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49화
초월검격의 밑바탕은 이능검격이다.
이능검격은 이능을 베는 힘이었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효과적으로 잘라내는 힘을 지녔다.
‘설상걸음.’
빈첸은 설상걸음의 원리를 이용하여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높이 뜬 그가 허공에 발을 디뎠다.
발바닥 부근에 마나를 중첩하여 공간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팟!
빈첸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의 움직임 자체는 간결했다.
허공을 디뎌 몸을 쏘아낸 것에 불과했다.
그 속도가 무척 빨라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는 것만 제외하면 지극히 단순한 공격이었다.
“편히 쉬어라.”
간결한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과 또한 단순했다.
방벽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쩍 벌렸다.
“피가……!”
“피가 난다!”
수많은 병사들이 원거리 공격을 했었다.
실제로 표범의 가죽에는 많은 수의 마법화살과 마력총탄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공격도 유의미한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었다.
“놈이 기울어진다!”
기우뚱.
표범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표범의 옆에 빈첸이 착지했다.
빈첸은 쓰러진 표범의 눈을 바라보았다.
‘고통은 없을 것이다.’
표범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일격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복잡했다.
사미온의 적황미력처럼, 그의 마나가 표범의 몸 내부를 진탕시키고 뇌로 이어지는 신경을 모조리 끊어냈다.
“주, 죽은 건가?”
병사들과 무인들은 표범이 죽었는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눈을 감은 것은 맞지만 어쩌면 기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죽은 것 같은데?”
“설마, 진짜 죽은 건가?”
시간이 흘러도 표범에게서는 미동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죽었다!”
방벽을 파괴하고 도시를 혼란으로 밀어넣었던 마물은 빈첸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일격으로 사살했어.”
대부분의 병사들은 빈첸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졌다’ 정도로밖에는 인식할 수 없었다.
“저런 경지의 무위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대박이군.”
이제야 표범이 죽었음을 확신하게 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편,
바람소리의 최고 수석기자 마리아는 소리 질렀다.
“상황, 잡은 거 맞지? 제발 찍었다고 말해줘.”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 돼, 됐습니다! 기록되었습니다!”
“확실하지?”
마리아는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최고 수석기자’가 된 지 오래였고, 덕분에 그녀를 보조하는 보조 기자만 셋이었다.
마리아는 보조기자들의 영상석을 황급히 확인했다.
“하…… 됐다. 진짜로 담겼다.”
빈첸의 모습을 담는 데 성공했다.
“뭐, 각 잡고 촬영한 것에 비하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촬영에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지.”
“다행입니다.”
“역시 수석기자님의 안목과 직감은 뛰어나시군요.”
“안목? 직감?”
“빈첸 공자가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움직이신 거 아닙니까?”
“…….”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오늘은 행운에 가까웠다.
그녀는 비밀리에 6마탑과 관련된 취재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6마탑과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보니 얻어걸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아 수석기자님.”
“아악! 깜짝이야! 빈첸 공자! 기척을 좀 내줄 수 없어요?”
“놀랐다면 미안합니다.”
정신을 번쩍 차린 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있다는 거 알고 있었나 봐요.”
“예. 저와 친분이 깊은 사람들의 기척은 기억하고 있거든요.”
마리아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보조기사 셋이 선망의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었냐?”
“나도 들었다.”
“친분이 깊다고 엄청 자랑하시던데, 그게 진짜였네.”
마리아의 어깨에 괜스레 힘이 들어갔다.
빈첸이 직접 친분이 깊다 인정해 준 것은 일종의 권력이나 다름없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요? 빈첸 공자가요?”
마리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빈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어요?”
“네.”
빈첸이 방벽 아래.
거대표범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물은 아닌 듯합니다.”
“키메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죠?”
“상당한 사기(死氣) 또한 느껴집니다. 저건 흑마법의 산물일 확률이 높습니다.”
“…….”
마리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럼 제가 뭘 도울까요?”
“사체를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고 당분간만 보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식지의 기자들은 단순히 소식만 전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에 대한 증거품 등도 확보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빈첸이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왜 굳이 저한테 그걸 부탁하는 거죠?”
“저는 아직 생도의 신분이라 권한이 무척 적습니다. 저 정도 부피의 사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은…… 누군가가 저 사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뜻이 되겠군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체는 중요한 증거다.
그러니 저걸 어떻게든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사시 사체가 스스로 사라지도록 설계해놓지 않았을까요?”
“예. 그렇기에 바람소리의 최고 수석기자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바람소리.
이제는 명실상부 대륙 최고의 소식지다.
획득한 증거에 대한 최고의 보존기술을 가진 집단이기도 했다.
“그동안 사체에 대한 조사권한은 넘기겠습니다.”
“음, 좋아요. 그렇게 하죠. 얘들아. 빨리 본사에 지원 요청해.”
“저희 쪽에서는 3급 생도인 마리엘이 도울 겁니다. 혹시 힘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마리엘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어느덧 빈첸 옆에 선 마리엘은 찔끔 놀랐다.
“나, 나?”
“선배가 이들 중 완력이 가장 강할 테니까.”
“……진짜 나보고 힘 쓰라고?”
마리엘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은 나한테 힘 안 쓰게 하던데.”
그리고 피식 웃었다.
빈첸은 다른 생도들과 사뭇 달랐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팔을 걷어붙였다.
“알았어. 힘 닿는 데까지 도와볼게.”
