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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22화 (122/184)

환생의 정석 122화

원래 칼백은 빈첸에게 말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용왕의 진전을 확실히 확인했고, 빈첸은 동족들을 구해준 은인이었으므로.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한걸음 뒤로 물러섰었다.

빈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 타이밍에 굳이 빈첸의 말을 끊고 나선 까닭이 따로 있었다.

‘칼백 경은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빈첸이 용왕의 힘을 이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은 바다’를 전승하여 주는 것이 옳은지는 칼백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내게 전승하고 싶은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칼백은 동족들 앞에서 미리 선포해 버린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마음이 바뀌지 않도록 말이다.

빈첸은 칼백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겸허히 받겠습니다.”

“검은 바다는 상당히 파괴적인 힘입니다. 그래도 원합니까?”

“용왕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전승자가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

칼백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빈첸 공자는 할 말을 하십시오. 경청하겠으니.”

칼백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빈첸은 칼백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한 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용아인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빈첸이 목소리에 마나를 담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용아인들에게 똑똑히 전달될 수 있도록.

“저는 용왕의 진전을 이은 자로서,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하려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6마탑과의 소모적인 전쟁에 몸을 내던지는 것을 막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이메르가 입을 열었다.

“빈첸 공자, 소모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녀 또한 빈첸과 같은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용아인들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빈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제부터 저는,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꺼내려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요?”

“헬라임과 6마탑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설령 누군가 그들을 용서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메르의 몸이 움찔했다.

사실상 6마탑이 뒷배라는 것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렇다 할 증거도 없었다.

저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러나 빈첸의 말은 용아인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이기도 했다.

빈첸이 6마탑을 확실하게 짚어주었으니까.

“그러나 6마탑이 진정 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요?”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메일튬이라는 곳의 부랑자 수용소였습니다. 그곳이 1차였습니다.”

거기서 마정석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악령계약을 억지로 시키는 마법도 개발되었다.

“2차가 헬라임의 ‘지하’였습니다. 그곳의 최종목표는 악령과 계약한 악령군대를 창설하는 것이었습니다. 1차 시설인 창고. 2차 시설인 지하. 모두 흑마법과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악몽’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겨우 이름만이 세상에 알려진 미지의 단체.

“어쩌면 6마탑조차도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흑막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것을 악몽이라 부릅니다.”

“…….”

“제가 직접 눈으로 본 용아인들은 저같이 어린 자에게도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할 줄 아는 자들이었고.”

그의 시선이 켈백을 향했다.

켈백은 전쟁 옹호론자임에도 불구하고 빈첸을 도와주었다.

이번에는 나이메르를 쳐다보았다.

“또한 평화를 사랑하는 일족이었습니다.”

이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 아니었더라면.

가진 힘을 남용하는 종족이었다면.

이미 헬라임의 모든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저는 용아인들의 값진 명예가, 겨우 6마탑 따위에 소모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빈첸이 다시금 홍련을 들어 올렸다.

소해일 특성을 일으켰다.

그것이야말로 용왕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

“저는 용왕 아벨탄의 진전을 이은 자이면서.”

그에게는 중요한 정체성이 있었다.

“아덴카의 칠공자입니다.”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저는 아덴카의 정상에 오를 것입니다.”

“…….”

어쩌면 허황해 보이는 그 말을 비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상에 오른 뒤, 용아인들의 곁에 설 것을 맹세합니다.”

6마탑에서 끝나면 안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악몽’이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가 이끌 아덴카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6마탑의 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 뒤에 숨어 있는 모든 것들을 낱낱이 밝혀낼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으나 그것이 가장 밝은 길이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용아인 전사들께서도 제 힘이 되어주십시오. 훗날, 오늘 미루어놓았던 명예를 위하여 함께 검을 쥘 것을 약조합니다. 저는 용아인들의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아덴카와 용아인들 간 최초의 비공식적 협약.

‘천년수 협약’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그날 저녁.

칼백이 천년수 안으로 들어왔다.

빈첸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여전히 전쟁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칼백은 한참 동안이나 침묵했다.

“6마탑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만약 6마탑이 끝이 아니라면.

정말로 또 다른 흑막이 존재하고 있는 거라면.

용아인들은 헛된 희생을 치를지도 모른다.

칼백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무엇입니까?”

“빈첸 공자 같은 자가 용왕의 진전을 잇게 되어 다행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칼백이 용왕의 ‘대인 결전기’를 기쁜 마음으로 전승해 주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해상군세는 해군의 이능을 일정 농도로 흩뿌려 용아인들의 용인화를 촉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검은 바다는, 흩뿌렸던 이능을 회수하여 검에 집중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칼백이 빈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검지와 중지를 빈첸의 목 언저리에 대었다.

