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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82화 (82/184)

환생의 정석 82화

그런데 그때.

비올가 소속의 무인이 말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특별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어서 영상 송수신이 불가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루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재미있는 재롱을 부리는구나.”

빈첸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말했다.

“대부분의 무가(武家)는 특별한 결계 등으로 영상 기록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소식지 기자들의 행동을 제약하지도 않지요. 보통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비올가(家)는 일반적이지 않군요. 왜 부랑자 수용소에 그런 특별한 결계가 펼쳐져 있어야 합니까?”

입구를 지키는 무인 중 한 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취조하는 것이냐?”

“그렇게 느끼셨다면 미안합니다. 그냥 저는 궁금해서.”

루산이 무인들을 재촉했다.

“저 재수 없는 것들을 얼른 쫓아내 주시오.”

빈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라면 언행을 조심했을 텐데요.”

빈첸은 마리아로부터 영상기록석을 받아들었다.

예전에 빈첸이 사용했었던 범용 마정석 따위가 아니었다.

소식지계의 2인자.

바람소리의 수석기자가 사용하는 최상급의 영상 기록 마정석이었다.

영상기록석에는 지금의 장면이 모조리 기록되어 있었다.

“어때요? 멀쩡히 기록이 다 되어 있네요.”

그러자 비올가의 무인이 다시 끼어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송출은 안 됐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리아 기자님은 바람소리의 수석기자이십니다. 바람소리의 송출 기술력이 메일튬의 방해 기술력보다 떨어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루산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바람소리? 수석기자?”

일이 약간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일반 소식지도 아니고 바람소리다.

게다가 수석기자라니.

“원하는 게 뭐지?”

“그저 저희가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는 신관님들을 도우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는 제 승급시험이기도 합니다. 저는 반드시 승급을 하고 싶거든요.”

“기지국에 송출된 영상 기록은?”

마리아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건 수석기자 권한으로 바로 지울 수 있어요.”

“…….”

루산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을 허가하지.”

* * *

빈첸 일행은 루산 신관 일행과 함께 수용소 안을 걸었다.

“이 안쪽이 우리가 업무를 진행하는 곳입니다.”

커다란 운동장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깔끔한 행색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시설은 깨끗했다.

루산 신관은 마리아를 의식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곳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들은 좋은 시설을 제공받는 대신 마정석을 제련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죠. 마정석을 제련하는 것은 꽤 고된 일이어서 부상이 종종 발생하거든요.”

“그렇군요.”

빈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걸었다.

이 깔끔한 분위기가 역겨웠다.

이것은 과거의 무인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위적인 기운이었다.

‘저들에게서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

빈첸의 육감은 이곳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빈첸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 산의 이름은 뭔가요?”

산 중턱에는 회색 창고 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이 정도 거리에서도 보이는 걸 보면 규모가 꽤 큰 것 같았다.

“별 이름 없는 동산입니다.”

“그렇군요. 저 건물은 창고인가요?”

“호기심이 무척 왕성하군요. 예. 창고입니다.”

별 이름 없는 동산과 창고라.

빈첸의 기분이 언짢아졌다.

-왜 그래요?

‘죽음의 냄새가 아주 짙어.’

편의상 냄새라고 표현하지만 이건 여러 차례 사선을 넘나든 무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사기(死氣)였다.

저 산에서는 막대한 사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현대무인들은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 빈첸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생각보다 더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그래요?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 또한 결계의 일부다. 아마도 환상계 같군.’

시야를 조금 왜곡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결계.

빈첸은 모른 척 걸었다.

루산이 제법 친절하게 말했다.

“일단 이 수용소를 관리하는 관리소장과 만나 보십시오. 우리는 저쪽 시설에 상주하고 있으니 만남이 끝난 뒤 저기로 찾아오시고.”

“친절한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신관들은 멀어졌다.

비올가의 무인들이 이어서 안내를 시작했다.

“저 앞에 보이는 파란 건물입니다. 관리소장님께서 생도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

빈첸은 관리소장 에드몬드를 만났다.

그는 중년의 배불뚝이 남자였다.

무가인 비올가에서 파견된 인물이었는데, 의외로 무인은 아니었다.

“임무하달서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는 제법 깐깐한 모양새로 임무하달서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 뒤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붉은 요새의 생도 분들을 환영합니다. 가이아 신관님들을 돕기 위해 오셨다니, 제가 다 든든하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폐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신관님들을 돕겠습니다.”

“다만, 이곳은 비올가의 특별 관리구역이니 허가받지 않은 구역으로의 입장은 불가합니다.”

“물론입니다. 저희의 임무는 신관님들을 지원하는 것뿐입니다.”

“하하하! 이토록 듬직한 생도들을 보니 무척 반갑군요. 부디 승급에 성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관리소장과의 만남을 끝내고 빈첸은 신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신관들은 정말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신관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여러분이 딱히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보다시피 이곳은 평화로운 곳이니까.”

“정말 그렇군요.”

그날은 별다른 소득 없이 숙소로 되돌아왔다.

빈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수용소의 결계나 사기(死氣) 등은 일절 느끼지 못했다.

시젠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오히려 꽤 안락해 보이던데. 시설이 좋아 보였어.”

하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상한 점은 딱히 찾지 못했던 것 같아.”

