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의 정석-150화 (150/184)

환생의 정석 150화

제론과 빈첸의 대련 소식이 아덴카 무인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번 대련은 서로 진심을 다하는 정식대련이라는 소식이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제론의 우위를 점쳤다.

“이번에야말로 패배의 쓴맛을 보시겠군.”

“한 번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일이지.”

빈첸 정도로 급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으나, 어쨌든 신성이라 불리는 이들은 꾸준히 등장해 왔다.

그들은 분명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며 성공가도를 내달리다가도, 어느 한 패배를 기점으로 급격히 몰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실력이 너무 빠르게 성장하면 정신적 성숙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번의 패배를 극복하느냐, 극복하지 못하느냐가 빈첸 공자에게 무척 중요한 기로가 되겠군.”

“이번이 분수령이 되겠어.”

대부분의 무인들은 빈첸의 패배를 점치면서도 빈첸이 어느 정도로 활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이번에 바람소리에 실린 기록을 보면 빈첸 공자의 무위는 상상 이상이었잖아.”

“나도 깜짝 놀랐다.”

그것은 결코 생도 혹은 갓 파성무인이 된 어린 무인이 보여줄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빈첸 공자의 격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능을 베는 특별한 힘도 지니고 있다고 했어.”

빈첸이 깜짝 놀랄 만한 무위를 보여준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것은 키메라로 짐작되는 인위적인 마물을 벤 것이었다.

무예를 익힌 ‘무인’과의 전투는 또 달랐다.

“빈첸 공자가 지닌 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맞으나 공자가 갖추지 못한 것은 명확하지.”

“갖추지 못한 것?”

“경험.”

그것은 빈첸이 아무리 뛰어난 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빈첸은 아직 너무 어렸고, 제론만큼 많은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

“사실 제론의 검술 재능이 아주 뛰어난 정도는 아니지 않나?”

무인들이 보기는 제론은 흔히 말하는 ‘천재’는 아니었다.

물론 아덴카의 정규 무인이라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는 했지만, 기재라고 불리기에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아덴카에는 기재 이상의 재능을 지닌 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백색검대의 부검대장으로 거론될 정도의 실력자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는 거지. 내가 알기로 백색검대 내에서 가장 많은 대련과 실전경험을 치른 무인일걸?”

제론은 자신의 애검을 챙기기 위하여 백색검대의 숙소에 들렀다.

빈첸이 선물해 준 검이었다.

세리가 제론을 찾아왔다.

“제론 경. 제론 경이 굳이 저희 공자님과 대련을 치를 이유가 있어요?”

세리는 절대적인 빈첸의 편이었으나 제론과도 친분이 깊었다.

그녀는 제론이 왜 대련을 신청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겨봤자 본전이잖아요.”

“이겨? 누가? 내가?”

“……네.”

“누가 그래?”

“다들 그렇게 말하시던데요.”

제론이 킥킥대고 웃었다.

“그건 빈첸 공자님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하는 얘기지. 직접 경험하면 말이 달라질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질걸?”

“네?”

“9할 이상의 확률로 내가 질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알아. 나는 빈첸 공자님의 성장이 몸으로 체감되는 편이거든.”

세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면 망신이잖아요.”

“약간은 그렇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론은 빈첸과 대련이 하고 싶었다.

“공자님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빈첸 공자님의 성장에 아주 조금의 기여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빈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정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이것은 제론 그의 자기만족이었다.

“처음 목검을 휘두르실 때부터, 나는 그분과의 대련을 진행했고 검을 가르쳐드렸거든. 너도 알지?”

“네. 알고 있죠. 그땐 저도 정말 감사했는걸요.”

모두가 빈첸을 무시하고 괄시할 때, 제론은 달랐다.

제론은 직접 빈첸과 검을 맞대주었다.

“좀 건방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공자님의 스승들 중 한 명이라고 그냥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혹시라도 공자님한테는 말하지 마라. 그냥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자부심 갖는 거니깐.”

“…….”

“모든 스승들의 염원이 뭐겠어?”

“모르겠어요.”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는 걸 바랄 거야. 적어도 나는 그래.”

제론은 그래서 빈첸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네가 걱정해 주는 사람이 나야, 공자님이야?”

“그건…….”

“됐어, 말 안 해도 알아.”

제론이 히히- 웃었다.

제론이 보는 세리는 빈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빈첸이 곧 세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러한 사람에게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세리가 말했다.

“저는 당연히 빈첸 공자님이 우선이에요. 그렇지만 제론 경도 걱정해요.”

“이야, 기분이 꽤 좋은데. 흐흐흐.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걱정해 주는 건데?”

“제론 경의 명예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패배는 곧 명예의 실추다.

제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내가 믿는 명예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야.”

제론은 세리와 함께 대련장으로 향했다.

* * *

제론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먼저 와계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빈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빈첸뿐만 아니라 백색검대의 무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무인들이 구경을 온 상태.

장로원 소속 인사들을 제외하고서, 비번인 무인들은 대부분 몰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괜찮아.”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이곳에서 빈첸 공자님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목검을 휘둘렀지.”

빈첸과 마주한 제론은 직감했다.

바로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인만의 예감이었다.

‘나는 오늘 패배하겠구나.’

그러나 괜찮았다.

그는 오늘 최선을 다해 빈첸을 상대할 예정이고,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 패배하는 것은 지극히 명예로운 일이었다.

빈첸과 제론 사이에 무인 한 명이 섰다.

“중재무인을 맡은 백색검대의 부검대장 카르소입니다.”

카르소.

그는 백색검대의 부검대장이며 멀린의 후임이었다.

7성의 무인으로 알려져 있고 아덴카의 쾌검을 익힌 자였다.

