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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119화 (119/184)

환생의 정석 119화

빈첸이 반문했다.

‘계략?’

-용림에는 용왕의 확실한 기록이 많이 전해지고 있을 거라 판단한 거 아니에요? 아주 좋은 판단이었어요. 아벨탄과 관련된 정보나 지식들을 획득하기에도 아주 용이할 거예요.

빈첸이 얻었던 ‘강화된 신체’ 특성 같은 경우는 이미 연구가 널리 진행되어 있었다.

따라서 익히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정형화된 마력흐름과 공식이 정해져 있었기에 안정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포르세딘의 가호로부터 파생되는 특성은 조금 달랐다.

율리안은 율리안 나름대로 굉장히 만족했다.

-드디어 야만의 길에서 벗어나 지성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그 갸륵한 마음! 내 포지션을 빼앗긴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하기는 하지만 나름 감동했어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오, 용림에 용왕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라. 그것도 그렇군.’

-예?

율리안은 빈첸과의 동조율이 많이 높아진 상태.

빈첸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빈첸이 일부러 계략을 썼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율리안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게 아니에요?

‘아니지.’

-그럼요? 분명 계략이 있던데?

‘나는 그저 수련할 시간을 번 것이다.’

-무슨 수련이요?

‘세리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이곳은 정기가 응축된 곳이다.’

-그런데요?

‘정기가 응축된 곳에는 수련에 최적화된 장소들이 존재한다. 나 때는 그러한 곳들을 명상터라 불렀다. 용림이 무척 넓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리가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겠지.’

현대에 이르러 심상이론이 발전하게 되면서 필요 없어진 내용이었다.

심상이론 덕분에 마나를 받아들이는 효율이 무척이나 높아졌다.

그래서 방 귀퉁이에서 수련을 하나, 명상터에서 수련을 하나 거기서 거기였다.

‘내가 보아하니 현대 무인들은 지나치게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빈첸은 이전에도 현대 무학을 일컬어 ‘본질을 잊었다’라고 표현했었다.

‘결국 몸에 마나를 쌓는 작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정순한 기운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제하여 몸에 저장하는 것이다.’

과거 무인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마나를 쌓았다.

현대 무인들은 ‘심상’이라는 ‘필터’를 통해 몸에 마나를 담았다.

‘빠르고 안전하다는 건 인정하마. 그러나 마나의 힘을 모두 이끌어내기란 힘든 일이겠지.’

율리안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옛날 기록들을 보면 폭포수를 맞으며 수련한다든가, 벼락이 내리치는 벼락언덕에 가서 명상을 한다든가, 그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짓들을 했다던데. 설마…….

옛 방법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문명적이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을 뿐.

‘그래. 수련자는 본인이 수련하고자 하는 기운과 성질이 비슷한 곳의 명상터를 찾아 움직였다. 명상터를 전문으로 찾아주고 관리하는 자들과 가문이 있을 정도였지.’

-진짜로 벼락언덕 같은 곳에서 수련을 했어요?

‘했지.’

-위험하잖아요.

‘수련은 원래 위험해.’

-그냥 위험한 게 아니라 죽잖아요!

‘나 땐 다 그렇게 했어.’

-하아.

율리안은 옛 무인들이 단명하는 이유를 다시금 체감했다.

때마침 세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쿠키와 주전자가 올려진 쟁반이 들려 있었다.

“공자님, 혹시 출출하실까 싶어 간식을 가져왔어요. 용아인 주방장에게 팁을 배워서 제가 직접 구운 쿠키랍니다.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고마워, 세리.”

세리는 다방면에 출중했다.

쿠키는 입에 닿자마자 초콜릿처럼 녹아 없어졌다.

신기한 촉감이었는데 굉장히 달콤하고 맛있었다.

세리는 약간 긴장한 모양새로 빈첸을 바라보았다.

“맛있네.”

“정말요?”

그제야 세리는 안도한 듯했다.

“세리도 앉아. 같이 먹어.”

빈첸은 세리와 약간의 담소를 나누다가 본론을 꺼냈다.

