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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23화 (123/184)

환생의 정석 123화

칼백의 눈이 파충류처럼 변했다.

그의 몸에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이내 피부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스스로 용인화를 일구었다.

그의 입이 커지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자라났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

칼백의 기백이 담긴 포효였다.

순간적인 충격파가 터져 나와 거대한 천년수가 흔들거렸다.

빈첸조차 깜짝 놀랐다.

‘엄청난 위력!’

소리를 내질렀을 뿐인데 풍계마법을 사용한 것만 같았다.

천년수의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져 내렸다.

땅에는 가벼운 지진이 일었다.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동 같군.’

칼백은 단순히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었다.

방금의 포효로 동포들을 불러모았다.

칼백의 외침에 용아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칼백은 다시금 검을 주워들었다.

마나를 운용하여 검기를 일으켰다.

검기로 이루어진 기검(氣劍)이 생성되었다.

칼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형제들 앞에 선언한다.”

그는 기검으로 손바닥을 살짝 베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새어 나온 피를 양 볼에 문질렀다.

“보아라. 내 눈 앞의 소년은 동족의 은인이자, 용왕의 진전을 이었고, 미래를 약속하였으며,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 손을 내밀었다. 이에 용아인 전사 칼백 에일롬은 그 손을 맞잡기로 결정하였다.”

빈첸은 스스로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그 증명에 응답할 차례였다.

“나는 빈첸 공자의 친구가 될 것이다. 형제들은 어떠한가?”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나의 이 부서진 검이 곧, 내 친구의 격을 증명한다.”

용아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 검이 어떻게 빈첸 공자의 격을 증명합니까?”

“이 부서진 검의 파편은 용왕의 대인 결전기. 검은 바다가 남긴 증거이다. 빈첸 공자는 용왕의 힘을 완벽히 재현하였으며, 완벽히 용왕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우리의 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음성에는 강대한 기백이 담겨 있었다.

천년수의 거대한 밑동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나의 형제들은 용아후(龍兒吼)로 응답하라.”

때마침 나이메르가 정령력을 일으켜 빈첸을 도왔다.

빈첸은 다시 한번 해군의 해상군세 특성을 일으켰다.

수많은 용아인들에게서 용인화가 진행되었다.

그들도 칼백과 같았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칼백이 그렇게 했듯, 용아후를 내뱉었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성취가 낮은 용아인들.

혹은,

용아후를 내뱉지 못하는 어린 용아인들은 대신에 뿔나팔을 불었다.

뿌우우우우-!

용아후가 불가능한 이들은 그들이 가능한 방식으로 응답했다.

오늘로써,

빈첸과 용아인들은 형제가 되었다.

* * *

그날 저녁.

빈첸은 나이메르, 칼백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다.

빈첸이 칼백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일부러 그렇게 해주신 것 알고 있습니다.”

칼백은 용아인들 앞에서 일부러 그런 모습을 연출했다.

용아인들의 전쟁욕구를 잠시나마 진정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칼백이 대답했다.

“내 마음에 거짓은 없었습니다.”

거짓으로 연출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저는 용아인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군요.”

“우리는 약속된 미래를 보장받았지요.”

언젠가,

아덴카의 정상에 오를 소년이 약속했다.

오늘 미뤄두었던 명예를 위하여 함께 검을 쥐겠노라고.

나이메르가 말했다.

“빈첸 공자. 저는 용아인들의 어머니로서, 우리의 은인인 공자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보세요.”

“보상을 바라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이메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빈첸에게 보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마침 용아인들의 어머니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나이메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저는 용왕의 유산을 얻고 싶습니다.”

“용왕의 유산은 이미 얻지 않았나요?”

“용왕이 용아인들의 수장에게 맡긴 것이 있다 들었습니다.”

나이메르의 몸이 움찔했다.

칼백은 대화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빈첸 공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예.”

“그게 무엇인가요?”

“용왕이 남긴, 반쪽짜리 반지입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이메르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얘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죠?”

“용왕 아벨탄과 맹약을 맺은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나머지 반쪽짜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이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공자의 말대로 저는 용왕의 유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의 쓰임새가 무엇인지, 이것을 왜 남겼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다만 언젠가 자신의 후인이 나타나 이것을 찾을 것이라고 말하였죠.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군요.”

나이메르는 마치 자신이 용왕과 직접 대화를 나눈 것처럼 얘기했다.

빈첸은 예술가 프란시스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 속 얼굴이 나이메르와 똑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럼 용왕은 그의 어머니께 유품을 남겼군요.”

“불효자이지요.”

그 말로 확인되었다.

200년 전 ‘용아인들의 어머니’와 현재의 ‘용아인들의 어머니’는 동일인이 틀림없었다.

나이메르는 200년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식사가 끝났다.

나이메르는 빈첸을 자신의 처소로 불렀다.

나이메르는 화장대 서랍을 열어 볼품없이 낡은 반지 한쪽을 꺼냈다.

용왕의 유품치고 상당히 허술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제 이것은 빈첸 공자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왕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귀히 쓰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결국 아벨탄의 유언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의 생각이 난 건지, 나이메르는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은 꼴이 되었어요. 빈첸 공자는 더 원하는 것이 없나요?”

“이곳에서 든든한 친구들과 스승님을 얻었습니다. 더 이상 바란다면 욕심이겠지요.”

나이메르는 빈첸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눈치챘겠지만 저는 나이가 아주 많아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그녀의 눈에는 빈첸이 특별하게 보였다.

“제가 보았던 자들 중 특별한 기개를 지닌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되었지요.”

나이메르의 통찰에 보이는 특별한 기운.

그녀는 그것을 일컬어 ‘제왕의 기개’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눈으로 본 빈첸은 ‘제왕의 기개’를 가진 소년이었다.

