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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45화 (145/184)
  • 환생의 정석 145화

    빈첸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생도를 바라보았다.

    “꼴이 엉망이군요, 마리엘 선배.”

    이름은 마리엘.

    현재 3급 생도로서 얇은 검을 다루는 생도였다.

    그녀는 어떤 의미로는 붉은 요새에서 가장 유명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외양 때문이었다.

    그녀는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첫사랑’이었다.

    생도가 가지기에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 별명은, 우습게도 현실이었다.

    9급부터 1급까지.

    그녀를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남자 생도들이 열 명이 넘었으니까.

    “너는…… 빈첸?”

    마리엘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 빈첸을 끌어안았다.

    “나를 구하러 와준 거야?”

    그간 공포에 무척 떨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을 흐느꼈다.

    윌슨이 황급히 달려와 담요를 꺼내 마리엘의 몸을 덮어주었다.

    “이제 진정이 좀 됩니까?”

    “으, 으응.”

    빈첸은 마리엘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다.

    마리엘은 후후- 불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얼마나 갇혀 있었습니까?”

    “이틀 정도 된 것 같아. 그런데 지원 생도는? 네가 끝이야?”

    “일단은 그렇습니다.”

    “8급 생도로는 어림없어.”

    마리엘은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오우거 성체에게 새끼들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오우거는 3개월만 있어도 인간에게 매우 위협적인 마물로 자라난다.

    그래서 더 크기 전에 새끼들을 찾아내려 했다.

    “그 말은, 오우거 성체가 제 새끼를 버리고 인간들의 마을로 도망칠 만큼 강력한 포식자가 있었다는 뜻이었겠군요.”

    “그, 그건 그렇지.”

    모양새를 보아하니 마리엘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마리엘은 혀를 살짝 내밀고 배시시- 웃었다.

    윌슨은 괜스레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시선을 돌렸다.

    ‘침착하자, 윌슨!’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다.

    엉망진창이 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엘은 독보적으로 예뻤다.

    윌슨이 보기에는 그랬다.

    몸 여기저기에 나 있는 상처들마저도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정신 차려, 윌슨!’

    한편,

    세리는 기분이 영 언짢았다.

    ‘왜 저렇게 공자님 옆에 바짝 서 있는 건데?’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계속해서 터치를 하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위처럼 보였으나 세리의 눈에는 지극히 인위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어.’

    정령술을 활용하여 물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세리였다.

    덕분에 물이 어느 정도 뜨거운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준 건 그냥 미온수였는데.’

    저렇게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과장되게 호오- 호오- 하고 불면서 먹을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이틀이나 여기 고립되어 있었다며?’

    그러면 갈증이 상당했을 터.

    허겁지겁 물을 마셔야 정상이다.

    한창 기분이 나빴으나 세리는 이내 남몰래 빙그레 웃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걸, 공자님께서 모르고 계실 리는 없겠지. 속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뻘짓을 하겠구나.’

    그걸 생각하니 이제 마음이 놓였다.

    호호, 열심히 해보렴,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공자님 손바닥 안이라고.

    평정심을 되찾은 세리는 느긋하게 물을 마시며 둘을 지켜봤다.

    마리엘은 자신이 만났던 괴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흑표범이었어.”

    마리엘의 표현에 따르면 눈동자 하나가 달덩이 같다고 표현했다.

    마주하자마자 오금이 저릿하고 몸이 굳어버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을 보면 알다시피…….”

    “그렇게 거대한 생물체가 움직인 흔적은 없네요.”

    “맞아. 그게 무서운 거야. 나는 그 놈이 지척에 다가왔을 때도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

    “그렇군요.”

    대략적인 정보는 획득했다.

    몸놀림이 매우 은밀하고, 그렇게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포유류 형태의 마물.

    “어떻게 도망쳤습니까?”

    “도망친 게 아냐. 그놈이 날 그냥 놔줬어.”

    “놔줬다구요?”

    “놈이 내 몸을 한 번 핥았어. 마치 그냥 한 번 맛을 보는 것 같았어.”