“세리. 용림은 정기가 가득한 곳이라고 했지?”

“네.”

“그게 어떤 모습으로 느껴져?”

“물줄기들 같아요.”

정령사의 눈에만 그것이 보인다.

“그중에서 커다란 물줄기들이 모이는 곳들을 탐색해 줄 수 있겠어?”

“물줄기들이 모이는 곳이요?”

과거,

명상터를 찾는 자들이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물줄기들이 모이면서 웅덩이를 이루는 곳. 그러한 크기가 크면 클수록 좋고, 다양한 성질의 정기가 한데 얽혀 있는 곳들이면 더 좋아.”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

빈첸이 익히려는 것은 ‘포르세딘’의 가호로부터 생성되는 특성.

그러니 바다의 기운(海氣)를 품고 있으면 더욱 좋았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물의 기운(水氣)를 지닌 곳이 좋고.

빈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찾아볼게요.”

세리는 정령을 불러냈다.

바닥에서 두더지 같은 모양새의 정령이 폭! 튀어나왔다.

‘크기가 커졌다?’

예전보다 확실히 크기가 커졌다.

그리고 세리와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듯했다.

그동안 세리의 정령술이 더욱 향상되었다는 뜻이었다.

인간의 육성과는 다른 형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폭폭. 찾아줌.”

폭폭이.

땅을 폭! 파고 올라온다 하여, 세리가 두더지 정령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부탁해. 폭폭아.”

“폭폭. 믿어. 폭폭. 천재.”

폭폭이는 짧고 오동통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린 뒤, 땅으로 폭! 사라졌다.

“폭폭, 폭폭.”

정령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 * *

밤이 지났다.

이른 새벽, 세리가 빈첸을 깨웠다.

“공자님. 폭폭이가 재미있는 사실들을 가르쳐줬어요.”

“재미있는 사실?”

“용림 내에는 소금강이라 불리는 특별한 곳이 있대요.”

“소금강?”

“네. 바닷물처럼 짠물이 흐르는데…… 거기서 공자님이 말씀하셨던 특별한 터를 찾은 것 같아요.”

세리의 말을 모두 들은 율리안이 기함을 토했다.

-30미터 높이의 거대 폭포요? 설마 거기서 폭포수를 맞으면서 수련하겠다거나?

“수련하기 딱 좋은 곳이구나.”

빈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어서 그곳으로 가자.”

“네, 공자님.”

문을 나서자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세리가 담담히 말했다.

“용아인들의 어머니께 말씀드려 마차를 준비해놓았어요.”

“나이메르 경에게?”

“네. 용왕의 진전을 잇기 위한 수련의 장소라고 말씀드렸더니 단박에 이해하시고 마차를 내어주셨어요. 길을 잘 아는 마부도 붙여주셨답니다.”

빈첸이 가볍게 웃었다.

세리 덕분에 많은 시간이 절약되었다.

마차에 올라탄 뒤, 율리안이 말했다.

-형님. 세리 말인데요.

‘왜?’

-사실 저도 세리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똑똑하고 추진력 있지는 않았거든요.

심지어 마차 안에는 용왕 아벨탄과 관련된 책들이 몇 권 놓여 있었다.

이 또한 세리가 미리 부탁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형님과 관련된 일에 한해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머리도 엄청 비상해지고요. 용왕의 기록까지 미리 준비해놓다니.

사실 율리안도 아벨탄과 관련된 기록들을 요구하려고 했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세리가 직접 행동으로 옮겨버렸다.

-아무튼 신기한 일이에요.

5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소금강의 거대 폭포.

용왕 아벨탄이 수련했던 장소들 중 하나라 하여 아벨탄 폭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거봐라. 200년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수련하는 자들이 있었다.’

-용왕은 정령도 다루던 정령검사였으니까요! 정령의 도움을 받았겠죠!

30미터 높이의 폭포.

율리안은 밑을 바라보고 아찔함을 느꼈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물줄기가 어찌나 거센지 주변에 비바람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걱정 마라. 이 정도 난이도의 수련은 수없이 많이 했었다.’

