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의 정석-50화 (50/184)
  • 환생의 정석 50화

    반대편 쇠창살이 열리고 빈첸과 카곤이 마주 섰다.

    그 사이에 총책임자 헤르카가 섰다.

    “2차 관문 대 마물전의 승자는 빈첸 생도입니다.”

    헤르카와 마법사단장 알베르토.

    그리고 사미온의 장로인 홀리만의 협의하에 결정된 승리였다.

    헤르카가 빈첸과 카곤 사이에 섰다.

    빈첸이 2차 관문에서도 승리했다.

    빈첸이 보여준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카곤 공자의 무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고, 빈첸 생도의 움직임에는 허점이 있었으나.”

    다만,

    빈첸이 그 허점을 일부러 노출했다고 판단했다.

    전략적으로 더 극적인 연출을 하기 위하여.

    “결국 빈첸 생도가 의도한 대로 리자드맨을 한 번에 가르는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므로 빈첸 생도의 승리로 결정하였습니다.”

    홀리만 장로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으나 그도 크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헤르카가 작게 말했다.

    “그러나 빈첸 생도는 몸을 좀 더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할 것 같아. 의도는 알겠으나 그러한 방식은 몸을 상하게 만든다고. 몸을 좀 아껴.”

    빈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헤르카가 카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곤 공자는 할 말이 있나?”

    “있습니다.”

    카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뒤 검투장의 인파를 한 번 둘러보았다.

    “빈첸이 저에게 좋은 경고를 해주었군요.”

    카곤은 귀공자답게 여유로이 웃고 있었다.

    “실제로 저는 빈첸을 상대로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패배의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카곤이 빈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잘못을 깨닫게 해주어 고맙다. 다음 결투에서는 네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빈첸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도 빈첸의 육감은 어김없이 진가를 발휘했다.

    ‘율리안. 나 이놈 손 잡기 싫은데. 왜 그런 거냐?’

    -그 손 잡으면 저놈 대인배 귀공자 만들어주는 꼴 돼요.

    소식지의 기자들이 이쪽에 집중하고 있다.

    저 손을 맞잡으면, 둘의 아름다운 모습이 대륙을 강타할 것이다.

    아름다운 경쟁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그럼 꺼지라고 해야겠군.’

    빈첸은 손을 잡지 않고 말했다.

    간만에 율리안과 빈첸의 뜻이 완전히 일치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지. 넌 1차 관문에서도 패배했으니.”

    “…….”

    “나는 네가 네 방심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1차 관문에서 패배해놓고서, 여전히 방심을 놓지 않은 애송이로 전락시켰다.

    “그것은 방심이 아니라 나에 대한 모욕이었어.”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빈첸.”

    “의도가 중요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네가 무인이라면.”

    빈첸은 결국 카곤의 손을 잡지 않고 몸을 돌렸다.

    “우리가 맞대어야 할 것은 손이 아니라 검이다.”

    빈첸과 카곤의 모습이 소식지에 담겼다.

    둘의 모습 덕택에 ‘친선교류회’는 전보다 훨씬 더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얘기 들었어? 마지막 관문에 각 가문의 가주들이 참석한다는데?”

    “뭐라고?”

    친선교류회는 물론 직계들의 행사이기는 하나, 열네 살 어린 무인들의 잔치에 가까웠다.

    게다가 승패가 거의 정해져 있어서 아주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사미온의 가주 발키아 사미온.

    아덴카의 가주 칸 아덴카.

    두 명의 거인이 ‘3차 관문’에 함께 하기 위해 이동관문을 타고 이동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이, 헛소문이겠지.”

    “아냐. 소식지에 그들의 모습이 잡혔어. 이것 보라고.”

    헛소문이 아니었다.

    두 거인이 실제로 붉은 요새를 찾았다.

    총책임자인 헤르카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두 분이 왜 여길 와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네.”

    칸과 발키아는 그리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칸과 발키아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기세 좀 풀어줘요. 상황 모르는 생도들 겁먹는다고요.”

    헤르카의 말에 칸과 발키아는 서로를 향한 기세를 풀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1년 만이네.”

    둘이 마지막으로 검을 맞댄 것이 1년 전이었다.