“이 부근의 마력회로가 개통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용아인들은 이 회로의 이름을 아벨탄 회로라고 부르며, 아마도 인간들은 나면서부터 막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력회로를 개통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용아인들은 옛 무인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수련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했다.

‘어른’들이 흐름을 유도하여 마력회로를 개통해 주는 방식.

“무척이나 고되고 위험한 작업이나 빈첸 공자의 자질과 정신력으로 미루어보아 충분히 가능하리…….”

그런데 그때,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빈첸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칼백은 마나를 슬쩍 흘려넣어 빈첸의 마력회로를 읽어보았다.

막혀 있어야 할 마력회로가 이미 개통되어 있었다.

빈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용왕의 진전을 이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개통하였습니까?”

“아벨탄의 폭포에서 수련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이게 가능했단 말씀입니까?”

“칼백 경의 말씀대로 무척 위험하고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

칼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스스로 마력회로를 뚫어냈을 줄이야.

“완벽에 가까운 특성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흩뿌려진 이능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나의 성질이 정반대로 변하게 됩니다.”

해상군세는 용아인들의 기운을 북돋고 돕는 힘이다.

반면,

검은 바다는 적을 뒤덮어 살해하는 기운이다.

“저에게는 이러한 내용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품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검은 바다’는 해상군세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를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마나의 흐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시전자의 기백과 살의가 ‘검은 바다’의 격을 결정지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기술이라 할지라도 시전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능력을 선보인다는 뜻입니다. 격이 가장 중요하다. 용왕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믐달이 세 번 떴다.

아스비온 일족과 약속했던 시간이 ‘일곱 번째 그믐달이 뜨기 전’이었으니, 절반 가까운 시간이 지나간 것이었다.

칼백의 개인 수련장.

빈첸은 칼백과 마주 보고 섰다.

저만치 옆, 나이메르가 말했다.

“빈첸 공자. 저는 준비 되었어요.”

나이메르가 정령력을 일으켰다.

아직 빈첸 혼자서는 용왕의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다.

나이메르의 도움이 있어야 ‘해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선행되는 것은 해상군세.’

용왕의 대인결전기는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해군의 해상군세를 변형시켜 사용하는 방식이므로.

‘흩뿌렸던 기운을 다시 모아 검에 담는다.’

그것을 홍련에 집중시켰다.

홍련의 검면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용왕의 기운이 용골과 반응한 듯했다.

‘용골(龍骨)’을 머금은 그의 홍련이 칼백을 겨누었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200년 전, 용왕 아벨탄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세의 칼백 경을 통하여 전승된 비기.”

기술을 전수해 준 칼백에 대한 예의였다.

이 기술의 뿌리와 전승 과정을 인정하고 선포하는 과정.

“해상군세를 변형하여 창안된 대인 결전기.”

순간,

홍련의 검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검은 바다.”

칼백은 자신의 검을 들고서 홍련에 집중했다.

그의 눈에 거대한 해일이 보였다.

고오오오-!

홍련이 거대한 자연재해를 일으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두워진다.’

그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하늘의 빛을 모두 가린 듯한 느낌.

‘이것이, 검은 바다.’

드높이 치솟은 해일이 해를 덮는다.

그리하여 바다에는 밤이 찾아와 검게 변한다.

그것이 바로 ‘검은 바다’의 요체였다.

‘검은 바다’는 빈첸 아덴카가 지니는 격의 힘이 담겼다.

‘거대하고, 높고, 두렵다.’

커다란 자연재해를 마주한 작은 인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격의 기운이 아니었다.

빈첸의 격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말 그대로 해일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잡아먹힌다.’

빈첸의 살의를 담은 해일.

해일이 그의 검을 집어삼켰다.

칼백은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검이 잡아먹혔다고.

칼백이 입을 열었다.

“용왕이 창안하여, 나를 통해 빈첸 공자에게 전달된 검은바다는.”

빈첸이 예와 최선을 다하였으니, 이쪽에서도 답을 해야 했다.

칼백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재해를 베었다.

“이제 빈첸 아덴카를 증명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검은 바다.

이것은 이제 빈첸 아덴카가 그의 방식과 그의 격으로 만들어낸, 그의 힘이었다.

전달자인 그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쿵! 쿵! 쿵!

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앞의 이 소년이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지.

용왕의 힘을 얼마나 더 재현할 수 있을지.

“천년수 앞에서, 공자는 정상에 오르겠다 약속하였습니다.”

그것은 한낱 치기 어린 선포가 아니었다.

빈첸이 일으킨 ‘검은 바다’가 증거였다.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용왕이 창안하여, 나를 통해 빈첸 공자에게 전달된 검은바다는 훗날 이뤄낼 모든 약속의 증거였습니다.”

순간,

칼백의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칼백이 검자루를 손에서 놓았다.

검날을 잃은 검이 땅에 버려졌다.

“그러므로.”

칼백의 몸에서 비늘이 돋아났다.

그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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