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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61화 (61/184)

환생의 정석 61화

빈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식인귀 카르발?”

“호오? 나를 아나?”

그의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아이의 두개골이군.’

그 크기가 굉장히 작았다.

“으하하핫!”

그사이 율리안이 카르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미온은 물론이고 대다수 명가들에게 수배가 내려진 지명수배범이에요. 식인이 취미이고, 특성은 발골검이에요. 식인귀라고도 불리고 인간백정이라고도 불려요.

카르발이 킬킬대며 웃었다.

“애송이들이 쫓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런 어린애들일 줄이야.”

그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의 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길었다.

굶주린 개처럼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운이 아주 좋아. 맛있겠어. 좋아. 네 이름은?”

“빈첸이다.”

“빈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그는 아무렴 어때, 하고 피식 웃었다.

“옆에 창 든 꼬맹이는 제법 살벌한 기운을 지니고 있지만.”

“…….”

레이븐은 창을 고쳐 쥐었다.

그는 카르발의 기세를 읽어냈다.

‘나보다 강해.’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저런 놈에게 패배하는 법 같은 건, 바르티칸에서 배우지 못했다.

카르발은 상당히 여유롭게 굴었다.

빈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너는 그냥 길잡이인가 보군.”

카르발은 빈첸의 마나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

빈첸이 물었다.

“너는 테이머인가?”

“그래. 테이머이자 뛰어난 검술가이지.”

그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박도가 들려 있었다.

날이 녹슬어 있었다.

‘뼈를 발라낸다 하여 발골검인가.’

레이븐이 마나에 음성을 실어 전달했다.

-빈첸. 언제 칠까?

상황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빈첸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레이븐은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잠시 기다려.

카르발은 박도를 이리저리 흔들며 기다려주었다.

빈첸과 레이븐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아차렸다.

“후후후. 뭘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을까?”

그는 즐거웠다.

빈첸과 레이븐이 두려움에 질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먹잇감들이 공포에 떠는 게 그렇게 좋더라.”

“어째서지?”

“살이 야들야들해지거든.”

카르발과 태연히 대화하는 척 하면서, 레이븐에게는 음성을 전달했다.

-너는 변이 고블린을 맡아줘.

-나만 믿어!

길게 설명할 필요 없었다.

레이븐은 이미 고블린을 향해 창을 뻗는 중이었다.

빈첸에게는 더없이 믿음직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빈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카르발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테이머이자 뛰어난 검객이라고 했나?”

“그래.”

빈첸이 가까이 다가오자 카르발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도망갈 줄 알았는데. 제법 기개가 있는 놈이로군.”

“그토록 뛰어난 테이머이자 검객이면 이런 함정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겠지.”

빈첸은 홍련으로 땅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쾅!

무엇인가가 폭발했다.

“조악한 수준의 트랩인데.”

밟으면 사냥감을 포획하는 덫 종류의 트랩인 듯했다.

‘호탕한 척하고 있으나 신중한 놈이야.’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던 청안 백호는 여전히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건 변이 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변이 고블린은 소극적으로 레이븐의 창을 피해내거나 막고 있었다.

배고픔에 지친 변이 고블린의 입에서 끈적한 침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마물들에 대한 지배력이 상당하군.”

그러나 이 또한 빈첸에게는 허점으로 보였다.

“그것이 내게는 트랩이 있다고 광고한 꼴이 되었구나.”

“…….”

이곳에 펼쳐져 있는 갈대밭은 환상으로 구현한 가짜다.

“이 트랩을 숨기기 위해 또다시 갈대밭을 구현해놓은 것은 치밀하였으나, 그 수준이 참으로 조잡하구나.”

나름대로 이중트랩을 설치했다.

현대무인들은 ‘길잡이’가 아니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만의 시대를 살아온 빈첸은 곳곳에 뒤틀린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빈첸은 곳곳에 숨겨진 트랩을 모조리 박살 냈다.

