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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25화 (125/184)

환생의 정석 125화

로랑의 특별관리 덕분에 아무것도 훼손되지 않은 이동관문.

빈첸과 헤나가 그 위에 올라섰다.

빈첸이 말했다.

“세리. 이동관문을 구동해 줄 수 있겠어?”

“네.”

200주년 때 이미 좌표는 설정된 상태.

세리의 도움을 얻어 이동관문을 활성화시켰다.

빈첸과 헤나는 이동관문에 몸을 맡겼다.

어두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왔군.’

빈첸이 범용 마정석을 꺼내 빛을 밝혔다.

예전에 상대했었던 골렘 파편들이 보였다.

헤나가 말했다.

“반지의 반쪽을 네가 지니고 있으니 네가 앞장서거라.”

“알겠습니다.”

빈첸이 앞장서서 걸었고 헤나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새 많이 컸구나.’

기억 속 빈첸보다 키가 훌쩍 커 있었다.

헤나는 묵묵히 걸으며, 7개월 전 빈첸과 이곳을 걸었을 때를 회상했다.

‘네가 골렘의 일격을 막아냈을 때, 나는 무척 놀랐었다.’

빈첸의 무위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때도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더 놀라웠다.

‘그때보다 훨씬 많이 성장했구나.’

한층 더 단련된 기도가 느껴졌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용림에서 큰 성취를 일군 것 같았다.

‘빈첸은 늘 느껴지는 기세보다 훨씬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빈첸에게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느껴지는 기도’보다 훨씬 더 강한 능력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의 빈첸 또한 그럴 것이다.

헤나는 골렘의 파편들을 지나쳐 걸었다.

당시 빈첸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더 놀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빈첸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겨우 7개월 사이에, 남들이 몇 년 동안 노력해서 오를 성취를 단숨에 따라잡은 것만 같았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3성을 달성하였느냐?”

“저에게는 심상이 없습니다, 누님.”

“알고 있다.”

헤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부러 언급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3성과는 사뭇 달라서 하는 말이다.”

마나의 양은 3성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기세는 그보다 훨씬 우위였다.

뛰어난 격의 마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누님.”

빈첸이 뒤를 살짝 돌아보며 가볍게 웃었다.

“누님께서 보시기에 아덴카의 격에 어울립니까?”

단순한 ‘3성 무인’이 아니라 ‘아덴카의 격을 이은 3성 무인’에 어울리는지 묻는 것이었다.

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그 어떤 3성 무인들보다 강할 것 같구나.”

헤나 또한 걸어본 길이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이 녹아내릴 정도로 혹독한 수련을 했겠지.’

반쯤은 사실이었다.

많이 적응된 율리안도 여러 번 기함을 토했다.

빈첸의 수련법은, 실제로도 치사율이 50퍼센트가 넘는 수련법이었으니까.

“누님은 일전에 카곤을 보지 않았습니까? 카곤 또한 3성의 성취를 지녔던 적이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도 누님이 본 3성 무인들 중 제가 가장 강합니까?”

“그래.”

“카곤은 검신 케샤크의 가호를 지녔고 사미온의 직계들 중에서도 천재로 손꼽히는 자질을 지닌 녀석인데요?”

“카곤은 과거의 네게도 두 번이나 패배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빈첸은 싱글벙글 웃었다.

헤나는 그런 빈첸의 모습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웃지 말거라.”

“왜 그러십니까? 정이라도 들까 두렵습니까?”

“허튼소리.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이니 진중하란 뜻이다.”

“누님께 칭찬을 들으니 기뻐서 그렇습니다.”

어느덧,

빈첸과 헤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문.

이 너머에는 영살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빈첸이 그때와 비슷하게 말했다.

“영살자들은 모습을 드러내라. 일곱 번의 그믐달이 지기 전, 그림자에 맹세한 자가 돌아왔으니.”

끼익-

거대한 문이 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너희가 말하던 증표를 가지고 왔다.”

빈첸이 품 안에서 반쪽짜리 반지를 꺼냈다.

이윽고 영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저번에 만났던 ‘빌로암’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네 맹약에 대해 다시 말해보아라.”

빌로암은 그림자의 권능을 모두 걷어내고서 사람과 똑같은 모양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한 명의 몸은 그림자로 일렁이고 있었다.

“제가 용왕 아벨탄과 맺었던 맹약은, 이 반지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빌로암이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반지에서 반짝반짝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을 보아하니, 공자께서는 분명한 증표를 가지고 오셨군요.”

이내,

그림자처럼 일렁이던 영살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빌로암과 무척 닮은 여성 영살자였다.

그들은 쌍둥이라고 했다.

“설마하니, 진짜였군요.”

아벨탄의 시대로부터 200년이 흘렀다.

그녀는 사실상 맹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녀가 빈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저희는 자유를 얻게 되었네요.”

빌로암 역시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반지 반쪽을 건넸다.

“받아주십시오. 저희의 맹약이 완성될 것입니다.”

빈첸이 반지를 받아들었다.

빈첸은 반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직감할 수 있었다.

‘공명.’

검과 검술가처럼, 두 동강 난 반지들은 공명하고 있었다.

빈첸이 물었다.

“이 반지가 용왕의 은총인가?”

“용왕은 그렇게 불렀습니다.”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이 반지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센 영감님을 찾아뵈어야겠군.’

그런데 그때.

빌로암이 말했다.

“맹약이 완성되었으니, 저희에게 자유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자유?”

“예. 저희의 맹약자였던 용왕의 힘으로 저희를 죽여주십시오.”

500년 전과는 달랐다.

500년 전, 맹약을 완성한 아스비온 일족은 자유를 얻었다.

그림자의 권능을 포기하고서 평범한 사람으로서 일생을 살아갔다.