만약 아이만의 실종이 아니었더라면 일상적인 지원임무라고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수용소 안은 평화로웠다.

그날 밤.

빈첸은 숙소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세르쿤 집사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비올가의 무인들은 저는 물론이고 레이븐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에드몬드 관리소장. 그자의 눈빛이 무척 날카롭더군요.”

“…….”

“무인이 아니면서 그런 눈빛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

“가장 쉬운 방법은 살인이 있겠지요.”

빈첸은 분명 느꼈다.

관리소장 에드몬드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칼날을 갈고 있었다.

빈첸의 예리한 감각은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위험합니다. 적극적인 살의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호기심마저 서려 있더군요. 저는 그와 비슷한 눈동자를 이미 본 적 있습니다.”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봤습니까?”

“식인귀 카르발. 그의 눈과 비슷했습니다.”

“눈빛과 기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공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 모습으로 그냥 레이븐 옆에만 있어 주십시오.”

어느새 그는 빈첸 옆에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빈첸 공자 행세를 해달라는 말입니까?”

“예, 그런 셈이죠.”

“나는 공자의 임무에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제 임무에 관여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레이븐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그게 집사님의 임무 아닙니까?”

“그 정도 임무는 원거리에서도 가능합니다. 굳이 더 관여할 필요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빈첸은 세르쿤의 방심을 짚어냈다.

“그들이 우리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붉은 요새에 관심이 없어도.

스스로 생도의 신분이라 밝혔어도.

그래도 그들은 빈첸과 레이븐의 정체를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덴카나 바르티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수상할 정도였다.

“저는 그렇다 쳐도, 레이븐 옆에는 세르쿤 집사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저들이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장의 눈에는 살의가 들끓었습니다. 참는다고 참고 있었음에도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일렁거리고 있었어요.”

빈첸이 세르쿤을 바라보았다.

“세르쿤 집사님도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

“사자를 잡기 위해서는 사자를 잡기 위한 덫을 놓기 마련입니다. 세르쿤 집사님을 고려했다면, 응당 그만한 준비를 하겠지요.”

“빈첸 공자는 저들이 생도들을 습격하리라고 확신이라도 하는 모양이군요.”

“예. 확신합니다.”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단련된 직감이었다.

“만약 그들이 습격하지 않는다면 2급 신관의 명패를 드리겠습니다. 그 가치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레이븐 공자 옆에 있어주기만 할 겁니다. 그 이상의 도움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저 말은 사실일 것이다.

혹여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세르쿤은 레이븐만 구해서 탈출할 것이다.

빈첸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입니다.”

세르쿤은 역용을 펼쳐 빈첸의 대역을 맡게 되었다.

빈첸은 생도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며 각각에게 나름대로의 역할을 부여해 주었다.

셀비라가 물었다.

“그럼 빈첸 너는 어떻게 하려고?”

“나는 부랑자 무리 속에 끼어들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무인들이 네 얼굴을 이미 다 알고 있잖아.”

“나도 세르쿤 집사님과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거든.”

생도들은 잠시 침묵하고 말았다.

사실 가장 놀란 사람은 레이븐이었다.

그 역시 역용을 배워보려다가 실패했었으니까.

그러나 쉽게 납득했다.

“세르쿤 집사의 역용이잖아? 그걸 이렇게까지 활용할 수 있다고? 이야, 역시 내 라이벌다워.”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아왔다.

빈첸의 승급시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빈첸은 역용술을 펼쳐 부랑자 무리 속에 숨어들었다.

세르쿤만큼 완숙한 경지는 아니었지만 많은 인원을 관리하는 무인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첫째 날.

빈첸을 비롯한 부랑자들은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쇠창살만 없다뿐이지 감옥이었다.

헬크라는 이름을 가진 무인이 부랑자들을 관리했다.

헬크가 말했다.

“이곳에서 대기해.”

잡혀온 부랑자들은 10여 명.

대부분은 숨죽여 울고 있었다.

한 남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내게는 두 살 된 아기가 있습니다! 내보내 주세요!”

“부랑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헬크는 킥킥 웃고서 문을 닫아버렸다.

빈첸은 남자를 살펴보았다.

목에는 검붉은 멍 자국이 있었다.

목을 세게 짓밟힌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헬크는 수용자들에게 알약을 나눠주었다.

“너희들의 건강을 책임져줄 약이다.”

그들은 수용자들이 알약을 삼키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다들 꺼리기는 했으나 감히 무인들에게 반발하지는 못했다.

빈첸도 알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헬크는 빈첸의 입속을 확인했다.

“입 벌려.”

빈첸은 입을 벌려서 알약을 삼켰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어떡하려고 그래요?

‘일단 무슨 알약인지는 알아봐야지.’

-그렇다고 그걸 직접 먹어서 확인해요? 조금 더 문명적이고 지성인다운 방법이…….

율리안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빈첸이 뭘 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역용을 펼치는 마나막을 통해 알약의 흡수를 최소화시켰잖아?’

역용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빈첸은 자유자재로 역용을 다루었다.

율리안은 문득 궁금해졌다.

-신체에 남은 찌꺼기는 어떻게 하려고요? 우리 몸은 유리몸이잖아요.

‘이렇게.’

빈첸이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시작했다.

-헐? 미친!

율리안은 기함을 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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