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정석 84화
햇볕 수용소 전체에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가증스럽게도, 해적의 침입을 알리는 소리와 똑같았다.
빈첸이 창고의 입구에 도착했다.
“네가 그 침입자냐?”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군. 애잖아?”
두 명의 무인이 창고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제법 강해 보였다.
적어도 3성 이상의 심상을 가진 것 같았다.
‘시간이 생명이다.’
아마 저들은 ‘창고’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것이고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해 왔을 것이다.
무인이 달려들었다.
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빈첸의 몸이 뒤로 두 걸음 밀렸다.
“애치고는 제법이군.”
다행인 것은 그가 빈첸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봐야 열네 살의 9급 생도.
실력이 출중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한 번 검을 섞은 후.
그는 승리를 자신했다.
‘저놈을 잡아다 바치면 큰 포상이 떨어지겠어.’
그리고 그 방심이 이능검격의 검로를 불러냈다.
빈첸이 이능검격을 펼쳤다.
단 한 번의 맞부딪침으로 검로가 보였다.
이능검격의 검로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다시 한번, 검과 검이 부딪쳤다.
비올가의 무인이 씨익 웃었다.
힘 대 힘으로 부딪치면 무조건 이쪽의 승리일 테니까.
‘어?’
그런데 이상했다.
‘앞이 안 보여.’
뒤늦게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는 두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빈첸의 검이 무인의 검을 잘라냄과 동시에 무인의 두 눈을 베었다.
“이놈!”
또 다른 무인이 빈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빈첸은 눈을 잃은 무인을 슬쩍 밀었다.
눈을 잃은 무인은 빈첸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으악!”
동료를 벨 뻔한 무인은 황급히 마나를 거둬들였다.
빈첸은 혀를 찼다.
‘상상도 못 할 일이군.’
검식 전개 중에 마나를 거둬들이다니.
만약 500년 전이었다면 저자는 마나가 폭주해서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500년 전 무인은 검식을 사용하기 전에 충분한 틈을 만든다.
저자는 그러한 밑작업을 하지도 않고 대뜸 마나를 끌어내 검식을 사용했다.
빈첸의 입장에서 무학(武學)은 퇴보했다.
‘아무리 심상이론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약간의 반동은 있을 터.’
최소한의 충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빈틈을 만들어낼 것이고.
푸욱!
빈첸은 무인의 심장을 정확히 찔렀다.
무인은 즉사했다.
-형님, 왜 이렇게 세졌지?
‘내가 강한 게 아니라, 저들이 약한 거다.’
-최소 3성 이상, 어쩌면 4성일지도 모를 무인이라면서요?
‘심상의 개수가 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냐.’
게다가 저들은 실전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빈첸은 그게 더 화가 났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짓밟기만 했다는 증거지.’
강한 자들과 합을 겨뤄보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토록 실전감각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입구를 지키는 두 무인을 베었다고 해서 시간이 빈첸의 편인 것은 아니었다.
-문이 닫히고 있어요!
강철벽이 내려오고 있었다.
입구를 봉쇄해 버리려는 듯했다.
‘설상 걸음.’
빈첸은 곧바로 설상 걸음을 운용해 몸을 던졌다.
그의 몸이 미끄러지듯 입구를 통과했다.
‘창고’ 안쪽이 보였다.
-우와, 크다. 이렇게 클 줄 몰랐어요. 그리고 엄청 덥네요.
겉에서 봤을 때에는 1층짜리 창고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하가 상당히 깊었다.
최소 지하 5층 이상.
철제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뻥 뚫린 공간이었다.
-거대한 공장 같아요.
아이만이 말해주었던 ‘마정석을 제련하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 같았다.
저만치 아래.
수많은 수용자들이 일렬로 서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음?’
그들은 저만치 아래 ‘용광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무인들은 열기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특수제작 로브를 입은 채 수용자들을 용광로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수용자들이 스스로 용광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빈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둬!”
상대는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
3성 무인 말론의 위압조차 밀어냈던 빈첸의 기백은 일반인인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수용자들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빈첸은 직감했다.
‘세뇌 마법이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처음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 왜 대다수 수용자들의 눈에 생기가 없었는지.
저들은 부랑자들 -부랑자라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하고 힘없는 소시민들- 을 납치하여 세뇌한 것이다.
빈첸의 눈이 충혈되었다.
‘이 일이 정녕 무가(武家)와 신전이 벌인 일이란 말이냐!’
빈첸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소리에 마나와 의지를 담았다.
마나를 실어 크게 외쳤다.
“너희는 이곳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세뇌는 저들의 머릿속에 죽음을 강요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빈첸은 그에 반대되는 의지를 불어넣어야 했다.
“모두 살 것이다!”
빈첸의 기백은 세뇌마법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속도가 느려지고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는 있으나, 여전히 사람들은 용광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조금 더.’
저들의 정신에 울림을 줄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
위대한 이름.
아덴카의 이름을 빌려왔다.
“빈첸 아덴카. 아덴카의 칠 공자가 너희의 희생을 막을 것이다.”
빈첸의 외침은 세뇌마법을 망가뜨렸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괴성을 질렀다.
혼란은 혼란을 낳았다.
바깥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어어어어!”
“으아어어!”
몇몇은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뒹굴기도 했다.
비올가의 무인들은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애썼지만 수용자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몇몇 무인들은 빈첸에게 달려들었다.
빈첸은 그들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는 않았다.
“거기 서라!”
이곳은 철제계단으로 연결된 공간.
