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의 정석-51화 (51/184)

환생의 정석 51화

빈첸의 시종 윌슨은 어깨를 활짝 펴고 기세등등해졌다.

“아 글쎄, 안 된다니까요.”

윌슨은 스스로 중얼거렸다.

옛 윌슨은 죽었다.

나는 새로이 태어난 윌슨이다.

내가 바로!

빈첸 공자님의 직! 속! 시! 종! 윌슨 님이시다.

그의 가슴 속에 웅혼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기자님. 저한테 뇌물 주셔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공자님은 이미 마리아 기자님과 독점 계약을 체결하셨어요.”

윌슨은 소식지 기자들이 건네는 뇌물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아무것도 말씀 못 드려요!”

윌슨이 자신의 가슴을 탕! 탕! 쳤다.

“저! 이래 봬도 빈첸 공자님의 시종입니다.”

뇌물.

돈.

이런 것들보다는 ‘빈첸의 자랑스러운 시종’으로서의 명예가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들 돌아가세요.”

윌슨은 몸을 휙 돌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을 닫고서 벽에 등을 기댄 뒤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기자들 앞에서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사실 그도 엄청 긴장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래도 같은 방을 쓰는 시종들에게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 멋졌냐?”

“멋졌다.”

시종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사실 기자들이 바라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빈첸의 동향.

혹은 빈첸이 넌지시 말해준 전략 정도.

그 정도라도 귀띔을 듣기 위해 윌슨에게 온갖 뇌물을 건넸다.

말해주려면 말해줄 수도 있었으나 윌슨은 모조리 거부한 것이고.

“빈첸 공자님을 섬기려면 역시 너 정도 기개는 있어야 하는 거냐?”

“물론이지. 일편단심 해바라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섬기다 보면 너희도 볕들 날이 올 거다! 음하하핫! 앗, 내 정신 좀 봐라. 대검투장에 미리 가서 준비를 좀 해놓는다는 게 벌써 시간이 이래 되어버렸네?”

굳이 있는 티 없는 티 다 내며 수건과 물 등 몇몇 물품을 챙겼다.

“우리 빈첸 공자님께서 사미온 공자를 무너뜨리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해볼까나. 아참, 이것도 챙겨야지.”

윌슨이 작은 병 하나를 챙겼다.

얼핏 보면 음료수 같기도 했다.

“그게 뭐냐?”

“아, 기운을 북돋아주는 음료수야. 우리 공자님께서 3차 관문에 대비해서 특별히 나, 윌슨에게 명령하신 것이지. 나, 시종 윌슨은, 빈첸 공자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 음료수를 준비한 것이고.”

그는 손을 흔들며 대검투장으로 향했고, 시종들은 그 뒷모습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았다.

* * *

마리아는 인터뷰를 준비했다.

대인전이 벌어지기 전, 빈첸과 단독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유일한 기자였으니까.

기자들은 마리아의 선구안에 크게 감탄했다.

소식지계의 1인자라 불리는 센트럴.

그곳의 1급 파견기자 론도는 은근슬쩍 마리아에게 다가갔다.

“내 질문도 두어 개만 껴주면 안 되나?”

“제가 빈첸 공자한테 집중할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세요?”

그때,

론도는 분명 이렇게 빈정거렸다.

-바람소리의 1급 기자의 안목이 그리 없어서야.

마리아는 그때의 분함을 잊지 않았다.

“그땐 내가 말이 좀 심했어, 정식으로 사과할게.”

“됐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가 그래도 알고 지낸 세월이 있잖아.”

마리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얼마나 분했는지 론도의 말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사미온 검식의 화려하고 뛰어난 검술에나 집중하세요.”

“진짜 이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저 바쁩니다. 원고 써야 해요. 방해 말아주세요.”

론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흥! 어차피 빈첸 공자는 카곤 공자를 못 이겨. 이건 대인전이라고. 그냥 명백한 패배. 그게 딱 보이는 미래야. 인터뷰 한 개 더 딴다고 뭐라도 된 줄 알아?”

신경질적으로 걸어가며 침을 퉤! 뱉었다.

“어디까지 잘난 척 할 수 있나 보자. 재수가 없으려니.”

마리아의 조수인 조셉은 마리아 뒤에 섰다.

‘헐?’

마리아가 미리 작성하고 있는 칼럼이 보였다.

[빈첸의 반란. 의외의 한 수로 사미온을 꺾다.]

조셉은 마리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마리아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서, 선배님!”

“왜?”

“지, 지금 제 눈으로 보고 있는 게 맞죠?”

마법 깃펜으로 원고를 작성하던 마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원고를 작성하던 손을 멈추었다.

“왜? 너도 빈첸 공자가 질 거라 생각해?”

“다,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요.”

“당연히 빈첸 공자가 지겠지.”

“……예?”

“라고 다들 생각하고, 나도 높은 확률로 그럴 거라 생각해.”

1차와 2차 때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빈첸은 많은 소식지 기자들 중 마리아를 선택하여 신뢰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이번엔 마리아 자신의 차례였다.

“이번에 내 인생 베팅을 해보려 해.”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 그렇지만 확률적으로 너무…….”

조셉은 마리아가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잘 알아, 조셉.”

“…….”

“그렇지만 이게 빈첸 공자에 대한 내 신뢰의 증거가 될 거야. 빈첸 공자는 무인이고.”

그녀는 무인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무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자들을 귀히 여긴다.

마리아는 빈첸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차렸다.

“나는 단순히 칼럼을 쓰려는 게 아냐.”

“그러면……?”

“그에게 나의 쓸모를 보여 주려 하는 거지.”