    그때는 무승부였다.

    “네 가문의 못난이가 꽤 멋지게 성장했다지?”

    “네 가문의 기재는 생각보다 못한 것 같더군.”

    둘의 눈이 허공에 부딪쳤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땅이 흔들렸다.

    헤르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 입성절차는 끝냈고요. 제발 붉은 요새에서 칼부림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시겠죠? 제발요.”

    헤르카는 칸과도 친하고 발키아와도 친분이 깊었다.

    속으로 외쳤다.

    ‘자식 자랑으로 자존심 싸움도 하지 마시고요!’

    어린 시절 헤르카는 칸을 오라버니라 불렀고, 발키아를 언니라 불렀다.

    지금도 사적으로는 그렇게 부르고 있고.

    “붉은 요새 예산 빡빡한 거 두 분 다 아시죠?”

    저 둘이 혹시 결투라도 벌이면 붉은 요새가 아작난다.

    “오라버니랑 언니랑 싸우면 진짜 나 확 자살해 버릴 거예요.”

    그날 밤.

    헤르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빈첸을 찾았다.

    붉은 요새의 총책임자가 9급 생활관을 찾자, 생도들은 바짝 긴장했다.

    “됐어, 됐어, 다들 할 거 해. 나는 신경 쓰지 마들.”

    그녀는 빈첸을 찾았다.

    “빈첸.”

    “예.”

    “오늘 저녁에 시간 좀 있니?”

    “수련 외에 별다른 일정은 없습니다.”

    이틀 뒤, 카곤과의 일대일 결전이 벌어진다.

    그를 위하여 휴식을 취하려 했다.

    “두 사람이 저녁 좀 같이 먹잔다.”

    “두 사람이라면…….”

    “그래. 네 아버지와 사미온의 가주. 아니, 그러면 세 사람이 되겠네.”

    “카곤도 함께입니까?”

    “그래. 그렇대. 나 참. 이런 조합은 또 처음이네. 아무튼 나는 전했다? 나도 같이 먹을 거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시간은 저녁 7시. 붉은 요새 총관 4층 식당으로 와.”

    저녁 7시가 되었다.

    붉은 요새 총관 4층 식당.

    아덴카의 칸과 빈첸.

    사미온의 발키아와 카곤.

    네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저녁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 * *

    빈첸 앞에 접시가 하나 놓였다.

    버터를 발라 구운 밀가루빵이었다.

    옆에는 딸기로 만든 잼이 놓여 있었다.

    ‘이 상황이 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적어도 아버지 대에서는 처음이에요.

    아덴카의 가주와 직계.

    사미온의 가주와 직계.

    넷이 모였다.

    “빈첸, 입맛에 안 맞니?”

    사미온의 가주 발키아의 말투는 상냥한 편이었다.

    “아닙니다. 입맛에 잘 맞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녀는 품위 있는 몸동작으로 자신의 몫으로 나온 빵을 썰었다.

    “자, 그럼,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당신의 말을 한번 들어볼까?”

    발키아는 빵을 썰던 빵칼을 들어 올려 칸을 겨누었다.

    빈첸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홍련을 뽑을 뻔했다.

    그만큼 발키아의 기세는 맹렬했다.

    그 사이, 발키아와 눈을 마주쳤다.

    ‘내 기세를 읽고 반응했잖아?’

    어리숙한 무인들은 방금 자신이 내뿜은 기세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빈첸은 분명 발키아 자신의 기운을 읽어냈다.

    ‘기감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

    발키아가 싱긋 웃었다.

    빈첸은 그 웃음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정확히 측량할 수는 없으나 강함이 느껴졌다.

    ‘강하다.’

    그래서 좋았다.

    넘어서야 할 산이 높고 험했으니까.

    칸이 냅킨으로 입가를 닦은 뒤 물었다.

    “왜 웃었느냐?”

    “사미온의 가주께서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느껴지느냐?”

    “예.”

    칸은 냅킨을 내려놓았다.

    빈첸의 대답이 흡족한 듯했다.

    그리고 발키아에게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내 무슨 말을 듣겠다는 거지?”

    “당신이 이 자리를 주선했잖아.”

    “그랬지.”

