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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37화 (137/184)

환생의 정석 137화

빈첸은 세리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수련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어. 내가 없는 동안 셀비라를 도와줘.”

셀비라는 현재 용림에서 수련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수련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역사를 공부 중이다.

“알겠어요.”

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첸이 시킨 것은 아니나,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이메르 경에게 정령술도 더 배워올게요.’

그녀는 마법만큼이나 정령술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세리의 마법스승인 바르곤은 약간 언짢아했다.

“마법은 뒷전인 것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저보다 뛰어난 마법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스승님께서도 저희 공자님을 많이 아끼시잖아요. 저 말고도 공자님을 마법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거예요.”

빈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각 마탑에서도 빈첸을 주목하고 있다.

아덴카의 후계자 후보이자, 열넷의 나이로 이만한 성취를 이룬 빈첸과 연을 맺고 싶어 하는 마법사들의 수도 늘어나는 상황.

“그렇지만 정령술로 공자님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잖아요.”

정령사들은 매우 희귀하다.

그래서 몸값도 아주 비쌀뿐더러 콧대도 높다.

“저는 오롯이 공자님을 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자님께서는 용왕의 힘을 다룰 줄 아시고, 그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제 정령술이 꼭 필요해요.”

“…….”

“스승님께서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바르곤은 입을 다물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겨우 입을 열었다.

“아주 지극정성이구나.”

“공자님 곁에는 저밖에 없었는걸요.”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세리는 어린 시절의 빈첸을 잊지 못했다.

그 기억은 세리에게 트라우마였다.

빈첸이 또다시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그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세리 자신이 그 곁을 지켜야 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말하든 용림으로 가겠군. 네 뜻대로 하여라. 가서도 마법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고.”

“용아인들 중에도 뛰어난 마법사들이 있을 거예요. 나이메르 경에게 부탁하면 그들에게도 마법을 사사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구나.”

바르곤은 세리의 스승이면서 또한 행정가이기도 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나이메르 경에게 얘기해서 붉은 요새와 적극적 교류를 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어보거라.”

“적극적 교류요?”

“그곳은 프란시스 미술 기념관과 연결된 곳이고, 용아인들은 예로부터 수많은 예술가와 명장들을 배출한 종족 아니냐? 생도들도 그들과 교류하면 인문학적 소양과 보다 넓은 안목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요.”

“그래. 답신 기다리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세리가 활짝 웃었다.

“제가 엄청 존경해요, 스승님.”

“흐, 흥, 됐다. 그저 머릿속에 공자님만 가득해서는. 내가 결국 허락하지 않았으면 용림으로 가는 걸 포기했을 테냐?”

“허락해 주실 때까지 조르려고 했죠.”

바르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떤 부분에서 세리는 집요했다.

빈첸과 관련된 부분이면 더욱 그랬다.

“생각만 해도 무섭군.”

그날 밤.

바르곤은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예로부터, 아무리 잘난 자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예는 그의 누이였다.

6마탑이 헬라임의 ‘지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6마탑에 더러운 면이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누님은…… 살해당한 것일지도 몰라.’

6마탑의 그늘을 발견한 그녀가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였고,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그녀가 유서를 미리 준비해놨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했다.

‘평생 몸담은 6마탑에 재산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뚱맞게 내게 유산을 남긴 것도 그렇고.’

아무튼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

‘중요한 건, 누님 곁에는 누님의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최연소 부탑주에 올랐다.

그러나 그만큼 바르넬리를 시기질투하는 세력도 많았다.

바르넬리는 홀로 뛰어난 천재였고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빈첸, 너는 달라.’

가주 칸이 그를 인정했고, 베르사와 레일사가 빈첸에게 큰 호의를 지니고 있었다.

2급 신관 둘란과 8성 무인 멀린 또한 빈첸의 편이었다.

붉은 요새의 요새장 헤르카와 부요새장인 바르곤 자신.

부랑자 수용소가 위치한 해안도시 메일튬의 사람들.

헬라임이 다스렸었고, 현재는 시민혁명대 치하 도시의 사람들.

용림에 웅크리고 있는 수많은 용아인들.

‘어린 나이에, 너는 벌써 네 세력을 일구고 있구나.’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필두로 하여 유력 소식지의 기자들이 빈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다.

그들에게 있어서 빈첸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너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어줄 동료들도 있지.’

빈첸이 구해줬었던 9급 생도 시젠.

전에는 열등생이었던 또 다른 9급 생도 하몬.

바르곤이 보기에, 그들은 빈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생도들이었다.

‘그건 헤나도 마찬가지고.’

하나하나 곱씹어보니, 빈첸이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본인의 무력 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이루었다.

‘기대가 되는구나.’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네 세대가 이끌어갈, 아니 네가 이끌어갈 미래가.’

* * *

아넬린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니까, 너를 도우라고? 살아 있는 동안?”

“네. 안 됩니까?”

“내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고?”

“제 어머니도 저주의 문양을 갖게 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을 생존했었다 들었습니다. 그사이 저를 낳기도 하셨고요. 용인 당신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더 오래 살면, 너를 무조건 도와야 하는 거야?”

“제가 [진실을 추구하는 자]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용이라면 맞다에 걸겠습니다.”

“왜?”

“저 말고 또 다른 [진실을 추구하는 자]를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오래 못 산다면서요.”

“빨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러냐?”

“오래 사셔야 절 오래 도울 수 있는데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아넬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시 한번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빈첸을 겁주기 위함이었으나, 빈첸은 겁먹지 않았다.

“아, 짜증 나, 왜 안 쫄아?”

“안 죽일 걸 아는데 왜 쫍니까?”

“움찔하는 시늉이라도 하든지.”

움찔.

빈첸이 일부러 몸을 움찔했다.

