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136화
빈첸은 스스로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천골이 회복되자마자, 몇 단계는 더욱 성장했다.
율리안조차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심상이론을 비롯한 현대 마도공학의 계산법으로는 도무지 가늠이 안 돼요.
계산이 불가했다.
그만큼,
현재 빈첸의 성장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율리안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마나의 양으로만 따지면 최소 5성 이상.
그러나 율리안은 알고 있다.
빈첸은 현대무인과 많이 다르다.
양이 5성과 같다면, 그 질은 적어도 6성 이상이라는 얘기다.
많은 자들이 인정하였듯, 그의 격은 일반적인 무인들과 궤를 달리했기에.
-데이아 누님의 성장속도를…… 뛰어넘었어요.
‘천과’는 빈첸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완성되어 있던 정신과 경험에, 회복된 몸이 결합되었다.
아넬린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율리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율리안 역시 많은 힘을 소모했고, 잠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빈첸은 쓰러진 헤나에게 다가가 헤나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하긴. 네 누이가 전력으로 반지를 활성화시키더라.”
“……느껴졌습니다.”
헤나도, 율리안도, 전력을 다해 빈첸을 도와주었다.
빈첸은 헤나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살펴보았다.
반지에 균열이 많이 생겨 있었다.
깨지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부으신 겁니까.’
빈첸이 말했다.
“누님은 치료가 필요합니다.”
“알아.”
“신전으로 이동을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귀찮아.”
“아넬린의 이름도 잊혀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아넬린과 함께했던 영웅들의 서사는 잊혀지고 왜곡되었습니다. 친우들의 명예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걸 바로잡겠습니다. 당신께서도 그것을 원하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수백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셨으니까요.”
정말로 죽음을 바랐다면 그냥 마나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용은 천과를 지켰다.
“용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지키겠습니다.”
“흐음.”
아넬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
“흐음, 역시 아슬란 녀석이랑 무척 닮았단 말이야.”
“…….”
“뭐, 좋아. 사실 쟤 내 취향이거든. 도와줄게.”
아넬린은 워프를 사용해 주었다.
빈첸은 헤나를 둘란에게 맡겼다.
“온몸이 만신창이군요. 회복은 가능하겠지만 안정을 위하여 최소 일주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할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멀린과 만났다.
멀린은 빈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천과를 먹었습니다.”
멀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축하한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구나. 아니, 이미 완성되어 있던 것을 끄집어냈을 뿐인가.”
“스승님의 도움 덕분입니다.”
“네 성취에 내 도움은 없었다.”
“천과를 섭취할 때, 아덴카의 명상식이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더군요.”
마치,
천과를 완벽히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명상식처럼 말이다.
“검을 잡아 보아라.”
계속해서 반말로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지금은 ‘공자’인 빈첸이 아니라 ‘제자’인 빈첸을 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빈첸과 멀린은 연무장으로 향했다.
본래 멀린은 빈첸과 대련할 때 목검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검을 들었다.
“전력을 다하여 덤비거라. 가능한 모든 것을 사용하여라. 네가 새로이 익힌 것을 내가 받아주겠다.”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이 얻은 힘과 육체는 현재 이론에 머물러 있는 상태.
이것을 실제로 사용해 보느냐, 사용해 보지 않느냐는 큰 차이를 만든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멀린이라면 전력을 다한 자신의 공격을 충분히 잘 받아내 줄 것이었다.
빈첸은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하며, 자신이 무엇을 선보일지 얘기했다.
“제가 이번에 사용할 능력은 용왕으로부터 창안되어 용아인 전사 칼백 경을 통하여 전승된 능력이며, 해상군세를 변형하여 만들어진 대인 결전기입니다.”
“기술의 명칭은?”
“검은 바다입니다. 검은 바다의 기운을 아덴카의 정검에 연환하여 사용할 것입니다.”
빈첸은 호흡에 집중했다.
8성 무인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기로 했다.
멀린 또한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강해졌구나.’
단순히 강해졌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물론 지금은 실전 상황이 아니고, 가진바 전력을 끌어내기에 무척 유리하고 좋은 환경인 것은 맞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느껴지는 빈첸의 기세는 ‘진짜’였다.
멀린은 칼백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을 보았다.
‘어두워진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로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검은 바다가 하늘을 덮은 것만 같았다.
고오오-
무겁고 거대한 바다가 막강한 검압(劍壓)을 일으켰다.
“이는 스승님께서 보여주신 벽력종절을 모사한 아덴카의 정검입니다.”
아덴카 정검 3식.
검은 바다 연환.
길게 베어내기.
드높은 해일이 치솟았다.
빈첸의 검압은 거대한 해일이었다.
멀린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또한 이 대련에 진심이었다.
“네가 나의 검을 모사하였으니, 나 또한 나의 검으로 네 검을 받겠다.”
페일커 검식 제7장.
뇌력 연환.
벽력종절(霹力縱絶).
빈첸의 ‘길게 베어내기.’
멀린의 ‘벽력종절’이 한데 부딪쳤다.
뇌력을 머금은 세로의 검압과.
검은바다를 삼킨 또 다른 검압이 부딪쳐 서로의 기운을 집어삼켰다.
콰과과광-!
거대한 폭발과 지진이 일었다.
연무장과 가이아 신전 본관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관들이 깜짝 놀라 기도를 멈추고 밖으로 뛰어나올 정도였다.
둘란 또한 먼발치서 피어오르는 강대한 기세를 읽어냈다.
“저것은…….”
그는 뛰어난 신관이었으나 무인은 아니었다.
