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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41화 (141/184)

환생의 정석 141화

로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내 검에 무슨 비겁한 짓을 해놓은 거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덤벼도 좋다.”

빈첸은 여유로웠다.

그가 제론에게 말했다.

“제론. 그대의 검은 멀쩡한가?”

“예? 그, 그게, 멀쩡하긴 합니다만…….”

“로아에게 빌려주면 좋겠는데.”

“그, 그것이, 제가 박봉이어 가지고…….”

사실 제론도 지금 온전한 제정신은 아니었다.

6성 무인인 그조차 빈첸의 발검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 정도였다.

2년 전 성장세가 깜짝 놀랄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성장은 미처 놀랄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혹시 검이 망가진다면 흑강철로 제련한 검을 선물하겠다.”

“로아 공녀님. 제 검을 받으십시오.”

재빨리 두 손으로 검을 바쳤다.

“제 검은 한센 공방제 아주 튼튼한 검이니 마구 휘둘러주시길. 부서져도 되니 부담 같은 건 전혀 갖지 마십시오.”

로아는 얼떨결에 제론의 검을 받아들었다.

크기와 무게가 익숙치 않았으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은, 방금의 수치를 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은 검을 맞대어 주십시오.”

다시 검투가 시작됐다.

결과는 똑같았다.

로아는 빈첸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고, 제론이 빌려준 검은 박살이 나버렸다.

제론은 환한 기색을 겨우 숨겼다.

“아이고! 이렇게 슬플 수가! 제 애검이 부서져 버렸군요. 승리는 빈첸 공자님의 것입니다.”

빈첸이 피식 웃었다.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군.”

빈첸의 미소는 완연한 강자의 것이어서, 로아의 자존심을 팍팍 건드렸다.

로아 입장에서는 상당히 얄미웠다.

“오라버니와 제론 경이 꽤 친분이 두터워 보여서 말이야. 이 검에도 무슨 짓을 해놓았을지 어떻게 알아?”

“공녀님. 저 그렇게 치졸한 사람 아닙…….”

빈첸이 손을 들어 올려 제론을 막아섰다.

“또 덤벼도 좋다.”

“좋아. 오라버니의 오만이 어디까지 갈지 두고보겠어.”

빈첸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네 재롱 같은 건 얼마든지 받아주마’와 같은 모양새여서 로아의 얼굴은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로아의 시종이 여분의 검을 들고왔다.

“그 검이면 확실히 되겠느냐?”

“잔말 말고 검이나 들어.”

그게 몇 차례나 반복되었고, 일곱 자루의 검이 박살 났다.

그 모습을 보며 헤르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저 바르곤 2세, 저 봐라, 저. 내가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했지?”

“왜 빈첸 생도가 제 2세입니까? 저 미혼입니다, 미혼!”

“하는 짓이 음흉한 게 딱 바르곤 2세잖아.”

헤르카의 시선은 현 7급 생도인 레이븐에게 맞닿아 있었다.

레이븐은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7급 생도들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븐이 헤르카에게로 뛰어왔다.

“요새장님. 저도 싸워보고 싶습니다.”

“레이븐 생도. 이거 다 빈첸이 설계한 거다?”

“그런데요?”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라고.”

빈첸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성장과 무위를 완벽히 증명할 것이다.

레이븐은 그 희생양이 될 예정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레이븐의 몸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승패와 상관없이, 그는 당장에라도 빈첸과 싸워보고 싶었다.

“이 생각 없는 바르티칸의 후계자야. 방금 빈첸의 발검을 읽어내기나 했니?”

“못 읽었습니다만.”

“생도는 빈첸 생도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따로 계획이 있는 거야?”

“화끈하게 박살 나고 오겠습니다!”

“보통은 박살 낸다고 하지 않아?”

“박살 날 게 뻔한데 어떻게 박살 낸다고 합니까? 그건 거짓말입니다.”

헤르카는 레이븐 뒤에 선 세르쿤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님. 이거 괜찮은 거 맞죠?”

“이렇게 똥고집 부리면 아무도 못 말립니다.”