    마리엘은 그때를 회상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이 이는 듯 빈첸에게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빈첸, 나 너무 무섭고 추운데, 안아주면 안 돼?”

    “…….”

    빈첸은 별다른 말없이 한 팔로 마리엘을 끌어당겼다.

    체구가 작은 마리엘은 빈첸의 품에 쏙 안겼다.

    “고마워.”

    “핥고 나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마리엘은 제복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정강이뼈를 부러뜨렸어. 포션을 먹어서 조금 회복시키긴 했는데 신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마리엘의 다리를 본 윌슨은 대성통곡 할 뻔했다.

    세기의 연인이 크게 다친 것만 같았다.

    보라색에 가까운 저 멍은 윌슨의 마음에도 큰 생채기를 남겼다.

    “아마 나를 저장할 수 있는 먹잇감 정도로 생각한 것 같아. 나를 내버려 두고 어딘가로 떠났어.”

    그게 이틀 전이라고 했다.

    마리엘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이 가시덤불에 숨은 뒤, 지원을 기다렸다고 했다.

    ‘율리안. 놈의 이름이 뭐야?’

    -글쎄요. 저 설명만큼 거대한 표범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표범이 아니라 다른 것일 확률이 더 높겠네요.

    마리엘의 설명만으로는 마물을 특정할 수 없었다.

    “일단 마을로 복귀하겠습니다. 윌슨. 함께 부축좀 해.”

    “물론입니다. 시종 윌슨, 명 받들겠습니다!”

    윌슨은 마리엘 옆에 섰다.

    “아이구, 엄청 아프셨겠습니다. 제가 마을에 도착하면 곧바로 신관을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고마워, 윌슨. 유능한 시종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

    마리엘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윌슨은 잠시 동안 멍하니 마리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부, 부축하겠습니다!”

    * * *

    길로안.

    테르산맥 중턱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마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많은 모험가들과 마법사들이 들리는 곳이니만큼 신관들의 숫자도 제법 되었다.

    다행히 마리엘의 다리는 깨끗이 회복되었다.

    “고마워, 빈첸. 네 덕분이야.”

    세리는 마리엘이 꽤 수다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쉴 새 없이 말을 꺼냈는데, 세리가 느끼기에는 무척 가증스러웠다.

    “그나저나 8급 생도가 지원을 나올 만큼 요새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봐?”

    “저희 공자님은 8급 생도가 아닙니다.”

    윌슨이 가슴을 쭉 폈다.

    빈첸 얘기를 할 때면 늘 윌슨 자신의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요?”

    “파성무인이십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요.”

    마리엘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윌슨은 농담도 참 재미있게 하는구나.”

    “그, 그게…….”

    세리가 끼어들었다.

    “이번에 조건부 파성무인이 되셨어요. 3급 생도분들의 임무 지원을 성공리에 끝내면 곧바로 파성무인으로 승급하실 거랍니다.”

    “정말이야, 빈첸?”

    마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빈첸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아기토끼 같았다.

    윌슨은 그렇게 느꼈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빈첸에게 팔짱을 꼈다.

    “정말 잘 됐다. 그러면 최연소 각명에 최연소 파성무인이 되는 거야? 정말 대단해. 나는 그런 게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도시를 지나다니는 몇몇 여행자들이 마리엘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중 또 몇몇은 걸어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다른 선배들은 어디에 묵고 있습니까?”

    “음, 이쪽이었던 것 같아. 사실 나는 길을 잘 못 찾아서. 헤헤. 미안해.”

    마리엘은 자신의 주먹으로 머리 부근을 살짝 톡 쳤다.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음, 맞아, 저쪽이다.”

    마리엘은 자연스레 빈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성큼성큼 먼저 걷기 시작했고, 빈첸은 별다른 말없이 마리엘을 따라갔다.

    “여기다!”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숙소 1층에서 우연히 3급 생도 둘과 마주쳤다.

    “마리엘!”

    “마리엘!”

    길로안에 파견된 3급 생도들은 도합 세 명.

    마리엘.

    브릭.

    케시언.

    모두 검을 다루는 생도들이었다.