그녀가 싱긋 웃었다.
“대신 나중에 데이트 한번 해줘.”
빈첸이라는 사람이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 *
마리아는 즉시 바람소리에 지원을 요청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여 무인들을 소환했고, 사체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바람소리의 연구원과 기술자들도 동원되었다.
최고 수석기자의 요청인 만큼 바람소리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인터뷰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마리아는 빈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빈첸은 그 인터뷰에 응했다.
당연히 초월검격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에. 용과 연이 닿았다니요. 진짜인가요?”
“제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겠지요.”
“하긴, 그래도 용쯤 되어야 이렇게 불가사의한 성장을 조금이라도 설명할 수 있겠네요.”
마리아는 열심히 필기했다.
“초월 검격이라. 정말 멋진 이름이에요. 용, 아니 스승님의 이름이 아넬린이라고 했죠?”
“네.”
잊혀진 이름.
‘아넬린’을 기록에 남겨야 했다.
“아넬린에 대해서 조금 더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아직 석연치 않은 것들이 있어서요. 훗날,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넬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것들을 파헤쳐야 한다.
왜곡된 역사.
잊혀진 영웅들.
훗날을 위해 안배된 것들까지.
“알겠어요. 어쨌든 아넬린이라는 이름은 확실히 기록하도록 할게요.”
“사체 보관을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바람소리 측에서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어요.”
“혹여 마탑에서 사체를 정식으로 요구하더라도 거절하십시오.”
마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말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빈첸 공자는 마탑을 의심하고 있구나.’
하긴,
그 정도 키메라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은 많지 않았다.
마탑을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했다.
“소유권이 빈첸 공자에게 있다고 둘러댈게요.”
“예. 다만, 바르곤 경께서 내어달라 하면 전해주십시오.”
“바르곤 경이요? 6마탑 출신 용병 마법사이자 현재는 붉은 요새의 부요새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 부탁드립니다.”
“6마탑은 믿지 못하지만 바르곤 경은 신뢰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예.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웃었다.
“바르곤 경은 좋겠네요. 좋아요. 바르곤 경이 사체를 요구하면 내어드리도록 하지요.”
대부분의 것들을 마무리했다.
초월검격과 아넬린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리고 빈첸 본연의 무위도 선보였다.
이제는 ‘생도 치고 강한 생도’가 아니라, ‘강한 무인’으로 이름을 남기기에 충분할 정도의 무력이었다.
마탑에서 마법사들이 파견되어 결계를 손봤다.
-승급 조건도 달성했네요.
파성무인이 될 수 있는 조건도 만족했다.
-요새로 복귀해서 승급식 치를 건가요?
‘아니. 나는 아덴카 본가로 복귀한다.’
-그래서요?
‘장로원을 찾을 거야.’
-뭘 어쩌려구요? 설마 뭐 장로원을 치겠다거나,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그들이 내린 임무 덕분에 수월히 승급하게 되었으니 감사인사라도 해야 예의 아니겠느냐?’
-끄응.
율리안은 빈첸을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형님 근데, 그거 알아요? 형님은 엄청 무모하고 뜨거워 보이는데 또 한편으로는 되게 계산적이고 차갑다는 거?
빈첸은 어깨를 으쓱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었다.
-근데 계산적이고 차가워진 건 뭐랄까,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그러냐?’
-네. 500년 전, 무슨 일을 겪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요.
율리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괜히 더 물었다가는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을 테니까.
-어쨌거나 장로원으로 간다고 결정을 했으니까요.
큰 결정은 빈첸이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르는 세부적인 디테일은 율리안이 완성한다.
빈첸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합이 좀 잘 맞는 것 같구나.’
-저번에도 그 말 했는데요.
‘조금 더 잘 맞는다고.’
-칭찬할 거면 좀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해주면 안 돼요?
어쨌든 빈첸은 아덴카의 본가로 복귀했다.
출발 전과 출발 후.
빈첸의 위상은 또 달라져 있었다.
아덴카가의 남문을 지키는 무인이 빈첸을 알아보고 경례했다.
“온전한 명예에 겸손한 경의를.”
“온전한 명예에 겸손한 경의를.”
빈첸이 아직 생도이기 때문에 붉은 요새식의 경례를 했다.
무인들이 붉은 요새식 경례를 생도에게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윌슨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빈첸 뒤에다 대고 그 경례를 따라했다.
“온전한 명예에 겸손한 경의를……!”
그의 눈과 턱과 어깨에는 자부심이 한가득이었다.
‘생도에게 이렇게까지 예를 취하는 건 본 적도 없다고!’
빈첸을 모시길 잘한 것 같았다.
빈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로 인사를 받고서 아덴카가 내로 걸음을 옮겼다.
백색검대의 제론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공자님! 소식지 봤습니다!”
“제론.”
“대인전은 헤나 공녀님과의 대련으로, 대마물전은 거대표범과의 대련으로 완벽히 증명하셨네요. 요즘 무인들 사이에서 말이 아주 많습니다. 거대표범이 몇 급 정도의 마물인지에 대해서요.”
제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저보다 강해지신 것 같은데요.”
하루 전의 빈첸과 오늘의 빈첸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마치 ‘성장’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대련한 번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지.”
“오! 정말이십니까? 시간은 언제가 괜찮으시겠습니까?”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알겠습니다!”
아직 생도 신분인 빈첸과 백색검대의 6성 무인 제론이 검투를 벌인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아덴카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