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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81화 (81/184)

환생의 정석 81화

빈첸은 아이만을 자리에 앉힌 뒤 냉수를 건넸다.

“호흡을 가라앉히시지요.”

아이만은 무척 목이 말랐던 듯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는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로 조용히 말을 이었다.

“멜리튬에 파견된 자들은 모두 넬리우크 경의 사람들입니다. 이곳은 넬리우크 경의 자금줄 중 하나이지요. 온갖 비리와 더러운 술수로 점철된 곳이 바로 해안도시 메일튬입니다.”

아이만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이만은 넬리우크를 배신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 넬리우크 경을 배신하려 하시죠?”

“저는 이미 넬리우크 경의 눈 밖에 났거든요.”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절단으로 왔었던 신관들 중 유일하게 목을 걸지 않았던 사람이 아이만이었다.

아마 그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으리라.

“넬리우크 경은 왜 아이만 경을 이곳을 보낸 겁니까?”

“저를 괴롭히고 싶어서일 겁니다.”

이곳은 가이아 신전에서 무척 멀리 떨어진 곳이다.

가이아의 감시가 닿지 않는 곳.

매우 부패했으며 파견 신관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곳이기도 했다.

“넬리우크 경의 수족들이 저를 마음 놓고 괴롭힐 수 있는 환경이지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최근 며칠간 자신이 당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가혹한 행위들이 이어졌다.

폭행은 물론이거니와 인분을 먹인다거나 하는 등의 끔찍한 일들을 당했단다.

말을 이어가던 아이만이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결국, 햇볕 부랑자 수용소가 핵심입니다.”

“햇볕 부랑자 수용소요?”

“길거리의 부랑자들을 모아서 관리하는 시설입니다. 비올가의 무인들은 그들을 데려가 혹사에 가까운 노동을 시킵니다. 범용 마정석을 제련한다고 알고 있는데 품질이 좋은 편이어서 제법 돈이 된다고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말도 안 돼. 일반인들이 범용 마정석을 제련할 수 있다구요?”

마정석을 제련하는 건 마법사들의 영역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비올가에 전수되는 비전이 있다고 하는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부랑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빈첸은 물론이고 생도 전원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만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찼다.

시젠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니까, 아무런 죄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부랑자 시설에서 노역을 시킨다는 겁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분명 엄청난 반발이 있을 텐데요.”

“메일튬은 늘 전시상황이니까요.”

바다 건너의 해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타 도시에 비해서 치안이 상당히 나쁜 축에 속하죠.”

시민들은 치안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도시에 작은 불안요소조차 감당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

셀비라가 말했다.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없던 건 아냐. 시민들 입장에서는 부랑자처럼 위험천만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관리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비올가(家)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낄 거야. 그게 이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아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많은 시민들은 비올가에 의지하고 있고, 비올가는 그런 상황을 통제하며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신전이 그 뒤를 봐주면서요.”

그는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오는 길에 보았던 방벽은 과거 외세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방벽이었으나 지금은 시민들이 멋대로 탈출할 수 없도록 만든 벽이기도 합니다.”

빈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500년 전의 메일튬과 지금의 메일튬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빈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만 경은 저희와 함께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신이 알려지면 위험합니다. 어쩌면 이미 사람이 붙었을지도 몰라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는 원래의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저는 돌아가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걱정 마세요. 저를 호위하는 1급 성기사가 있습니다. 신관들이 저를 괴롭히는 것 정도는 방관하지만, 제 목숨만큼은 지켜줄 겁니다.”

빈첸은 고개를 끄덕였다.

1급 성기사라면 지금의 자신보다는 분명 강할 테니까.

“신관님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빈첸과 아이만은 악수를 나눴다.

아이만이 인사를 건넸다.

“가이아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 *

세리가 빈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공자님, 왜 그러세요?”

빈첸은 세리의 예리함에 흠칫 놀랐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 세리만큼은 자신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냐.”

“정말이죠?”

세리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며 빈첸은 괜스레 양심이 찔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에는 작은 쪽지가 하나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만이 악수하면서 몰래 건네준 것이었다.

아이만이 그토록 비밀스레 전해준 것이니 몰래 확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세요?”

“화장실.”

빈첸은 혼자서 쪽지를 펼쳐보았다.

‘이건……!’

단순한 쪽지가 아니었다.

이건 유서에 가까웠다.

[나의 순교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그리고 가이아에 햇볕이 깃들기를.]

빈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교?’

그가 노리는 건 따로 있는 듯했다.

빈첸은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아이만 신관은 찾을 수 없었다.

눈치 빠른 세리가 빈첸을 뒤쫓아 나왔다.

“공자님. 왜 그러세요?”

“정령을 사용해서 주변을 훑어봐 줘. 혹시 피 냄새가 있는지 확인해 봐.”

습격이 있었다면 분명 피 냄새가 날 것이다.

