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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정석-56화 (56/184)

환생의 정석 56화

빈첸이 말했다.

“고블린들은 본래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그러나 임무하달서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멀린은 잠자코 빈첸의 설명을 들었다.

사실 그도 ‘변이 고블린’이라는 사실보다는, ‘틸로반 장로가 빈첸을 지목’하여 임무를 내렸다는 사실에 더 집중했다.

그런데 빈첸은 ‘변이 고블린’에 집중했다.

‘내가 기본을 잊었구나.’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임무를 내렸느냐’가 아니라 ‘임무의 내용’이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자신조차 잊고 있던 기본을, 빈첸은 잊지 않고 있었다.

“어떤 특이점을 발견하였느냐?”

“바로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고블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특이하지?”

“보통 그러한 고블린은 낙오된 놈입니다. 무기를 갖춘 성인 남성 둘만 모여도 충분히 토벌할 수 있는 개체입니다. 그런데 장로원 지목으로 제게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

너무 사소해서, 멀린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고블린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지요.”

“무엇이 숨겨져 있다고 판단했느냐?”

“이 고블린은 낙오된 것이 아닙니다.”

무리를 지어야 할 놈들인데, 무리를 짓지 않고 있다.

낙오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놈은 포식특성을 가진 놈일 확률이 높습니다. 낙오된 것이 아니라, 동족을 잡아먹고 강해져 홀로 남게 되었겠지요. 제가 도착했을 즈음에는 7급 이상의 힘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포식 권능을 가진 놈은 동족을 잡아먹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매우 드물지만 존재하는 경우였다.

‘나는 누구보다 이 경우를 잘 알고 있다.’

빈첸은 임무하달서에 기록된 변이 고블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슴팍에 7개의 점이 있었다.

500년 전,

데이븐도 변이 고블린에게 죽을 뻔했었다.

‘가슴팍에 7개의 점을 가진 변이 고블린.’

그때에도 그러한 고블린이 존재했었다.

그때와 같다면 지금의 변이 고블린에게도 ‘포식의 술식’이 남아 있을 것이다.

“틸로반 장로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겠느냐?”

7급 이상의 힘을 가진 야수종이라면, 9급 생도에게 주어질 만한 임무는 아니었다.

스승인 멀린이라면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임무이기도 했다.

“스승님. 이것은 저의 전쟁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인으로서의 전쟁은 아니었다.

이것은 후계자로서의 전쟁이기도 했다.

“저 또한 아덴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9급 생도 빈첸에게는 맞지 않는 임무였으나, ‘빈첸 아덴카’에게는 적합한 임무였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장로원에도 똑똑히 알리기로 했다.

아덴카에는 일곱 번째 아덴카가 있음을.

* * *

생활관으로 돌아온 빈첸은 눈을 감고서 율리안에게 물었다.

‘7개의 점을 가진 변이 고블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어?’

-변이야 워낙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니까요.

자연계 특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드물지만 주술을 부리는 놈들도 있다.

가끔은 육체가 강화되어 무척 강력한 힘을 가진 놈들도 존재한다.

그런 놈들은 이름만 고블린이지 사실상 다른 마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기도 했다.

-7개의 점이 그렇게 특별한 거예요?

‘나 때는 그랬다.’

500년 전.

빈첸은 직접 7개의 점을 가진 변이 고블린을 토벌했었다.

‘사미온의 극비 임무였어. 나는 당시 22살이었고, 그때 죽을 뻔했었지.’

-22살이었는데 죽을 뻔했다고요? 고블린한테? 많이 방심했어요?

‘아니.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때에도 최선을 다해서 싸웠었다.

그러나 변이 고블린은 아무리 변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강했다.

‘놈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고블린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키메라였다.’

-세상에. 흑마법이라는 거예요?

‘그래. 500년 전과 똑같다면 말이다.’

-흑마법과 관련된 변이 생명체나 키메라였다면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요.

대륙은 늘 흑마법을 경계해 왔다.

모든 가문이 그러했다.

그래서 흑마법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기록과 보관에 대한 특권을 지닌 ‘아스달가’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보관 중이다.

아스달가는 최소 1000년 이상의 기록을 지니고 있으며, 흑마법에 관한 지침서나 기록들을 대륙에 알리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저도 흑마법에 관한 연구나 기록일지들을 많이 봤어요. 사미온의 임무로 변이 고블린을 토벌했다면, 그 기록이 분명 남아 있을 텐데요.

‘그러니 이상하지. 변이 고블린은 당시 세상을 상당히 떠들썩하게 만들었거든.’

변이 고블린도 고블린이거니와, 그 고블린을 탄생시킨 흑마법사 데블론 때문에 한창 대륙이 시끄러웠었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팔이 데이븐이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임무는 기록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무리 500년이 흘렀다지만…….’

변이 고블린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데이븐과 관련된 역사가 왜곡되고, 아슬란의 가문이었던 ‘페일커’도 기록에서 사라졌다.

변이 고블린 역시도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한 것들 투성이였다.

‘부딪쳐보면 알겠지.’

다음 날.

빈첸은 바르곤에게 보고를 올렸다.

“어째서 혼자 떠나느냐?”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를 일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

바르곤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지원이 필요한가?”

“없습니다.”

바르곤은 빈첸에게서 그 어떤 흔들림도 찾아보지 못했다.

빈첸은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무운을 빈다.”

“대표생도 빈첸. 임무를 하달받아 남쪽 지방 투르니콘으로 진격하겠습니다.”

“원정을 허가한다. 붉은 요새 생도로서의 품위를 잃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빈첸이 바르곤의 집무실 문을 열고 나섰을 때, 덩치 큰 남자 하나가 훌쩍이고 있었다.