이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던지 카르발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꽤 실력이 뛰어난 길잡이로군. 오만한 눈동자도 아주 먹음직스러워.”

카르발이 보기에 빈첸은 실수했다.

트랩이 모두 없어졌다.

그러면 이제 청안 백호와 변이 고블린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트랩은 잘 파악했구나. 그런데 그다음은? 어쩌려고?”

그는 여전히 킬킬대며 웃었다.

뛰어난 탐지 특성과 트랩 파훼 특성을 지닌 듯하였으나, 직접적인 무력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 판단했다.

카르발이 청안 백호의 엉덩이를 톡, 두드렸다.

크아앙!

청안 백호가 빈첸을 향해 덤벼들었다.

청안 백호가 빈첸의 코앞까지 달려들었을 때까지, 빈첸은 반응하지 않았다.

-혀, 형님! 괜찮은 거죠?

전에 베었던 청안 백호는 마법으로 생성된 가짜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청안 백호였다.

이능검격의 검로가 보이지 않는, 진짜 마물.

빈첸은 정신을 집중했다.

‘더 가까이.’

청안 백호를 베어내는 검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검로는 보였다.

청안 백호와 테이머가 연결되어 있는 마나흐름을 느꼈다.

청안 백호를 강제하는 저 테이밍 능력 또한 이능이므로.

‘3초 후.’

심장으로부터 마나를 뽑아내어 마력회로에 구동시켰다.

‘큭.’

폭발을 베어낸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으하하하핫! 순순히 내 밥이 되거라!”

청안 백호가 앞발을 휘둘렀다.

인간의 머리쯤은 통째로 뜯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앞발이었다.

그 순간,

빈첸이 허리를 숙였다.

청안 백호의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빈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빈첸은 지체하지 않고 홍련을 휘둘렀다.

서걱-

무엇인가를 베었다.

‘베었다.’

빈첸은 허리를 폈다.

이제 더 이상, 청안 백호는 적이 아니다.

빈첸은 청안 백호를 공격하지 않고서 카르발을 향해 걸었다.

“이, 이게 무슨!”

청안 백호가 빠르게 달렸다.

되돌아왔던 방향 그대로였다.

크아아아앙!

청안 백호는 방금까지 주인이었던 카르발의 목덜미를 노렸다.

“이 미물이 감히!”

카르발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카르발 본인이 스스로 소개했듯, 그는 테이머이자 검객이었다.

그의 박도에 마나가 깃들었다.

팍!

낡은 검날이 가죽에 박혔다.

청안 백호의 어깻죽지에 박도가 박혀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틈이 생겼다.

‘지금이다.’

여지껏 걷고 있던 빈첸이 그 틈을 노려 ‘설인 걸음’을 운용했다.

‘설인 걸음.’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여전히 갈비뼈에는 통증이 있었고, 마력회로가 꼬여 버릴 것 같았으나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사삭-

눈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보법.

아덴카의 시종장 레일사에게 배운 걸음을 따라, 빈첸은 거리를 좁혔다.

키에에엑!

변이 고블린이 황급히 레이븐을 떨쳐내려 하였으나 레이븐의 날카로운 창격은 고블린의 움직임을 철저히 봉쇄했다.

“빈첸! 나 잘하고 있지!”

토벌이 아니라 시간을 끄는 것.

그것에 초점을 두고 시간과 체력을 안배했다.

“넌 어디 못 간다, 이놈아.”

빈첸의 요구대로, 레이븐은 최대한 고블린을 방해했다.

서걱!

홍련이 무엇인가를 베었다.

푸아아악!

피가 솟구쳤다.

비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동그란 것이 땅에 떨어져 굴렀다.

그것은 방금까지 빈첸을 비웃고 있던 카르발의 머리였다.

카르발의 머리가 떼굴떼굴 굴러 변이 고블린의 발에 닿았다.

“카르발의 목을 베었네?”

레이븐은 놀란 눈으로 빈첸 쪽을 바라보았다.

치직-

홍련의 검신에 뇌기가 깃들어 있었다.