세리는 정령을 불러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잘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그럼 아이만 신관의 냄새를 추적할 수 있을까?”

“해볼게요.”

세리는 눈을 감고 정령과 함께 호흡해 보았다.

“이상해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아이만 신관이 나간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상급의 은신 특성을 지닌 것도 아닌데, 흔적이나 냄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위이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마나가 덧입혀 증폭된 소리였다.

“해, 해적이다!”

저 멀리서 포격 소리도 들렸다.

실제로 포격이 있는 건지, 땅도 제법 흔들렸다.

“성벽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봐 줄 수 있겠어?”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세리가 대답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지금 포격 소리와 진동은?”

“지금 제 실력으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마법효과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해적 소동은 자작극이라는 소리였다.

저만치 멀리, 부랑자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마차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단 돌아가자.”

숙소로 복귀한 빈첸은 생도들을 불러 모았다.

빈첸이 말했다.

“아이만 신관이 실종됐어.”

“…….”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해적 소동은 자작극이고. 다들 눈치채고 있겠지만 우리의 임무는 단순 지원임무가 아닐 거야. 메일튬. 그리고 햇볕 부랑자 수용소에 뭔가 있어.”

다들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실체가 정확히 느껴지지는 않지만 단순 지원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셀비라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신관들을 만나봐야지.”

다음 날.

가이아의 신관들이 머무는 곳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메일튬 도시 내에서 숙박비가 가장 비싼 곳의 꼭대기 층.

그곳에 신관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대표인 3급 신관 루산과 만났다.

“신관님들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 나온 9급 생도들입니다.”

“그래요?”

“예, 한 달간 지원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신관들은 빈첸 일행을 딱히 반기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무하달서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빈첸 일행을 대놓고 무시했다.

“아마 별로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조용히 기간 채우다 돌아가면 됩니다.”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십시오.”

“그럴 일 없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빈첸 일행은 그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이틀이 지났다.

신관들은 아침마다 어딘가로 향했다가 저녁에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곤 했다.

이틀간, 빈첸은 세리의 정령술을 통해 신관들이 출퇴근하는 곳을 알아냈다.

“아이만 경이 말해준 곳이에요. 햇볕 부랑자 수용소.”

“거기서 뭘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겠어?”

“죄송해요. 마법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제 실력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군.”

그곳은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다.

특출난 무인을 제압하는 장소도 아니다.

비싼 유지비를 들여 마법결계를 펼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곳에 신관이 매일같이 출근할 필요도 없다.

셀비라가 킁킁 냄새를 맡는 척했다.

“킁킁, 구린내가 많이 난다, 그치? 어떡할 거야?”

“확인해 봐야지.”

다음 날 아침.

빈첸은 생도들을 이끌고 햇볕 부랑자 수용소로 향했다.

외딴 산속에 위치하고는 있으나 가는 길 자체는 쾌적하고 잘 닦여져 있었다.

부랑자 수용소는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입구는 비올가의 무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누구냐?”

“붉은 요새에서 파견 나온 9급 생도들입니다.”

빈첸은 둘란 신관의 인장이 찍힌 임무하달서를 보여주었다.

“이곳은 비올가의 특별 관리구역이다. 넬리우크 신관님이나 루산 신관님의 허가가 아니면 입장을 허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다리지요.”

“뭐?”

“곧 루산 신관님이 도착하실 테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루산 신관을 필두로 한 신관들이 입구에 도착했다.

루산이 마차에서 내렸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도움은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빈첸이 다시 한번 임무하달서를 내밀었다.

“저는 여러분들을 지원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필요 없다니까.”

“제가 미덥지 못하시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2급 신관의 명패입니다.”

이번에는 둘란의 명패를 보여주었다.

여기 오기 전,

저들의 신상은 어느 정도 파악해뒀다.

루산은 3급 신관이고 둘란보다 더 높은 신관은 없었다.

가이아의 규칙대로면 저들은 명패를 소지한 자를 명패의 이름을 가진 자처럼 대우해야 한다.

루산은 주변을 둘러보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마치 둘란을 혐오하는 듯했다.

“그딴 건 더더욱 필요 없다, 이곳에서는!”

“이곳이 그렇게 특별한 곳인가요? 가이아 신전의 법칙을 무시할 만큼?”

“썩 꺼져!”

“지금 굉장히 위험한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루산이 비올가의 무인들에게 말했다.

“뭣들 해요? 쫓아내 버려.”

빈첸은 위축되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하네요, 마리아 기자님.”

“……뭐?”

“저라면 그런 경솔한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루산 신관님.”

루산도 이상함을 느꼈다.

9급 생도치고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무인 특유의 단단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9급 생도 일행은 소식지 기자를 대동하고 있었다.

“마리아 기자님, 해당 장면 기록이 기지국으로 송출되었나요?”

자극적인 장면을 접한 마리아가 방긋 웃었다.

“네, 송수신 상태 양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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