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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29화 (129/184)

환생의 정석 129화

밀리가 빈첸을 찾아오기 12시간 전.

한센과 대화를 나누던 디르미델은 순간 당황했다.

“배, 백억 루덴이 있다고? 현금으로?”

“그래. 있다니까. 내가 이 정도 준비도 없이 너를 찾아왔겠냐?”

한센에게는 재산이 별로 없다.

사실 그는 많은 보육원에 몰래 후원을 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거의 전 재산을 사용했다.

세상에 어려운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100억 루덴 같은 건 구경도 못 해봤다.

당황했던 디르미델은 코웃음 쳤다.

“흥! 하긴 장인의 정신을 버린 공장장이니 돈은 많이 벌었겠지. 됐다. 돈은 필요 없어.”

“뭐?”

한센은 일부러 화를 냈다.

“말을 바꾸는 거냐? 이 치사하고 더러운 놈아.”

“뭐? 치사하고 더러워? 진짜 치사하고 더러운 게 뭔지 알려줘?”

“여기서 더 추잡해질 수 있단 말이냐?”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던 밀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은 권위자들이건만, 대화만 듣고 있으면 어린애들 같기도 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저랬다.

“100억 루덴은 됐고. 내가 요구하는 것들은 이것들이다.”

디르미델은 잡부를 불러서 종이 하나를 가져오게 했다.

한센은 남몰래 웃었다.

디르미델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구하고 싶던 것들이지. 이것들 중 딱 하나라도 가져오면 네 협업 요청을 수락하겠다.”

종이를 살펴본 한센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제정신이냐?”

“제정신이지.”

“20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보석도 있네?”

“사실 그건 나도 포기했어. 아무튼 다른 것들도 있잖아? 라일 진주, 저건 최근 경매장에 나왔다고.”

“그건 미치광이 수집광 녀석이 3,000억 루덴 주고 사 갔잖아!”

“후후, 아무튼 나도 갖고 싶다, 친구야.”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최소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자취를 감춘 희귀보석이거나.

보석 자체에 역사가 있어 지나치게 비싼 것들이거나.

“반드시 약속하지. 여기 있는 것들 중 딱 하나라도 가져오면 너와 협업한다. 200년 전 용왕의 반지라니, 아주 구미가 당기는걸? 으하하하!”

“노망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응? 뭐라고? 귀가 잘 안 들리네.”

한센은 보석 리스트를 신경질적으로 빼앗았다.

이마에는 힘줄이 돋아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놈을 찾아갈 수는 없지.’

자신의 명예를 되찾아준 빈첸의 부탁이었다.

그렇다면 최고의 실력을 갖춘 기술자와 협업을 해야 했다.

“밀리. 일단 이 리스트를 빈첸에게 보여줘라. 뭐 당장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겠다만…….”

그렇게 하여 밀리가 빈첸을 찾아온 것이었다.

밀리가 입을 열었다.

“이 보석의 이름은…….”

빈첸은 잠자코 설명을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거. 이건 ‘로메이라의 달’이라는 보석인데, 몇 년 전에 3000억 루덴에 낙찰됐었어. 경매 역사의 신기록을 썼다나 뭐라나.”

“…….”

와닿지 않는 액수였다.

“수집광 말랍이라는 아저씨가 샀대. 케르빌가의 가주라나 뭐라나.”

“수집광 말랍 케르빌?”

빈첸은 ‘케르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레일사가 건네준 수표는 분명 케르빌가(家)의 수표였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 사들인 게 있는데 그게 이거야. 이름은 태양의 눈물.”

밀리가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안쪽에 기포 같은 것들이 잔뜩 형성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의 붉은 보석이었다.

“이게 전 세계적으로 딱 두 개만 존재하는 희귀 보석이라던데. 뭐라더라, 무슨 아주 오래된 용아인 명장이 특별한 방식으로 딱 두 개만 만들었다나 뭐라나.”

“…….”

“그중에 하나를 말랍이 사버린 거야. 가격은 10억 루덴.”

비교적 가격은 저렴(?)했다.

보석으로서 가치가 별로 없다고 했다.

수집광의 수집욕구를 불타오르게 했을 뿐.

따라서 가격은 비교적 쌌다.

“케르빌가의 가주는 이미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고, 그냥 수집하는 게 취미인 사람이라서 절대 안 팔 거거든.”

밀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 분한 것 같기도 했다.

“이 정도면 우리 영감님을 아주 엿 먹이겠다는 거지. 아오, 약올라.”