-예, 예, 그렇겠죠.

율리안은 투덜거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폭포수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빈첸이 의식을 잃게 된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폭포의 지형과 유속, 폭포 밑의 깊이 등을 고려하여 대비책을 강구했다.

-다행히 저만치 앞에는 비버들이 만들어놓은 댐이 있어요.

혹시라도 의식을 잃으면 그곳까지 떠밀려갈 것이다.

-폭포 밑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율리안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신기를 일부 소모해서라도, 일단 빈첸의 몸을 띄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물이 알아서 저 밑까지 데려가 줄 것이고, 세리가 그러한 빈첸을 건져내기만 하면 된다.

-세리가 응급 처치법을 확실히 알고 있을 테니, 세리를 저 밑에 대기시키세요.

빈첸은 율리안이 말한 대로 세리를 하류 쪽에 대기시켰다.

빈첸은 물속으로 들어가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를 향해 헤엄쳤다.

점차 유속이 빨라졌고 더 이상 앞으로 가기 힘들 정도였다.

‘물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다.’

애초에 여기서부터가 수련의 시작이었다.

이곳의 수기(水氣)와 친숙해지는 것.

이곳의 기운이 나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

마나를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받아들이는 현대무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율리안. 한센 명장의 작업장을 떠올려봐라.’

그때,

불에 그토록 친숙한 한센마저도 불에 타죽을 뻔했다.

그러나 빈첸은 그 불길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그와 같다.’

율리안은 잠자코 빈첸의 말을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일종의 배움이었다.

빈첸은 많은 것들을 직관과 경험에 의지하여 해낸다.

율리안은 그것을 이론으로 정립한다.

그것이 지금, 빈첸이 율리안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마나의 흐름을 받아들여 나와 일체화시킨다.’

그를 통해 물살의 저항을 이겨낸다.

빈첸은 그 작업을 몸으로 보여주었고, 율리안이 그것을 관찰했다.

빈첸도, 율리안도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밤이 되었다.

빈첸은 무아지경에 빠져 소금강을 거슬러 올라 결국 폭포에 닿았다.

빈첸은 손을 뻗어 폭포를 기어올랐다.

순간, 몸에 힘이 풀렸다.

그는 기절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세리는 빈첸의 체온이 식지 않도록 마법을 사용하여 침낭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빈첸의 입에 포션도 흘려 넣은 상태.

“고마워, 세리.”

빈첸은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폭포에 올랐다.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빈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예로부터 폭포수를 머리에 맞으며 수련하면 훨씬 도움이 된다 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다.

빈첸은 눈을 감고 명상식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율리안은 잠자코 빈첸의 몸을 관조했다.

‘형님의 몸과 맞닿은 물줄기가 절로 뒤틀리고 있어.’

물줄기가 하나로 응집되었다.

그리고 수기(水氣)가 정수리 부근을 계속해서 강타했다.

마치 물로 만들어진 침이 된 것처럼.

‘옛 기록에서 저곳을 백회혈이라 했었지.’

그렇게 3일이 흘렀다.

염분을 내포한 수기(水氣)를 받아들인 명상.

그것이 빈첸의 몸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빈첸도 그것을 느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몸 안에 축적된 새로운 마나.

이것을 적절히 융합시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작업이나, 한 번의 실수가 치명상을 입힌다.

율리안이 마력자전을 이론적으로 도왔다.

-형님, 머리 정중앙, 거기를 백회혈이라고 해요. 거기에 가상의 구멍이 뚫렸다고 생각하세요. 거길 통해서 해기(海氣)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구현해 보세요.

빈첸은 이미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율리안이 더욱 구체화시켰다.

-그 기운을 전신에 골고루 뿌릴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목 부근까지 스며든 마나가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그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력회로가 너무 좁아요. 일부는 막혔고요.

빈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몸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얼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었으나 빈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빈첸은 이러한 상황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잘 보아라, 율리안. 지금은 잊혀진 옛 방식이다.’

빈첸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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