서는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모릅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수행할 뿐.”

테일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있는 듯하구나.’

장로원의 명령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난데없이 마정석을 케르빌가에 전달해 주고 오라고 했다.

상당히 값비싼 것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게 사실 장로가 직접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제압당하시겠습니까, 혹은 마차 수색을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하겠습니다. 단,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니 호법당과 부인께서도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호법당주 시론은 직접 마차를 수색했다.

그가 받은 명령은 한 소녀의 신원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테일린이 불쾌한 티를 감추지 않고 물었다.

“뭐 수상한 거라도 발견했습니까?”

“아무것도 없군요.”

“그럼 갈 길을 가도 되겠지요?”

“그렇게 하십시오. 실례했습니다.”

테일린은 화가 난 기색으로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시론을 지나치는 그 순간.

테일린이 아무도 모르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나는 미끼인 것 같소.”

목격자는 없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마차에 올라탔다.

“출발해.”

시론은 멀어져 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속으로만 말했다.

‘우리도 압니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일린이 타고 있는 마차는 미끼가 맞았다.

빈첸이 함정을 놓았고, 장로원은 그 함정에 대비했다.

정문 쪽은 호법당이, 후문 쪽은 베르사가 직접 맡았다.

후문 쪽 마차도 미끼였다.

“내 가문의 장로원에 어째서 월담하는 무리가 있는가?”

“……가, 가주!”

장로들 중 한 명인 이아골은 크게 당황했다.

가주가 한가로이 낮 산책을 즐기고 있을 리는 없다.

이건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에 왜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지?”

“그, 그건…….”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칸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아골은 잔뜩 겁에 질려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풀썩.

이아골이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잠시 동안,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왜 쓰러졌지?’

그 의문이 머릿속을 파고들 무렵.

고통이 밀려들었다.

“으, 으아아악!”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아골의 발목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발은 땅에 그대로 닿아 있었고, 발을 잃은 이아골은 연신 비명을 질렀다.

“입을 다물어라. 혀를 자르고 싶으니.”

칸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차 안에 악취가 나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칸은, 그것이 시체에서 나는 냄새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내 가문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굴 죽인 것이냐?”

칸이 손짓하자 호법당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마차를 확보했고, 그 순간 미묘한 마나 흐름이 느껴졌다.

순간 칸이 백익을 꺼내 들었다.

잠깐의 발검이 아니라 정식으로 검을 꺼내 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서걱-

무언가를 베었다.

호법당원들은 침묵했다.

하나하나가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다 보니, 칸의 가공할 만한 경지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의 결을 베어버렸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미 알아차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시체에 수를 써놓은 모양이었다.

저절로 폭발하여 사라지도록 말이다.

칸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칸에게도 약간의 충격이 전해진 것이었다.

‘최소 7고리 이상. 어쩌면 8고리 이상의 마법사가 새겨 넣은 파괴력이다.’

호법당원 중 하나가 말했다.

“시신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습니다.”

“해석은 가능한가?”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다.”

이들은 검술가이지 마법사가 아니다.

마법진에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탑에 의뢰를 맡길까요?”

“아니.”

장로들 또한 검술가이지 마법사가 아니다.

마검사를 목표로 하여 마법을 익힌 자들도 더러 있기는 했으나, 이 정도 마법진을 구동할 만한 자는 없었다.

분명 외부에 조력자가 있었다.

“증거만 확보해 놓도록.”

* * *

율리안이 말했다.

-잘 되어가고 있겠죠?

‘아마도. 바깥에 많은 기척들이 느껴진다.’

하나하나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기척들이었다.

심상이론을 익히지 않았기에 느낄 수 있는 심상 마나의 기척들.

‘하나같이 대단한 수준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기척이 존재했다.

빈첸은 그 기척이 아버지의 것이라 확신했다.

빈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이렇게 설레해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어서.’

빈첸은 ‘지하’를 둘러보았다.

사미온의 지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구조였다.

어둡고 습했다.

지하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 발밑에도 출입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요, 뭐 중요한 건 아니겠죠?

‘그래.’

델백 장로가 뒤를 돌아보았다.

“장로원의 몇몇 중요한 기록들. 그리고 가문에 필요한 집기들과 전통이 담긴 유산들. 이러한 것들을 비밀리에 보관하는 곳이다. 또한 가문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에 필요한 물자들도 준비되어 있지.”

“그렇군요.”