“검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빈첸과 제론이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무인들은 제론의 검에 일렁이는 형상을 발견했다.

“검기?”

검투 초반부터 검기를 꺼내 들었다.

검기는 강력한 힘을 쏟아낼 수 있지만 체력소모가 크다.

“초반에 승부를 볼 생각인가?”

“빈첸 공자를 배려하는 것이겠군. 장기전은 빈첸 공자에게 불리할 테니까 말이야.”

“아무래도 빈첸 공자는 경험이 적으니.”

빈첸과 제론의 검이 맞부딪쳤다.

챙!

검과 검이 부딪쳤고, 검압이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힘에서는 제론이 조금 더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는 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둘의 검투를 지켜보고 있는 카로스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빈첸 공자는 검기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힘으로 제론의 검격을 받아냈다.

힘이 부족해서 밀린 것이 아니라, 일부의 힘을 흘려 버렸다.

그것도 무척 자연스럽게.

‘제론 정도의 경험 많은 무인과의 검투는 처음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첸은 침착했다.

먼저 검과 검 사이의 거리감을 익히기 위한 전초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오히려 급한 사람은 제론이었다.

‘마치 수많은 검투를 치러온 베테랑 같구나.’

빈첸의 움직임에는 분명히 여유가 있었다.

시종장 레일사로부터 전수받은 설인걸음을 펼치며 꽤 여유로이 제론의 검로를 읽어냈다.

검과 검이 여러 차례 부딪쳤다.

속도는 제론이 빨라 보였다.

상대적으로 빈첸은 느려 보였다.

그러나 그 어떤 빠른 공격도 빈첸의 몸에 닿지 않았다.

‘제론의 움직임을 완벽하고 읽어내고 있다는 소리다.’

수차례의 공방이 이어지고 제론과 빈첸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제론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공자님. 초월검격은 언제 보여주실 생각이십니까?”

바람소리를 통해 빈첸의 ‘초월검격’은 이미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중.

그는 보고 싶었다.

아넬린이라는 스승이 남겼다는 ‘초월검격’이 어떤 검인지.

빈첸은 홍련으로 제론을 겨누었다.

“초월검격은 무거운 검이어서.”

초월검격은 이능검격을 바탕으로 하여 진일보된 검술이다.

본질은 이능의 검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제론에게는 헛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예를 익힌 상승무인은 과연 표범과는 달랐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용할 참이었다.”

“제게서 빈틈을 읽어내셨다는 뜻이겠군요.”

빈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제론을 존중하는 빈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제론의 허리를 살짝 숙였다.

마나를 끌어 올렸다.

6개의 심상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론 저 자식. 최선을 다할 생각인가 본데?”

“방금까지 공방에서 꽤 유리하지 않았나? 갑자기?”

6개의 심상.

그 경지에 이른 무인이 진심으로 마나를 끌어올리면 마나 공명현상이 일어난다.

실체를 갖게 된 푸른색 마나가 그의 몸을 둘러싸고 웅웅거렸다.

“6개의 심상을 전부 운용하고 있잖아?”

여태까지 제론은 5개의 심상만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6개의 심상을 모두 사용했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자세는 정검 8식? 맞지?”

“설마 저렇게 대놓고 대인 결전기를 쓰려고?”

그 또한 아덴카의 무인이었으며, 아덴카의 정검식을 수련한 자였다.

이곳에 모인 아덴카의 무인들은 제론이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알 것 같았다.

아덴카의 정검은 도합 9개의 검식으로 이루어진다.

최종검식은 ‘신장검무’였고, 정검 중 유일한 광역기다.

다시 말해, 광역기가 아닌 검식들 중 최종 검식이 바로 ‘8식’이었다.

“한 번에 승부를 가르겠습니다, 공자님.”

“좋은 생각이군.”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제론은 공방들을 통해 패배를 직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진 바 모든 것을 끌어내어 한방에 승부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빈첸은 깨달았다.

‘애초에 패배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섰구나.’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했다.

제론 주변을 맴도는 푸른 마나가 맹렬히 회전했다.

그의 검에도 푸른 마나가 깃들었다.

빈첸도 마찬가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같은 검으로 받겠다. 제론.’

그의 마나는 ‘심상이론’을 익힌 자들은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제론의 기세가 폭풍같다면, 빈첸의 기세는 고요했다.

제론이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마력회로의 흐름은 완성되었다.

검에 깃든 마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어 했다.

아덴카 정검 8식.

빈첸과 제론은 같은 검식으로 맞부딪치기로 했다.

아덴카 정검 8식.

비상검화(飛上劍花).

제론의 몸이 쏘아졌다.

마탄처럼 빠르게, 그의 검이 빈첸의 목을 노렸다.

그때, 빈첸의 몸에 뇌기가 깃들었다.

아덴카 정검 8식.

뇌력 연환.

뇌력(雷力) 비상검화(飛上劍花).

마탄처럼 쏘아지는 제론의 검격을 향해,

빈첸 또한 쏘아졌다.

빛줄기와 빛줄기가 맞부딪쳤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대인결전기가 맞부딪친 연무장에는 막대한 검압이 일었다.

흙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콰직 거리는 뇌전이 깃들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흙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먼지가 걷히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저, 저기 봐.”

“균열?”

연무장 내에 기다란 균열이 생겼다.

이내,

그 균열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수많은 크랙을 만들었다.

백색검대 부검대장 카르소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깊이가 너무 깊다.’

그리고 연무장에 새겨진 이 모든 검상에는 뇌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파괴력이 빈첸의 검에서 방출되었다는 뜻이었다.

“제가 졌습니다.”

풀썩.

제론의 몸이 쓰러졌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아덴카의 무인들은 침묵했다.

빈첸의 승리를 선언해야 할 카르소조차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빈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드시 말씀드리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