“제왕의 기개를 지닌 소년과 친구가 될 수 있어서 무척 기쁘군요. 그러니 공자는 내게 많은 것들을 요청해도 돼요. 미래의 제왕에게 은혜를 입혀놓기 위한 제 수작이랍니다.”

나이메르가 빙그레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빈첸을 돕고 싶었다.

율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할머니, 우리를 돕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난 모양이에요.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이메르 경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모양새군.’

-적어도 200년 역사의 산증인이에요. 역사를 바로 알아가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500년의 역사가 왜곡되고 날조되었다.

200년 역사의 산증인이 있다면, 최소 200년 역사를 바로잡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네 달가량 시간이 있잖아요. 세리를 맡겨보는 건 어때요? 나이메르 경은 아주아주 뛰어난 정령술사니까 세리를 키워줄 수 있을 거예요.

빈첸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 시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무엇을 도울까요?”

“그녀에게는 뛰어난 스승이 필요합니다.”

나이메르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사실 어린 용아인들에게 정령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저랍니다. 호호, 간만에 제 특기를 발휘할 순간이 왔군요.”

* * *

용림에 들어온 지 근 7개월이 흘렀다.

그간 빈첸은 매일같이 아벨탄 폭포에서 수련했다.

처음에는 거의 목숨 걸고 수련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러워졌다.

-이런 걸 진짜 해버리네.

율리안은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계산했다.

-형님, 형님이 근 몇 달 동안 뭘 했는지 스스로는 모르죠?

옛 무인들의 방식이 그렇다.

현대 무인들처럼 정확한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성취는 1성, 2성 등과 같이 숫자로 표현된다.

-마력미분값이라든가, 뭐 그런 건, 하나도 안 궁금하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좋아요. 현대무인들 기준으로 형님은 3성을 달성한 것 같아요.

3성이라면 말론 아덴카와 같은 수준이다.

말론 또한 아덴카의 피를 이었고, 10년 넘게 마나를 수련해왔다.

그에 반해 빈첸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마나를 수련한 기간에 대비하여 어마어마하게 빠른 성장속도였다.

-근데 말이 3성이지…… 이걸 3성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네.

모든 마나에는 ‘격’이 있다.

그래서 아덴카의 후계자들은 그 격을 증명하기 위하여 2성 무렵에 붉은 악귀를 토벌하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율리안이 판단하기로 현재 빈첸은 3성이되 3성이 아니었다.

양으로는 3성이나 질은 여타 다른 3성 무인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세상에 3성의 성취로 기검(氣劍)을 만들어내는 미친 인간이 어디 있어?

마나를 이끌어 내어 검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보통 4성 이상의 성취다.

뿐만이 아니었다.

빈첸의 ‘강화된 신체’ 특성은 어느새 ‘철인’ 특성으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그 ‘철인’ 특성이 또 ‘역용’과 궁합이 굉장히 좋았다.

두 힘이 어우러지면서 빈첸의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다.

-튼튼한 몸에 단단한 정신이 깃든다. 그 말이 딱인 것 같아요.

따로 신기를 흡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율리안의 정신은 더없이 맑았다.

빈첸의 성취가 높아지고 몸이 튼튼해지면서 율리안도 그 영향을 받았다.

‘겨우 이 정도로 뭘 그리 호들갑이냐? 여전히 이 몸은 비쩍 곯았다.’

-그래도요. 엄청 좋아진 건 사실이잖아요.

‘이 정도는 좋은 것도 아니지. 아직 멀었어.’

-미전류 특성도 발전시켰잖아요.

뇌력거인의 가호로부터 발현된 초기 특성 ‘미전류’.

이 또한 다음 단계인 ‘승압미전류(升壓微電流)’ 특성으로 확장되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좀 어이없네.

‘뭐가 말이냐?’

철인만 있다거나 역용만 있었다면 승압미전류를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운 좋게도(?) 두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승압미전류 특성까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뇌력거인의 힘을 익히기 위해서 따로 준비한 게 아닌데, 얼떨결에 그냥 그렇게 준비한 게 되어 있네요.

될 놈은 넘어지면서 황금을 줍는다.

딱 그 꼴이었다.

‘네가 이 천골을 잘 간수했으면 애초에 그 다음 특성도 펑펑 터뜨릴 수 있었을 거다. 철인이나 역용 같은 게 없어도 말이야.’

-그, 그 얘기를 또 왜 한담?

‘용왕의 대인결전기도 별 무리 없이 쓸 수 있었겠지. 봐라, 네가 이 몸을 막 굴리는 바람에, 검은 바다를 한 번 썼다 하면 몸 여기저기가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렇게 똑똑한데 왜 천골을 몰라? 왜 마나를 안 익혔어? 엉?’

-끄응. 잘못했어요, 그만 갈궈요.

아무튼 용림에서의 약 7개월은 빈첸에게 커다란 성취를 안겨다 주었다.

‘명상터’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리의 정령술도 일취월장했다.

이제 폭폭이는 조금 더 다양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메르만큼은 아니어도, 빈첸이 ‘해군’을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정령술은 갖추게 되었다.

나이메르가 말했다.

“이제 떠난다니, 무척 아쉽군요.”

“나이메르 경의 배려 덕분에 정말 편히 있다 갑니다.”

빈첸은 아스비온 일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용림을 떠나기로 했다.

“이것은 제 정령력을 담은 마정석입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쓰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마정석은 도합 3개였다.

이 마정석이 있으면 완벽한 ‘해군’을 통해 완성된 해상군세와 검은 바다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혹시, 제가 마지막 부탁을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나이메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빈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기쁜 듯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그게 무엇이죠?”

빈첸은 나이메르에게 마지막 부탁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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