‘아스비온의 본래 주인이었던 사미온도, 새로운 맹약을 맺은 그 어떤 자들도, 아스비온 일족을 죽이지 않았다.’

빈첸이 물었다.

“그것이 너희가 말하는 자유인가?”

“그렇습니다.”

빌로암은 200년간 너무 지쳤다고 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죽음이라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500년 전 아스비온은 자유를 갈망하던 일족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 어떤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맹약에서 벗어나 평탄하게 살아가는 것이 숙원인 일족.

그런데 죽여 달라니.

“너희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빈첸은 포르세딘 가호를 통해 용왕의 초기특성인 ‘수류검’을 발현시켰다.

홍련의 검날에 물이 맺혔다.

그것으로 용왕의 힘을 증명했다.

“너희에게도 7번 그믐달이 뜨는 날 동안 시간을 주겠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바란다면 죽여주겠다.”

빌로암이 말했다.

“용왕의 힘으로 저희를 죽이면, 그림자의 권능 일부를 습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빈첸이 눈살을 찌푸렸다.

‘율리안. 영 이상하지?’

-그러게요. 마치 맹약을 완성한 아스비온을 반드시 죽이도록 설계된 것만 같네요. 옛날에는 이런 거 없었죠?

‘없었다.’

아스비온에게 저런 특성은 없었다.

아스비온 일족 본연의 특징은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찝찝해요. 죽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빈첸이 물었다.

“내가 너희를 죽이면 그림자의 권능을 습득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가르쳐주었느냐?”

“그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악!”

두 영살자는 머리를 감싸 쥐고서 비명을 질렀다.

빈첸은 직감했다.

‘정신계 제약마법이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누군가’는 맹약을 완성한 아스비온이 죽임당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았다.

늙고 다쳐 쓸모없어진 말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처럼.

500년간,

변해버린 것이 또 있었다.

빈첸이 말했다.

“일곱 번의 그믐달이 뜰 때, 나를 찾아와라. 그때에는 새로운 해답이 있기를 바란다.”

* * *

영살자들을 뒤로하고서, 빈첸과 헤나는 통로를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헤나는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서 빈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번 임무의 중추는 빈첸이었다.

7개월 만에 돌아온 빈첸은 확실히 더 성장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어도 될 만큼.

“누님. 왜 웃고 계십니까?”

“…….”

헤나는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웃고 있었구나.’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빈첸의 성장이 흐뭇해서였던 것 같았다.

“웃지 않았다.”

“분명 웃으셨습니다.”

“반지는 어쩔 생각이냐?”

“누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것은 네 것이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보상’의 소유권을 빈첸에게 완벽히 양도한다는 뜻이었다.

용왕이 남긴 반지를 욕심내지 않겠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함께 고생했는데 제가 마음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그리 고생한 기억이 없구나.”

“한 자리에서 7개월을 지키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임무였고, 수련이었다.”

어느덧 다시금 이동관문 앞에 도착했다.

헤나가 입을 열었다.

“반지를 복구하는 데에 큰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두 동강 난 상태.

그리고 200년이 흘렀다.

복구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돈은 있느냐?”

“있습니다.”

“내가 빌려…… 있다고? 바르곤 경의 후원을 믿는 것이냐?”

헤나는 이동관문에 올라선 채 말을 이었다.

“지나친 후원은 경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

빈첸이 씨익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도 모아둔 돈이 꽤 됩니다.”

* * *

빈첸은 보고서신을 작성했다.

지난 7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살자들과 만난 것과 반지를 획득한 것도 모두 적었다.

빈첸과 헤나는 함께 서명을 날인했다.

“이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누님.”

“언제 이런 글솜씨를 익혔느냐?”

“잘 작성했습니까?”

헤나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고서 작성 능력이…… 무척 뛰어나구나.”

율리안이 히히- 웃었다.

-헤헤, 제가 쫌.

붉은 요새에 보고서를 송부했다.

‘셀비라를 용림에 파견 보내 달라’는 내용의 요청서도 함께 말이다.

모든 문서를 송부한 빈첸이 헤나를 불렀다.

“누님.”

메일튬의 ‘부랑자 수용소’로 시작하여 데르소나의 ‘지하’를 밝혀내고, 200년간 잠들어 있던 ‘용왕의 은총’을 획득하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

“저는 그간의 활동으로 정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시민 혁명대와 용아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유력가문에서 빈첸의 행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열넷의 무인 혹은 생도들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자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이름값과 명예도 얻었다.

현재 명목상 8급 생도이지만 승급식만 치르면 곧바로 7급으로 올라설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빈첸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제게 가장 값진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빈첸이 아공간을 열어 초상화를 꺼냈다.

헤나가 그려준 초상화였다.

“감사합니다. 누님과 함께 임무를 수행한 것이, 제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7개월간 한 자리를 지켜준 헤나의 모습을, 빈첸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헤나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그녀는 이제 오른손을 입에 대지 않아도, 스스로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헤나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린 뒤 떠나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붉은 요새’였다.

그녀는 이제 생도의 신분을 벗어나 파성무인이 될 것이다.

빈첸은 헤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로랑 경에게도 작별인사를 해야겠구나.’

이제 이곳에서의 임무는 끝났다.

‘용왕의 은총’을 복구하기 위하여 아덴카 본가로 돌아가야 했다.

그 전에 로랑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로랑을 찾았다.

“데르소나를 떠난다는 소식은 들었다.”

로랑은 빈첸이 이룩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면서 빈첸의 공로를 치하했다.

“……하여 나를 비롯한 시민 혁명대. 그리고 전 헬라임 도시의 모든 시민들은 결코 너의 공로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하마.”

그러고서 로랑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네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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