“이제 됐느냐? 네놈이 상상한 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장로들을 모욕하는 것인지?”

“제가 장로님들을 모욕했습니까?”

“그래. 아주 많이. 나 또한 기분이 무척 불쾌하다.”

“그렇군요.”

“그게 끝이냐?”

델백은 최소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델백이 본 빈첸은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망나니 같은 놈이었다.

“너처럼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장로원의 신임을 단 한 조각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적의였다.

지상에서는 꾹꾹 눌러담았던 것이, 지하로 내려오자 절로 새어 나왔다.

“그걸 얻어서 뭐하게요?”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개자식이.

델백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에 반해 빈첸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이곳이 ‘어둠’이라고 표현한 것에 비하면 소소한 곳이군요.”

일부러 발을 세워 발밑을 톡톡 두드렸다.

“진짜 어둠은 이 밑에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원한다면 밑도 보여주마. 그러나 이 아래에는 희대의 살인마와 광인들이 갇혀 있다. 네가 그들의 기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하지 못하면 어찌 됩니까?”

“그들의 광기에 감화되어 너도 광인이 되겠지.”

“그럼 델백 장로님께도 좋은 일이겠군요.”

“……뭐?”

“제가 미치광이가 되면 즐거워하실 것 같아서요.”

델백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는 예전부터 빈첸을 혐오했다.

빈첸 때문에 오른팔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랬는데 빈첸이 사사건건 말대꾸를 해오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곳은 가문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이다 빈첸. 말을 가려 해라.”

“이렇게 쉽게 저의를 드러낼 만큼 심계가 얕았습니까?”

빈첸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델백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쉽게 속마음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적어도 겉으로는 감출 줄 알았다.

“말을 가려 하라고 했다.”

델백의 몸에서 살기가 새어 나왔다.

빈첸은 어깨를 으쓱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여,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진심 어린 살기를 내뿜는 것은 옳습니까?”

“너같이 되바라진 후배를 보면 살기를 주체할 수 없어서 말이다.”

“어머니 앞에서는 얌전하시던데요. 어머니도 장로님 입장에서는 후배 아닙니까?”

“네 이놈!”

델백은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뽑으려 들었다.

“뽑으면 죽일 겁니다.”

델백의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자신이 빈첸의 말 때문에 움찔했다는 사실이 크게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지켜보는 눈이 없다.”

“그래서요?”

“네놈이 광기에 물들어 어쩔 수 없이 너를 처단했다는 이야기도 가능해진다는 소리지.”

“생각한 게 고작 그겁니까?”

빈첸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약 장로님이었다면 말입니다. 조금 달랐을 겁니다.”

“뭐?”

“오른팔을 잃은 직후에 오히려 저를 찾아왔을 겁니다. 최후의 명예 한 조각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델백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빈첸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잊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있습니다.”

강대한 마법이 생성된 곳에는 그 특유의 마나 흐름이 남는다.

이능을 베는 길.

이능검로를 볼 수 있는 빈첸은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곳에도 그게 남아 있었다.

“이 흔적이 무슨 흔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바깥에서 이와 똑같은 흐름을 읽었습니다. 그 흐름이 무척이나 강대하였습니다. 아주 강한 마법술식이 이 자리를 지나갔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만약 아버지쯤 되는 무인이 아니었다면 커다란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겠군요.”

“헛소리를 자꾸 지껄이는 것을 보니, 광기에 젖은 것이 틀림없구나.”

델백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그는 빈첸을 죽여야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경고했을 텐데요.”

델백은 찔끔 놀랐다.

그가 본 것은 홍련이 그리는 붉은 궤적뿐이었다.

델백은 얼떨결에 검을 휘둘러 홍련을 막아냈다.

“너, 실력을 숨겼구나.”

“딱히 숨기지는 않았습니다만.”

제론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쉬웠다.

델백 장로는 과거 7성 무인이었고, 혹자는 8성 무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되었다고는 해도, 그 격은 남는 법이다.

그러나 빈첸이 느낀 델백은 그 정도 경지의 무인이 아니었다.

격 또한 느끼지 못했다.

“당신이 제론 경보다 훨씬 약할 뿐입니다.”

“닥쳐라! 내 너를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성을 내며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죽일 거라고 했잖아, 델백.”

델백의 세상이 기울어졌다.

‘어……? 언제?’

그는 마지막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있었던 일격.

막아냈다고 생각했지만 막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이미 베어져 있었다.

데구르르.

델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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