    마리엘이 그들을 먼저 발견해서 불렀다.

    “너희들, 꼴이 대체 왜 그래?”

    “그야…… 너를 찾느라고 그랬지.”

    “그래도 면도할 시간 정도는 있었을 거 아냐. 어휴, 지저분해라.”

    브릭과 케시언의 얼굴이 붉어졌다.

    윌슨은 확신했다.

    ‘저 두 분도 마리엘 여신님을 사모하고 있구나!’

    경쟁심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묘한 동질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빈첸이 말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수색작업은 열심히 한 모양입니다만, 제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찾을 수 있었던 마리엘 선배를 찾지 못한 무능을 질책하지 않을 수는 없겠군요.”

    그제야 브릭과 케시언은 빈첸 쪽을 바라보았다.

    “이 개자식이 뭐라는……!”

    마리엘이 황급히 나섰다.

    “나를 구해줬어. 얼굴은 알고 있지?”

    그들도 빈첸을 알아보았다.

    마리엘보다 반응이 훨씬 격했다.

    “너, 너는……!”

    “빈첸?”

    “저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신 눈치입니다.”

    이미 빈첸에 관한 소식은 이곳에도 퍼져 있었다.

    3공녀 헤나를 일대일 검투로 꺾었다는 소문까지도.

    결국 브릭과 케시언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빈첸은 강자였을 뿐만 아니라 조건부 파성무인으로서, 생도들의 상급자였으니까.

    “그, 그래. 조건부 파성무인이 되었다지?”

    “네가 파견 온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우거가 제 새끼들을 버리고 도망칠 만큼 강력한 개체가 있다는 사실도 유추하지 못했고요.”

    “처, 처음에는 오우거가 그저 습격한 것으로 생각했어.”

    “어째서 마리엘 선배를 혼자 보냈습니까? 2인 1조가 기본일 텐데요.”

    “그건…….”

    마리엘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매뉴얼을 다 지키면 수색이 너무 늦어질까 봐 그랬던 거야. 오우거의 새끼 정도는 우리에게 크게 위험하지 않으니까. 각자 구역을 나눠서 따로따로 수색했어.”

    “매뉴얼은 지키라고 있는 겁니다.”

    브릭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에 반해 케시언은 빈첸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네가 임무를 해보면 얼마나 해봤다고 매뉴얼을 운운하는 거냐?”

    “…….”

    “네가 운 좋게 어마어마한 무력을 손에 쥐었다는 건 알겠다. 너와 일대일 결투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 그렇지만, 네가 나만큼의 경험이 있는 거냐? 실전에 투입되어 우리만큼 굴러봤냐고!”

    말을 하다 보니 조금 더 화가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8급 생도였던 빈첸이다.

    “실전 경험도 얼마 없는 애송이가, 이론만 들고 와서 선배들을 타박하는 것이 옳으냐?”

    “선배가 그 이론을 만든 자보다 뛰어납니까?”

    케시언은 크게 흥분했지만 빈첸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 매뉴얼을 만든 사람보다 실전경험이 풍부합니까? 비록 단기 승급이기는 하지만 조건부 파성무인인 제게 생도가 그런 식으로 불만을 표현해도 옳습니까?”

    숙소 1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부끄러움을 느낀 케시언이 작게 말했다.

    “따라와. 방에서 얘기하지.”

    “내 얘기는 끝났어.”

    할 말은 다 했다.

    “더 할 말이 남아 있으면 내 시종에게 기별한 후, 내 허락을 구한 뒤 찾아와라.”

    “……이 자식이.”

    빈첸이 가까이 다가갔다.

    작게 속삭였다.

    “귀엽게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

    “자신 있으면 좀 더 까불어봐.”

    그 말에 케시언의 몸이 얼어붙었다.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온몸을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

    그사이, 윌슨이 눈치껏 방을 배정받아왔다.

    빈첸이 6층에 위치한 방으로 올라간 후에야 케시언은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씨X…….”

    그날 밤.

    누군가 빈첸의 방을 찾아왔다.

    “마리엘이야. 들어가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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