“후우. 알겠어. 그럼 열심히 박살 나고 와. 허락해 준 내 탓 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8급 대표생도인 로아는 완벽하게 패배했다.

이번에는 7급 생도 레이븐이 나섰다.

레이븐이 창을 들고서 빈첸과 마주 섰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네가 대표생도가 아니야?”

“아직은. 네 형이 아직 승급을 안 했거든.”

현재 7급 대표생도는 데미안 아덴카.

아덴카의 5공자였다.

긴 임무를 수행하고 최근 복귀해서 아직 승급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데미안 아덴카가 승급하고 나면, 레이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예정이었다.

“빈첸. 너 최선을 다해라.”

“…….”

“절대 봐주지 마. 나는 박살 나러 왔으니까.”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윌슨을 불러 목검을 건네주고 홍련을 들었다.

“그럼 무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덴카의 혈육과 바르티칸의 혈육이 맞부딪쳤다.

그것은 대단한 이슈였으나, 이슈만큼 실속 있는 내용은 없었다.

“큭.”

레이븐의 목젖에 홍련의 검날이 닿아 있었다.

레이븐의 찌르기를 피한 빈첸이 빈 공간을 교묘히 파고들어 홍련을 내질렀다.

단 한 수에 패배했다.

“안 되겠다. 너 그거해.”

“뭘?”

“후공. 나한테 선공을 양보해라.”

레이븐은 무척 뻔뻔했다.

“나도 공격 좀 해보자.”

“몇 번이나?”

“5번.”

은근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니, 6번?”

“…….”

“7번은 어떠냐?”

레이븐은 빈첸에게 공격을 해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것 같았다.

어차피 이길 생각은 없었고, 최선을 다해 공격을 해보고 싶었다.

“열 번을 양보하지.”

“대인배구나! 그 제안을 승낙해 주지.”

무투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무투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빈첸은 간결한 동작으로 레이븐의 창을 모두 쳐냈다.

레이븐의 호흡은 거칠어졌으나 빈첸의 호흡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후후후.”

레이븐은 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완패를 인정했다.

“네 보통 방어가 일품이구나.”

“보통 방어?”

최근 생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었다.

특별한 방어검식이나 특성을 운용하지 않고, 순수한 검술로만 방어해 내는 것을 보통 방어라고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순수 검술로만 공격하는 것을 보통 공격이라 했다.

“보통 공격조차도, 내 창술식보다 어마어마했다.”

레이븐이 빈첸을 와락 끌어안았다.

“도대체 얼마나 성장한 것이냐! 이 정도면 카곤도 씹어 먹겠군! 자랑스럽다, 이 자식아.”

빈첸은 레이븐을 패대기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준 것 -그보다는 그냥 싸워보고 싶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레이븐이 크게 외쳤다.

“이봐요, 데미안 형님, 형님도 얘한테는 상대도 안 될걸요?”

레이븐과 데미안은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성격이 무척 비슷한 그들은 만나기만하면 싸움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7급 생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레이븐의 도발에 무척 자극 받은 상태.

“저런 도발을 듣고도 가만히 계실 건가요?”

로아였다.

로아는 어려서부터 데미안을 따랐다.

로아의 입장에서 7공자인 빈첸은 오라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못난이였고, 그 위의 말론도 똑같은 쓰레기였다.

그래서 로아는 5공자인 데미안을 진짜 오빠로 생각했다.

데미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헤르카에게 허락을 구했다.

“저도 빈첸과 검을 섞어보고 싶습니다.”

“이거 다 빈첸의 설계다?”

“괜찮습니다. 형이자, 상급 생도의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뭐, 그래, 알겠어. 한 번 열심히 해봐.”

헤르카는 열심히 말리지는 않았다.

데미안이 자리를 떠난 뒤, 바르곤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리는 시늉은 왜 하시는 겁니까?”

“시늉도 안 하면 바르곤 경이 나 죽일 거 같아서.”

“…….”

“뭐야, 무섭게? 왜 아무 말도 안 해? 침묵하니까 진짜 같잖아.”

바르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 무대의 주인공은 정해져 있었다.