    이후, 애피타이저로 유자청을 곁들인 아보카도 샐러드가 나왔다.

    칸이 포크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서 힐끗 발키아 쪽을 바라보았다.

    “…….”

    “…….”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칸이 이해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 아이는 반응하지 않는군.”

    발키아가 빈첸에게 한 것처럼, 칸도 카곤에게 똑같이 했다.

    빈첸은 반응했으나 카곤은 반응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반응하지 못했다.

    빈첸과 달리, 카곤은 심상이론을 공부하였고, 그보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칸의 기세를 읽어내지 못했다.

    발키아가 카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아들. 긴장 풀어도 돼.”

    칸이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맛이 좋은지 꽤 기분 좋은 표정으로 우물거렸다.

    -설마 설마 했는데…….

    율리안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식 자랑하러 나온 학부모들 같은 모양새네요.

    빈첸은 반응했고 카곤은 반응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칸은 승리했고, 발키아는 패배했다.

    실제로 칸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발키아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건 상상도 안 해봤는데.

    아버지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율리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반대로, 발키아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세계의 절대자이고, 또한 가장 뛰어난 검술가이면서, 또한 부모이기도 한 것 같았다.

    지금 저들이 보이는 모습은 여느 가정의 평범한 부모의 모습과 같았다.

    ‘그렇게 기쁘냐?’

    빈첸은 율리안의 적나라한 감정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율리안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 그렇게 기쁜 건 아니고요.

    그러나 목소리가 굉장히 떨렸다.

    그 자신이 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것도 사미온의 가주 앞에서.

    발키아가 말했다.

    “빈첸은 마치 실전경험을 많이 쌓은 베테랑 같은 느낌이 있네.”

    “감사합니다.”

    칸도 입을 열었다.

    “사미온의 6공자는 검을 뽑아야 할 때와 뽑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하는 눈을 가졌구나.”

    “……감사합니다.”

    발키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겉으로는 칭찬이었으나 이는 결코 칭찬이 아니었다.

    반응했으나 일부러 검을 뽑지 않은 것과, 반응조차 못한 건 다른 문제니까.

    칸은 오늘의 저녁 식사가 흡족한 듯했다.

    “주방장의 요리실력이 좋군.”

    발키아는 그런 칸이 영 못마땅한 듯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고 말했다.

    “3차 관문에서도 빈첸이 이길 거라고 예상해?”

    스테이크를 썰던 칸의 손이 멈추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율리안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율리안은 칸의 ‘그렇다’라는 대답을 갈망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인정.

    평생토록 바라왔던 것이니까.

    “아덴카는 사미온을 넘어설 것이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빈첸이 카곤을 이길 것이라는 얘기였다.

    발키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500년 동안 못 넘어섰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때, 빈첸이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

    발키아는 일부러 빈첸과 눈을 마주쳤다.

    눈을 보면 상대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진심인 것 같네.”

    실제로 빈첸은 진심이었다.

    빈첸은 사미온을 넘어서기로 했으니까.

    발키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런 애가 못난이로 불렸단 말이야? 아덴카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는 건가?”

    발언의 기회를 얻지 못한 카곤과 달리 빈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흐름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아덴카에 저보다 빛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야.”

    율리안은 볼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칸의 눈에 서린 흐뭇함을.

    데이아 공녀를 볼 때에만 보여주었던 그 눈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흥미롭네. 가문에서 꽤 괄시받은 줄 알았더니.”

    “제 그릇에 맞는 대우를 받았을 뿐입니다.”

    빈첸은 두 절대자에 비해 실력은 뒤처질지언정 기세는 뒤처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두 절대자.

    그리고 사미온의 기재와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대우였다.

    “이러한 영광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칸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오늘은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으어어어엉! 흑흑!

    그것을 확인받은 율리안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반면 카곤은 반쯤 소외되었다.

    입을 다물고 칼질을 하는 카곤의 눈에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모든 면에서 빈첸과 칸의 완승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났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좋은 결투를 기대할게.”

    카곤도 한 마디를 보탰다.

    “다음에는 분명, 훨씬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빈첸.”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다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오늘의 식사에서도 크게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3차 관문.

    대인전(對人戰)의 날이 밝았다.

    0