“하지 마.”

움찔.

한 번 더 움찔했다.

“하지 말라고!”

“움찔하라 하셔서 했는데 문제 있습니까?”

“말하는 꼬라지가 아슬란이랑 너무 비슷해서 짜증 나.”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지 마시고 좀 도와주십시오. 어차피 도와주실 거면서 왜 자꾸 튕기십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확정지어 생각하는 게 아슬란이랑 똑같아서 구리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

“생각해 보니까 200년 전 영웅 아벨탄에게 ‘용왕(龍王)’이라는 호칭은 좀 과분한 것 같아서요.”

용왕은 말 그대로 용들의 왕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까, 용의 허락 없이 용왕이라 불릴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

“그렇다면 용이 허락했다는 거고 그만큼 어떤 용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뜻이겠지요. 이를테면 위대한 종말과 파괴의 흑염룡같은 용 말이죠.”

“음, 맞아. 그 용이 좀 위대하긴 했지.”

“그리고 저는 용왕의 힘을 이어받았고, 용왕의 반지로 수련을 할 것이니, 용왕과 각별했던 용이 저를 도와주시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넬린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도와줄게. 하지만 명심해. 말싸움에 져서 도와주는 건 아냐.”

“압니다. 옛 친구들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제가 [진실을 추구하는 자]일지도 모르기에. 그래서 절 도와주시는 거 아닙니까?”

“……짜증 나. 조용히 해.”

“…….”

“대답 안 해?”

“조용히 하라고 하셔서 입을 다문 겁니다.”

“끄응.”

빈첸은 아넬린의 기분이 꽤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율리안도 마찬가지였다.

-꽤 수다스러운 용이네요.

‘오랜 세월을 혼자서 지냈으니 그럴 수 있지.’

-말싸움은 무진장 못하면서, 또 즐기기는 엄청 즐기는 변태 같아요.

‘나도 동의한다.’

실제로 아넬린은 빈첸과의 대화를 무척 즐거워하고 있었다.

수다스러운 용, 아넬린은 저도 모르게 말이 조금 빨라졌다.

“그 반지의 능력에 대해서 가르쳐줄까?”

* * *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군요. 시간을 다루는 마법은 마법 중에서도 최상위 권능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용의 도움이 필요했지.”

아벨탄이 남긴 반지는 시간의 권능을 품고 있었다.

“안에서의 3년이, 바깥에서의 1년이란 뜻이군요.”

용왕의 반지는 ‘새로운 수련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반지다.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으며 시간의 흐름이 현실과 다르다고 했다.

“수련을 끝내면 제 힘으로 균열을 일으켜 공간을 부수고 나와야 하고요.”

“그래. 못 나오면 반지 속 공간과 함께 네 존재 자체가 소멸할 거야.”

그 공간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은 용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도 이 반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용.

그 용이 바로 아넬린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반지의 내구력은 대략 6년 정도가 한계야. 그 이상은 반지가 못 버텨.”

“무척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군요.”

“나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용이니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뭘?”

“그 안에서도 먹고, 자고, 싸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안에서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고요.”

“대충 한 달 치 챙겨가. 네가 그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넬린은 코웃음 쳤다.

“인간이 그 안에서 오래 버텨봐야 한 달이지.”

그곳은 용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인위적인 공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말하자면 감옥의 독방보다 더 외로운 곳이었다.

“저는 반지가 허락하는 모든 시간을 버틸 생각입니다.”

“퍽이나. 잘도 그러시겠다.”

아넬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의 정신으로는 절대 못 버텨.”

아넬린도 빈첸의 정신력과 기백은 인정한다.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였다.

그러나 이건 다른 문제였다.

“버텨보려 합니다.”

“못 한다니까? 가능하더라도 미쳐버릴걸? 미쳐버리면, 그 공간을 어떻게 부수고 나오게? 불가능한 일이야. 너, 무슨, 외딴 지하 감옥에 혼자 갇혀본 경험이 있냐? 한 10년쯤? 그런 경험 있으면 인정.”

있었다.

10년쯤 갇혀 있었던 것 같군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죽음의 문양을 가져가셨지만, 그래도 2년 정도는 살 수 있으시지요?”

현실 시간으로 2년, 반지 안쪽 시간으로 6년 동안 식량을 조달해달라는 얘기였다.

아넬린은 코웃음 쳤다.

“그래. 네가 1달을 온전히 버티면, 식량과 물은 내가 조달해 준다. 됐냐?”

“네.”

“못하면 어떡할래?”

“못하면 당신께서 마나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평생 수발들겠습니다.”

“내 노예가 되겠다는 말이지?”

“예. 약속하겠습니다.”

아넬린이 만족한 듯 웃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못 버텨. 나는 분명 얘기했다?”

아넬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종이가 나타났다.

일종의 노예계약서였다.

빈첸은 망설임 없이 사인했다.

아넬린이 키득대고 웃었다.

“말년에 귀여운 노예 하나 들일 수 있겠네.”

“수련 중에 훌륭한 식사 배달용을 들일 수 있겠군요.”

빈첸이 피식 웃었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말벗이 되어줄 존재가 한 명 있었다.

그리고 지하감옥을 이미 경험하고 견뎌냈었다.

빈첸은 용왕의 반지를 활성화시켰다.

아넬린의 말대로,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어둡군.’

빛과 소리가 차단된 곳이었다.

공간 자체가 아주 넓지는 않은 것 같았다.

탐사를 해보지는 않았으나 흔히 볼 수 있는 연무장 정도의 크기인 듯했다.

빈첸은 범용 마정석을 꺼내 최소한의 빛을 확보했다.

‘그럼, 수련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빈첸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공간 한가운데.

작은 상자가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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