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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51화 (151/184)

환생의 정석 151화

빈첸은 제론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제론 경은 저의 좋은 친구였고, 또한 마음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제론은 빈첸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제론과의 대련을 통해 항상 그것을 배웠다.

이번에 진심으로 진행한 대련을 통해 결국은 제론을 넘어섰다.

“그리고 제론 경은 제게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공자님?”

“이는 스승에게도, 제자에게도, 모두 기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론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상 ‘스승’이라 불릴 만큼, 그가 빈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

빈첸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만큼은 제론에게 존대했다.

“고맙습니다, 제론 경.”

제론은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았는지 어느덧 피는 멈춰 있었다.

제론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부검대장님. 승리 선언 하셔야지요.”

“아, 그래. 내 정신 좀 봐라.”

카르소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깊게 새겨진 균열에 가 있었다.

그는 제론이 크게 다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빈첸 공자의 몸에서 뿜어진 강렬한 폭발력이…… 대부분 외부를 향했다.’

그래서 바닥이 저렇게 이리저리 찢겨나간 것이다.

만약 저 힘이 제론을 향했다면, 아마도 제론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을 것이다.

‘6성 무인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빈첸 공자에게는 그 정도 여유가 있었던 거야.’

카르소가 보기에 빈첸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빈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진심으로 놀랍구나.’

카르소가 빈첸의 승리를 선언했다.

무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빈첸 공자가 진짜로 이겼네.”

“그것도 경험 많은 6성 무인을.”

3공녀인 헤나를 이겼을 때보다 대중적인 파급력 자체는 약했다.

그러나 진짜 무인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이 훨씬 더 의미 있었다.

“빈첸 공자는 심상이 없잖아. 그럼 뭘로 정의해야 하나?”

“글쎄. 제론을 저렇게 이겼으니…… 경지로 보면 최소 6성 이상일 텐데…….”

그러나 ‘성(星)’의 경지는 심상의 개수로 결정된다.

빈첸에게는 심상이 하나도 없으니 빈첸을 정의할 경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저 정도 무위라면 7성 무인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

“열여섯 살에 7성 무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눈으로 직접 봤잖아.”

“…….”

그 대단하다는 데이아조차 열여섯 살에는 5성이었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시간에 비례하는 경향이 짙었고, 아무리 빨라도 16세의 나이에 7성의 무인이라 불릴 수는 없었다.

그게 정설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상(無狀)으로 정의하는 게 가장 올바르지 않을까 싶은데…….”

무상.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럼 무상 7성으로 정의하는 게 맞겠네.”

“그거 괜찮군.”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으나, 아덴카 내부에서는 빈첸을 ‘무상 7성’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제론은 빈첸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제 제가 더 이상 공자님의 성장을 체감시켜드릴 수 없다는 점이군요.”

“그 반대가 될 수 있겠지.”

제론이 눈을 크게 떴다.

사실 그는 자신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빈첸과 자신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거고, 빈첸은 너무 먼 사람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반대라면…….”

“나 또한 친구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

제론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듣고 보니 저 말이 맞았다.

“훗날, 제가 대련하자고 보채면 대련해 주실 겁니까?”

“물론.”

제론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갑작스레,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 같았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제 목표가 되어주셔서.”

* * *

장로원에도 빈첸과 제론의 대련 소식이 전해졌다.

델백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이론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중재무인이 카르소였습니다. 백색검대의 부검대장이란 말입니다.”

전대 부검대장이었던 멀린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뛰어난 무인이었다.

8성을 목전에 둔 7성.

그런 자가 눈앞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그가 잘못 보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카르소까지 한 패가 되어 짜고 쳤을 겁니다.”

“승패를 조작했단 말입니까?”

“그럴 확률이 가장 높지요.”

델백 장로는 빈첸의 승리를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기로 했다.

그는 빈첸이 싫었다.

싫다 못해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오른팔을 잃은 이유가 빈첸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놈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지요?”

대련을 끝낸 빈첸이 옷을 갈아입고서 장로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델백 장로가 장로원의 대문까지 걸어나갔다.

“빈첸. 복귀하자마자 떠들썩한 일을 벌이는구나.”

“제게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군요.”

델백은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은 인사부터 하는 것이, 가문의 원로를 향한 예의였다.

지금 빈첸의 태도는 델백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것을 짚기에는 또 애매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눈빛이 지나치게 당당하구나.”

“지나치게 위축된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부족하니만 못한 법이다.”

“상식적인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빈첸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델백은 묘하게 기분이 나빴으나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장로원에는 무슨 일이냐?”

“첫째로는, 제가 장로원을 통해 하달된 임무를 완수했다는 보고를 올리기 위함입니다.”

“해당 내용은 붉은 요새의 요새장에게 보고를 올려도 될 일이다.”

“둘째로는, 어떤 사람에게 쪽지를 받았습니다.”

“쪽지?”

“딸을 구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장로원을 찾았지?”

“쪽지에 아덴카의 장로원이 지목되어 있었습니다.”

델백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언성을 높였다.