“하지만 빈첸 공자는 이제 겨우 9급 생도잖아요. 수석 기자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그렇기에 지금의 몸값이 가장 저렴하겠지. 나는 내 눈을 믿어.”

“…….”

마리아는 다시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빈첸은 카곤 앞에 섰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빈첸은 홍련을 들었고 카곤은 청월을 들었다.

둘 다,

각 가문의 수장으로부터 수여받은 검이었다.

“오늘은 부디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카곤.”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빈첸.”

친선교류회 역사상 가장 많은 생도와 기자들이 집결했다.

친선교류회에 큰 관심이 없던 헤르카도 이번 결투는 무척 흥미로웠다.

헤르카가 빈첸과 카곤 사이에 섰다.

“둘의 결투 중재는 붉은 요새의 총책임 관리자이자 요새장인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음성 증폭 및 전달석을 통하여 모두에게 전해졌다.

헤르카는 양쪽의 관중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쪽에는 아덴카의 가주 칸이.

반대편에는 사미온의 가주 발키아가 앉아 있었다.

‘언니랑 오빠가 진짜 관전할 줄이야.’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후계경쟁에서는 굉장히 불리한 공자들에, 가주들이 직접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까.

“둘은 서로의 검을 맞대고 서로에 대한 예를 취하라.”

홍련과 청월이 교차되어 닿았다.

이것은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무예를 펼치겠다는 일종의 표현이기도 했다.

“아덴카의 빈첸. 사미온의 카곤. 둘의 명예로운 결투를 시작한다.”

헤르카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몇 걸음 뒤로 빠졌다.

빈첸은 곧바로 친우의 검이었던 팔콘의 검식을 사용했다.

‘네게서 느껴지는 카진의 그림자는 무엇이냐.’

놈과 직접 부딪치며 알아보아야 했다.

왜 저놈에게서, 카진이 느껴지는가.

‘실력은 내가 열세.’

실력 차는 뚜렷했다.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일단 막아야 해.’

카곤이 왼발을 앞으로 내질렀다.

각도가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져 있었다.

‘정면이 아냐.’

카곤 기준으로 오른쪽 측면.

빈첸의 왼쪽을 점하고 찌르기를 펼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나는.’

무거운 마나.

중검의 묘리를 이끌어 내었다.

‘막는다.’

아밀룬 제3검식.

중검첩방(重劍疊防).

중검의 마나를 겹겹이 쌓아 올려 방어에만 치중한 검술.

안 그래도 무거운 검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 상대의 검로를 막아내는 검이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오른쪽.”

일부러 말했다.

마치, 카곤의 검로를 이미 읽어내고 있어 내고 있는 것처럼.

쾅!

중검으로 찌르기를 막아냈는데 폭발 소리가 들렸다.

찔러내는 일검에 강대한 파괴력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무척이나 느린 검으로 카곤 공자의 찌르기를 막아냈습니다!”]

무예에 일가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방금의 방어는 예측을 기반으로 한 방어였다.

[“빈첸 공자에게 특별한 눈과 관련된 특성이 있습니까?”]

[“알려진 바가 없으나 빈첸 공자는 가호를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특성도 개화시키지 못했을 확률이 큽니다.”]

그렇다는 말은 육체 본연의 능력으로 검로를 미리 알아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빈첸이 쐐기를 박아주었다.

‘오른쪽’이라고 미리 말을 하면서.

바로 앞에서 살피고 있는 헤르카는 이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미리 읽어냈지?’

빈첸이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상대의 공격경로를 예측하려면 상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과, 그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빈첸이 또다시 읊조렸다.

“다시 한번, 동일한 점.”

그 음성이 헤르카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그와 동시에,

방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쾅!

똑같았다.

빈첸은 중검첩방으로 카곤의 날카롭고 강맹한 찌르기를 막아냈다.

[“같은 상황입니다!”]

[“빈첸 공자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워낙에 방어에 치중한 검이어서 반격을 하지는 못했으나 분명한 건 빈첸이 카곤의 경로를 또다시 읽어냈다는 것이었다.

카곤이 거리를 벌렸다.

카곤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왜?’

처음은 우연이라고 해도.

두 번은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둘의 결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기세 싸움이 시작되었다.

빈첸이 홍련으로 카곤을 겨누었다.

실력은 열세였으나 기백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빈첸이 입을 열었다.

“분명한 건.”

이전의 데이븐은 오로지 무력으로 카진을 넘어서는 것에 열중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검을 섞는 것이 아니라, 말을 섞는 것 역시 결투의 일부였다.

빈첸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카곤을 겨누었다.

“네 예측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나면, 너는 당황한다는 것이다.”

카진은 천재였다.

역설적이게도 그 천재는, 자신의 예측이 벗어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설인걸음.’

빈첸이 설인걸음을 사용하여 가까이 접근했다.

별다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여 검을 휘둘렀다.

후웅!

빈첸의 검이 허공을 베었다.

빈첸이 또 말했다.

“분명 반격할 수 있었으나 반격하지 않았군.”

빈첸이 씨익 웃었다.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

헤르카는 무엇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빈첸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부가적으로, 생도들과 기자들은 빈첸의 말에 열광하고 있었으며 칸과 발키아의 희비가 엇갈리는 중이기도 했다.

하나의 연출로 여러 효과를 보고 있었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카곤이 씨익 웃었다.

“이번 대결로 많은 것을 얻어가려 하는구나, 빈첸.”

“…….”

“아쉽게도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그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일기 시작했다.

사미온 특유의 기운 ‘적황미력(赤皇美力)’이었다.

“헤르카 경께서도 조금 더 조심해 주셔야 할 겁니다. 저는 진심으로 빈첸을 벨 테니까요.”

그 기운을 본 기자들은 더욱 바빠졌고, 생도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