무인들이 일으키는 이능과 검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마치, 공간이 단절된 것 같구나.”
공간에는 두 개의 기다란 벽이 세워져 있었다.
하나는 검은색 벽이었고,
또 하나는 푸른색 벽이었다.
두 개의 벽은 서로 맞닿아 있었고, 마치 이 차원의 공간에 균열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화들짝 놀라 뛰어나온 신관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저, 저기 하늘을 좀 보십시오.”
둘란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둘란 경.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제 성기사단장과 빈첸 공자가 저곳에서 검술대련을 펼친다 하였습니다.”
“에이, 무슨 검술 대련으로 저런 기현상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황급히 성기사들이 파견될 정도였다.
연무장에 도착한 성기사들조차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멀린 경! 쓰러진 자는 빈첸 공자입니까?”
“그렇습니다.”
빈첸의 몸에서 뇌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빈첸은 왼손에 검을 쥔 채 기절해 있었다.
“멀린 경의 검이…….”
“네. 보다시피, 박살이 났군요.”
성기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멀린은 한때 아덴카의 12검 중 한 명이었고, 8성의 무인이었다.
그런 자의 검이 어떻게 저리 부서져 있단 말인가.
“빈첸 공자가 그리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멀린 경께서 무척 많이 봐주신 듯하군요.”
멀린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전력을 다했습니다.”
구석에서 지켜보던 아넬린이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 주변에는 마법진 여러 개가 중첩되어 있었다.
“이야, 찌릿찌릿하네.”
검은 바다와 벽력종절이 부딪친 충격파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법결계를 펼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멀린이 아넬린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아넬린은 별거 아니라는 듯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묵빛 비늘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본체의 힘을 끌어다 써야 했어.’
큰 충격을 감당했었는지,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기술을 창안한 아벨탄 녀석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실전이 아니라는 점.
빈첸이 마음 놓고 전력을 끌어내 쓸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용골을 머금은 검을 사용했다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지금 빈첸이 보여준 능력은 지나치게 예상을 벗어났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예언자 놈이 말하던 [진실을 추구하는 자]가 정말로 저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네. 큰일인걸.’
* * *
빈첸은 붉은 요새로 복귀하여 헤르카에게 보고를 올렸다.
“……하여 천과를 획득하였고, 헤나 누님은 가이아 신전에 회복을 요청하여두었습니다.”
“그래. 바르곤 2세라면 해낼 줄 알았어.”
그녀는 빈첸과 멀린 사이에 커다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빈첸이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것도 굳이 짚어내지 않았다.
헤르카는 헤헤 웃었다.
“야, 바르곤 2세야.”
“예.”
“나 한 조각만 주라.”
“……천과가 탐이 나십니까?”
“맛있을 거 같아서. 나 달콤한 거 좋아해. 어때? 맛있었어? 남긴 거 없어? 나 진짜 한 조각만 주면 안 돼? 돈 줄게.”
빈첸이 고개를 저었다.
천과는 이미 섭취한 상태다.
“실망이다. 나도 천과 먹어보고 싶은데.”
“대신 제철 생크림 케이크 사드리겠습니다.”
“생크림 케이크에 제철이 어디있어? 너 나 놀리냐?”
그 말에 바르곤이 문을 벌컥! 열었다.
보통은 노크를 하고 예의를 지키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헤르카의 말에 몹시 분노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철 생크림 케이크를 먹겠다며 다짜고짜 출장을 요구하던 어떤 분이 생각나는군요.”
“그런 쓰레기 같은 자식이 있단 말이야?”
“…….”
“말만 해. 내가 조져줄게.”
“제가 직접 조지겠습니다.”
바르곤이 살상마법 영창을 외웠고 헤르카는 황급히 빈첸 뒤에 숨었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부요새장님. 점점 더 거칠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쓰레기 같은 누구 때문에.”
바르곤이 마법술식을 풀었다.
그 또한 빈첸의 성장이 느껴졌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부러 저를 출장 보내셨다는 건 알겠군요, 헤르카 경.”
“봐봐, 나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불렀다니까.”
헤르카는 기세등등해졌다.
“지금 얘, 당장 1급 생도로 승격시켜도 아무도 말 못 할걸? 그냥 콱 1급 생도 시킬까?”
“그래도 요새에는 규정과 절차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또 딱딱한 소리한다. 바르곤 경은 안 느껴져? 바르곤 2세에게서 어마어마한 기백이 느껴지잖아.”
“느껴집니다. 일반적인 무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이 깃든 것만 같습니다.”
“그래. 데이아보다 성장이 더 빨라. 헤나랑 싸워도 빈첸이 이길 거 같은데.”
“단순히 무력의 강함이 급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르카 경!”
빈첸은 조용히 차를 마시며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여러 대화가 오고 갔다.
헤르카가 억울한 듯 말했다.
“빈첸. 너도 그냥 1급 생도 하고 싶지? 어때?”
“저를 후원하시는 분이 바르곤 경이셔서요.”
“근데?”
“후원자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자본의 노예 같으니라고!”
빈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사실 지금 제게 승급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빈첸이 반지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용왕의 반지에 대해서는 이미 보고를 드렸으니 재보고는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용왕의 반지를 사용하여 수련을 하려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넉넉한 기한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응? 수련을 또 한다고? 작작해. 지금도 충분히 강해. 너무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강해지면 그것도 독이고 병이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500년 전, 카진도 그랬다.
그의 타고난 재능과 실력이 그에게는 독이 되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빈첸은 자만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용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용의 도움을 받아 수련을 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