거기까지 말한 밀리는 저도 모르게 빈첸의 눈치를 살폈다.

귀공자 앞에서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을 쏟아낸 것이 조금 민망했다.

그런데 빈첸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이걸 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너무 좋겠지만, 가능성이 너무 없는 얘기야. 200년간 발견이 안 돼서 다들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차라리 이거. 이걸 노려보는…….”

그때,

빈첸이 품 안에서 붉은 보석 하나를 꺼냈다.

기포가 잔뜩 형성되어 있는 붉은 보석이었다.

“이게 저거 아니야?”

“응?”

밀리는 보석을 받아들고서 두 눈을 꿈뻑거렸다.

그리고 약 3초의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

너무 화들짝 놀라서 태양의 눈물을 놓쳐 버릴 뻔했다.

“이, 이, 이, 이, 이, 이걸 어떻게 갖고 있어? 요?”

“누가 주던데.”

“누, 누가 줬다고요?”

수집광 밀랍도 눈에 불을 켜고 겨우 찾았던 희귀 보석이다.

이걸 누가 준단 말인가.

“그럴 리가. 이건 200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이 리스트 중에서도 구하기가 매우매우 어려운 축에 속한다고. 요.”

“…….”

빈첸은 빙그레 웃었다.

밀리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몇 분의 시간이 걸렸다.

“이걸 진짜 갖고 있네.”

율리안조차 황당한 듯 허허- 웃고 말았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더니. 로랑 경이 그렇게 빌어서 형님한테 쥐어준 보석이잖아요? 형님은 마지못해 받았고.

‘그러게나 말이다. 운이 좋았구나.’

* * *

한센의 기를 잔뜩 꺾어놓았다고 생각한 디르미델은 동료 야장들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크하하핫! 그놈 얼굴이 얼마나 우습던지!”

“잘하셨습니다, 형님.”

난쟁이들은 대체로 한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야장의 명예를 저버린 공장장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 저도 봤습니다. 그 자식, 씩씩대면서 돌아가는데 아주 꼴이 웃겼습니다.”

쾅!

디르미델이 맥주잔을 세차게 내려놓았다.

맥주 방울이 여기저기 튀었다.

“야. 너 야장일 몇 년 차야?”

“올해로 20년 차입니다.”

“근데 뭐라 그랬어?”

“예?”

“그 자식?”

디르미델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아, 그게…….”

“걔가 그래도 나랑 한때 같은 스승님 밑에서 사사받은 동기야. 근데 자식? 자식이라고? 너 돌았냐?”

“……죄, 죄송합니다.”

“그놈 욕은 나만 할 수 있어. 넌 그냥 맥주나 처마시면서 맞장구나 치라고. 네가 걔 친구냐? 앙?”

“죄, 죄송합니다.”

“네놈 맥주값은 네놈이 계산해라.”

디르미델이 한바탕 화를 쏟아내고 있을 때,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세 명이었다.

“어?”

“형님, 저기 보세요.”

한센과 밀리.

그리고 빈첸이었다.

한센이 뚜벅뚜벅 걸어와서 디르미델 옆에 앉았다.

그러고서 디르미델의 맥주잔을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 미친놈이, 남의 술을 왜 뺏어 먹어?”

“구해왔다.”

“뭘?”

“태양의 눈물.”

순간,

가게 안은 조용해졌다.

한동안 침묵이 휩쓸었다.

“……어디 봐.”

보석을 확인한 디르미델은 두 눈을 꿈뻑거렸다.

“이 미친놈이.”

“뭐?”

“이걸 진짜 구해왔어?”

디르미델은 의심스러운 눈동자로 한센을 바라보았다.

“훔친 거 아니지?”

“훔쳤겠냐?”

“하긴. 케르빌가의 금고에서 훔쳤으면, 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그럼 이건 어떻게 구했어?”

그때 빈첸이 앞으로 나섰다.

“그건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뭐냐?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꼬맹이는 빠져라.”

빈첸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빠지겠습니다.”

빈첸은 손싸움의 기예를 활용하여 자연스레 ‘태양의 눈물’을 빼왔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손쓸 겨를도 없이 보석을 빼앗긴 디르미델이 크게 외쳤다.

“야, 야, 잠깐만!”

“하실 말씀이라도?”

“네가 뭔데 그걸 가져가?”

“제 겁니다.”

“……그게 네 거라고?”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빈첸을 한참 바라보았다.

“혹시 케르빌가의 자제냐?”

“아닙니다.”