헤르카는 빈첸을 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 생각이 틀림없었다.

“빈첸을 빛내주기 위한 겁니까, 아니면 귀찮은 서류작업들을 피하고 싶은 겁니까?”

“둘 다라고 해두자.”

8급 대표생도 데미안 아덴카.

그는 아덴카의 7개의 검식들 중, 폭검(爆劍)을 주력으로 하여 익힌 검술가였다.

불의 상급신들 중 하나이자, 불꽃의 수레라는 이명을 가진 신인 ‘소서리움’의 가호를 지니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특성 ‘연계폭발’을 사용하여 검에 담았다.

아덴카 폭검 제4식.

톱니바퀴.

데미안의 검에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데미안의 검에 기포가 서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톱니바퀴’의 형태였다.

데미안의 검과 홍련이 맞부딪쳤다.

“아둔한 놈!”

아덴카의 정검을 익힌 자는, 폭검을 익힌 자와 정면충돌을 피해야 한다.

정면충돌에서 폭검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아덴카의 검은 ‘중검’밖에 없으니까.

콰과광!

굉음이 일었다.

마탄이 터지는 듯했다.

아덴카의 ‘폭검’과 데미안의 ‘연계폭발’의 힘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빈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데미안은 빈첸이 쓰러졌다고 확신했다.

“네 자신감이 너무 과했구…… 윽!”

연기 사이로 빈첸의 검이 화살처럼 튀어나왔다.

데미안은 반응하지 못했고, 빈첸의 검첨이 데미안의 목 끝에 닿았다.

“6급에 가까운 7급 생도는 이 정도 실력이군요.”

“너……!”

데미안은 자신의 목젖에 닿은 홍련의 검첨을 바라보았다.

그는 분한 듯,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잠시 고개를 숙이는 사이 제론이 빈첸의 승리를 알렸다.

제론은 은근슬쩍 데미안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중재무인이다.

데미안이 돌발행동이라도 하면 막아내야 했다.

데미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개쩌는구나.”

“…….”

그리고 고개를 돌려 레이븐 쪽을 바라보았다.

“야. 개자식아. 네 말이 맞았다.”

“그래, 개자식형아. 내 말이 맞지!”

데미안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빈첸과 자신 사이에 압도적인 격차가 있음을 인정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율리안은 허허- 웃었다.

-데미안 형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열정은 있지만 특색이 없어 공기 같은 존재였는데. 형님 덕분에 더욱 공기가 되어버리겠어요.

데미안은 레이븐과 비슷한 성격 탓에 정치를 잘하지는 못했다.

장로원의 장로들도 데미안을 딱히 후계자 후보로 올려두지 않은 상태.

그러한 상황에서 7공자인 빈첸에게 졌으니, 이제 그가 아덴카를 이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마리아 기자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림이 재미있게 됐는데?”

“뭐가 말입니까?”

“5공자가 7공자에게 패배했잖아.”

“그런데요?”

“서열을 뒤집은 하극상. 게다가 빈첸 공자는 아직 8급생도에 불과하고. 그럼 그 다음은 뭐가 되겠어?”

“뭐가 되는데요?”

“그 머리로 기자 어떻게 할래? 그 다음은 아벨 아덴카가 있잖아. 아덴카 4공자. 지금 아마 3급 대표생도일걸?”

아벨 아덴카.

아덴카의 4공자이자 현 3급 대표생도인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빈첸은…… 터무니없이 강하다.’

그는 빈첸의 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칸과 베르사가 함께하고 있다.

더군다나 많은 생도들이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꼴이 우스워질 텐데.’

그렇다고 데미안처럼 패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빈첸의 무위는 지나치게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빈첸은 아직 제대로 된 검식을 펼친 적도 없었다.

‘모든 공방이 보통공방이었다.’

어떻게 저런 괴물이 되어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벨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 누군가가 헤르카를 찾았다.

“헤르카 경. 제가 빈첸과 검을 맞대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앉아서 아벨 쪽을 주시하던 헤르카는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엥? 네가, 아니 공녀가 왜 여기 있어? 아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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