키에에엑!

변이 고블린은 괴성을 지르며 카르발의 머리를 집어 들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그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도 레이븐은 별다른 동요 없이 창을 내질렀다.

“내 앞에서 식사를 해?”

그와 동시에 가까이 다가온 빈첸이 마나를 운용했다.

여전히 검에 뇌력이 담긴 상태.

먹을 것에 정신 팔린 변이 고블린의 목을 쳤다.

‘너무 단단하군.’

변이 고블린이 빈첸 쪽을 바라보았다.

테이머의 힘.

방금까지 고블린을 제약하던 힘이 사라진 지금, 본능대로 행동했다.

레이븐의 눈에 고블린의 뒤통수가 보였다.

“너는 내 거다!”

약점을 그대로 노출한 변이 고블린.

뒤를 보고 있어 마나를 증폭하는 것이 수월했다.

그는 ‘관통 특성’을 사용하여 고블린의 뒤통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나의 창은.’

레이븐의 심상이 맹렬히 회전했다.

병장기에 의지가 깃들어야 한다.

무인의 의지가 병장기에 날카로움을 더한다.

‘꿰뚫는다.’

그 강력한 믿음이 창에 전달되었고, 마나와 공명을 일으켰다.

빡!

변이 고블린의 뒤통수를 그대로 뚫어내었다.

어찌나 깊이 관통했는지, 고블린의 이마를 뚫고 빈첸의 배 앞까지 닿을 정도였다.

빈첸이 다시 한번 홍련을 휘둘렀다.

변이 고블린의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목은 창에 꽂힌 채, 몸이 무너져 내렸다.

크아앙!

모든 것을 지켜본 청안 백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후우.”

레이븐은 깊은숨을 내쉬며 창을 내려놓았다.

스르륵-

변이 고블린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빈첸은 그것을 마법 가공된 천에 감쌌다.

변이 고블린의 목을 회수하는 빈첸을 모습을 보며, 레이븐은 쾌활하게 웃었다.

“너 진짜 강하구나. 어떻게 한 거야? 고블린이랑 싸우느라 제대로 못 봤어.”

“그자는 진짜 테이머가 아니었다.”

500년 전에도 ‘테이머’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극히 희귀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마물과 교감하였고, 마물을 순종하게 만들었다.

“진짜 테이머가 아니라니?”

“특성을 통해 억지로 복종시켰어.”

500년 전 테이머들이 보았다면 기함을 토했을 것이다.

포식 권능을 가진 고블린을 굶주리게 만들고.

서로 앙숙이라 할 수 있는 청안 백호와 함께하게 만들고.

둘에게 충분한 먹이도 제공해 주지 않았다.

‘그런 건 테이밍이 아니었다.’

테이밍이 아니라 특성 발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마물을 강제하는 힘을 끊어내는 순간, 카르발을 공격한 거다.”

교감을 바탕으로 한 순종이 아니라 특성을 통한 복종이었기 때문에.

청안 백호는 빈첸이 아니라 카르발을 공격했다.

“마나 흐름이 강제적으로 끊어진 놈은 일시적인 그로기 상태에 빠졌고.”

테이머의 특성을 운용 중이었는데, 그것이 강제로 끊어졌다.

마력이 역류하면서 심상에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과거였다면 즉사했겠지만 심상이론이 창립된 지금은 그저 일시적인 그로기 상태에 빠졌을 뿐이었다.

“따라서 어설프게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

“또한 그자의 검은 무척이나 무디더군.”

율리안이 말해주길 그자의 특성이 ‘발골검’이라 했다.

놈은 무딘 검으로 발골하는 작업을 즐기는 변태였다.

“그 검은 베는 검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안 백호의 가죽을 온전히 베어내지 못하고 박혀버렸다.

그때, 빈첸이 빠르게 움직였다.

뇌력을 담아 순식간에 카르발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레이븐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빈첸의 시선이 레이븐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오늘의 레이븐은 제법 예리했다.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누군가, 또 다른 자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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