“그럼 네 녀석 정체가 뭐야?”

“남의 이름을 물을 때에는 본인 먼저 소개하는 것이 예의 아닙니까?”

“이 쪼그만 놈이 진짜……!”

그의 얼굴이 무척 붉어졌다.

“나는 디르미델 하르푼. 난쟁이족의 대장장이다. 네 이름이 뭐냐?”

“안 가르쳐드립니다.”

“왜?”

“빈정 상했으니까요.”

밀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빈첸을 바라보기만 했다.

‘우와,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와 버렸잖아?’

한센 역시 신기하다는 듯 빈첸을 쳐다봤다.

평소에는 명문가의 귀공자 같은데, 지금은 또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신기한 놈일세.’

결국 디르미델은 두 손 두 발 다들었다.

“에잉! 무슨 애늙은이 같은 놈이 나타났어. 미안하다. 내가 실례했다. 네 이름이 뭐냐?”

“빈첸입니다.”

“빈첸?”

디르미델은 귀를 의심했다.

“빈첸 아덴카? 아덴카 7공자?”

“그렇습니다.”

“데르소나에 있다고 들었는데?”

“며칠 전에 복귀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이라는 말에 디르미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주변을 한 번 훑어봤다.

그 모습은 마치 ‘봤냐? 그 유명한 빈첸 공자가 나한테 어르신이라고 불렀다?’라고 자랑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솔직하고도 꾸밈없는 모습에 밀리는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좋아. 얘기를 한번 들어보지.”

빈첸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여 얘기했다.

간략하고 짧게 정리하여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율리안이 도와주었다.

덕분에 디르미델은 현 상황을 완벽히 이해했다.

“이야, 설명이 아주 좋네. 무식하게 칼만 휘두른 게 아닌 것 같군.”

디르미델이 맥주 몇 잔을 더 주문했다.

“좋아. 재수 없기는 하지만 저놈과 협업하도록 하지. 그 대신.”

그의 시선이 빈첸을 향했다.

“그 반지는 내가 복원해 준 거라고 꼭 말해야 한다? 네가 한센을 명장이라 언급했던 그때처럼 말이야.”

“물론입니다.”

“약속하기다?”

“약속합니다.”

디르미델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빈첸이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후후후.”

디르미델은 기분이 무척 좋아진 듯 웃었다.

얼큰하게 취한 그가 소리쳤다.

“나도 미래의 명장을 약속 받으셨다, 일주일 만에 완벽한 복구를 해주도록 하지. 으하하핫! 한센 네놈에겐 안…… 져! 드르렁- 쿨.”

그는 맥주 두 잔에 깊이 취해 잠에 빠져들었다.

* * *

디르미델이 약속했던 일주일이 흘렀다.

자신만만했던 디르미델은 민망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그게…….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다.”

“일주일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디르미델은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저는 야장님께서 말씀하신 태양의 눈물을 드렸는데요. 야장님의 약속을 믿고 선금으로 지급했습니다.”

“그, 그랬지.”

“그런데 약속 기일을 어기시면 어떡합니까? 저는 야장님의 약속을 믿고 요새로 복귀조차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 일주일의 시간을 어찌 보상하실 겁니까?”

“끄응.”

디르미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일과 능력에 자부심이 있는 만큼, 빈첸의 항의에 무어라 변명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딱 한 달만 시간을 다오. 내가 그 안에 못하면 태양의 눈물을 돌려주겠다.”

“조금 더 넉넉히 잡으셔도 됩니다. 저는 빠른 복구가 아니라 완벽한 복구를 원합니다.”

그 말이 디르미델의 자존심을 긁었다.

“나 모르냐? 나 디르미델이다. 한달이면 무조건 할 수 있어.”

“믿겠습니다, 야장님.”

한센은 킥킥 웃으며 디르미델과 빈첸을 번갈아 보았다.

빈첸은 디르미델을 무척 잘 다루었다.

‘아무리 봐도 열네 살 꼬맹이 같지가 않단 말이야.’

흐뭇하게 웃었다.

한센은 디르미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어서 작업에 들어가자고.”

이후,

다시 한 달이 흘렀다.

그사이 밀리는 빈첸과 더 친해졌다.

그녀가 멀리서부터 밝게 손을 흔들었다.

“빈첸 공자아아아아! 복원 완료오오오!”

밀리는 환한 얼굴로 뛰어와서 헥헥 숨을 들이마셨다.

빈첸은 그녀의 숨이 정돈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거랑 관련해서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는데. 어떤 소식부터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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