“네 이놈! 장로원이 누군가의 딸을 납치라도 했다는 말이냐?”

“저 또한 절대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네 행동은 어찌 용서받을 생각이냐?”

“다만, 그는 제게 부탁하기 위하여 본인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목숨의 값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그가 지목한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

델백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이 목숨을 걸어 부탁했고, 무인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면, 최선을 다해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목숨 값의 무게다.

“제가 혹여 장로원을 진심으로 의심했다면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생명의 값이 너무 무거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을 뿐입니다.”

빈첸이 쐐기를 박았다.

“제가 못 올 것을 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빈첸은 아덴카의 후계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장로원에 들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듣고 보니 네 말이 옳구나.”

델백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너라. 내 직접 장로원 구석구석을 네게 보여주마.”

빈첸은 델백을 따라 걸었다.

율리안이 피식 웃었다.

-형님, 연기해도 되겠어요. 극단의 배우인 줄 알았잖아요.

‘이게 다 역용의 힘 아니겠느냐?’

천과를 섭취하고 수련한 빈첸은 모든 영역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것은 무술이라기보다는 기술에 가까운 ‘역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용을 사용하면 눈꺼풀의 움직임까지 컨트롤 할 수 있었고, 어떠한 대사를 내뱉는 데 최적의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근데, 진짜로 아덴카의 장로원이 대니얼의 딸을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주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치졸한 짓을 했을까요?

‘내가 본 장로원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율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마음속으로는, 장로원이 그렇게까지 썩어 있지는 않기를 바랐다.

장로원의 여러 건물들을 둘러보던 빈첸이 잠시 자리에 멈춰섰다.

“델백 장로님.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아라.”

“아덴카의 장로원에 어째서 지하 같은 곳이 있어야만 합니까?”

빈첸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델백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이곳의 지하는 어둠입니까?”

“빛을 지키기 위함이라 생각하거라.”

사실상 ‘지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명가라 불리는 대부분의 가문 내에는 이러한 지하시설이 존재했다.

그건 사미온가도 마찬가지였다.

외팔이 데이븐이 갇혔던 곳이 사미온의 지하감옥이었고.

빈첸은 이상에 심취한, 치기 어린 소년을 연기했다.

“저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아덴카에 어째서 어둠이 있어야 합니까?”

“네가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이해할 것이다.”

“지하를 둘러보고 싶습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왜 안 됩니까? 저 또한 아덴카의 후계자입니다.”

“네게는 출입권한이 없어.”

“어떻게 하면 출입권한을 얻을 수 있습니까?”

“4대 장로의 허락이 필요하다.”

“아덴카의 직계가 아덴카의 지하로 가겠다는데, 장로님의 허락이 필요하군요.”

델백은 인상을 더욱 찡그렸다.

빈첸의 모든 말들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럼 허락을 구해보겠습니다. 4대 장로님들은 어디 계십니까?”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을 필요 없다. 허가하마.”

4대 장로 중 한 명.

아덴카 장로원의 실세 중에서도 실세인 피다넬이었다.

델백이 화들짝 놀랐다.

“피다넬 장로님!”

“허가합니다. 델백 장로가 직접 안내하여 지하를 구경시켜 주시지요. 빈첸 공자에게도 큰 공부가 될 겁니다.”

“하지만…….”

“내가 허락한다고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델백은 피다넬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장로 간에도 엄연한 서열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피다넬이 말했다.

“네 사연은 들었다. 그래. 생명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 생명을 건 자가 혹시 이자냐?”

데굴데굴.

무엇인가가 굴러왔다.

빈첸이 보냈던 대니얼의 머리였다.

“그렇습니다.”

“이자가 아덴카의 장로원을 지목했다 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자는 허투루 목숨을 버리게 되었구나.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빈첸이 대니얼의 목을 주워 들어 아공간에 넣었다.

“제가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겠습니다.”

“네 맘대로 하거라.”

피다넬은 혀를 쯧쯧 차고서 몸을 돌렸다.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한 모양새네요.

‘그야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러게요.

애초에 지하를 모두 보여주지도 않을 거다.

보아하니,

델백 장로는 피다넬보다 서열이 훨씬 밑이었다.

델백의 권한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터.

외팔이 데이븐이 갇혀 있었던 곳처럼,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형님이 델백 장로와 만났던 시점에서 이미 딸을 빼돌렸겠죠.

대니얼의 딸은 이제 이용가치가 없어졌다.

이용가치가 없는 것을 굳이 데리고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요?

율리안이 쿡쿡대고 웃었다.

-장로원을 경멸하는 게 형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빈첸이 장로원을 들쑤셔놓았다.

아마도 저들은 이용가치가 사라진 대니얼의 딸을 빼돌린 뒤, 증거를 인멸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은 이미 베르사에게 전달해놓았다.

-기록이 남는 이동관문은 사용 못할 테고.

그렇다면 결국 직접 옮길 것이었다.

빈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간만에 호법당 무인들이 바빠지겠어.’

장로원 바깥.

베르사와 호법당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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