“공자님. 이러시면 저 무지 섭섭합니다.”

윌슨이었다.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빈첸을 향한 원망이 가득했다.

“원정 나가시는데 저를 왜 두고 가십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단독 임무로 가신다면서요! 혼자만 가신다면서요! 지이인짜로 혼자 가십니까?”

윌슨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윌슨은 빈첸이 큰 업적을 이룰 것이라 확신했다.

그 현장에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빈첸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위대한 시종 윌슨의 이름도 높아질 테니까.

“너는 임무 수행자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같이 가야지.”

“……네?”

“임무는 나 혼자 해도, 수발들어 줄 사람은 필요하다.”

변이 고블린은 혼자서 토벌할 것이었다.

그러나 원정 전반에 있어서 시중을 들어줄 사람은 필요했다.

“……예?”

“짐은 다 챙긴 모양이구나. 가자.”

윌슨의 등에는 커다란 배낭이 이미 메어져 있었다.

“그, 그것이……!”

“왜?”

윌슨은 고개를 휙휙 젓고서 두려움을 털어냈다.

그래, 나는 위대한 시종, 윌슨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최대한 활기차게 말했다.

“역시! 저를 데려가실 줄 알았습니다!”

그가 어깨를 쭉- 폈다.

자존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복도에서 마주친 시종들을 보며 으스댔다.

위험한 임무에 함께 가야 한다는 두려움은, 우쭐거림에 묻혔다.

‘봤지? 나 공자님 단독 임무에도 같이 가는 시종이다. 내가 이 정도라고.’

우쭐대느라 걸음이 느려진 사이, 빈첸이 멀어졌다.

“고, 공자님! 같이 가요!”

빈첸과 윌슨은 붉은 요새를 떠났다.

그 사이, 또 다른 누군가가 붉은 요새를 찾았다.

“집사! 여기서 빈첸을 만날 수 있는 거겠지?”

* * *

빈첸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한 남자와 소년이 바르곤을 찾아왔다.

바르곤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입성을 허가해달라고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바르곤은 소년을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붉은 요새의 정규 과정을 소화하겠다는 뜻입니까?”

“넵!”

“9급 생도로 시작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

“넵!”

“혹시 천과(天果)가 목적입니까?”

“천과요? 그게 뭐예요?”

소년은 천과의 소문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천과에 관심도 없는데, 어째서 바르티칸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붉은 요새의 생도를 지원합니까?”

바르티칸가는 창술의 명가라 불렸다.

사미온이나 아덴카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가(武家)들 중 하나.

지금 눈앞에 있는 이 14세 소년은 바르티칸의 외동아들로서 차기 바르티칸을 이끌 후계자였다.

“바르티칸 내에는 뛰어난 교육기관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교육기관으로서 ‘붉은 요새’의 명성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붉은 요새는 완전한 교육기관이라 보기에는 조금 애매했으니까.

교육기관으로서의 명성만 놓고 보자면 바르티칸의 ‘창성 무학당’이 훨씬 더 높은 입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창성 무학당의 3학년 과정을 최우수로 이수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걸 다 버리고 붉은 요새에 오겠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가문에서는 허락하셨습니까?”

“아버지도 그러라고 하던데요?”

“…….”

“입성을 원하는 이유는 뭐죠?”

“빈첸과 함께 배우고 빈첸을 이기려고요.”

“그게 진짜 이유입니까?”

저건 대외적인 포장이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바르곤은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레이븐이 되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순수했다.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 있나요?”

생각해 보면 레이븐에게는 딱히 득 될 것이 없는 입성이다.

다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바르곤이 물었다.

“공식 문서는 있습니까?”

순간, 레이븐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헤르카와 마찬가지로 ‘공식’이라든가 ‘문서’ 등에 진절머리를 내는 타입인 듯했다.

집사가 나섰다.

“여기 있습니다.”

바르곤은 집사로부터 입성 지원서를 받아 들었다.

서류상으로 완벽했다.

바르티칸의 인장까지도 선명히 찍혀 있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총책임자 헤르카 경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내해 드릴 테니 잠시 접객원에서 쉬고 계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시간이 흘러, 헤르카가 돌아왔다.

“엥? 바르티칸의 외동아들이 붉은 요새에 들어온다고?”

“예.”

“어떻게 할까요? 입성을 허가할까요?”

헤르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러자.”

“……예?”

“이례적이긴 하지만 안 될 것도 없잖아? 생각해 봐. 바르티칸의 유일 후계자가 붉은 요새로 오는 거면 우리 위상도 높아지는 거잖아?”

헤르카는 킥킥대고 웃었다.

바르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정치적인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거나, 바르티칸의 어떤 꿍꿍이가 숨겨져 있다거나, 뭐 그런 복잡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우리의 복잡하고 세심한 바르곤 경?”

“…….”

그런 건, 응당 해야 하는 걱정입니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바르티칸가입니다.

아덴카보다는 사미온에 더 친화적인 가문이라고요.

“복잡한 세상 편하게 좀 살자.”

“헤르카 경.”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문제 생기면 책임은 내가 질게. 그러라고 총책임자 있는 거잖아.”

헤르카는 손을 흔들며 바르곤에게 가볍게 윙크한 뒤, 밖을 향해 걸어갔다.

“대신 나머지 행정절차 부탁해, 유능한 바르곤 경!”

“…….”

“아, 맞다!”

헤르카가 몸을 돌렸다.

“빈첸한테 주어진 임무하달서, 누가 보냈다고?”

바르곤은 알고 있었다.

헤르카가 일개 생도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것이었다.

방어적으로 되물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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