빈첸은 계단과 계단 사이를 넘나들며 설인 걸음을 펼쳤다.
‘슬슬 호흡이 가빠오는데.’
무인들은 집요하게 빈첸을 쫓아왔다.
‘내가 할 일은 증거를 수집하는 거다.’
지하 3층.
저곳에 집채만 한 수정구가 보였다.
저기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고, 저곳의 마력벨트에는 제련하다 만 마정석들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 아마 핵심일 거야.’
저곳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무인들도 빈첸의 목적지를 예상한 모양이었다.
-형님. 길이 막혔어요.
‘알아.’
빈첸은 좌우를 살폈다.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저들은 이곳 지형에 익숙했고, 빈첸에게는 불리한 환경이었다.
‘밑은 용광로.’
밑으로 뛰어내릴 수는 없다.
위에도 무인 둘이 진을 치고 있고 앞은 셋이었다.
뒤쪽은 강철벽이었다.
이능검격으로 잘라내고 도망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저들을 모두 벤다?’
체력적으로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쥐새끼 같은 놈.”
무인들이 검을 겨누고 점차 포위망을 좁혀왔다.
순간,
뒤편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이름은 알 수 없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노인도 있었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천벌 받을 놈들아!”
“으아아아!”
빈첸 덕분에 세뇌가 풀린 사람들이 빈첸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빈첸을 돕는 것을 선택했다.
그들에게 변변한 무기는 없었다.
손에든 것은 제련용 망치뿐이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빈첸에게 필요했던 것은 약간의 틈이었다.
그 틈만 있으면 되었다.
작은 의지가 모여 기적을 이루었다.
“용서 못 해!”
어린아이 하나가 무인에게 달려들었다.
무서운지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용기를 냈다.
“이 미친 것들이!”
무인은 어린아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빈첸에게는 큰 틈이 보였다.
‘중검첩방.’
어린아이를 보호했다.
푹!
빈첸의 검이 무인의 무릎을 찔렀다.
“크아아악!”
어린아이의 손에도 작은 망치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겁을 많이 먹은 것 같았다.
빈첸은 어린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몸을 일으켰다.
‘설인 걸음.’
사람들이 무인들의 동선을 어지럽혔고 신경을 분산시켜준 덕분에 빈첸은 무인들을 쉽사리 베어낼 수 있었다.
셋을 죽였고 둘은 전투 불능이었다.
다행히 이쪽에 죽은 사람은 없었다.
빈첸이 재빨리 물었다.
“여긴 어떤 시설이죠?”
한 노인이 대답했다.
“마정석을 제련하는 곳입니다. 저 수정구에 손을 갖다 댄 뒤 작업을 시켰어요.”
“왜 납치당했습니까? 당신들은 부랑자였습니까?”
“아닙니다.”
한 여인이 울면서 대답했다.
“힘없고 가난한 것이 죄라 하였어요.”
빈첸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러분들은 몸을 피해 숨어 있으세요. 무인들이 여러분들을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걱정 마세요. 이곳의 지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후 제 동료들이 여러분을 안내할 겁니다.”
빈첸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뛰었다.
수정구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핵심이다.’
빈첸은 일부러 다른 수용자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햇볕 수용소에서 제공하는 알약을 먹었고, 수용자들이 지나치는 마법진과 관문을 똑같이 지났다.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할 수 있어.’
수정구에 손을 대자, 마나가 수정구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윽!’
빈첸은 황급히 손을 뗐다.
-형님! 조심해요! 미친! 이딴 걸 누가 만든 거야!
율리안도 함께 느꼈다.
이건 단순히 마나를 빨아들이는 수정구가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력을 빨아먹었다.
이것은 수정구 형태의 거대한 흑마법진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빈첸은 왼손으로 마정석을 들었다.
오른손은 수정구에 대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방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해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율리안은 속으로만 소리쳤다.
‘형님아! 제발! 적당히! 몸 좀 아낍시다! 예?!’
이내 마정석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하급의 일반 마정석이 꽤 괜찮은 품질의 범용 마정석이 되었다.
‘이로써…… 증명했다.’
빈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주 잠깐이었는데도 몸에 엄청난 무리가 왔다.
‘어지럽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꼬마도련님께서 너무 욕심부리셨다. 적당히 하고 돌아갔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남자가 보였다.
그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세는 결코 우습지 않았다.
‘살벌한 기세군.’
여태까지 빈첸 앞을 가로막았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격이 달랐다.
빈첸은 저만치 멀리 희미한 마력을 내뿜는 소형 이동관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비올가에서 대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우스꽝스러운 가면에 삐에로 복장. 어릿광대 랜서튼이에요!
세상에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7성급 무인으로 알려진 자였다.
비올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무인이기도 했다.
랜서튼이 말했다.
“꼬마친구, 이름이 빈첸이지? 아덴카의 못난이 공자님.”
“네 이름은 랜서튼인가.”
“이야, 내 이름을 알아줘서 너무 고마워.”
순간,
우스꽝스러운 가면이 히죽 웃었다.
“맞아. 너를 황홀하게 죽여줄게.”
“네가 나를 죽인다고? 불가능할 텐데.”
“안 될 게 있니? 넌 내 이름만 알고 내 성취는 모르나 봐?”
그가 호호호 웃었다.
그리고 장난스레 허리를 숙여 보였다.
“7성 무인. 어릿광대 랜서튼. 널 죽여줄 사람이니 확실히 기억하려무나.”
빈첸이 그를 마주 보았다.
어쩐 일인지, 7성급 무인을 대하는 빈첸의 태도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지금의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